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하수를 아시나요>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다시 무대로 돌아와 2014년 새롭게 준비한 연극입니다.
40년 전부터 생각하고 해보고 싶었던 작품입니다.
친구 여러분들을 모시면서 어느 팬이 보내준 글 중에서 일부를 붙입니다.
<명배우 명계남>
흔히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가 된다고 한다
만약 “좋은”의 뜻이 “완벽한” “성숙한”이라는 말과 동의어라면, 그는 좋은 사람은 아니다. 완벽하지도 않고, 때때로 우리 사회가 흔히 어른으로 규정해 놓은 잣대로 재면, 형편없는 철부지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 그는 좋은 인간도 아니고, 당연히 좋은 배우도 아니다. 허나, 그 “철들지 않음”에 너그러운 사람이라면, 그는 꽤 매력있는 사람일 것이다. 가슴이 시키는대로… 그가 일러준 당신 집의 가훈이다. 가훈이라는 말도 좀 거창하다. 당신이 당신 아이들에게, 나 같은 후배들에게 늘 해주는 말이다. 가슴이 시키는대로 살라고. 뿐만 아니라 본인이 스스로 그렇게 살았고, 지금도 그러고 살고 있다. 20대에는, 넉넉하게 30대까지는 가슴이 시키는대로 살고 싶어하고, 그런 삶에 도전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 쉽게 길들여진다. 가슴이 아니라 머리가, 머리도 아니다. 세상이, 즉 남이 시키는대로 살아간다. 우리 사회처럼 개인에게 허용하는 일탈의 범주를 매우 좁게 설정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사회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남, 나와 다르게 사는 이웃에 대한 경계와 배제는 한국인의 기질적 특성이 아니던가? 이런 분위기에서,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가슴이 시키는대로 서슴없이 살아온, 살고 있는 그는 분명 특별한 사람이다. 그런 그의 삶을 긍정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좋은 사람이고, 당연히 좋은 배우다. 왜냐면, 배우는 정형화된 한 가지 인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널린 별처럼 많은 사람, 그 많은 사람이 품고 있는 천갈래 만갈래 내면의 한 단면을 잘라 내 보여주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배우에게는 우리 사회가 허용하는 것 보다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행동이 남의 이익을 침해하고, 상대의 인신과 인격을 모 독한 것이 아니라면, 배우의 영혼은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속세의 기준에서 벗어난 집단. 광대란 그런 사람들이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