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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추위
조이풀 | 2017-02-12 15:59:03 | 조회 1075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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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추위


한낮 기온 영하 6도, 거친 바람이 더해져서 체감온도 영하 10도쯤 되는 날이다. 모처럼 겨울다운 날씨다. 길 가는 행인들은 자라목 꾹 감추고, 푹 눌러쓴 털모자, 눈만 빠꼼히 뜨고 총총 걸음을 옮긴다. 이런 추위 처음이라는 듯 눈길이 전부 발밑이다. 비켜서야 할 차가 다가와도 시선이 발밑이라 크락션 소리를 듣고서야 움찔한다. 운전자는 자신이 크략션을 울려놓고도 미안해 하는 모습이다.

이 정도 추위 쯤이야. 내가 경험한 추위 이야기, 군사 비밀일 것 같아서 지금까지 한번도 이런 얘기 안해 봤는데 이제는 해도 될 것 같다. 군 시절 겨울 이야기다.


나는 철원 월정리역 평강고원 일대에서 군 생활을 했다. 주요 임무는 비무장지대 내 수색과 매복이었다. 수색은 주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고원의 아름다운 경치를 눈에 넣으며, 정해진 길을 따라 두어 시간 걷고 오면 되는 것이다. 어슴푸레 안개라도 있는 날이면 전방 시계가 긴장되게는 했지만 어디로 숨어야할지 모르고 날뛰는 노루 녀석들을 보는 재미가 컸다. ‘야 빨리 안 와’ 선임병의 호통은 틀림없이 시냇물 속에 뭐가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향한 것이다. 개구리 알, 도룡뇽 알, 차가운 물 속에 그런 자연들이 있었다. 손컵으로 한움 뜬 물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겨울 매복은 추위 때문에 무척 고통스러웠다. 일몰 시간 철책 통문 앞에서 아홉명의 병사가 모여 기도를 한다. 말 그대로 ‘오늘도 무사히’다. 우리는 하나의 종교를 갖고 한 마음으로 기도를 한다. 분대원 중 막내가 대표 기도를 하는데 그 시간만큼은 모두가 절실하고 간절한 마음 뿐이어서 눈을 꼭 감고 있다.

끼이익 굉음을 내고 통문이 열리면 아홉명의 병사는 매복지를 향해 느린 걸음 이동을 시작한다. 내복, 깔깔이, 군복까지는 기본 방학복이다. 거기에 방탄조끼를 입고, 위장복과 판초우의를 입는다. 머리에는 방한모를 쓰고, 철모를 쓴다. 방한 털신발은 금방 땀이 찰 것이기 때문에 보송보송해야 한다. 손 난로인 솔벤트 두 개는 추위를 달래가며 견뎌내야 할 무척 사랑하는 애인이다. 도저히 졸음을 못 참을 때까지는 꺼지지 않고 살아있어야 한다.

 

목적지까지 걷는 동안은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추운 줄 모른다. 이동 중 잠시 잠시 쉬었다가는데 쉬는 동안 차가운 공기 입자들이 눈썹에 달라붙는다. 허옇게 서리발 낀 눈썹을 서로 바라보며 웃는다. 이 때부터는 말 소리도 잘 나오지 않아서 아랍어 비슷한 발음이 나오곤 한다. 경상도 병사들은 원래 발음이 이 발음과 다르지 않아서 자주 놀리곤 했다.


매복지에 도착해서 전투 준비를 하고 수신호 견인줄을 삼인일조 각 조에 연결하고 나면 이제부터는 정적과 고요의 싸움이다. 멀리 철책의 희미한 투광등 불빛, 지피에서 들려오는 스피커 찢어지는 대남 대북 방송, 십여분 간격으로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견인줄 당김, 이게 전부다. 세 명이 등을 맞대고 근무를 하지만 고참은 이미 골아 떨어졌을테다. 자정 무렵이면 발에서부터 추위가 찾아온다. 볼따구는 탱탱 얼었고, 입은 벌어지지 않는다. 이 쯤이면 영하 18도, 체감온도 영하 이십오도 되는 날씨다.


별에 별 오만가지 생각이 찾아온다. 입대 전에 무엇을 했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생각을 떠올려본다. 나보다 늦게 입대 한 친구를 떠 올리면서 ‘그 친구 고생 많이 할텐데’ 위로를 삼는다. 여자 친구로부터 온 편지 내용은 수십번을 되짚어 보기도 한다. 가수 이선희의 노래, 김완선의 춤, 시간 가는 것에 도움 될 만한 기억은 모두 꺼내본다. 그래도 시간은 가지 않고, 손 난로 솔벤트가 힘겹게 버티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쯤이면 졸음과의 싸움이다. 견인줄을 손목에 칭칭감는다. 이제는 십분 간격이 아니라 일출 철수 때까지 미동조차 않을 견인줄이다. 다 자기 때문이다. 그래도 꼭 잡고 있어야 한다. 졸음 앞에 장사 없다고 그 추위 속에서도 단잠을 잔다. 잠을 자면서도 지금이 몇 시나 되었는지는 동물적 본능으로 알 수 있다.


헛것을 자주 보는 선임하사가 있었다. 어둠 속에 시커먼 물체가 사람처럼 움직였고, 적으로 판단되어 연발 탄피를 쏟아냈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졸다가 갑자기 눈 뜨면 이런 오인 사격이 나올 수 있다. 비무장지대 매복조에서 총성이 울리면 지피며 철책에서는 일제히 조명탄을 쏘아올리고 대낮처럼 환해진다. 주무전, 부무전 두 대의 무전기는 상황 보고에 정신 없다. 이 때는 바로 철수다. 통문에는 5분 대기조, 헌병대, 보안대 등이 총 출동해 있다. 신임 소대장은 호기심이 많아 수류탄 안전핀을 뽑아놓고는 그 핀을 다시 꽂아야 하는데 잘 안된다고 해서 조원들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간 적도 있었다. 우리 조 막내는 건망증 때문에 곧잘 탄창이며 장비를 매복지에 두고 오곤 했다. 이럴 때는 수색조에 부탁해서 수거를 하곤했다. 물론 담배 한갑을 바치면서 말이다.


겨울 밤 혹한 추위 속에 있다보면 이런 이상 행동이 나오는 것이다. 유시민 작가의 중편 소설 '달'은 철책 병사의 겨울 추위와 졸음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고, 주인공이 목숨을 잃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철수 신호가 날아온다. 얼어붙은 판초우의가 끼익끼익 로봇 소리를 낸다. 아홉명의 병사 로봇이 전투장비를 회수하고, 걸어왔던 길을 따라 철수한다.

통문과는 후레쉬 불빛으로 신호를 주고 받고, 통문을 나가면 어김없이 중대장이 마중 나와있다. 육공 트럭을 타고 부대에 복귀하고 나면 보일러 온탕에서 몸을 녹인다.


젊음이란 이런 것인가보다. 삼십년 전에는 이런 추위도 아무렇지도 않게 밤 동무를 했으니 말이다.


#전초대 #유시민중편소설달

     

덧글쓰기 | 전체글 5건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태목(최두한)  

이 글을 읽을 때는 조이풀님 얘기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맨 아래 해시테그에 첨맘님 중편소설이라고 쓰여 있어서
첨맘님 소설인가 햇갈렸는데, 조이풀님 경험이 맞네요.
조이풀님이 빡센 부대인 수색대에서 군 생활을 하셨군요.
지금 보기와는 다르네요. ㅋ~
17-02-13

조이풀  

박무님도 저와 비슷한 군생활 하셨어요. 박무님은 1사단, 저는 6사단...
창원의 민호영님은 제가 전역할 때 막내로 들어오고 ㅎㅎ
17-02-13

의왕달팽이  

조이풀님이 겪으셨을 그 추위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차마 짐작이 되지 않네요.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국민에게는 그에 응당한 대우를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이나 정신적 보상을 해줄수 없으니 금전적 보상이라도 정당하게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17-02-13

조이풀  

정권이 바뀌면 군 개혁은 반드시 따르리라봅니다.
징집을 하되 의무복무 6개월 하고 그 이후는 원하는 병사들에 한해서 모병제(급여지급)를 실시하는겁니다.
저처럼 했던 철책 근무는 현대장비로 대체해도 됩니다. cc카메라, 드론, 로봇이 해도 되구요.
지피, 지오피 병사들에게는 라면을 충분히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라면 때문에 많이 싸우거든요. 특히 겨울에는 초소 근무하면서 쉬는 동안 라면 하나가 없으면 절망이랍니다.
17-02-14

의왕달팽이  

역시 경험이 중요하네요~~
조이풀님 제안 하나하나가 군인들에게는 요긴하면서도 국가재정부담면에서도 실현 타당성이 있어 보이네요.
17-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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