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은 문학광장 날적이에서 함께 입력된 njbora님의 글입니다. |
[김동춘] 대한민국의 야만성, 그 기원을 묻는다.
전쟁과 학살, 국가폭력을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http://soundcloud.com/ddanzi/1-126/download.mp3
한국 보수세력 '학살의 정치', 어디서 시작됐나
http://m.media.daum.net/m/media/culture/newsview/20131119131305163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한마디로 그동안 대한민국은 '학살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였다. 가해자 처벌은커녕, 유족들은 사회적 차별과 천대 속에 학살당한 억울함을 가슴 속에 파묻고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함부로' 꺼내서는 안 되는 기억이었다. 더 나아가 '국가의 의도된 폭력'은 "법을 우롱하고 정치를 굴절시키고 사회를 도덕적으로 오염시키고 정의를 실종시키며 … 모든 정치 공동체 구성원들의 건강한 의식과 사회 참여 의지를 마비시키고 위축시"켜 버렸다.(7쪽) 그리고 여기에서 한국정치·사회가 안고 있는 숱한 질병과 야만성이 기원했다.
"(학살의 과거는) 우리 사회에서 '죄와 책임'의 문제, 사법정의와 도덕 질서를 완전히 뒤헝클어 놓았고, 전쟁의 논리가 일상의 사회적 유대를 완전히 파괴하였으며, 그것이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 … 한국사회는 여전히 '단 한명의 빨갱이가 없어도 빨갱이를 창조해낼 사회'다. 한국전쟁은 확실히 60년도 더 지난 옛일이 되었으나 여전히 휴전 상태에 있고, 우리는 지금 다른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자영업자와 비정규직은 생존의 전쟁을, 화이트칼라나 기업의 임원은 조직에서 살아남기의 전쟁을, 그리고 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전쟁을 매일매일 치르고 있다. 노동자에게 삶은 전쟁이 아닌 적이 없었고, 일터는 '계엄 상황'이 아닌 적이 없었다. 기업의 사용자나 임원은 군대의 상관보다 더 엄한 명령자이고 그곳에 표현과 사상의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 민간인의 생명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던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죽음의 행렬은 계속되는데 단지 그 방식과 강도만 달라졌을 뿐이다."(443쪽)
인간이 인간을 '파리 목숨'(피학살자)으로 여기거나 '산송장'(피학살자의 유족)으로 만들고,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것들에 대한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일상과 사회의 야만성은, 궁극적으로 파괴와 죽음으로 이어진다. 그것이 정치판에선 '매카시즘'과 '공작정치'로 나타나고, 사회에선 '벼랑 끝으로 몰리는 삶'으로 구현된다. 당장 우리사회의 높은 자살률이 상기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