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팽목항 가는 길
정말 멀고도 멀었습니다. 예은이 아빠 딸 데리러 순식간에 달려가던 그 길인데
내가 달리는 이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안보입니다.
세찬 비는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하다 그치고, 다니는 차는 많지 않아 길은 조용하고 한적한데 해가 저물자 사방이 캄캄해집니다.
진도읍에서 저녁 먹고 팽목항에 도착하니 이미 밤이 깊었습니다.
마침 한무더기의 방문객이 있어 함께 실종자가 돌아오길 촛불 들고 기원했습니다.
어디서 오신 분들인가 물었더니 참여연대 상근자들 워크샾 중에 여기 들렀다고 합니다.
5명의 단원고 학생 이름,두분의 교사,요리사,동생을 살리고 실종된 6살 아이와 아빠....
11명의 이름을 한명 한명 부르며 빨리 나오길 빌었습니다.
팽목항엔 연등과 노란 리본이 파도소리에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진도군 농민회원이신 곽상길님께서 진도의 역사를 설명해주셨습니다.
진도는 죽음과 연관된 역사가 많았었다구요.
고려시대 삼별초도 쫒기고 쫒기어 여기까지 와서 토벌 되었고,
진주대교 밑 울돌목에선 왜병 수만이 빠져 죽었고,
동학 농민군도 밀리다 밀리다 여기까지 밀려와서 죽고,
6 25 때도 좌우익 대결이 유난히 심했던 곳이라 합니다.
그래서 진도는 죽음에 관한 만장문화가 이어져내려오고 있는 것 같다 하시더군요.
지금은 세월호 영향으로 관광객도 없고
진도에서 생산된 해산물이 팔리지 않아 많이 힘들다 하십니다.
국민들께서 진도산 해산물 소비해 달라고 부탁의 말씀이 있었구요.
팽목항 들렀다 진주실내체육관에 들어섰을 때는 밤이 꽤 깊었습니다.
자원봉사자 등록하고 이층 자봉자들이 자고 있는 관중석 통로에 담요 깔고 잠을 청했습니다.
어디서나 워낙 잘자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조금 잠을 설치고 일어나서 화장실에서 씻었습니다.
7시에서 9시까지는 실종자 가족을 위해 양보해 달라는 안내문이 써있는데 다들 화장실에서 씻더군요.
온갖 치약과 샴푸, 비누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습니다.
밥먹으러 밖으로 나가니 봉사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조용히 웃으시며 밥도 떠주고 국도 퍼주고 반찬도 올려주시고 계란후라이도 얹여 주십니다.
뜬금없이 아침밥 먹다가 감동 먹어서 뭉클했습니다.
어제부터 웃고 떠드는 사람은 없지만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의 표정이 다 평온하고 온화하십니다.
속세에서 모두 거친 경쟁사회를 살아내던 사람들인데 여기에서는 다들 딴세상 사람들입니다.
진도에 와서 기대 못한 공동체생활을 경험하는 행운도 얻었습니다.
나는 체육관 안팎에 있는 모든 쓰레기를 수거해서 분류하고 처리하는 일을 배정 받았습니다.
대구 명일교회에서 봉사오신 젊은 분들과 말을 많이 하고 싶어하는 진도가 고향인 청년과 한팀이 되어 일하는데 내가 제일 농땡이였습니다. 서로 먼저 하려고 나서니 나이 많은 내가 좀 쳐졌습니다.
자발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쓰레기 치워주니 고맙다며 먹을 것 챙겨주는 분들도 계시고, 냄새는 좀 나고 더러운 일이지만 정말 젊은 친구들과 재미있게 일했습니다. 대구와 유시민 얘기도 섞어 하면서...
지금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할 일이 많지는 않더군요.
실종자 가족들이 얼마 남지 않아 세상에서 잊혀질까 두려워 불편한 진도체육관을 떠나지 않는다합니다.
오고 가는 길이 멀기는 하지만 꼭 일박하면서 봉사활동 하지 못하더라도 한번 들러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오고가야 불안한 마음이 조금 더 가라앉을 테니까요.
시간이 되어서 봉사활동까지 한다면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생활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동이 있는지 경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울다가 웃고, 분노하다가 행복해하다가 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감동을 누려보시지 않겠습니까?
예은이 아빠.
요즘 국회에서 국정조사하는 것 보시면서 힘드시지요?
매일 잊지 않고 예은아빠 생각합니다.
잊지 않을테니 걱정 마시고 힘내세요.
우리 시민광장 회원들 함께 하실겁니다.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