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을 보다가 일부 공감하는 글이 있어 올립니다.
지금 많은 분들이 한 마음으로 가슴 아파하는 이 시점에 이런 의견을 낸 사람의 용기도 대단하고
시민광장에도 소수일지 모르나 이런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분들이 계실거고
저 또한 한 켠의 불편함을 덜고자 공유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한 시민의 모든 두려움을 안고 가겠다는 숭고한 뜻을 폄훼하려는 생각도 없고 안타깝지만
시민광장이 장례위원회에 포함된 것도 그에게 열사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도 동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임미리 <열사에 반대한다>
죽음 그 자체는 반대할 수 없다. 전적으로 일신에 귀속되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에 ‘열사’라는 이름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반대한다.
첫째, 죽음을 미화할 수 있다. 분신정국이라고까지 불렸던 1991년, 전남대 박승희 학생을 시작으로 모두 13명이 분신했다. 한국전쟁 이후 2013년 바로 어제까지는 모두 83명이 분신을 했고, 투신 등에 의한 자결까지 합하면 13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제 사망한 이남종 시민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민사회단체(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연대회의)에 의해 열사로 추존되었다. 죽음에 사적 이유가 있다거나 공적 의미를 폄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적 이유를 위한 죽음일수록 더욱 그 죽음이 열사라는 이름으로 미화되어서는 안 된다. 죽음을 통한 항변이 공적 대의를 달성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열사’로의 추존은 그러한 방법을 더욱 조장한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열사에 반대한다. 그러한 ‘공적’ 죽음들이 일시적으로 집단의 분노를 강화시켜 항의의 결집력을 높일 수 있더라도 사회적 공감을 얻어내기 힘들 뿐 아니라 항의방식의 극단성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사람들의 이탈마저 불러올 수 있다. 김형민의 칼럼에 따르면 1991년 “죽음이 계속되자 사람들은 그들이 죽음을 선택한 이유에 동화되기보다는, 이어지는 죽음의 행렬 자체에 겁을 먹었고, 몸서리를 쳤다.”
둘째, 저항의 목적은 죽음을 방지하는 것이다. 죽음으로써 항의하는 것이 아니라, 죽지 않고 살 수 있게, 살아서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쌍용차 정리해고 관련해 4년 동안 자살 14명을 포함해 무려 24명이 목숨을 잃었다. 자살은 도저히 살아서는 말할 수 없는 절망적 상태에서 죽음으로써 말을 대신하는, 마지막 선택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죽음으로써만 말할 수 있게 되기 전에, 살아서 말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을 통한 항변과 항의에 안타까움을 느낄지언정 어떤 식으로든 이를 미화하는 일이 발생하여서는 안 된다. 숭고한 죽음은 없다. 죽음은 죽음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죽임을 당하거나 죽음을 선택하거나, 그 일신에 있어서는 의미가 같다. 한 개인의 전부이다. 그러나 죽음에 분노하고 그것을 기억하는 방식은 너무나 불공평하였다. 1987년 우리가 기억하는 중요한 두 개의 죽음은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이다. 두 사람 다 맞아서 죽은, 타살이었다. 같은 해 3월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12년 동안 513명이 맞아서 죽은 일이 세상에 드러났다.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은 그해 6월항쟁으로 이어졌지만 형제복지원 513명의 죽음은 어떠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했다. 5백 명을 넘게 살해한 박인근은 1천억이 넘는 재산을 보유한 채 현재도 (무려) 사회복지법인대표자협의체의 회장을 맡고 있다. 복지원에서 살아남은 한 아이가 20여 년 뒤인 2012년 국회의사당 앞에서 외롭게 1인시위를 할 때까지 그 오랜 시간 동안 아무도 그들의 말을 대신해 주지 않았다.
나는 열사에 반대한다. 살아남은 자들의 할 일은 죽음이 나의 분노를 대신케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말하지 못하는 억울함을 없애는 것이다.
=========================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부족한 부분을 문제제기해 주셔서, 마지막, "불공평한 죽음"에 대한 첨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죽음을 선택한 사람에 대해 얘기하다가 "뜬금없이" 박종철&이한열과 형제복지원처럼 죽임을 당한 경우를 예로 든 것은, 죽음을 선택한 경우에는 기억되는 자와 잊혀진 자가 그만큼 극명하게 대비되는 경우를 찾기 어렵고 더욱이 양쪽이 다같이 크게 알려진 사례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비가 극명하지 않고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지만 다음과 같은 사례가 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 이후 반미주의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유명한 분신으로 서울대 김세진&이재호의 분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 5월 30일 광주학살 이후 첫 번째 자결이었던 서강대생 김의기의 투신과 최초의 분신이었던 노동자1980년 6월 김종태의 죽음은 그만큼 알려지지도 기억되지도 않고 있습니다.
1980년의 김의기와 김종태, 1986년 김세진&이재호의 경우, 그 죽음을 받아들일 사회적 분위기가 달랐다는 데 책임을 미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사한 일은 1991년 분신정국에도 있었습니다. 전남대 박승희의 분신 이전 춘천 동우전문대와 서원대에서 학생 분신이 있었습니다. 중태에 빠졌지만 죽지 않은 탓인지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죽음을 기억하는 이유도 유행을 타는 것 같습니다. 1991년 모두 13명의 분신과 2명의 투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년 뒤 분신정국의 죽음을 기리는 한 행사에 초대된 '열사'는 11명이었습니다. 죽음 당시 "광주 학살, 미제 축출,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친 이들이었습니다. 임금지금 지연에 항의한 날품노동자, 노동해방을 외친 신발노동자, 포장마차 철거에 항의한 노점상, 제주개발특별법에 반대한 청년은 빠져 있었습니다.
이렇듯 공적 대의를 위한 죽음을 대하는 방식에도 불공평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저항세력 내 헤게모니의 문제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죽음을 대하는 자세, 그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을까요? 거기에는 저항 목표와 방식을 둘러싼 헤게모니의 문제가 없었을까요? 소수가 아닌 다수가 문제를 느꼈는데도 말할 수 없는 분위기가 우리 주변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너무 늦었지만, 이제는 말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비판은 지배권력에 대해서뿐 아니라 저항세력 내부에서도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벽두부터 날선 글을 썼습니다.
김형민 <나는 열사(라는 호칭)에 반대한다>
인간은 잘 죽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잘 살아야 한다.
열사라는 호칭 자체를 재고해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전태일 열사는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의 삶이 너무나 치열했던 탓이다. 분신해서 죽었다고 단번에 열사 호칭 붙는 풍조 이해할 수 없다.
"너같으면 그럴 수 있냐?"는 질문을 한다면 나는 그 질문의 악의성에 걸맞는 답을 할 수 밖에 없다. 너는 살아 있으니 대의를 위해 죽은 자에게 무슨 할 말이 있냐는 폭력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바보냐"
왜 이렇게 스스로의 가치를 절하시키고 무슨 조선 유림처럼 희화화되는 단어에 집착하며 그에 시큰둥하면 사문난적 취급을 하는가.
나는 열사에 반대한다. 그냥 노동자 시민이라고 해도 충분히 자랑스럽고 빛나는 호칭이다. 왜 그들이 선비 사자 선비인가. 노동자고 시민이고 농민이지. 그리고 학생이지. 훈고학도 아니고 단어 하나에 집착하여 많은 것을 잃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