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한 지극한 성찰-신경림시인(2)
신경림 시인은 첫 시집 <농무> 이후 6년만에 두 번째 시집 <새재>를 세상에 내놓게 된다.장편 서사시라고 할 수 있는 <새재>에서 시인은 민중에 대한, 우리 나라 근대 이행기의 사회적 자아에 대한 확신을 보여준다. 이는 시인의 사람과 노동에 대한 부단한 연구와 탐구 자세에서 기인한다. 표현에서는 민요조의 운율이 바탕을 이루었고, 좀 더 신명나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햇살이 보이는 메타포(시인 자신도 이 메타포가 시에서는 중요하다고 얘기한다)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시인의 문학적 위업인 ‘민중시의 시적 체계가 완성’ 되어졌음을 의미한다. 우리 나라의 민요는 대게가 생계의 업을 바탕으로 한 노동요이거나 우리 민족의 근원적인 한을 다루는 노래가 많다. 삶과 죽음, 이별의 슬픔, 구성진 민요가락은 사람의 노래이다. 신경림은 민요를 통해 기층 민중에 삶의 애환 속으로 파고든다. 새재에 등장하는 사람도 역시 농민이라고 할 수 있다.
모내기전에 돌아가리라
새우젓배 오기전에 돌아가리라
정찬판네 하인들 눈 뒤집고 우릴 찾는다해도
....
이 억센 주먹을 어디에 쓰랴
이무기가 울고 여울이 울고 여울 속에서....
<새재 중에서, 인용>
신경림은 <농무>와 <세재>로 인해 농민시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그런데 특정 신분(계급)에 의해 시인을 규정짓는 듯한 농민시인이라는 표현을 시인 자신은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소재를 삼았다고 해서 그 소재로인한 특정 영역이 규정 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창작의 무한한 상상력과 추구할 수 있는 세계관을 제약하기 때문에 특정 계급을 들이대서 그 시인의 전체를 말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을까. 새재 이후에실제로 시인의 시에서는 더 이상 농민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공장 노동자, 도시빈민, 환각쟁이도 등장한다. 현대시가 갖는 자유시 내재율 형태는 나중에는 창작의 자유로움을 위해 민요조를 벗어나는 노력을 하게 된다고 시인은 고백하고 있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도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렷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난한 사랑노래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전문>
신경림이 만난 사람은 광부이고, 농민이고 노동자다. 도시의 가난한 젊은이다. 평범한 우리들의 이웃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시인이 지키고 보듬어야할 사람들 즉, 현대 사회 속에서 소외 되고, 가진게 없는 가난한 이웃들이다. 그들은 가슴 속에 커다란 슬픔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어쩌다 자기 분수를 넘어 이상을 꿈 꾸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제 분수를 모르는 사람은 시름시름 앓다가 죽기도 한다.
......내 고향에는 흔히 그 귀감龜鑑으로 들어지는 사람이 있었다. 양천 허씨네 산지기 아들이었는데, 어려서 아주 공부를 잘했다. 그래서 사범학교로 진학을 했고, 학교를 마치자 고향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집안은 산지기의 신분에서 벗어나 자작농自作農으로 발돋움했으며, 그의 아버지는 장날이면 점잖게 두루마기를 입고 나가 면내 유지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다. 여기까지는 말하자면 분수를 아는 삶이었다. 그러나 당시 아직 젊던 그는 교편생활을 집어치우고 뒤늦게 서울로 와서 대학엘 들어갔다. 그러고는 어떤 사건에 관련되어 삼 년 동안 감옥생활을 했고, 나와서는 감옥에서 얻은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그의 집안은 다시 몰락해서 그의 아버지는 두루마기를 벗어던지고 날품팔이로 되돌아갔다. 분수를 모르는 아들 탓이었다. 하지만 분수를 안다 또는 지킨다는 것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그것은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여 거기 순응하고 굴복하는 것을 뜻한다. 분수를 알고 지키는 삶이란 말하자면 주어진 상황안에서의 소시민적 삶을 뜻한다. 그것은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삶이 못 된다. 소극적 패배적 삶의 철학일 뿐이다.
(중략)
'더도 말고 덜도 말고'라는 말이 분수를 알고 그것에서 더 나가지도 말고 더 모자라지도 않는 삶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학생이면 학생의 신분에 알맞게 공부나 하라는 투의 흘러간 노래여서는 안 된다. 분수를 명확히 알고 그것을 뛰어넘고 이겨 내는 삶을 뜻하는 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청소년이 읽는 우리 수필 <신경림 > -돌베개- 中에서
신경림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조근조근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항하거나 저항 한다기 보다는 그저 속으로 우는 갈대같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갈대, 전문>

문학광장 회원 김난주님이 신경림 선생의 사인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