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은 강원광장 강원사랑방에서 함께 입력된 태목(최두한)님의 글입니다. |
- 1968년 4월 15일 강릉 출생
- 1986년 2월 강릉고등학교 졸업
- 1986년 서울대 지리학과 입학, 총학생회 연극부 활동
- 1986년 6월 21일 부산 송도 앞바다 물속에서 시멘트 덩이를 매단채 죽어있는 것이 잠수부에
의해 발견 됨( 5공시절의 대표적인 의문사로 알려짐 )
- 2002년 9월 15일 민주화운동관련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로 사망하였다고 인정
(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
- 2006년 7월 31일 민주화 운동관련자로 인정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 김성수 열사의 삶과 의문의 죽음 >
1986년 3월 서울대에 입학한 이후 지리학과 '철학인의 모임'에서 활동하였으며, 총학생회 연극부에
가입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사회과학 세미나를 하고 정부 비판적인 연극에 참석하였다. 또한 각종
집회 및 시위 등에참여하는 등 시위 중 두차례 연행되었다가 훈방된 일이 있었다.
1986년 6월 18일 자취방으로 걸려온 정체불명 사람의 전화를 받고 집을 나간 후 행방 불명이 되었
고, 그 후 3일이 지난 6월 21일 부산 송도 앞바다 방파제 앞 바다 속에서 바위틈에 세 개의 시멘트 덩
어리를 달고 눕혀져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이 해녀에 의해 발견되었다.
당시 열사는 서울대 운동권 선배들과 만날 기회가 많았다. 공안기관이 운동권 선배와 중요인물을 검
거하는 과정에서 정보 제공을 요구 받고, 협박 회유를 하는 과정에서 이를 거부하다 사망하였다. 경찰
은 성적 불량에 의한 비관자살로 처리해 버렸으나, 유가족들은 서울에서 부산 까지 갈 이유가 없으며,
두부에 정교하게 가격당한 상처가 있는 점, 안기부가 사건의 전반에 개입하고 잇는 점 등을 들어 의문
을 제기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였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당시 매달려 있던 콘크리트 덩어리는 직접 물에 가지고 들어가기에
매우 어려워 사망 또는 의식 불명 상태에서 타의에 의해 수장되었을 개연성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경
찰서는 정체불명의 전화를 받고 나간 이후의 행적 수사를 회피하였고, 자살로 단정하여 꿰 맞추기 수
사를 진행하였다. 또한 부산지방검찰청 공안부의 개입, 안기부와의 '합신' 등 사후 사회적 파급을 차단
하기 위한 공안기관의 개입 의혹이 짙음을 지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