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정치를 품고 아팠습니다.
정치에 정치인 노무현을 담고 너무 아팠습니다.
정치인 노무현을 떠나보내고 아픔마저 놓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정치인 노무현은 그렇게 내 삶의 일부였고 아픔이었습니다.
왜 나는 정치를 내 삶에 받아들이고 정치인 노무현을 담았을까요?
내 삶의 고통의 근원은 정치인들을 비롯한 언론등 힘 있는 대리인들이 헌법과 헌법에 명기된 민주주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고 노무현은 그들과 맞서서 국민들과 함께 대통령이 되었고 많은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았기 때문입니다.
소위 친노의 실체
그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기득권을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했던 정치세력들은 그의 실패를 원했고 결국은 실패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조금 부족했습니다.
그의 부족함으로 아픈 사람들이 생겨났고
아픈 사람들이 구제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가 아픔을 덜어 주지 못한 사람들 그로인해 새롭게 등장한 아픈 사람들에게 그는 기존의 정치인보다 못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노무현은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압니다! 그가 해결해주지 못한 아픔이 그들에게 얼마나 고통이었는지를..
그의 실패를 원한사람들과 노무현으로 인해 더 아파진 사람들에게
노무현은 실패자였고 노무현과 함께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던 사람들 역시 실패자였습니다.
실패자를 의미하는 ‘친노’는 그렇게 생겨났습니다.
국민을 대통령으로 만들었으나 실패했던 노무현과
그와 함께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던 사람들 그와 함께 했던 정치인들은
그렇게 실패를 의미하는 ‘친노’라는 프레임에 갇히게 됩니다.
대선평가로써의 친노 프레임은 정당한가?
지금 야권단일후보를 자신들의 후보로 내고 선거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민주당에서는
대선패배의 평가라는 미명아래 친노 책임론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친노’ 책임론이 정당하려면 다음의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합니다.
1.‘친노’의 정의가 합리적으로 합의되어야 합니다.
2.‘친노’정치인을 추려내야 합니다.
3.‘친노’정치인이 단일 세력으로서 또는 실질적 결정세력으로서 선거 전략을 짜고 결정했어야 합니다.
4.‘친노’정치인이 단일세력 또는 실질적 결정세력으로서 내려진 의사결정으로 대선패배의 인과관계가 합리적으로 추론 내지는 합의되어야 합니다.
5.패배의 원인과 상관없이 ‘친노’책임론이 당권 정쟁의 목적에서 실시되지 않아야 합니다.
6. ‘친노’정치인외에 다른 정치인들이 전략을 제시했으나 그들의 전략이 채택되지 않았어야 합니다.
7.‘친노’정치인에게 배척된 전략이 승산이 있었을 것으로 합리적으로 추정되어야 합니다.
이모든 조건에 충족되지 못하는 ‘친노’책임론은 소모적이며 분열적인 정쟁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친노 프레임에 내재된 비열함
‘친노’프레임은 단순히 민주당의 한계나 당권경쟁의 한 단면만이 아닙니다.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세력에의해 다시는 시민들이 정치의 주인으로 등장하는 시대를 영구적으로 봉쇄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작게는 민주당내부 구세력이 상대적으로 시민들과 호흡을 맞추려는 정치인과 정치의 흐름을 주류정치에서 밀어내려는 음모이며, 크게는 소위 참여계로 불리우는 노무현의 정신을 따르는 시민정치세력을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며, 더 크게는 진보진영을 배제한 양당구도를 고착화 시키고 제2당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려는 민주당 구세력의 이해관계가 영구집권을 꿈꾸는 새누리당과 서로 맞아떨어진 결과이기도 합니다.
진보정치에는 - 종북 프레임,
시민참여에는 - 친노 프레임,
진보정치와 시민참여 모두에게는 - 무능 프레임
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겨넣어 민주공화국을 형식적으로 유지하고(실질적으로 부정한 박정희의 유신과 달리) 실질적으로 부정하려는 비열한 프레임 인 것입니다.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 민주주의와 행복을 위해 노력한게 원죄가 되어 ‘친노’라는 비열한 주홍글씨가 새겨진 채로 그 아픔을 심장에 새기고 있는 사람들 뒤에 숨어서 더 이상 자신들의 무능함과 비열함 그리고 더러운 음모를 감추지 말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