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진중권에게 쓰는 글이 아닙니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 또는 그들의 얘기에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에게 쓰는 글이죠.
참고로 진중권은 그동안 진정성이 없는 글들을 주로 써 왔습니다. 하지만 논리가 살아있어서 그나마 참고 봐줄만 했습니다. 그러나 곽노현 교육감과 관련하여 두편의 글은 그 논리마저 망가져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논객이고 저는 일개 시민입니다. 그와 다툴 능력도 되지 도 않고요. 다만 저는 그의 혹세무민에 감동받은 지지자들과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개혁의 중차대한 기로에서 단결이 흐트러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쓰는 글입니다.
저는 진중권이 혹세무민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하던 그의 논리 이전의 기본 가정을 논해보고자 합니다. 나머지 글들은 이미 그의 독설이라는 미명하에 싸질러지는 천박한 비유들과 빈정거림은 쓰레기니까 일고의 가치도 없으므로 무시하기로 합니다. 그의 글중에 그나마 건질게 저 '공정'이라는 말정도 뿐이니까요. 아~진중권은 '공정'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정의'니 '공정한 잣대'니 뭐 이런 말들을 썼는데 그냥 '공정'이라는 단어로 제가 축약한 겁니다. 의미만 통하면 되죠. 하도 말꼬리를 잡는데 선수인 부류들이라..
여기서는 이른바 ‘공정’이라는 것을 말해보도록 하죠.
사족
얘기를 하기전에 진중권의 지지자들은 먼저 가슴에 손을 얹고 진중권이 주장하고 그 주장에 환호하는 ‘공정’이라는 잣대를 스스로에게 가볍게 한번 대 보시기 바랍니다.
1.진중권이 하는 실명비판은 핵심을 찌르는것이고 진중권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스토커인가?
2.진중권이 하는 과장된 말장난을 근거로한 명예훼손은 정당한 비판이고 진중권에게 가해지는 비판은 마타도어인가?
진중권과 진중권지지자들은 남에게 ‘공정’이라는 칼날을 아무대나 들이대면서 스스로는 ‘공정’을 독점하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입니다. 스스로가 공정을 깨는 거죠. 제눈에는 각하께서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다.’라는 환상을 진중권과 그 지지자들도 스스로 갖고 사는 사람들로 보인다는 거예요.
‘...에게 A이면 누구에게나 A여야 한다.’
진중권교주께서 그의 교인들에게 가르침을 행하실 때 항상 전하시는 진리중 하나입니다.
좋은얘기죠. 말 그자체로는 어디하나 버릴데가 없습니다. 문제는 적용입니다. 어떤 가정이나 진리는 그자체가 가지는 문제는 없습니다. 단지 어떤 특정인이 이를 독점하고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거나 잘못된 적용에서 나타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거든요.
곽노현교육감 문제를 축구경기에 비유하고 진중권이 적용하던 ‘공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축구경기에 앞서 필요한 2가지를 대략 살펴봅시다.
1.제도 : 축구규칙, 심판의 중립성, 언론의 중립성, 그리고 가장 중요한 승부조작 유무등
2.구성 : 각각의 팀을 응원하는 관중, 특정팀에 유리하지 않은 심판의 인적구성, 선수들등
보수라는 팀과 진보라는 팀이 축구경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경기 문제가 있습니다.
(1)규칙을 보수팀에 유리하게 짜 놓습니다.
(2)사전에 이 경기자체를 보수팀이 이기도록 승부조작이 계획되어지고 일어납니다.
(3)심판은 보수세력의 팀 출신 선수들로 대부분 구성되어 있습니다.
(4)언론은 객관적 중계를 하지 않습니다.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보수세력의 팀 선수들의 반칙은 대부분 심판들이 넘어갑니다. 어쩌다 경기의 흐름과 관계없는 상황에서 그것도 아주 심한 반칙을 하는 경우만 보수세력의 선수에게 경고를 주거나 퇴장을 시킵니다.
진보세력팀에게는 경고와 퇴장이 남발합니다. 더구나 진보세력팀의 선수에게 골찬스가 왔습니다. 이때 휘슬이 울립니다. 그리고 승부조작 냄새가 물신풍기는 퇴장명령이 떨어집니다. 관중들이 야유를 퍼붓습니다.
이때 진보팀 관중석뒤에서 필리핀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진보와 비슷한 유니폼을 입은 진중권이라는 자칭 응원단장이 뛰쳐나옵니다. 그리고 진보세력팀의 선수에게 나가라고 합니다. 너는 이미 도덕적으로 파산했다고 선고를 내립니다. 그리고 진보세력관중들을 향해서 너희들은 왜 공정택이라는 보수세력 선수 퇴장시에는 공정택을 비난하고 곽노현이라는 진보세력 선수 퇴장시에는 곽노현 편을 드냐며 야단을 칩니다. 우리는 두사람에게 똑같이 야유를 보내야 공정하다고 눈물어린(?) 호소를 합니다. 너희들은 꼼수에서 선동해서 불공정하다고 격분합니다.
심판의 승부조작과 곽노현선수의 반칙은 논리적으로 별개라고 윽박지릅니다.
언론은 느린화면으로 계속 곽노현선수의 드리블과정을 방송으로 내보냅니다.
이게 지금 우리의 상황입니다.
‘공정’이라는 것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공정택과 곽노현만 놓고 보는 것이 공정이 아닙니다. 애초부터 곽노현의 반칙은 승부조작의 차원에서 진행된 심판의 역할 이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공정해지는 것은 다음과 같은 요건을 다 갖추어야 합니다.
1. 이 경기 자체는 공정했는가?
2. 반칙 이전에 승부조작은 있었는가?
3. 언론은 양팀에 공정한 방송을 했는가?
4. 특정한 팀의 선수들로 구성된 심판은 공정했는가?
5. 반칙이 선언되던 시점은 경기의 흐름을 바꿀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었는가?
6. 그리고 그 선수는 진짜로 반칙을 저질렀는가?
등등이 모두 고려되어서 판단이 내려지는 것이 공정한 겁니다.
단지 6번에 집중해서 공정택과 곽노현만을 놓고 비교하는 양적 균형이 공정이 아닌겁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또 있습니다.
관중의 태도입니다.
우리팀 관중은 우리팀의 반칙에 욕을 하는 사람도 있고 침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모든것이 공정한 겁니다. 즉, 상대방의 반칙에 관중들은 야유를 하는 겁니다. 우리편의 반칙에도 반드시 같이 욕을 하는 것이 공정이 아닙니다. 상대관중이 우리편 선수를 비난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공정인 것입니다. 상대방편의 반칙에 욕을 했으니까 우리편의 반칙에도 욕을 해야 공정하다는 주장은 말장난입니다. 물론 우리편의 반칙에 욕을하는 우리편 관중도 있을수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하지만 상대방 관중이 야유할 권리를 침묵으로 인정하는 우리편 관중들에게 같이 욕을 하지 않는다고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장난입니다.
진중권교의 교리는 알팍합니다.
그리고 더큰 해악은 자신의 방식만이 공정이라는 독점의식입니다.
이런 독점의식이 우리들의 단결을 저해하고 지금도 자행되는 수구세력들의 승부조작에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중권 교리를 따라가면 영원히 개혁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진중권교의 교인들 정신 차리시기 바랍니다.
진중권교주 가라사데 곽노현은 유죄다 함에
그를 따르는 자들이 곽노현 죄인 이라 답하였다.
진중권교주 가라사데 관노현에게 가해지는 탄압이 부당하다 주장하는 자들은 모두 정의롭지 못한자들이라 함에
그를 따르는 자들이 공정이라 답하였다.
진중권교주 가라사데 나는 공정한 영혼을 가졌다 함에
그를 따르는 자들이 그가 옳다 라고 외쳤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