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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일장 당선작 2 ] 감상하십시오
라싸의별 | 2012-11-22 18:58:54 | 조회 7079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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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려상]

 

 

(시) 나만 가을이더냐 / 아이럽시민

 

홀리지 않으리라

청라의 푸른 언덕들을
천연 빛 온산, 단풍으로 불지른다 한들
황금 빛 들녘, 금잔디로 불태운다 한들

억새 풀 바람맞아, 시린 외로움 불태운다 한들
바람은 낙엽을 불러 가을을 쌓아 놓았다
나만 가을이더냐

혼비로 무너지고 쓰러짐이 어디 나 뿐이더냐

갈바람 칼침되어 쏟아져 들어옴이 어디 나 뿐이더냐

사납게 덤벼들던 팔월의 열기에
거칠고 흐느적대던 내 의식의 파편들 모아

가을 하늘로 날려 버리리

고목이 낙엽을 털어내듯

찌들린 내 혼의 쏟아낸 찌꺼기들
청명한 하늘의 혼을 본받아

추풍타고 나르다 낙엽되어 떨어지리

그리하여
폭풍같은 마음을 지닌채

호수처럼 살아가다보면

훗날

헛된 無用들 긁어낸 텅 빈 나목엔
앙상한 가지 백설이 안아주듯
모진 세월 뚫고 와줄 내 님도
눈처럼 하얗게 날 안아주겠지

 

 

(수필) 어머니 얼릉 일어나유~ 개밥줘야쥬? / 하이에나

 

“어머니 얼릉 일어나유~ 개밥줘야쥬?”

내가 나고 자란 곳은 충청도 서산의 바닷가에 있어서 맨발로 한달음에 숨을 몇 번만 헐떡이면 바다의 모래백사장에 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집의 뒷동산에는 별동산이라는 아주 나지막한 동산이 있었다.

그 동산을 오를라 치면 중간에 무너져가는 아무도 가꾸지 않는 묘등도 있었는데 그 묘등의 봉분옆으로 길이 나 있어서 언젠가는 사람의 뼈가 보일런지 유심히 쳐다보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매번 지나다녔다.

‘별동산’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예전에 비가 안올 때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왔다고 해서 ‘비올동산’의 약칭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어머니께서 해주신 말씀을 듣고 나서였다.

이곳 별동산밑 양지바른 곳에는 4집이 오순도순 모여서 한가족처럼 지내고 있어서 내가 살고 있는 마을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곳이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이웃집 시렁에 숟가락이 몇 개가 있었는지 다 알 정도로 지낼 정도였다.

그 네집중에 가장 어렵게 살던 집이 우리집이었는데 어머니는 ‘시절’이라는 소리를 듣던 사회생활에 정상적이지 못하던 아버지에게 12살의 띠동갑의 차이가 나는 줄도 모르고 집안의 소개에 의해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시집오신 어머니가 계셨는데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다.

참고로 아버지는 할머니께서 50전후로 해서 늦둥이를 가졌다는데 큰며느리와 거의 같이 아버지를 보셨는데 문제는 아버지의 지능이 일반사람들과 같이 100퍼센트 정상은 아니어서 솔직히 말해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동네사람들이 아버지를 ‘시절’이라고 불?� 나는 아버지만 생각하면 얼굴을 못 들고 다녔다.

바로 여기에서 어머니의 고난은 시작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어머니의 위대한 인생역정이 시작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면 과언일까?

어머니는 아들만 4형제를 낳으셨다. 물론 그당시에 보통 6명이상을 낳으실 때 어머니는 가족계획을 하셔서 막내인 나까지만 낳으셨다. 문제는 우리집에는 딸도 하나도 없이 아들만 4형제라는 데에 있었고, 그 아들 4형제를 가르칠 능력이 없었다는 데에 어머니의 고난은 시작이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가끔 몇 년 또는 몇 달을 집에 계시지 않으셨다. 나중에 철들고 난 다음에 안 것이지만 아버지께서는 방랑끼가 있으셔서 전국팔도유람을 다니셨다고 했는데 돈이 없으면 머슴을 살고 돈이 생기면 또 팔도유람을 하시면서 가정생계는 전혀 신경쓰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내가 대학교를 다닐 때까지 아버지에게 용돈이란 것을 받아보질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성격은 참으로 착하시고 남들에게 경우없는 행동은 안하셨으며, 우리형제들에게 늘 “인사를 잘해라” 라는 말씀을 약주를 드시고 오시는 날에는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두시간 동안 잔소리를 하시는 것은 기본이었는데 아마도 아버지의 이런 잔소리는 나중에 동네의 웃어른들에게 인사를 가장 잘하는 별동산 4부자네라고 소문이 날 정도로 우리형제들은 인사하나 만큼은 정말로 철두철미하게 하고 다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학교라고는 근처에도 못가 본 상태에서 간신히 한글을 깨우치는 정도에 불과했는데 이것은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은 점으로써 한글이 아니면 어떻게 아버지 어머니가 글자를 깨우치셨겠는지 지금도 아이러니할 수 밖에 없다.

어머니께서는 자신이 못 배운 것에 대한 서러움과 가진 것 없는 서러움을 자식들에 대한 교육하나 만큼은 반드시 시켜야겠다는 욕심 때문에 동네사람들에게 종종 손가락질을 들어야했다.

내가 학교에 들어가기전 인가에 우리는 돼지를 한 마리키우고 있었는데 아마도 빚쟁이들이 와서 돈을 달라고 우리집 앞에서 하루 종일 어슬렁거리고 있으면서 어머니의 행방을 물어봤지만 어머니는 그 빚을 갚기 위해 또 다시 동네 사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시러 다닌 상황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빚쟁이들이 물싸리나무를 꺾어서 애꿎은 돼지를 계속 툭툭 건들었는데 성질이 급한 돼지가 그만 제 성질을 못 이기고 죽어버린 경우가 있었는데 나중에 돌아오신 어머니께서 그 광경을 보시고 대성통곡을 하시는 모습을 보고 온 가족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집의 가장 큰 위기는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인 일곱살 때 즉, 큰형이 중학교 3학년때 였는데 어머니께서 신장에 문제가 있어서 얼굴이 붓고 해서 서산읍내의 병원에 3개월인가 입원을 하였으며, 그때는 큰고모 및 둘째고모가 교대로 와서 밥을 해주고 가사를 돌보아주었다.

그때 우리 큰형은 중학교 3학년을 다니면서 전교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 우수한 실력을 보이고 있었지만 결국 어머니 입원의 여파로 고등학교를 가지 못하고 서울로 상경을 하여 사촌매형이 운영하는 가내수공업으로 밥상을 만드는 공장에 취업을 하였는데 그곳에서 17살의 고사리손으로 밥상을 만들면서 생긴 흉터가 지금도 양손에 남아 있어 형의 손을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지금도 어머니는 큰형을 고등학교에 못 보낸 것이 가장 큰 한으로 남아 있는데 큰형이 서울생활 8년인가를 할 때에 매형네 사업도 잘 안되고 건강은 약해질 때로 약해져서 큰형이 빼빼 마른 상태로 시골로 귀향을 했었는데 마침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 삼성이 석유화학공장을 짓는다고 수용을 단행하여 우리마을은 땅도 헐값에 넘겨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우리집은 우리집명의로 된 등기가 된 집과 땅이 하나도 없었고, 대대로 내려오는 국유지를 몇 마지기를 가지고 있을 따름이었는데 그 보상을 받아 봐야 농사짓고 자식들 가르치느라 진 빚을 갚으면 얼마 되지 않는 상황에서 가장 급한 것은 큰형의 취업과 장가를 보내는 일이었다.

토지수용과 함께 삼성석유화학에서는 인근 마을 출신들을 대상으로 직원을 한 600여명 모집하였는데 우리형도 원서를 넣었지만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어서 입사가 거절되었을 때 생전 술을 안 먹던 큰형이 만취가 되어 마당에 앉아서 대성통곡을 할 때 어머니는 소리없이 부엌에서 생솔가지를 때면서 흐느끼는 것을 나는 지켜보았다.

........................

그런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하였던가?

평소 어머니의 악착같음과 큰형의 똘똘함을 지켜봐왔던 동네이장님이 삼성과 토지수용과정을 마무리하는 민원합의과정에서 우리큰형을 우선 입사시켜주는 것을 제안하였고, 삼성에서는 처음에는 중학교졸업장으로는 절대 안 된다고 하다가 결국 ‘6개월 연수후 실력이 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퇴사시킨다’는 조건부를 전제로 큰형을 입사시켜서 여수석유화학단지에서 6개월여의 연수를 시켰는데 우리큰형이 그곳에서 1등으로 연수를 마쳐서 14박15일간의 일본연수를 다녀왔을 때 어머니는 큰형과 얼싸안고 큰소리로 우셨다는 것을 대전에 고등학생으로 유학을 나가 있었던 나는 나중에 듣게 되었는데 아마도 이날이 어머니가 최초로 가장 행복했던 날이 아니었을까?

..............

그렇게 세월이 흘러 큰형도 결혼해서 조카둘을 낳았는데 큰형의 큰조카가 어릴 적부터 수재라고 과학고등학교를 2년만에 졸업하여 현재는 고려대의 의예과를 장학생으로 다니고 있어서 어머니와 큰형이 큰 자랑거리가 되었다.

그 후 큰형과 둘째형이 돈을 벌면서 셋째형과 나를 대학까지 졸업을 시켰는데 별동산의 네집뿐만 아니라 우리마을에서 그토록 찢어진 가난속에 대학교를 두명이나 보낸 집은 우리집밖에 없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동네사람들로부터 ‘돈도 없어 맨날 돈빌려달라고 아쉬운 소리할거면 아니 대학을 보내지를 말던지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라는 시기를 받기도 하였지만 어머니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돈을 빌리고 또 빌리고 해서 결국 큰형과 둘째형은 못 가르치셨지만 셋째형과 막내인 나를 대학교까지 보내셨다.

나는 대학교 1학년때 등록금을 큰형이 대주기는 하였지만 나머지 등록금을 도저히 마련할 수 없을 것 같아서 ROTC 4년 국비장학생에 응시를 하였고, 다행이 합격이 되어 학비걱정은 하지 않고 대학교를 다녔는데 ROTC 후보생시절인 3학년 때와 4학년 때는 시골에 갈 때면 무조건 ROTC단복을 입고 갔다.

우리시골 동네에서는 대학교에 다니는 사람도 드물었지만 장교후보생은 내가 최초였을 정도로 많은 동네어르신들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아버지 어머니를 으쓱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기도 하였기 때문에 버스종점에 내리면 경로당에 계신 아버지께 인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인사를 드리고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의기양양하게 왔으며, 내가 소위로 임관을 하여 삐까번쩍한 소위계급장을 단 정복을 입고 동네에 내려왔을 때 동네어르신들의 칭찬과 부러운 눈빛은 아마도 내가 우리 아버지 어머니께 해드린 최초의 효도인 것으로 기억한다.

..........

그렇게 세월은 흘러 지금으로부터 6년전에 어머니의 소원대로 ‘시절’소리를 듣는 아버지께서 전립선암이 온몸으로 전이되어 먼저 돌아가시고 큰형이 모시려 하였지만 “몸둥이가 성한데 서로 귀찮게 뭐하러 같이 산다냐?” 라며 시골에서 홀로 사시던 어머니께서 몇 년전부터 늦가을 서리 맞은 고구마줄기마냥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하셨다.

무릎에 물이 차기 시작했고, 골다공증이 있어 매일 약을 드시는 상황이었는데 그 약의 후유증으로 폐가 굳어지는 합병증도 나타나서 몇 백미터를 걸으시면 숨이 차는 상황까지 와서 1년에 몇 번 뵐 때 마다 야위어져 가시는 어머니를 느낄 수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서울의 한양대학병원에 한달에 한번 또는 두달에 한번 정도 통원치료를 하셨는데 처음 몇 년은 서울까지 버스를 타고 오시면 내가 버스터미널에서 어머니를 만나서 병원에 모시고 다녔지만 어느 사이엔가 어머니의 총기는 사라지고 두손을 잡고 버스타는 곳으로 안내를 해드려야 되는 상황이 되는 것을 느끼면서 형들과 내가 교대로 아예 어머니를 차로 모시고 병원에 다니는 상황이었는데 문제는 지난 10월 말에 사단이 벌어졌다.

여느 때처럼 아침에 출근을 하려는데 시골의 둘째형이 전화가 와서 “어머니께서 아침에 못 일어나시고 못 걸으신다는데 아무래도 병원에 모시고 가야할 것 같은데 시간이 되냐?” 라는 전화를 받고 회사에 큰 일이 없었던 나는 바로 시골로 차를 몰고 가면서 ‘벌써 돌아가실 때가 되었는가? 아직 이렇게 보내드리면 안돼는데...’ 라는 상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시골에 도착하였을 때 큰형이 어머니를 동네병원에 모셔서 링거를 맞고 계셨는데 안색이 창백하신 게 아무래도 큰 병원으로 모셔서 당장 입원을 시켜야 되는 상황으로 인식을 하고 바로 시골집에 들러서 입원준비를 하고 한양대학병원에 입원을 시켜서 피검사를 비롯한 각종 검사를 한 결과 ‘쯔쯔가무시병’이란 진단이 며칠 후에 나왔으며, 그 진단이 있기 전 입원 후 4일째 되던 날 어머니는 39도를 오르내리며 거친 숨을 몰아내쉬면서 사투를 벌이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형들에게 “혹시 어머니께서 돌아가실 수도 있으니 모든 일정을 전폐하고 급히 서울의 한양대병원으로 오시는 게 좋겠다“ 라고 고지를 하여 4형제가 모두 어머니를 뵙고 나만 어머니곁에 남고 다시 시골로 내려가셨는데 그 다음날인 금요일날 결국 중환자실로 입실을 하였고, 다행하게도 4일만에 월요일 약간 호전되어서 일반병실로 다시 나오셨다가 입원하신지 21일만에 퇴원을 하셔서 큰형집으로 내려가셨지만 아직도 간신히 당신 스스로 걸어서 화장실을 다녀오실 정도밖에 도저히 언제 회복하실 수 있으실지 장담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

아~ 어머니...어머니 당신에게 얼마간의 시간이 남아 있으신 것인지요?

솔직히 지난번 병원에 입원하시고 4일째 되던 목요일 어쩌면 어머니는 돌아가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곁에 있는 나는 충분히 느꼈으며, 그날 주치의도 그날이 가장 큰 고비였다고 말했었다.

어머니는 천주교라는 종교를 가지고 계시지만 난 지금도 종교를 가지지 않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그 누구도 어머니만큼 나에게 신적인 존재로 다가오지 않았음에 내가 그 어떤 종교도 나에게 큰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 무종교인의 삶을 살게 된 요인이 아닌가 싶다.

그런 신적인 존재인 어머니께서 지금 앞으로 얼마만큼 더 사실 수 있을까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몰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상황이고, 그동안 어머니께 아무것도 못해드린 상황과 오히려 불효를 끼쳐드린 상황만 떠올라서 우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별동산의 오두막 단칸집에서 4형제를 낳아서 보란 듯이 키워내신 장한 어머니 어머니 더도 말고 더도 말고 5년만 더 사셔도 여한이 없을 것인데...솔직히 자신할 수가 없다.

한씨외전(韓氏外傳) 9권에 나오는 말로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

즉, '나무는 조용히 있고 싶어도 바람이 멎지 않으니 뜻대로 되지 않는다' 는 말로 효도를 하려고 해도 부모가 살아 계시지 않아 뒤늦게 한탄하게 된다는 뜻인데 자꾸 이 문구가 내 머릿속에 남아서 가슴을 후벼 파고 있다.

어머니는 시골형님네로 내려가시기전에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개밥하고 괭이밥은 줬다냐?” 라고

그래서 내가 “그랑께 어머니 얼릉 기운차리고 일어나유 그래서 어머니가 직접 개밥줘야쥬~”

 

 

 

(시) 비 / 호수섬

1. 비

 

듣기 거북한
알미늄의 거친 마찰음을 감수하며
언제연지 가물한 창을 열어
마치 처음보는듯 가슴설레며 비를본다.
아니다
이비는 처음이다.
강열한 조지윈스턴의 피아노를 들으며
보는비는 처음이고
마른줄 알았던 감성이 비에적셔
나의 삐걱이는 녹슨창에 내린것도 처음이다.

2. 단절의 공포

이내 어두어지며
비가 두려워지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내가 어둠을 두려워했는가?
그것은 아니다.
비에관한 나쁜기억이 있었나?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럴것이다.
나를 근래 괴롭히던 과거로 부터의 단절..
아마도
열지않아 먼지쌓이고 삐걱이던 창은
내속에 있는가 보다.

3. 세월

살뜰하던 그 친구를 만나러
강화 전등사를 찾겠다는 약속도
세월로 변명해버린 나의 영악함에 흐려졌고
가슴 한켠을 비워둔다는 약속또한
너를 보낸후
하나둘씩 욕심으로 채워가며 소멸되고 만다.
그리고
작년에 하늘로 보내드린 할머니의 영전에
열심히 살겠다던 굳은다짐도 뒷줌에 감추어 버렸고
평생 지니겠다던 할머니의 구릿빛 라이타도
지금 어디있는지 모른다.

4. 다시 비

모두에게 비가 내릴것이다.
친구를 두고온 강화도 전등사 석탑에도 내릴것이다.
두고 돌아오는길에 울면서 마셨던
김포의 왕대포집에도 내릴것이다.
그친구와 어깨걸이를 하고 노래하며 술주정하던
그 거리에도 내릴것이다.
차가운 땅속에 좀이쑤시며 뭍혀계실 할머니에게도
내릴것이다.
비가오면 방안에서 개나리 처녀를 즐겨들으며 따라했던
고물상 어딘가에 있을 할머니 카세트에도 내릴것이다.
내가 술마시고 어디다 떨어뜨리고 만
할머니의 라이타에도 내릴것이다.
빗물이 새면 당신 손수 고치던
천호동집 뒷베란다 천정에도 내릴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약속을 지키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나의 우유부단한 머리에도 몇일동안 두고두고 내릴것이다

 

 

(수필)

가을을 사랑하는 어느 촌놈의 생활 속 진보발견 / 발끈바다

 

해마다 농번기철이 되면 시골에 계신 부모님 일손을 돕기 위해 고향집을 틈틈이 들른다. 구름 한 점 민망해서 솜사탕 녹듯 흩어지는 화창한 가을하늘 아래 고향에서는 지금 벼 베기가 한창이다. 수확철에 맞춰 주말커플에 휴가친구 한쌍을 붙인다. 합이 넷이다. 4일 동안 나는 부모님의 수확의 즐거움에 해가 될 수 있는 힘든 노동을 나누기 위해 들판을 나선다. 아버지 연세는 일흔이고 어머니는 3살 연하이다. 하지만 농사 욕심만은 청춘이시다. 논 한마지기 없는 젊은 시절부터 시작으로 하천부지를 불하받아 개간해서 복숭아, 양파, 수박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시다가 이제는 벼농사만 전업으로 하신다. 농사일로 힘든 오랜 세월 지칠 만도 하건만 이제는 농사일 자체가 삶의 소중한 의미가 되었기에 농사 그만두고 좀 쉬시라는 말조차 꺼내기가 무상하다. 어렸을 때 농사일 거들기가 그리 싫었건만, 이제는 나도 제법 농사맛이 들었고 노동의 기쁨을 알기에 힘들어도 묵묵히 즐기시는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가을일은 아버지가 콤바인기계로 벼를 탈곡하면 나는 큰 포대에 담아 트랙터나 화물차에 싣어서 벼 수매장으로 곧바로 가서 하역작업을 한다. 가을걷이가 한창일 때는 벼 수매장 또한 인산인해를 이룬다. 오전에 수확한 벼를 싣고 수매장을 도착하니 벌써부터 벼를 싣고 온 경운기, 트랙터, 화물차가 도토리 키 재기 하듯 올망졸망 늘어서서 수매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내 차량 앞 유리에 순번대기표 123번이 꽂혔다. 난감하다. 오늘 한발 더 싣고 와야 일이 맞아 떨어지는데 수매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걱정이다. 현재시각 12시, 적어도 오후 5시 정도는 수매를 끝내야만 수확한 벼를 한발 더 싣어 올 수 있다. 왜냐하면 벼 수매장은 7시까지 도착한 수매차량만 받기 때문이다.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 같다.

 

하지만 조급해 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아버지께 전화드려 사정을 말씀하니 아버지는 지겹더라도 좀 참으라면서 내 걱정을 하신다. 일하는 분이 그저 순번만 기다리는 아들을 걱정하는 건 이상해 보이겠지만 나는 그 기분을 안다. 무료하게 기다리는 것보다는 수확일이 덜 피곤하다면 이해가 될까? 물론 육체적으로는 힘든 건 두말할 것 없다. 휴가까지 내서 도와주러 왔건만 대기하느라 시간을 보내기에 나로써도 아깝다.

 

수매를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는 것은 더 없이 좋은 시간활용이다. 마침 집에 와 있는 누나에게 전화를 해서 김어준 총수의 ‘건투를 빈다’를 가져오라고 시켰다. 쉽지만 깊이있는 책이다. 한참 열독하고 있는 도중에 멀리서 허리를 곧게 세운 품질검사관의 모습이 차량 사이드 미러 안으로 볼록하게 다가온다. 볍씨 품질은 등급에 따라 포대당(40kg) 3천원의 차이가 난다. 한번에 평균 2톤 정도의 수확한 벼를 싣고 오기 때문에 등급판정에 따라 15만원 정도 차이가 난다. 오늘 수확한 벼는 일조량이 부족한 골짜기에서 재배된 터라 품질에 자신이 없었다. 무뚝뚝한 표정의 검사관은 볍씨를 왼손바닥에 올려놓고 오른손 검지로 휙휙 저으며 고개를 갸우뚱하더니만 턱을 댕기며 눈을 아래로 지그시 깔면서 유심히 본다. 시험보고 성적 대기하는 학생 같은 초조한 심정도 들고, 속으로 2등급 주기만 해보라며 닿지도 않을 협박의 기운을 보내기도 하고, 검사관에 대해 불신이 들기도 하는 등 많은 감정이 교차되었다. 검사관이 수매영수증 1등급 란에 사인을 한다. 고맙다는 야릇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가볍게 하고 영수증을 챙긴 후 다시 책을 들었다.

그런데 뒤 따라온 낮에 익은 아주머니 한분이 다른 화물차의 볍씨와 우리 화물차의 볍씨를 번갈아 살핀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등급 잘 나왔는교?”

“고마 이등밖에 안 주네, 비료도 적게 하고 쌀쌀하이 지었는데 와 이리 밖에 안주노”

못내 아쉬워하는 아주머니에게 나는 농사를 잘못 짓은 것이 아니라는 위안을 하고 품종에 따라 때깔에 차이가 있으니 다음에는 ○○품종을 재배해보라고 권장하였다

10년 전 쯤 동네 벼수매 현장에서 겪었던 일이 떠오른다. 농산물품질관리원의 검사관이 품질등급을 매기고 있을 무렵 그 지역 시의원이 도착했다. 시의원은 검사관에게 등급표시 도장을 잠시 건너 받은 후 카메라 앞에서 포대마다 특등 도장을 마구 내리 찍는다. 특등은 열에 하나 꼴로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의원이 검사하는 포대는 언제나 특등이다. 잠시 도장 찍고 몇 마디하고 수매장을 떠나는 시의원을 모습을 보면서 강한 특권의식을 느꼈다. 아무개는 의원 덕에 특등 받아 좋겠다고 웃는 농민들 모습 또한 인상 깊었다. 이런 상황을 누구하나 부정하지 않고 당연시 여기는 보수적인 풍토가 씁쓸하게 느꼈던 기억이 난다.

 

1등급을 받고 흐뭇한 기분으로 책을 다시 잡기가 무섭게 뱃속에서 신호가 요동친다. 수매장에는 점심때 농민들에게 국밥을 제공한다. 나는 입구 쪽으로 가서 동네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고 국밥 한 그릇을 챙겨왔다. 수확의 기쁨과 더불어 야외에서 먹는 국밥은 별미다. 신선한 가을바람이 콧구멍을 스치면 국밥의 풍미는 배가 된다. 게다가 공짜라는 맛이 더해진 그 맛은 일품이다. 국밥과 하모니를 이루며 고개 박고 허우적 먹는 동안 옆에서 수다 떠는 농민들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볼라벤인가 뽈락인가 하는 기 전라도 충청도를 쓰리삐가 올해 쌀값이 더 오를 기라”

“ 안 그래도 쌀 값 좀 오르고 있는데 태풍 왔는김에 마 전라도 나락 빠짝 눕혔으면 쌀 값 더 올랐을 긴데” 라고 웃으면서 이야기가 오간다.

 

쌀값이 작년에 비해 10% 정도 올랐고 우리지역은 곡수도 괜찮아 농심이 밝다.

하지만 이야기 듣는 동안 씁쓸하고 안타까운 심정이 느껴졌다. 농민들은 타 지역의 흉작으로 오는 반사이익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좋은 예로 작년 중부지역의 잦은 강우로 고추 탄저병이 창궐하여 수확이 급감하면서 고추 값이 폭등하였다. 대조적으로 우리지역인 경주를 비롯한 남부지역은 고추가 풍작을 이루어 농가소득이 2~3배 정도 올랐다. 자연재해로 인해 겪는 흉작이 얼마나 가슴 쓰려 내리는 애통한 심정임을 모르는 농민은 없을 것이다. 나 도 농부의 아들로서 그 기분을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예전에 나 또한 자연재해로 인해 타 지방 농산물 수확량이 급감하기를 기대했었고 가격상승을 은근히 바랐던 적이 있다. 그래서 태풍이 북상할 때 다른 지역을 관통하기를 내심 바라기도 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불편한 감정이 느껴졌다.

 

타인의 불행이 곧 나의 경제적 이익을 가져올 때 남의 불행을 기대하게 되는 나의 심리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농심을 잘 아는 내가 다른 농부의 심정을 모른 체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양심을 깨우고 삶을 성찰하는 자세로 조금이나마 다가 갔을 때 비로소 나는 내면의 진정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철이 들었다고나 할까?

특히, 서해안으로 북상하여 북한으로 향하는 태풍진로를 보면 너무 안타깝다. 이념과 사상의 반목의 역사로부터 희생되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삶에 처한 북한 동포를 돕지는 못할망정 자연재해까지 당해야 될 형편이니 말이다. 올해 15호 태풍 볼라벤이 서해인근을 지나면서 추석을 앞둔 농작물과 양식장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 볼라벤보다 먼저 발생한 14호 태풍 텐빈이 뒤늦게 서해안과 전라도에 상륙하여 피해를 주었고 16호 태풍 산바 또한 전라도 남해안에 상륙할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다. 태풍 3개가 연이어 같은 지역을 강타할까 걱정이 되었다. 다행스럽게 국토균형재해를 감안해서 포세이돈 신께서 16호 태풍을 우리지역 동해안으로 인도하셨다.

 

다른 지역의 재해를 은근히 바라는 농민들의 마음은 인지상정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같은 농민으로써의 심정을 교감하며 타 지역의 재해를 염려하고 걱정하는 농민도 있다. 특히 남성과 차별을 겪으며 애환의 삶을 살아온 농촌의 어머니들의 마음은 남다르다. 자연과 맞서며 경쟁하듯 평생 농사를 일궈낸 투철한 농민이나 무식하다 보니 자기주장을 굽힐 수밖에 없는 농민이나 주로 성향은 보수적이다. 반면 자연에 동화되어 살면서 순수하고 정직한 마음을 지니고 모두의 풍년을 바라는 이타심을 가진 따뜻하고 진보적인 농민들도 있다.

 

벼 수매장의 농민들 대화를 통해 나는 인간성에 따른 가치관을 세심 느끼게 되었다 . 남의 불행이 자신에게 득이 된다면 남의 불행을 바라거나 또는 도울 수 있음에도 방치하는 사람은 보수적인 인간형이고 나의 행위로 인해 남이 불행을 겪는 것은 아니지만 타인의 불행을 안타까워하며 도울 방법을 있으면 도와서 불행을 나눠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진보적인 인간형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보수, 진보적 이념을 떠나 부모님 시대의 농민들은 근대화 과정에서 힘들게 농사지어 자식들 뒷바라지 하셨으며, 이 땅의 일꾼들을 발굴한 한 시대의 아버지, 어머니였기에 존경받아 마땅하다. 또한 생명과 건강의 파수꾼이기에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을 읽고, 라디오 들으며 긴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럭저럭 벼 수매 차례가 돌아왔다. 수매를 마치고 보니 오후 6시가 다 되었다. 장장 6시간 동안 대기를 한 것이다. 수매마감 시간이 7시라 한발 더 싣고 오기에는 다소 무리인 듯 하다. 초조한 마음에 서둘러 수매장을 나와 들에 도착한 후 아버지가 수확한 벼를 다시 화물차에 싣으니 7시가 좀 넘었다. 해는 저물었고 희미한 하늘의 미광만이 세상을 은은히 비쳐주고 있었다.

 

수확이 한창인 때 벼 수매장은 항상 붐비기 때문에 동네별 격일 째로 나누어 수매를 받는다. 지금 수매하기에 시간이 늦어 모래 수매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골짜기 지역의 논이라 햇볕이 부족하여 벼알의 수분이 너무 높게 나온 것이다. 수분이 높은 볍씨를 하루 이상 수매포대에 방치하게 되면 볍씨가 싹틔우기를 하면서 자체 열을 발산한다. 그러면 종자가 뜨게 되어 가치가 떨어져 식용에 맞지 않아 수매를 받지 않는다. 그래서 모래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만약 오늘 수매를 하지 않으면 수확한 볍씨를 집 마당 위 포장에 깔아 그 위에 얕게 펴서 햇볕에 말리고 난 뒤 다시 포대에 담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데 이 작업은 한나절 꼬박 걸려서 수확 일정이 지연되고 노동력 또한 만만치 않게 든다. 그래서 수매 마감시간이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하며 수매장을 향해 쏜살같이 내달렸다. 예상대로 수매는 마감되었고 마감 전 수매장에 도착한 차량만이 순번대기를 하고 있었다.

 

낙심을 하고 돌아가려는 찰나에 벼 수매장 과장으로 근무하는 당숙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가 가서 예로사항을 말씀드리니 당숙아제는 마무리 할 때 쯤 연락할 테니 그때 오라는 것이다. 집에서 대기하고 있는 동안 당숙아제한테 연락이 왔다. 정문으로 오지 말고 뒷문으로 오라는 것이다. 어둠을 뚫고 뒷문을 통해서 도착하니 마지막 수매 농가가 차량에 싣은 벼를 하역하고 있었다. 곱지 않는 시선을 보내는 듯한 농민의 표정에 부담을 느껴며 괜스레 더 적극적으로 하역작업을 거들었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뒷문으로 온 분이 있는데 그분은 이장협의회 회장이였다.

적당한 반칙행위가 그 지역의 기관장 또는 단체 임원에 한해서는 하나의 특권이며 지역농민들도 이를 용인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반칙이 수매장에 근무하는 당숙의 업무상 재량행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엄연히 자신의 안위를 위해 친척의 지위를 이용하여 반칙을 한 부정의 사례임이 틀림없다. 나는 수확이 한창인 시기에 남들은 6시간을 기다려 수매를 하는데 나는 인맥을 통해 부당한 행위를 한 것이다. 대부분 이같이 사소한 반칙행위가 자신에게 득이 되면 큰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다. 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보수와 진보로 규정 지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권력에 편승한 반칙행위로 인해 마음이 불편하고 자신을 돌이켜 반성하며 곳은 행동을 다짐하는 사람은 진보적이며 오히려 호기심을 보이거나 적극적으로 가담하고자 하는 사람은 보수적인 사람이라 생각된다. 오늘 수매장에서 느낀 또 다른 생활속 진보의 발견이다

가을 수매장에서 겪은 일로 자칭 진보라 생각한 나에 대해 일만의 자기반성과 성찰의 기회가 되었다. 현실에서 너무 원칙을 따지다 보면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비쳐 줄 수 있다. 하지만 원칙에 근거하지 않는 융통성은 정당성을 상실하기 마련이다. 다만 스스로 원칙의 예외성의 여지를 남기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된다. 원칙도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완전 할 수 없고 완전하더라도 삶속에서 원칙만 따진다면 사람의 냄새가 옅어질 것 같다. 나는 도덕군자로 살아갈 능력도 안 되고 그렇게만 살고 싶다는 마음 또한 없다.

 

반칙과 기득권이 득세하는 우리나라 사회의 모순을 바로잡고자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회를

당당히 외치시던 노무현 대통령님의 모습이 눈물겹게 스쳐간다

올 가을 수매장에서의 소소한 일화를 통해 나는 진보와 보수, 그리고 인간에 대해 깊이 있는 사색을 하였다. 첨맘님에게 감염된 보람이 있다. 항상 생각은 힘이 세다고 강조하셨는데, 내 나름 생각의 깊이를 더해가는 모습을 느낄 때 좋은 스승을 모시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항상 가진다. 비록 스승이 제자를 못 알아볼지언정 나는 좋은 스승을 가졌다는 자부심에 항상 뿌듯하다.

나는 농촌에서 자라면서 자연과 어울려 노동의 가치를 배울 수 있는 지난시절을 소중하게 여긴다. 청소년 시절 가난한 농부의 아들 신세를 한탄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전원을 아름다움을 모르고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생활하는 현대인에게 오히려 부족한 무언가를 느낀다. 농촌의 배경을 선사하신 부모님께 깊은 감사드리며 나중에 밭 몇 마지기 물려주실 것을 생각하면 흐믓하다. 퇴직 후 남은 인생을 부모님이 물려주신 농촌의 정신적 물질적 기반으로 농사를 짓고 배우자와 알콩달콩 살고 싶다. 그리고 뜻을 같이하는 지인들을 초대해 자연과 인생의 즐거움을 논하며 오붓한 시간을 자주 마련하고 싶다.

 

끝으로 전태일 열사가 막노동판에서 찌들고 궁핍한 삶을 살아가는 한 노동자의 모습을 보고 느낀 아픈 마음을 친구에게 편지로 담아 보낸 글 중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유시주님의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재인용함)

얼마나 위로해야 할 나의 전체의 일부냐? 얼마나 불쌍한 현실의 패자냐! 얼마나 몸서리 치는 사회의 한 현실이냐!······· 사회는 자기 하나를 위해 이 어질고 착한, 반항 못하 는, 마도로스 모자를 쓴 한 인간을, 아니 저희들의 전체의 일부를 메마른 길바닥 위 에다 아무렇게 나 내던져 버렸다.

 

 

 

(동시) 자전거를 타고 / 진가경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 돈다

 

쏴아아 바람이

머릿결을 스쳐가면

 

얼음 같던 마음도

녹아내려간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 돈다

 

후두둑 단풍이

머리 위로 떨어지면

가시 같던 마음도

가라앉는다

 

경쟁사회 속에서

이 사회는

레이스일 수도 있지만

 

자전거는

레이스가 아닌

마음으로 타는 거다

 

 

 

[가작]

 

 

(수필) 가을산 오솔길을 걸으며 / 다정무심

 

     

늦은 가을 ,산 허리를 감도는 오솔길을 걷노라면

옛 시 한 구절이 깊은 기억 속에서 기어 나와

이마를 타고 볼을 쓰다듬으며 흘러내린다.

 

“서리 맞은 붉은 잎은 봄 꽃 보다 더 붉다“

“서리 맞은 붉은 잎은 봄 꽃 보다 더 붉다“

“서리 맞은 붉은 잎은 봄 꽃 보다 더 붉다“

 

희망 가득한 연록이었던. 힘차게 피어오르던 짙은 초록

붉고 노란 휘장.. 깃발들, 축제의 흩날리던 리본. 군중을 이끌던 만장

이젠 흔들리는 햇살에 쓸려 닿고 삭아 마른 피를 흘리며

내 발끝을 물들인다.

 

봄에 이 길을 지날 땐 흐르는 안개 속을 헤엄쳐 걷는 듯했고

여름엔 생명이 스민 끈적함이 몸을 휘감아 답답하기도 했다

이젠 가을, 퇴락의 쓸쓸함이 오히려 자유롭고 후련하다.

 

걸음마다 밟히는 가을이 무릎을 지나 허벅지까지 무겁게 물들일 무렵

길을 잠시 벗어나와 바위 위에 서서

건너편 산등성이부터 쫒아온 바람에 상념을 씻는다

멀리 보이는 봉우리와 이어진 긴 능선들

그 사이 사이에 숨어있는 조그만 오솔길들.

이미 지나 왔고 앞으로 지나야할 기나긴 여정

바위에 발을 얹고 비스듬이 기대어 구름을 바라본다.

나를 안고 있는 소나무 쓰다듬는다.

‘그래! 널 만났었어. 그 땐 너에게 안겨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지난 겨울, 북풍은 매서웠지만

오솔길을 걸을 때는 몸속 작은 혈관의 흐름을 느끼고

대간 능선 위를 걸을 때는 나의 척추와 관절이 두드려지 듯 시원했는데.....

다시 허리를 펴고 다리에 힘을 모아 길 위에 선다

세상 끝까지 이어지는 이 길 위를 지나는 이들의 울림을 느끼며

오래 전 지났던 이들의 발자욱을 밟으며

걷는다. 살아간다

                                                  

 

(시) 깃발 / 동현아빠

 

 

깃발을 든다.

분노의 깃발을 든다.

애원의 함성이 깃든 깃발을 든다.

시린 손아귀를 움켜쥐고 깃발을 지킨다.

 

바람이 분다.

거친 바람이 분다.

거친 바람에 깃발이 나부낀다.

거친 바람에 깃발은 이리저리 헤매인다.

 

깃발은 물고기다.

세찬 물살에 몸을 태우며

목적지를 향해 유영하는 몸짓이다.

 

깃발은 연이다.

바람을 거스르기 보다는

자유를 향해 비상하는 날개짓이다.

 

오늘도 깃발을 든다.

 

 

 

(수필) 솔지아빠 일주기 / 돌도끼

 

솔지아빠!
어디에 계십니까.
당신이 떠날때 억수로 뿌렸던 비도 사라지고
기억에도 없는 무더위가 온 세상을 찌린 땀덩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 빗줄기 속에 당신을 떠나보내며 우리는 
하남에서 시작하여 경기도에 그리고 전국 방방곡곡에 
당신이 꿈꾸는 세상을 실현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노무현이 만들고자 했던 

유시민과 우리가 기필코 가고야말 참자유의 세상 
그 염원을 실현하고자 눈 부릅뜨고  
동지들 모아 어깨걸고 한발 한발 전진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초라하고 현실의 진보는 폐허에 다름 아닙니다. 

 

미안합니다.

당신의 영전에 바치고자 했던 꽃다발은
찌는 햇빛에 말라버려 축처진 모습으로 자신의  그림자를 향해 
고개 숙이고 있습니다.
이제 그토록 염원했던 진보의 세상은  
그 누구도 통합진보당을 통해 이뤄보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제 진보를 갉아먹는 천덕꾸러기로 눈총받는 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당신을 보낸지 일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길을 잃었습니다.                 

패자의 모습으로 당신 앞에 선 우리는                       
당신의 영전에 모여 울부 짖습니다.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솔지아빠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자 여기 모였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당신의 몸짓을 보고자 여기 섰습니다.
우리는 온 몸으로 당신을 기억하며                                        
다시 당신의 길을 가겠습니다.                                       
내년의 이날엔 기필코                                             
소풍끝낸 당신과 어깨걸고                                            
환한 미소로 마루공원 밑에 펼쳐진 하남을                                
승리의 노래 환희의 노래로 함께 하겠습니다.                             
찌는 무더위에 지친 범벅이 아니라
일의 보람에 찬 달디단 땀방울로 당신을 맞이 하겠습니다.                     

기필코

 

 

(동화) 민구네 산딸기와 블루베리 / 평강공주

 

민구네 가족은 강원도 시골 마을로 이사를 왔어요. 몇 년 전부터 엄마가 많이 아팠기 때문이에요. 민구네 엄마는 심장이 좋지 않아서 큰 수술을 받았어요. 공기 좋고 물 좋은 시골 마을에서 농사를 짓게 되었죠. 민구 아빠는 고운 흙에 산딸기나무를 심었어요.산딸기는 몸에 좋은 과일이랍니다. 옛날엔 산에서 나는 열매여서 산딸기라고 불렀데요. 사람들은 산딸기를 무척 좋아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산딸기를 먹을 수 있도록 밭에서 재배하게 되었데요.
이제부터 민구네 밭에서 자라나는 붉은 열매 산딸기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해요.햇볕이 살포시 내리쬐는 어느 여름날, 민구네 딸기밭에는 튼튼한 아빠 다리 같은 줄기와 엄마의 부드러운 손 같은 여린 잎들 사이에서 꽃이 피었어요. 초록 날개를 단 열매가 토실토실 자라났어요. 줄기와 잎 사이에는 가시가 돋아났어요. 마치 민구가 엄마 품에 착 달라붙어서 낮잠을 자듯이 말이죠.민구는 날마다 밭에 나가 나무에게 말을 겁니다. 처음엔 친구가 없어 심심했어요. 이제는 엄마 아빠를 따라 산딸기 밭에 나가 나무와 친구가 되어요. 민구는 아빠가 만들어 놓은 물주는 기계로 물을 줍니다.
“안녕~ 친구야, 너 참 푸르구나!”
민구는 날마다 부모님께 칭찬을 받습니다. 민구도 나무에게 칭찬을 잘 합니다. 그런 날이면 산딸기나무 친구들은 기분이 좋아서 줄기와 잎 사이에 산딸기를 주렁주렁 달아 놓아요.“산딸기야, 산딸기야! 어서 자라서 우리 엄마 입 속으로 들어가자.”
민구는 산딸기나무 친구들에게 말을 걸고 칭찬을 하고 물을 줍니다.
“동글동글한 너의 얼굴은 내 동생 같이 예쁘고 귀엽기도 하네.”
그러면, 산딸기 친구들도 반드시 민구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해요."
“고마워~ 민구야, 민구는 이 세상에서 제일 착한 친구야.
”산딸기 밭을 지나가던 귀여운 산새 친구들도 우리를 따라 해요."
“우리 모두 착한 것이 똑 같네”
“똑 같네”
민구는 산딸기와 산새들이 사는 시골 마을에 사는 것이 행복합니다. 가끔은 냇가에 나가 물고기들의 친구가 되어주기도 하고, 날아가는 새들과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지요. 도시의 친구들이 생각 날 때면 언덕에 앉아 저무는 노을을 바라보기도 하구요.요즘 민구의 머릿속엔 온통 엄마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요. 건강해진 엄마와 함께 달리기를 하는 것이 소원이랍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힘들어하시는 엄마를 볼 때면 참 속상합니다. 민구는 엄마의 몸에 좋다는 산딸기가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산딸기 농사를 짓는 아버지를 부지런히 돕습니다. 민구에게 지금 최고의 친구는 산딸기나무랍니다.
드디어 산딸기나무가 붉은 열매 산딸기를 다 만든 어느 날입니다.산딸기나무 친구들이 민구네 가족을 보자 신나게 손을 흔들어요.
“저요~저요~ 내가 더 잘 익었어요. 저요~저요~ 내가 더 맛있어요.”
“와~ 예쁘다. 엄마, 이제 다 익었어요?”
엄마는 환한 얼굴로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엄마 이거 드세요."
민구는 잘 익은 산딸기 하나를 따서 엄마 입에 넣었어요. 엄마의 웃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요. 엄마의 입에 들어간 산딸기가 달콤한 향기를 가득 뿜어냅니다. 민구는 날마다 산딸기가 엄마의 심장까지 빨리 들어가서 엄마의 병을 빨리 낫도록 기도합니다.
“우리 민구~ 산딸기를 아주 좋아하는 구나. 어떤 맛인지 너도 한번 먹어 보렴”
옆에 계시던 아빠도 싱글벙글 기분이 좋아요. 민구도 자꾸자꾸 산딸기가 먹고 싶었지만, 엄마를 위하여 조금만 먹을래요.

그러던 어느 날, 옆집 아저씨는 파란 열매 친구들을 데리고 왔어요. 그 친구들을 민구네 산딸기나무 옆에 심었어요. 산딸기나무들은 파란 열매 친구들이 반갑고 신기했어요.
“너희는 어디서 왔니?”
“우린 핀란드에서 왔어. 사람들은 우리를 블루베리라고 해. 블루베리 잼을 만들어서 빵에 넣어 먹어.”빨간 열매 산딸기와 파란 열매 블루베리는 사이좋게 고은 햇살을 받으며 쑥쑥 자랐어요.산새들과 바람 친구도 함께 노래를 불렀어요.어느 날, 파란 트럭 한 대가 민구네 농장에 도착했어요.잼 공장에서 잼을 만들 과일을 사가기 위해 온 것이죠. 그런데 트럭 아저씨는 블루베리만 사갔어요.
“아빠, 아저씨는 왜 블루베리만 사가요?”
“사람들이 블루베리 잼을 좋아해서 블루베리만 사가는 거란다.
”산딸기들은 슬퍼졌어요. 민구는 산딸기의 슬픈 모습을보고 말했어요.
“산딸기야, 산딸기야, 조금만 더 기다려. 그럼, 너희들도 아이들의 식탁으로 갈 수 있어.
”민구와 산딸기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어요.민구는 식물도 칭찬을 받으면 더 잘 자란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산딸기야, 산딸기야! 넌 예쁘고 사람들의 몸에 좋은 훌륭한 과일이야. 어서 쑥쑥 자라~”
민구는 다음 날 아빠와 옆집아저씨가 무슨 이야기 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이제, 민구네도 산딸기나무는 다 뽑아 버리고 블루베리만 키워~”
“헉~산딸기나무를 모두 뽑아 버린다고?”
그 말을 들은 민구와 산딸기들은 온몸에 힘이 빠졌어요.“사람들은 왜 블루베리만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민구와 산딸기는 마음이 울적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민구와 산딸기나무는 슬픔에 잠겨 며칠을 지냈어요. 희망을 버리지 않았어요. 더욱 열심히 햇살을 받아들이고 물을 부지런히 삼켰어요.마침내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어요. 농촌진흥청에서 우리 농산물 살리기 운동으로 민구네 산딸기를 세계화하겠다는 소식이 왔어요.
민구는 세계화가 무엇인지 아빠한테 물어보았어요.
“세계화란 세계 여러 나라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거야. 블루베리가 우리나라에 들어왔듯이, 우리 산딸기도 전 세계의 시장에 팔려나갈 수 있다는 거야.”
민구는 신이 나서 큰 소리로 외쳤어요.
“와, 아빠 그럼 우리 산딸기나무를 뽑지 않아도 되는 거 에요?”
“그럼, 산딸기와 블루베리, 모두 잘 키워보자. 둘 다 엄마 몸에 아주 좋은 과일이래.”
아빠도 무척 기뻐하시며 환하게 미소 짓고 있어요.민구는 산딸기를 계속 키울 수 있어서 너무나 기뻤어요. 우리나라 토종 산딸기가 세계 시장에 나아간다는 것도 신났어요. 무엇보다도 엄마한테 좋은 과일이라서 더욱 좋아요.
민구네 가족 모두가 환한 웃음을 짓고 있어요.민구는 산딸기 밭으로 뛰어갑니다. 산딸기나무와 산새 친구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어요. 빨간 열매 산딸기와 파란 열매 블루베리 친구들은 바람 친구들과 덩실덩실 춤을 추어요.민구는 오늘 저녁 산새들과 바람 친구들, 산딸기와 블루베리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잔치를 베풀 계획이에요. 민구네 가족은 지금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기쁨을 세상에 내보내고 있는 중이랍니다.

 

 

(시) 밤길 / 휘린

 

앞에서 빛이 비칠 땐 뒤따라 오는 그림자를 보지 못하고

빛이 등 뒤로 멀어져갈 때에야 그림자를 본다

 

그림자와 더불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두런두런거리며 집으로 향하는 취한 발걸음

 

한 때 의기투합하던 친구들

냉소와 함께 멀어져가고

동지들의 구속소식이 들리던 밤.

 

대통령 가시고 모여들던 사람들

이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들 간다.

 

인적없는 새벽길

텅빈 마음

친구들의 냉소를 뒤로 하고 집으로 가는 길

그림자가 정겨워 눈물이 날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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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의별  

중게 게시판이 이상한 건가...
한꺼번에 정리해서 쫙 올리는데도 글자들이 울퉁불퉁...
암튼,
여러분, 축하댓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2-11-22

라싸의별  

정중동님, 무슨 말씀인지...
뭘 이체하라는 건가요?
12-11-22

정중동  

정식으로야 제가 내일해야죠
돈이죠
12-11-22

정중동  

박무님도 저한테 그러지 마세요
12-11-22

개우럭  

축하드립니다..~읽다보니.눈물도~~
12-11-22

정중동  

아니 근데 지금도 첨맘님 이유
인천에서 한번얼굴 봅시다
12-11-22

개우럭  

인천사시나?,얼굴한번보세.~
연락처.내가.남길까?.
12-11-22

정중동  

그러세요
12-11-22

발끈바다  

이야 ~ 수상작들 보니 장난아니닷.!! 방대한 제글을 보니 민망하네요 ^^;; 분량으로 보면 첨맘님 상 ㅋㅋ



12-11-22

복희씨  

시간나면 찬찬히 다 읽어볼겁니다.
대충 훑어봤는데도 우리 동지들의 글이라서 그런지 가슴으로 느끼게 됩니다.
우리 아마추어 작가 동지들이 자랑스럽습니다~
다들 멋지십니당^^
12-11-22

지하실  

나만 가을이더냐... 아이럽시민님 글,
시어들이 조금 어려웠습니다. ^^;



12-11-23

지하실  

어머니 얼릉 일어나유~ 개밥줘야쥬?... 하이에나님 글,
개인적으로 지하실이 가장 재미있게 읽은 글입니다.
우리들 살아 온 세월이 어찌 그리 비슷한지... ^^




12-11-23

지하실  

비 ... 호수섬님 글,
지하실은 소설을 쓸 때에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세련된 문장이 좋을까? 투박한 문장이 좋을까?
잘 정리됨이 돋보입니다. ^^

12-11-23

지하실  

가을을 사랑하는 어느 촌놈의 생활 속 진보발견... 발끈바다님 글,
느낌 그대로 절실해서 쓰신 것을 함께 느꼈습니다. ^^

12-11-23

지하실  

자전거를 타고... 진가경님 글,
재미난 동시에서 갑자기 이상한 말이 튀어나왔다는...
너무 비약해버리면 전체가 무너져요 ^^;
12-11-23

지하실  

가을산 오솔길을 걸으며... 다정무심님 글,
시와 산문의 중간쯤으로 보였습니다.
산문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



12-11-23

지하실  

깃발... 동현아빠님 글,
지난 겨울 고생 많았습니다.
그 바람 불던 날이 상상된다는... ^^
12-11-23

지하실  

솔지아빠 일주기... 돌도끼님 글,
시어들은 그다지 세련되지 않았더라도
그 심정은 정말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



12-11-23

지하실  

민구네 산딸기와 블루베리... 평강공주님 글,
메세지가 정확해서 좋았습니다 ^^
12-11-23

지하실  

밤길... 휘린님 글,
보면 볼 수록 가슴 아픈 글입니다. -,-;;
12-11-23

라싸의별  

일일이 작품에 대한 느낌과 선정 이유를 써주신
지하실님, 감사합니다.
만만한 작업이 아니신데...에혀~
12-11-23

은도끼  

글 잘보앗어요.
훌룡한작품들이네요.
12-11-29

시민광장 일정표 시민광장
61575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8 하얀백로 12-11-26 2 0 8495
61574 [중앙운영위원회] 11월 25일 회의 결과 보고   4 조이풀 00-00-00 2 0 8171
61573 조이풀님은~~~강남스타일!   4 푸른호호 12-11-25 4 0 9054
61572 저는 오늘 대통령직을 사퇴합니다.[동영상]   7 동현아빠 12-11-25 2 0 9143
61571 총회사진 일부..   16 노란잠수함 12-11-25 2 0 12270
61570 <영상>당신의 길을 함께 갑니다.   1 노란잠수함 12-11-25 0 0 9114
61569 <영상>2012 시민광장   11 노란잠수함 12-11-25 2 0 11710
61568 유시민 "민주당 기득권 버려야.."   1 동현아빠 12-11-25 4 0 9161
61567 박근혜 지지자 안철수 지지자로 사칭.. 이간질.. 동현아빠 12-11-25 0 0 7776
61566 강화도 총회 사진 하나 추가 안양시민광장회원들   2 노지심 12-11-25 2 0 8603
61565 23일 남영동 1985 영화를 보면서 아랑아빠 12-11-24 0 0 7788
61564 시민방송 생방송-2012 시민광장 정기 총회   2 조이풀 12-11-24 0 0 8175
61563 오늘은 총회 하는 날 조이풀 12-11-24 0 0 8630
61562 박근혜 이후가 더욱 걱정인 새누리당 길형구 12-11-24 0 0 8710
61561 강력한 차기 대선후보가 된 안철수 길형구 12-11-24 0 0 8792
61560 최상의 결과 얻은 문재인 길형구 12-11-24 0 0 8293
61559 [백일장시상식안내] 토요일밤 8시, 첨맘님이 시상하십니다 라싸의별 12-11-24 1 0 8456
61558 새누리 “투표시간 연장 불가”…방송3사 침묵으로 방조 yjsdm 12-11-23 0 0 9002
61557 └>[대구광장]첨맘님 초청 대구 강연회-11월29일(목), 경북대..   18 낭창고양이 12-11-23 4 0 9698
61556 (펌) 서영석 김용민의 정치토크 제6회 (2012.11.23)   1 의왕달팽이 12-11-23 1 0 9711
61555 조중동, 단일화 죽이기만 관심있고 투표시간 연장엔 관심 없.. 0Ariel0 12-11-23 0 0 8618
61554 11월 25일(일)총회장 중앙운영위원회 소집 공고 조이풀 12-11-23 0 0 8907
61553 단일화에 시민광장이 총력전을 펼쳤으면 합니다.   1 참사람 12-11-23 2 0 9145
61552 수원, 화성 함사세 활동 후원 모금 합니다. ^^   5 하얀백로 12-11-23 0 0 8348
61551 당신이 몰랐던 진짜 역사가 온다! 역사다큐 '백년전쟁' 시사.. 어화 12-11-23 0 0 8948
61550 └> 총회 프로그램 및 강화유스호스텔 오시는 길 안내   2 여행 12-11-23 0 0 10166
61549 안철수,문재인 중 누가 새 될까요?   3 아랑아빠 12-11-23 2 0 8150
61548 장기자랑 신청하신분들~음원가져오셔야 해요^^   1 체리토끼 12-11-23 0 0 9008
61547 시민광장 웹매거진 2012년 11월호   2 푸른호호 12-11-23 2 0 9635
61546 총회 교통편 안내 및 개인 준비물품/일정표   2 조이풀 12-11-23 1 0 8876
61545 (왕송호수) 2012.11.22. 시민연대 대책회의(결과)   1 의왕달팽이 12-11-23 0 0 8676
61544 (펌) 서영석 김용민의 정치토크 제5회 (2012.11.21) 의왕달팽이 12-11-23 0 0 9646
61543 첨맘닌 울산강연   2 겔포스맨 12-11-22 2 0 9729
61542 부산광장 7기 대표 출마합니다.   2 코버스 12-11-22 2 0 9959
61541 [세바시15분] 우리가 연애를 할 때 - 여자와 남자의 연애에.. 행세성각 12-11-22 0 0 9909
61540 [7기선거]대표 돌다리&집행위원장 도파민♥ 이렇게 하겠습니..   2 체리토끼 12-11-22 0 0 21885
└> [백일장 당선작 2 ] 감상하십시오   22 라싸의별 12-11-22 1 0 7080
61538 └> [백일장 당선작 1 ] 감상하십시오   18 라싸의별 12-11-22 1 0 8479
61537 └>[문학광장]2012시민광장백일장 당선자&작품감상   35 라싸의별 00-00-00 5 0 8880
61536 [시민방송 예고] 잠시 후 9부터 게릴라 방송진행!! 페이스북   2 그림자村 12-11-22 1 0 8912
61535 [6기시민광장] 2012년 회계감사보고서 및 수지계산서 시민광장 00-00-00 3 0 10424
61534 [영상] 유시민 (전)보건복지부장관 - 동국대/전남대 강연   12 그림자村 12-11-22 2 0 31685
61533 문재인 안철수 참 답답 하지 않아요?   6 참사람 12-11-22 1 0 10114
61532 새누리의 방송3사 공개압박 이후...최악의 땡박뉴스 yjsdm 12-11-22 0 0 9526
61531 총회 참가 신청 바랍니다.   5 조이풀 12-11-22 1 0 9700
61530 오늘 첨맘님이 경남에 오신답니다..   3 구산동무지개 12-11-22 2 0 8680
61529 후보 지지도를 보고 느끼는 단순한 평가   1 aproga 12-11-22 0 0 8732
61528 (유투브) 유시민 노회찬의 저공비행 시즌 2 (제3편, 2012.11..   1 의왕달팽이 12-11-21 1 0 9675
61527 첨맘님 동국대 강연 생중계?????   1 의왕달팽이 12-11-21 0 0 9526
61526 [영상] 유시민 전)보건복지부장관-전남대초청강연회 페이스북   2 그림자村 12-11-21 2 0 29546
61525 [공지] 11/22(목) 시민광장 서울남부 정모(영등포광장 주체)   4 영치산갈대 12-11-21 1 0 8428
61524 [보고] 강동광장 2012년 11월 정기모임 후기 돌다리 12-11-21 0 0 8746
61523 [영상] 참여정책 연구회 제5차 특별토론회 - (이재정 전,통일.. 페이스북 시민광장 12-11-21 1 0 9127
61522 <시민방송 생방송 안내>흙마당님,첨맘님 강연,저공비행3편 조이풀 12-11-21 2 0 10044
61521 아이들 학살하는 이스라엘은 전쟁을 중단하라.   3 공상두 12-11-21 3 0 9286
61520 [감사인사] 문학광장 백일장 마감하면서...   20 라싸의별 12-11-21 2 0 8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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