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와 ‘힐링’이 작년과 재작년 우리 사회의 키워드였다면 올해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이슈가 되고 있는 듯 하다.
유시민은 어느 날 문득 화장실 거울에 비친 얼굴 속 주름을 보고 나이 들어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에게 남은 시간과 죽음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또 지금까지 내 삶은 어땠는지 돌이켜보았다. 그러자 썩 행복하고 즐거운 인생은 아니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되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시작한지 십여 년. 그는 “정치를 하며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보면 행복한 날들이 거의 없었다. 정치를 바꾸고 싶었지만 바꾸지 못했다.”고 헛헛한 고백을 토해낸다.
“조금 늦었다 싶지만 이제부터라도, 해야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것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지식과 정보를 나누는 일입니다. 십여 년 전에는 분노를 참지 못해 정치의 바리케이드 안으로 뛰어들었지만, 지금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은 소망을 버릴 수 없어서 그 바리케이드를 떠납니다. 지식소매상으로서, 일상의 모든 순간마다 나름의 의미와 기쁨을 느끼며 살고 후회없이 죽는 것이 저의 희망입니다.”
그리고 이제 가장 유시민 다운 삶으로 되돌아 가겠다고, 그렇게 살겠다고 결심했다. 직업인으로서의 정치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내린 것이다.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오히려 그의 표정은 더욱 밝다. 정치계를 떠나지만 가장 자기답다고 생각하는 모습, 대중적 글쓰기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가의 모습, 그것이 그가 바라고 원하는 삶이었다.
유시민은 자신의 이런 결심을 실현하기 위해 다시 펜을 들었고 새롭게 책을 출간하였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묵직한 제목에 걸맞게 책에는 더욱 내공 깊어진 그의 목소리가 가득 담겨 있다. 유시민 그를 직접 만나 신작과 최근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우선 요즘 근황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지내셨나요?
근황은 파주에 작업실을 하나 만들어서 남들처럼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면서 책 읽고 글 쓰고 대개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죠.
이번에 신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출간하셨습니다. 책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출판사에서 처음에 기획을 했고 책으로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와서 쓰게 되었어요.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한 번 써봅시다” 하고 시작한 거죠. 그런데 잘못하면 설교처럼 될 위험이 있어서 제 이야기를 같이 섞어서 써봤어요. 쓰다 보니까 내 자신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고, 쓰는 과정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겠다라는 생각도 새로 하게 되었고요. 개인적으로도 의미있는 작업이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으셨나요? 먼저 읽어보니 ‘하고 싶은 대로 살자!’ 이런 느낌이 강했는데….
실제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저도 이제 55년째 살고 있는데 살다 보면 하고 싶든 하고 싶지 않든 간에 꼭 해야 하는 일들이 있어요. 또 누군가는 꼭 해야 되는 일도 있고요.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 이렇게 3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셋 다 해야죠.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는 없죠. 또 바람직하지도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중심으로 내가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이 돌아가기 위해서 누군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도 함께 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책의 두 번째 장을 보면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무척 흥미롭던데요.
마흔 살 되던 해 1월1일 아침. 독일 유학생 시절인데 갑자기 그날 세수하러 욕실에 들어갔는데 65살까지 산다면 얼마 남았지? 그 생각이 딱 들더라고요. 65살까지 얼마 안 남았더라고요. 25년 남았는데, 그럼 그 25년을 어떻게 써야 하지? 그런 고민이 문득 그날 찾아왔어요. 이번 책『어떻게 살 것인가』의 제목은 사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였어요. 그런데 너무 무거워지는 것 같아서 바꾼 거죠.(웃음)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말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말은 같은 거에요. 왜냐하면 시간적으로도 죽는 게 사는 것의 완성, 맨 끝 부분만 아니라 어떤 사람의 죽음이라는 것은 삶 전체가 완결되는 과정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남아있는 삶의 시간들을 잘 보내려면 세상을 떠나는, 지구를 떠나는 시점을 가정하고 현재를 보고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일은 뭔가요?
제가 좋아하는 일은 뒹굴면서 책 읽는 것. 그게 제일 좋아요. 그 다음에 책을 읽고 생각하다가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을 때 글을 쓰는 것. 그게 두 번째로 좋죠.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아무나가 아니라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도 좋아하죠.
그러면 취미는요?
축구. 어릴 때부터 축구광이었어요. 그리고 낚시 또 가끔은 당구, 그리고 우리집 꼬마랑 바둑. 예전에는 고스톱이나 포커도 좀 쳤는데 공적 영역으로 들어온 후로는 그런 거 할 수 없게 되었어요. 요즘은 제가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고 해서 하자는 사람이 없어요.(웃음)
음… 나는 정치인으로서 정치를 바꾸고 싶었죠. 근데 정치를 못 바꿨어요. 대통령이 되려고 정치를 했다 이런 건 처음부터 아니었고요. 정치를 바꾸자. 정당을 바꾸자. 정책을 바꾸자. 그게 저의 목표였죠.
정치인으로 살아온 것이 행복하셨나요?
잘 못살아왔다 그렇게 생각해요 왜냐하면 기쁠 때가 별로 없었거든요. 사람에 따라서는 정치도 즐거울 수 있죠. 모든 일은 다 그렇지만 그 일을 하는데 지불해야 하는 고통과 그 일에 따르는 괴로움, 견뎌야 될 아픔 이런 게 있죠 반면에 그 일을 통해서 자기가 얻는 것. 성취하는 것 이런 게 다른 한편에 있어요. 어떤 사람에게는 정치가 굉장히 많은 즐거움과 보람을 주기도 하고, 그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괴로움들을 아주 작게 느끼기도 해요. 그런 분들에게는 정치 자체가 굉장히 즐거운 일이죠.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그런데 제 경우에는 아닌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하루 종일 책을 읽으면 좋은 책 한 권을 읽을 수 있죠. 그런데 5분 축사를 하기 위해 아침 첫 비행기로 출발을 해서 축사를 하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와요. 집에 오면 밤이 되어 있어요. 5분을 위해 하루를 순전히 길에다 깔고 다녀오는 거에요. 그 행위를 통해서 정치적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거라면 그것이 즐거운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제 경우에는 굉장히 인생을 소모하고 있다는 느낌, 제 자신을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무척 강하게 들었어요. 제 경우에는 정치의 일상이 어떤 귀한 삶을 소비해버리는 것 같은 그런 느낌들 때문에 소소한 기쁨이 있어도 상실감을 메울 만큼이 안 되는 거죠.
책을 보면 정치인으로 살면서 참을 일들이 참 많았다고 말하셨습니다. 어떤 일들을 참으셨는지?
누군가 사실에 의거해서 또는 사실이 아닌 걸로 날 비난할 때 그럴 때 맞서 싸우기가 참 힘들어요. 왜냐하면 유권자하고 싸우는 게 되고 또는 언론하고 싸우는 게 되기 때문에 싸우면 싸울수록 더 많은 공격이 날아와요. 그러니까 목숨 걸린 것 아니면 그냥 욕 얻어먹고 지나가야죠.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직업정치는 우연히, 준비 없이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제 10년을 그렇게 산 거죠. 사전에 정치의 일상이 요구하는 괴로움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또 그것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 충분히 심사숙고 했더라면 정치를 안 했겠죠. 제 경우라면….
그럼 이제 정치계에서 떠나는 건가요?
글쓰기에 집중할 예정이고요. 시민으로서의 정치 참여는 계속 하겠지만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여기서 이제 좀 마감하는 게 좋겠다 그런 판단을 하고 있죠.
그럼 앞으로는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신가요?
내 스스로 내 자신이 생각할 때 의미 있는 삶. 그 다음에 기쁜 삶. 그러니까 하루하루 모든 순간들이 나에게 좋은 의미로 다가오는 그런 일상을 살고 싶어요. 왜냐하면 이제 얼마 안 남았잖아요.(웃음)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을 하는 것도 의미 있고 좋은 일이지만 그것만으로 인생을 채우기에는 좀 너무 억울한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이 강하게 지금 있는 거죠.
마지막으로 책을 읽는 독자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이라기보다는 그냥, 이 책이 자기 삶에 대해서 생각을 깊게 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 책은 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지 객관적 진리나 일반적인 모범답안을 이야기한 것이 전혀 아니거든요. 인생에는 정답이라는 것이 없는 거니까요. 사람들이 제시할 수 있는 많은 답 중에 한가지를 제가 낸 것이기 때문에 이걸 읽어보시고 ‘아 이렇게 인생에 대해서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그럼 나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나? 계속 이렇게 살아도 좋은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 이런 고민들을 해나갈 때 좋은 참고 자료로 써주시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 인터뷰는 유시민 작가의 정계은퇴 선언 이전에 진행되었음을 밝힌다.
┃윤태진 (교보문고 북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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