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나무'라는 드라마가 화제인 것은 사대부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에서 탈피해 왕권을 견제하는 재상총재의 이상론으로 격상, 새로운 시각으로 세종 이도를 바라보게 했다는 점이다.
드라마 상에 정기준의 밀본은 분명 태종 이방원의 왕권 강화에 의해 죽어간 정도전의 성리학적 이상론을 떠받드는 비주류적 사대부들이었으며, 비록 세종 이도가 성군이라 할지라도 세종 이후의 왕들의 잘못을 견제하기 위해 사대부 중심의 조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밀본의 사대부들은 또한 여러 부수로 이루어진 한자에는 심오한 뜻의 철학적 의미가 있다며 세종 이도가 창제한 한글은 백성들을 올바르게 가르치지 못하는 천박한 것이라며 한자를 아는 자신들만이 백성들의 어려움을 도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종 이도는 한자를 몰라 역병 예방에 속수무책이었던 백성들을 예로 들며 나랏 말씀이 중국과 달라 우리글을 만드는 것은 정도전의 애민 사상과 궤를 같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밀본의 정기준은 세종 이도와의 독대에서 "그렇게 된다면 백성들의 절제없는 욕구를 누가 통제할 것이냐"는 물음으로 백성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한글 창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세종 이도는 사대부들의 왕권 견제의 뜻을 이해하지만 사대부들 또한 고려시대 관료들처럼 썩어가고 부패하게 될 것이라며 깨어있는 백성들에 의해 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 한글 창제의 당위성을 설파했다.
이렇듯 뿌리 깊은 나무라는 드라마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글쓴이 또한 이 당시의 사대부였다면 내 자신의 지식적 충만함에 도취해 정작 정도전이 주장했던 애민사상의 행간을 읽지 못하고 한글 창제를 부정하지 않겠느냐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물론 뿌리깊은 나무라는 드라마는 혹여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 방해만 일삼는 사대부들을 지금의 야당이나 좌파세력으로 비춰지게 해서 이와 비교해 세종 이도를 이명박으로 보게끔하는 억지 미화의 의도가 아니냐는 의구심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끊임없이 자신을 질타하고 되돌아보는 세종대왕의 모습은 MB의 오만한 권력 행태와 비교되는 것이며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기준의 밀본도 한나라당을 연상케 했다.
정작 한글 창제를 통한 깨어있는 백성들을 표현한 부분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케 하기도 했다. 더욱이 사대부들의 지식적 오만과 기득권적 행태들로 세종 이도를 못살게 구는 장면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에 트집만 잡던 정치권이 연상되었다. 실제로 '뿌리 깊은 나무'의 연출자는 기득권 세력을 비꼬기 위한 드라마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꼭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케하는 것이라고만 볼 수 없다. 사대부들의 자기중심적 오만과 비교된 세종 이도의 한글 창제는 새로운 지식 개발로 시대정신을 이끌어가는 안철수 현상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실제로 한나라당을 비롯한 민주당 등의 정치권은 안철수 바람에 주체하지 못해 혼미백산, 여전히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부정하고 깍으려 하고 있다. 수 십년 동안 쌓아온 고정관념으로 그를 부정하고 깍으려 하지만 안철수 바람은 식을 줄 모른다.
더욱이 안철수 민심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부정하는 정치권을 보노라면 사대부들의 자기중심적 사고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일례로 조중동 등의 수구보수세력들은 안철수 현상을 오직 중도라는 개념으로만 생각해 진보의 가치를 부정하는 이념적 도구로 활용하고 야권의 진보 진영 또한 이념적 잣대로 그를 깍으려 하는 모습도 보인다.
안철수 현상을 정확하게 표현한 논객은 진중권이었을까? 진중권은 안철수 현상을 꼭 정치권의 구태에서 비롯된 반사이득이 아니라며 상식적 보수로 안철수를 규정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격차를 줄이는 시장개혁 등 이 나라의 보수주의자들이 적응치 못한 합리적 보수주의자라며 넓은 의미의 진보적 변화로 그 의미를 부여했다.
진중권의 진단은 정확했다. 혹자는 한미FTA에 대한 의견이 없는 안철수는 진보가 아니라며 부정하지만 그럼에도 진보주의자들이 안철수를 인정해야 하는 것은 진보세력이 합리적 보수주의자마저도 부정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대화의 상대조차 되지 않는 한나라당이라면 모를까, 안철수 같은 합리성을 견인하고 선의의 경쟁이 되지 못한다면 진보진영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안철수 원장을 합리적 보수주의자로만 규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한나라당의 확장을 반대한다는 안철수 주장에서 보면 이념적 규정만으로 진단할 수 없다. MB정부 들어 확인된 여권세력의 반칙들과 부정한 일들에 대한 인식일 것이며 나아가 정치권의 구태적 행태들과 연관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안철수 현상은 매우 복잡하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안철수 현상을 노풍의 그것과 비교해 긍정한 유시민의 진단도 맞다.
안철수의 진가는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안철수 어록에서 나타난다, 그는 적자로 허덕이는 안철수 연구소를 외국계 회사의 거액 인수 제안에도 팔지 않았다. 외국계 회사가 안철수연구소를 사려는 것은 안철수가 개발한 백신 제품을 없애 독점하려는 의도를 간파했기 때문이다. 개인의 부귀영화 보단 국가 산업의 피해를 우선 생각해 거액의 유혹을 떨쳐버린 것이다.
비록 눈 앞에 놓여있는 안철수연구소의 적자 문제를 해소하지 못했지만 안철수의 그러한 원칙과 소신은 결국 나중에서야 빛을 보게되고 기회로 오게된다. 바이러스 사태가 전국적인 문제로 퍼지게 될때 안철수연구소가 성장했던 계기가 그것이다. 증권가의 전문가들이 안철수연구소의 주가 상승을 단순히 정치적 테마주로 폄하해 예측에 실패한 것도 안철수연구소의 모범적 경영과 투명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실리콘 벨리는 성공의 요람이 아니다. 실패자들이 더 많지만 실패를 교훈으로 삼는다"는 어록 등 안철수 교수는 수차례의 청춘콘서트를 통해 소통을 해오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유시민과 진중권도 부정할 수 없는 안철수 현상이다.
이러한 안철수이기에 억지로 부정하거나 비하하는 태도는 삼가해야 한다. 비록 당이 틀리고 진영이 틀리다하여 분별없이 깍으려하는 것은 '착한 노무현'에게 칼을 들이댄 지난날의 정치권 행태와 다를 바 없다. 그에게서 심각한 하자가 없다면 상대를 인정하고 배울 것이 있으면 배우는 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안철수를 비하하기 위해 한나라당 강용석의 근거없는 의혹제기를 활용하고 인터뷰까지 하는 등, 유시민 - 노무현을 욕되게 하는 그룹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름하여 유시민을 팔아 장사하는 박봉팔 닷컴인데 제 딴에는 유시민을 위해 그런다지만 유시민을 욕되게 하는 자해임을 스스로 모르고 있는 부류들이다.
물론 이들 때문에 유시민과 그 지지자들의 전체를 매도해서는 아니될 일이고 이들의 파급력이야 별 볼일 없어 논할 것이 못되지만 유시민의 얼굴에 먹칠하는 존재를 하루 빨리 알리고 깨닫게 하는 것이 더욱 좋다. 더욱이 성희롱 발언의 불명예를 덮기위해 무차별 의혹 제기로 연명하는 강용석을 활용하다니.. 민주당이 유시민에게 해왔던 야바위 짓을 일부 유시민 지지자들 스스로 자행한 것이다.
이는 뿌리 깊은 나무 - 밀본의 정기준이 작은 욕심의 소탐대실로 정도전의 행간을 읽지 못하고 그의 정신을 욕되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