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대표, MBC 라디오 연설 전문
(2012/04/10)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정당기호 4번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순번 열두 번째, 유시민입니다.
내일이 투표일입니다. 투표할 후보와 정당을 이미 결정하셨습니까? 저는 오늘 야권연대의 승리와 더불어 통합진보당을 국회 교섭단체로 만들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드리려고 합니다.
많은 시민들이 제게 물으셨습니다. 함께 정치하던 사람들이 다들 민주당에 있는데, 당신은 왜 통합진보당을 하느냐? 비례대표 순번은 또 왜 그렇게 뒤로 갔느냐? 저, 이 문제 때문에 사실 고민 많이 했습니다. 이해찬 전 총리, 노무현재단의 문재인 이사장, 저를 아끼는 많은 분들이 민주당하고 합쳐서 대통령에 도전하라고,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과분하고 고마운 말씀이었지만, 저는 그 길이 아니라 통합진보당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20석을 목표로 삼아 비례대표 열두 번째 자리를 자청해 받았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40대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을 두 번, 그리고 참여정부 보건복지부 장관도 했습니다. 기초노령연금과 노인장기요양보험, 중증장애인 활동보조인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부모 잃은 시설아동 2만 명에게 저금통장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암환자 병원비를 크게 낮추었습니다. 5년 공직자로 일한 것에 어느 정도 보람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 개인이 더 무엇이 되고 싶은 욕망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정치를 계속하는 것은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서입니다. 국회의원이 되면 운전해 주는 비서가 생깁니다. 여직원이 전화를 받아주고 일정을 정리해 줍니다. 보좌관이 발언 원고를 써줍니다. 골프를 치지 않아도, 외유를 나가지 않아도, 국회의원은 저절로 서민과 멀어집니다. 버스요금 지하철 요금이 얼만지, 콩나물 한 봉지 두부 한 모가 얼만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저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정치인은 국가 일을 보는 사람입니다. 국가가 왜 필요합니까? 돈 많고 힘 있는 사람은 국가가 별로 필요 없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약자들에게는 국가의 보호가 꼭 필요합니다. 국회의원, 장관으로 일한 5년 동안 저는 국가가 보호해야 할 사람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참여정부는 많은 성과를 남기는 동시에 오류를 남겼습니다.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임금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했다는 이유만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곳곳에서 집단 해고되었습니다. 정규직 노동자들도 정리해고의 위협 앞에 굴종을 강요당했습니다. 농민들은 때로 종자 값 비료 값 농약 값도 건지지 못해 탄식했습니다. 영세상인들은 대자본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겼습니다. 중소기업은 납품단가 후려치기와 같은 대기업의 약탈적 거래관행 아래 신음했습니다. 참여정부는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세우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퇴임과 원통한 죽음을 겪은 이후에야, 저는 이것이 참여정부가 남긴 정치적 부채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정치인으로서 국가의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의 문제를 잘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좌절하고 울고 심지어 목숨을 끊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지도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딱 부러지는 해결책이 없어서, 면목이 없어서 가까이 가지 못했는데,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는, 그동안 가까이 가지 않았다는 것이 마음의 죄가 되어서, 더 멀어지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돈을 빚지는 것도 무서운 일이지만, 마음의 빚을 지고 사는 것도 무척 힘든 일이었습니다. 저는 이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볼 수 있겠다 싶어, 민주당이 아니라 통합진보당 당원이 되었습니다. 아직 힘이 약한 이 정당이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통합진보당은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해 고통 받는 사람들 곁을 지키는, 적어도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어 가지는 정당이라서 선택했습니다. 저는 통합진보당이 문제해결 능력을 가진 강력한 정당이 되기를 바랍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우리 정치는 너무 심하게 돈 많고 힘센 사람들 편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노동자, 농민, 소상공인을 비롯한 서민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 국회의원과 정당들이 서민의 삶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옛 한나라당, 현 새누리당은 원래부터 부자와 기득권층이 만든, 그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정당입니다. 서민이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것은 자기 발등을 스스로 찍는 일과 같습니다. 새누리당 뒤에는, 삼성 엑스파일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엄청난 돈으로 국가기관 엘리트들을 관리하고 조종하는 재벌의 그림자가 진하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새누리당의 4.11 총선 승리는 이명박 정권의 임기가 4년 더 연장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경제 살리기 효과가 전혀 없는 부자감세, 환경을 파괴하면서 30조원의 국민세금을 토목건설 회사에 퍼주는 4대강 사업, 명박산성과 민간인 불법사찰, 언론장악과 미네르바 구속사건 같은 민주주의 파괴, 냉전시대로 회귀한 남북대결의 정세가 그대로 지속될 것입니다. 19대 국회는 날치기와 파행으로 점철되었던 18대 국회의 재판이 될 것입니다. 경제정책과 국가운영방식을 두고 보면, 박근혜는 곧 이명박입니다. 이 둘은 구별할 수 없습니다. 국정과 민생을 파탄으로 몰고 간 이명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게 합당한 것은 오로지 국민의 무서운 심판밖에 없습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통합진보당이 비정규직을 절반으로 줄이고 부당한 비정규직 차별을 철폐하는 노동개혁을 하겠습니다. 통합진보당이 농민에게 생산비를 보장하는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를 도입하겠습니다. 통합진보당이 과감한 보편적 복지정책으로 내수를 확대해, 시들어가는 서민경제를 되살려 내겠습니다. 야권연대에 국회의석 과반수를 주시고 그 가운데 통합진보당이 스무 석 이상 교섭단체를 이루도록 해 주십시오. 야권연대가 승리하더라도 통합진보당이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할 경우, 19대국회는 대통령 탄핵역풍 속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차지했으나 과감한 민생개혁에 실패했던 17대 국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민생개혁과 정치개혁을 힘 있게 추진하려면 민주당 왼편에 민주당과 협력하면서도 경쟁하는 강력한 진보정당이 하나 있어야 합니다. 노동자 농민 영세상인 그리고 서민의 벗인 통합진보당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시오.
통합진보당과 민주당은 전국 170여개 선거구에 야권단일후보를 세웠습니다. 민주당 소속 단일부호는 140여 명, 통합진보당 단일후보는 겨우 30여 명입니다. 30여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새누리당 강세지역인 영남에 있습니다. 지역구 당선자를 많이 내기가 어렵습니다. 스무 석을 얻어 교섭단체를 구성하려면 비례대표 당선자가 많이 나와야 합니다. 제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순번 12번을 자청해서 받은 것은 바로 그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당대표로서 당의 목표를 달성할 때에 비로소 국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부당하게 재임용 탈락시킨 서기호 전판사는 고맙게도 비례대표 14번을 맡아주었습니다. 제가 당선되려면 정당투표에서 20%, 서기호 전 판사가 국회에 가려면 24%를 받아야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저의 정치적 소망은 우리 국회에 강력한 진보정당이 자리 잡는 데 힘을 보태는 것, 이것 하나뿐입니다. 그래야만 우리 정치가 서민들 가까이 다가설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대한민국이 보호받아야 할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는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참여정부가 제 마음에 남기고 간, 그 빚의 무게를 덜어내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내일, 투표장에 갑시다. 후보투표는 야권단일후보에게, 정당투표는 정당기호 4번 통합진보당에 해주십시오. 통합진보당이 교섭단체를 이루어 국회운영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민주통합당과 굳게 연대하여 서민들이 허리 펴고 제대로 숨 쉴 수 있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