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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국정조사를 보면서 - 정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까? 사람만이 희망일까?>
"길 찾는 사람은 / 그 자신이 새 길이다 // 참 좋은 사람은 /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 사람 속에 들어 있다 / 사람에서 시작 된다 // 다시 / 사람만이 희망이다"(「다시」)
박노해의 ‘사람만이 희망이다’ 책 속의 시, 한 부분이다.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본 사람은 알게 되지 음 알게 / 그 슬픔에 굴하지 않고 비켜서지 않으며 / 어느 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닫고 / 우렁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말로 / 짙푸른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 이 모든 외로움 이겨낸 바로 그 사람 / 누가 뭐래도 그대는 꽃보다 아름다워 / 노래의 온기를 품고 사는 / 바로 그대 바로 당신 / 바로 우리 우린 참사랑”
안치환은 노래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라고, 그러나 이 말들이 참 무기력하게 무너져 내리는 걸 느껴야만 했다. 바로 국정원 대선개입 국정조사 2차 증인청문회 중계방송을 보면서 말이다.
‘정말 사람만이 희망일까? 정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걸까?’ 저 지겹도록 상식과 기대를 비틀고 억누르는 모습들을 보면서도 계속 그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다.
전전날 원세훈 국정원장과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의 증인선서 거부를 보면서는 놀라기는 했지만 예상도 했고,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라고 아예 접고 보았다. 오히려 더 보기가 힘들고 실망스러운 것은 19일의 2차 증인 청문회였다. 이 날은 기대를 했던 만큼 꼭 반비례로 더욱 실망하고 좌절을 느꼈다.
권은희 수사과장은 당당하고, 사실을 위주로 또박 또박 답변에 집중했다. 질문공세를 한 새누리당의 위원들은 1:9의 싸움에도 불구하고 바라던 꼬투리를 잡지도 못하고 오히려 부정적 이미지만 자충수로 쌓았다. 권은희 수사과장의 그 모습을 본 아내의 입에서 ‘저러고도 탈 없이 경찰 근무가 계속 가능할까?’ 라고 불안 섞인 걱정을 했다. 그 우려가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을 한마디로 설명한다.
국정조사장에서 본 절망의 배경인 51%,
반면에 국정원직원 김하영은 얼굴 가림막에 국정원의 인간보호막에, 집권당과 경찰청, 게다가 주요 언론 조중동과 공영방송의 보이게 안보이게 지원을 등에 업고도 무엇이 두려운지 숨어서 답변을 했다. 국선변호사보다 더한 새누리당의 의원들의 비호를 받으면서도 종이 예상답안지를 읽어대고 있었다. 때론 말할 수 없다는 방어 답변만 하거나,
세상이 참 기막히게 뒤집어져 있었다. 두려워해야할 사람은 당당히 감수하면서 얼굴 보이고 답변하고, 온갖 특혜와 보호를 받는 수혜자는 숨고 입 다물고 빼고, 퇴장조차 국정원의 보디가드를 받으며 도망가듯 버스에 올라 사라졌다.
무기력함과 체한 사람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울분과 실망, 뭐를 어찌하지 못하는 암담함, 그런 느낌이 예전에도 있었다. 80년 서울의 봄에 잠 못 이루고 기대하던 중 광주사태(당시표현)로 무너질 때 그랬다. 87년 시민항쟁으로 되찾은 꿈을 3김의 분열로 날리고 통곡할 때 그랬다. 92년 3당 합당을 자행해서 다시 멀어진 날 그랬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억지 부리는 집권당의 국회의원들, 철면피 같이 두꺼운 얼굴로 외면하는 언론 방송들, 한 번 쥐면 굶주린 개나 늑대처럼 물고 놓지 않는 권력의 시녀, 충복들인 경찰 검찰 사법 국정원 등 소위 대책기관들,
그러나 진짜 더 절망스러운 건 그들 뒤에 서 있는 지지자들 때문이다. 나와 같은 대한민국의 국민, 51%의 지지자들, 무슨 행동을 하던 상식을 벗어나던 상관없이 뽑아대는 묻지마 유권자들, 그건 절벽이고 절망이고 환멸의 바위덩어리다.
만약 그들이 없다면 약삭빠르고 눈치 보는 비겁한 단체들, 욕망의 개인들이 계속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묻지마 지지자들은 철벽이다. 단단해서가 아니고 물러터져서다. 용감해서가 아니고 비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철벽이다. 도대체 싸움이 되지 않는 존재.
비겁하고 고집스런 선택 배경엔 불안함이,
누군가 이 말도 안 되는 51% 묻지마 지지층을 불안한 집단이라고 분석했다. 그들을 이용해먹는 소수를 빼고는, 그들은 결코 소신에 가득 찬 용감한 결사대 집단이 아니고 반대로 비겁하고 생계가 어렵고 논리도 없는 천박한 계층이라고 했다. 그래서 불안하고 두렵기 때문에 끝없이 성공을 이야기하고 먹을 것과 권력을 눈앞에 흔들어대는 악질들에게 이용당하고 투표를 한다는 것이다.
정작 부자와 재벌과 사회상류층을 위한 정책과 결정을 해대는 그 집단들을, 경제적으로는 서민이고, 지식으로는 낮은 학력, 문화 사회적으로는 소외계층인 그들이 모순되게도 줄창 뽑아준다. 피해를 보면서도 또 찍고 또 찍어준다고 분석했다. 나는 그 말에 많이 공감을 한다. 그 현상이 정의롭거나 옳다는 말이 아니라 실재를 설명하는 정확한 표현이기 때문에,
노무현은 농부가 어떤 경우에도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에 참 많이 말이 막히고, 때로는 그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또 희망을 가지고 올바른 세상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나는 꽤 많은 밭들이 참 더럽고 지저분한 가시밭, 돌밭임을 날이 갈수록 확인한다.
내가 치욕스럽다고 느끼는 자조적 신분이 3가지 있다. 50대에 영남출신이고 개신교인이라는 점. 51%의 묻지마 지지자의 핵심을 이루고 있고 내 조국의 영광을 깔고 뭉개고 지연시키는 주범중의 주범이라고 판단한다. 속 쓰리고 구차하지만 그 3가지에 나는 다 속해있다. 국정조사 2차 증인청문회의 탄식하게 되는 배경, 계속 절망을 예고하는 근원인 그 3가지 신분 말이다.
그들이 긴 역사적 안목과 사람의 휴머니즘과 평화철학을 바탕으로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라 보는가? 비록 배고픔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옳은 선택을 하고, 참고 인내할 것이라 보는가? 그들이 공동체의 신뢰를 받을 만한 삶을 살 것이라고 보는가? 나의 예상은 전혀 아니다.
가정을 끔찍이 사랑하고 내 자식, 내 가족을 대신해 죽을 수도 있고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는 그들은 그런 긴 안목이 아니라 짧고 당장의 손익에 좌우되는 이기적 가족주의로 온통 매몰되어 있다. 그래서 혈육, 지연 학연에 그토록 목메고, 성공한 사람에게 출세 지향적 사고관을 가지고 줄을 서려고 한다. 그것 말고는 서민을 위하는 사람을 제쳐놓고, 민주를 추구하는 집단을 불신하면서, 부자를 위한 욕망 권력집단에 표를 던지는 모순된 행동을 설명 할 길이 없다.
사람의 속성에는 보수적 한계가 있다
경찰 검찰 공권력 내부에서 많은 사람들이(적어도 48%) 불의와 상식 밖의 결정, 명령에 죽기 살기로 거부한다면, 언론 방송에 종사하는 일선 직원들이 개인의 의식주가 무너지고 불이익을 당하는 걸 감수하며 죽기 살기로 저항한다면, 집권당과 대항하는 야당 국회의원들 전원이 상복을 입고 의원직을 사퇴하고 광화문이나 여의도 마당에서 단식투쟁으로 죽어가겠다고 한다면 저렇게 오만불손 하는 짓거리를 뻔뻔하게 카메라 앞에서도 해대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누가 그렇게 요구하고, 또 해낼 수 있을까? 수 십 년을 야당으로 살던 소위 가신정치인조차 51%의 국민을 돌보는 것이 더 값지다고 등 돌리고 쪼로록 가서 한자리 차지하고 기자회견을 하는 마당에, 누가 일신의 괴로움을 희생하고 그렇게 할 것인가?
우리는 모두 일신의 안전과 평안, 휴식을 아무도 망가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속성을 가진 한계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희망도, 꽃보다 아름다움도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악랄한 고문에서도 "서서 죽을지언정 무릎을 꿇지 않겠다던' 민주주의자 김근태도 카츄사로 근무하다 의문사로 죽은 후배 앞에서는 신을 향해 저주를 퍼붓게 되었다. 신실한 카톨릭 신자인 그의 입에서 이런 편지시가 나올 정도였다.
- 1987년 3월 13일에 쓴 그의 옥중 서신의 대목
“아 하느님. 이 지긋지긋함은, 이 억울함은 얼마나 더 계속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당신은 도대체 살아 있습니까, 죽었습니까. 당신은 귀먹고 눈먼 그런 하찮은 늙은이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요. 용권이 어머니의 슬픔을, 분노를 당신은 아시나요. 모르시나요. 하느님 당신이 살아 있다면 당신은 개새끼요. 나쁜 자식이오. 어쩌면 똥물에 튀기다가 태질해 버려야 할 놈이오. 당신은 개새끼야. 개새끼야. 야 하느님 너 개새끼야!“
신마저 저주하게 만든 전두환 정권시절이었다. 그랬던 김근태는 일생을 고문후유증을 안고도 줄기차게 민주주의와 인간의 권리를 위해 변함없이 일했다. 그는 2011년12월30일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마지막 메시지가 된 유언을 남겼다. 자신의 블로그에 '2012년을 점령하라' 제목으로, 이 글에서 그는 "우리나라는 국회가 있는 서여의도, 청와대가 있는 종로를 점령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운 좋게 2012년에는 2번의 기회가 있다"라고 했다. 결국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는 고문후유증으로 시달리다 패혈증으로 2011년12월30일 딸의 결혼식도 보지 못한 체 영원히 죽음의 집으로 갔다. 적어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은 김근태에게는 해당이 된다.
놓지 않는 기억들과 작은 진실을 지키는 것이 희망?
진정한 이념이 사라진 시대 '이익'과 '실용'이라는 가장 타락하고 가장 강력한 이념만이 남은 지금, 숱한 사람들이 생각은 진보일지라도 생활은 보수로 분열되어 괴롭게 헤매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노래했던 박노해는 이렇게 말한다.
“큰 것을 잃어버렸을 때는 / 작은 진실부터 살려가십시오 // (…)오늘 비록 앞이 안 보인다고 / 그저 손 놓고 흘러가지 마십시오 // 현실을 긍정하고 세상을 배우면서도 / 세상을 닮지 마십시오 세상을 따르지 마십시오 // 작은 일 작은 옳음 작은 차이 / 작은 진보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 작은 것 속에 이미 큰 길로 나가는 빛이 있고 / 큰 것은 작은 것들을 비추는 방편일 뿐입니다” ---「길 잃은 날의 지혜」
오늘날의 이 희극적 비극을 분명히 기억하고, 비록 비둔해진 몸뚱이로 이기적 가족주의와 비겁함에 괴로울지라도 작은 진실을 끝끝내 기억하며 살아가노라면 반드시 48%가 51%가 되고, 그 어느 날엔가는 더 이상 개망나니 같은 작태를 벌이는 사람들이 줄어들 것이라는 희망은 가지고 살아야겠다. 자식의 자식 대 에서도 이 미친 국정조사 청문회의 절망적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면, 사람에게는 희망이 안 생겨도, 진실의 법칙에는 희망을 가져야겠다.
그리고 다행하게도 주변에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본다. 소수라는 뻘쭘함에도 줄기차게 촛불을 밝히고 모이는 사람들, 메이저도 못되고, 빈약한 재정에도 몸으로 떼우며 애쓰는 오마이뉴스 같은 몇몇 인터넷 여론 매스컴들, 자신의 앞날에 닥칠 춥고 배고픈 험난함을 예상하면서도 정직하게, 할 말을 하고 있는 표창원 교수와 권은희 수사과장 같은 사람들,
부디 더 많은 실천하는 사람들이 그 뒤를 이어주기를 기원한다. 48%가 51%가 되고, 불안에 떨며 잘못된 선택을 해대던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후회와 반성을 혹시라도 하는 날이 오기를 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