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은 경북포항광장 토론광장에서 함께 입력된 아랑아빠님의 글입니다. |
그 동안 영화 좋다는 글을 많이 접하고 나서 결국 지난 일요일 아랑이하고
레미제라블을 보러 갔다.포항에서 휠체어를 몰고서 객석 뒤쪽의 높은 곳으로 입장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인 북포항 cgv는 수리 공사를 한다고 하고 그 때가 끝나면 영화가 내려 갈 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아랑이 하고만 갔다.
영화를 보고서 내머리에 목힌 것은 스케일이 엄청 크고 대부분을 노래만 하는데도 이해가 바로 될
만큼의 분명한 스토리 전개도, 아랑이는 참 좋았다는 짝사랑을 하던 남자를 지키러 대신 총을 맞고
죽은 어느 시민군 여자의 노래도, 유명하다는 배우들의 얼굴도 아니었다.
그 들의 극중 역할 자체와 소품,배경으로 생생하게 꾸며 놓은 그 시대 민중과 청년들,혁명가의
모습들이 생생하다.
영화의 배경이 된 시대는 1825년 부터 해서 1848년 무렵 까지인데
헐벗고 굶주리며 학대 받는 그 들의 모습을 보면서 프랑스도 저 정도 였는데 당시 순조,헌조,철종
시대 였을 우리 나라에서는 오죽 했을 까 싶기도 했다.
서양 도시에서 건물로 진입하려는 기마병을 우선 막을 수 있는 바리케이트를 길 양쪽의 건물들에서ㅗ
집기며 각종 물건이며 덙져서 쌓는 모습은 시민들의 합류가 없이는 혁명이라는 것은 불가능
(이름도 프랑스하면 시민혁명이다.^^)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고
시민군으로 들고 일어선 혁명 청년들이 고립되고 처음에는 동조 하던 시민들이 아직은 구 세력을
엎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외면 하고 결국 건물 사이 거리에다 대포를 쏘아대는 가공할 폭력 앞에
시민군 대부분이 장렬히 목숨 바치는 것을 보고는 5월 광주도 떠올랐다.
결국 잘발장이 목숨처럼 길러온 코세트의 짝이 되는 시민군 지도자였던 다친 청년이 치료를 끝내고
살아 남은 동지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부르는 노래 소리는 80년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5월
광주에서 자기가 가르쳤던 야학 학생들이 죽어 나갈 때 그 자리에 없던 죄책감으로 몇 년 후
투옥되었을 때 단식으로 돌아가신 박관현 열사도 떠오르고
하여튼 영화 26년에서 설핏 그렸던 10일 간의 5월 광주와
레미제라블에서 몇 십년의 기간을 두고 그린 민중의 헐벗음과 인권유린 강제노동,착취,가혹한 공권력
에 맞서다 산화한 청년들의 모습이 모두 세계 민중들의 모습이었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비정규직노동자들, 해고 위기에 몰린 노동자들이 그 때 처럼 극한 상황에
몰려 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며 피로 강을 이루면서 이뤄낸 것이 지금 프랑스의 민주주의와 인권
일테니 저들이 지금에 와서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소중히 여기고 그 것을 유린하는 시도들에 대해서
용서치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우리 나라도 지금 처럼 인터넷이든 어디든 뜻 맞는 사람들끼리 만나고 소통하면서
나라 걱정 마음대로 하게 된 게 얼마 되지 않는다.
사실 요즘은 쎄다고 해봐야 교도소 아닌가? 정말로 자기 목숨이 사라질 위험을 느끼면서까지
뭘 도모해야 하는 시대는 아니지 않는가?
프랑스에서는 우리 나라에서도 5월 광주 6월 항쟁 때는 목숨 걸고 싸웠었다.
그 시절에 비하면 박근혜정부 5년 이라 봐야 쉽게 금방 가지 않겠는가?
박근혜 되었다고 마음으로 까지 쫄지 마라. 탄압해 봐야 아버지 보다 10분의 1도 못한다. ^^
재보궐 선거 하나 이기고 나면 분위기는 또 바뀐다.
여태까지 우리 나라에서 흘린 민중의 피가 여기 까지는 만들어 주었지 않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