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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안 일어나겠지?>
배가 고파서 컵라면을 하나 물 붓고 앉아 기다린다.
밤 10시 불이 하나 건너 하나씩 꺼지고 어둑한 저 끝 병원 복도
저만치서 걸어오는 할머니 한 분이 절뚝거리며 천천히 온다.
나이 들도록 험한 일을 하셔서 무릎 관절이 다 나가신 걸까?
아님 뇌경색이라도 가볍게 오셔서 편마비가 되신 걸까?
‘나는 저 할머니만큼 나이 안 먹겠지?
아님, 나이 들어도 무릎은 안 망가질거야!‘
<내게는 안 일어나겠지?>
그렇게 생각하다 문득 씁쓸해진다. 누구 맘대로?...
예전에 틀렸던 <내게는 안 일어나겠지?> 기억이 여럿 떠오른다.
아내가 처음 무서운 통증 와서 폭 꼬꾸라질 때 그랬다.
티비서 보던 무슨 다큐멘터리의 딱한 사람들처럼 그러지는 않겠지 하며,
그런데 그 무슨 다큐멘터리에 주인공이 되어있었다. 딱 그렇게,
살다보면 그런 경우 자주 만난다.
설마... <내게는 안 일어나겠지?>
그 설마가 사실이 되고 고통이 되고 역사가 되는 일들이,
설마? 하던 사업이 무너지기도 하고,
설마? 하던 실직자가 되기도 하고,
설마? 하던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나 황망해지기도 하고
설마? 하던 억지가 당당히 사실이 되어 하늘을 덮는 날도 있다.
<내게는 안 일어나겠지?> 하는 것들 중에 가장 큰 것은 무엇일까?
다들 개인적으로 다르겠지만 어쩌면 공통적인 건 이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을 통째로 떠나는 이별 - ‘죽음’
아무도 안 믿어지고 안 일어날 것처럼 사는 대상,
그래서 누구나 <내게는 안 일어나겠지?> 덮고 무시하고 망각한 채로 산다.
단 1%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 누구에게나 100%로 오는 생의 끝인데,
그런데 어떤 이들은 <내게도 일어나겠지!> 하며 사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더 아끼고 소중하게 살고, 무엇인가 유익하게 왔다 가기를 원하며
그렇게 살다 간다. 정말 값지게도! ‘생과 사가 하나다!’라고 하면서...
반대쪽 어떤 이들은 정말 <내게는 안 일어나겟지?> 그러며 온갖 짓을 하다가
비극으로 죽어나가기도 한다. 총으로, 교수대에서, 혹은 감옥에 갇혀!
가까운 여기서 먼 나라까지 숱하게,
고속도로를 달리다 이들을 보면서 섬뜩할 때가 종종 있다.
차와 차들의 간격이 100미터도 채 안되는데 시속150, 180은 되어보이게
곡예 하듯 지그재그로 사이를 빠지며 달리는 차를 만날 때가 그렇다.
‘길에 돌 하나만 떨어져 있어도,
앞차가 만에 하나 무슨 일만 생겨도 피할 수 없을 건데, 그럼 뻔한데...‘
개인과 역사의 앞길에 무수히 일어나는 <내게는 안 일어났으면> 싶은 벽들,
질병, 이별, 파산, 밀양, 강정, 용산, 쌍용, 캄보디아, 또 어디 어디의 가시밭들,
무엇도 일어날 수 있는 세상,
누구에게도 올 수 있는 세상을 살면서 어찌 무사하기를 바랄까.
그저 그때마다 손잡아 일으켜주고, 등 두드려주고, 힘 모아주는 친구들과 살아가야지.
그래서 이름을 부른다.
“여기 여기 모여라! 함께 살자, 동지여!”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詩 김남주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앞서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둘이면 둘 셋이면 셋 어깨동무하고 가자
투쟁 속에 동지 모아 손을 맞잡고 가자
열이면 열 천이면 천 생사를 같이 하자
둘이라도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주자
고개 너머 마을에서 목마르면 쉬었다 가자
서산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 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 주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언젠가는 가야할 길 시련의 길 하얀 길
가로질러 들판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해방의 길 통일의 길 가시밭길 하얀 길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