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후보 패인을 정리해 보면
1)입만 살아있는 진보의 헛발질
2)이정희의 토론 자세로 인한 수구 보수 대결집
3)2030 투표율에 대한 관심 저조(불명확한 타킷)
4)시민캠프의 자체 모순,선거운동 비용을 지원 받지 못한 한계(민주당과의 괴리)
5)안철수의 현실과 이상의 갭을 넘지 못한 선거지원
6)정책 제시보다는 네거티브 진흙탕 싸움
7)국가기관의 선거개입 및 언론의 일방적 박근혜지지
8)박정희 향수와 부자 증세 등의 공약이 가져왔던 50대의 위기감 초래
9)민주당의 소극적 운동 내지는 선거운동 전무(친노에대한 불신, 호남 패권의 위기의식)
10)민주당 선거전략의 부재
네번째부터의 평가는 여론의 추이를 좀 더 지켜보고 진행하려 했으나 연말연시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나태해질까하는 우려가 있어서 그냥 진행합니다.오늘 진보정의당 홈페이지를 보니 커뮤니티에 <대선토론방>을 만들었더군요. 대선 평가 관련으로 하실 얘기가 있으신 분들은 거기에 글을 남기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아무래도 당이라는 공간은 여기보다는 좀 더 피부에 와닿을 수 있는 평가와 토론이 이루어질테고 이는 자료로 남아 귀중한 역사가 될 것이기에 진보정의당의 대선토론방을 적극 추천합니다.
7)국가기관의 선거 개입 및 언론의 일방적 박근혜지지
이번 대선은 박정희 독재자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싸웠던 71년 대선과 많이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결과도 71년 당시 96만표, 2013년 108만표.
독재자의 딸 박근혜 후보와 김대중 전대통령의 명맥을 잇는 야당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
40여년이란 시간만 달랐을 뿐 내용을 들여다보면 어찌 그리 흡사한 선거인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이번 대선을 통해 우리는 <경제민주화>라는 다소 생경한 이슈를 접했는데 71년 당시 김대중후보는 <대중경제론>을 통해 산업민주화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생산적복지라는 개념으로 성장과 복지를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고 '복지가 곧 투자고 생산이다'라고 했던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혜안을 읽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 혜안을 가지신 분의 전통을 잇는 야당인 민주당이 선거에 패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할 수 밖에 없고, 그 원인을 파고들면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라는 참으로 비민주주의 국가의 우매한 일들이 자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71년 대선은 중앙정보부가 박정희 선거에 총력을 기울임으로서 전국적으로 부정선거를 자행했습니다. 아예 대놓고 참관인을 매수 하는가 하면 공무원 동원, 향토예비군 동원, 금권 선거 등 할 수 있는 부정이란 부정은 총동원했습니다. 동교동에서 자신에게 투표한 김대중후보 부부조차 당시 투표용지에 선관위원장 도장이 없다는 이유로 무효표가 되었던 일화는 유명합니다. 동원할 수 있는 국가권력기관은 총동원한 셈이죠.
71년의 중앙정보부와 2013년의 국가정보원은 무엇이 다를까요. 중정이라는 절대권력의 부패를 청산하고 새롭게 국민에게 태어나고자 했던 것이 국가정보원입니다. 김대중대통령은 정치 사찰 민간인 감시 통제나 하고 반공에 복무할게 아니라 국민을 위한 국가기관이 되어줄 것을 요구하며 국가정보원으로 그 이름을 바꾸고 환골탈퇴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참여정부는 검찰권력,국정원권력은 국민들에게 봉사해야 한다며 그들의 자율성을 인정했고 결코 대통령 권력으로 좌지우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명박은 달랐습니다. 국가정보원은 당연히 자신의 친위대라고 여겼던 것이죠.
검찰과 국정원은 NLL,국정원녀 등 여론을 주도하기 위해 치밀한 각본을 짰고 40여년전에 중정의 그러한 만행을 알았던 제1야당이지만 허술하게 넘어갔습니다. 71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는 <나는 결코 네거티브를 하지 않겠다> 했으면 40년이 지났으면 <나는 결코 네거티브에 걸려 들지 않겠다>하는 지략이 있었어야 하는데 그냥 바라만 보다가 흘러간 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때는 부정선거 규탄 대회라도 열었지만 지금은 그러한 민중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민중마저도 수구 꼴통에게 빼았겼으니까요.
8)박정희의 향수와 부자 증세 등의 공약이 가져왔던 50대의 위기감 초래
이명박은 참여정부의 침체된 경제를 역설하며 성장을 내세워 당선되었습니다.그만큼 국민들에게 경제 문제, 즉 민생 문제는 해결이 안되면 당장 고통스럽기 때문에 현안 중에서도 가장 클 것입니다.그런데 이명박의 경제 실패 및 부패는 전혀 접근하지 못하고 박정희라는 독재만 외치다가 끝난 선거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명박과 참여정부의 경제 지표들을 비교해 가면서 생산적 복지를 얼마든지 얘기 할 수 있는 선거 공간이었음에도 정책으로는 이슈를 못 만들어 내고 오히려 박정희 향수만 자극한 선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박근혜는 그 딸이라서 당연히 핏줄로 아버지의 어드벤티지를 얻고 갔는데 이를 제어 할 수 있는 정책이 마땅치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50대를 어떻게 이해 할 것인지는 보다 근원적인 인간의 본성을 이해 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지금까지 자본주의 나라에서 죽도록 일해서 얻은 재산, 즉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대한민국에서 내가 일군 인생의 재산을 축내고 싶지 않고, 그래야만 내 자식이 살 수 있다는 관념이 널리 공유되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경쟁해서 이만큼 벌었는데 내가 번 것을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놈팽이들한테 나눠줘> 이런 생각이 컸을테고, 진보와 보수를 분리적으로 생각지 않는 합리적 50대는 결국 이기주의의 손을 들어 준 것이라 봅니다. 그들은 87년 민주화투쟁의 선봉이었고 존경 받을만한 대한민국 사회를 일군 세대들입니다. 이명박 집권하면서 87년 이전으로 회귀한 민주주의와 함께 그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도 독재 박정희 때로 회귀한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