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본 유시민
웃고는 있었지만 표정이 그다지 밝지 않았다. 실망마저 감출 수는 없었으리라. 감정을 일부러 숨기거나 애써 실망 대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연기하거나 담대하게 이미 잊어버린 듯 억지를 보이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았으리라. 강연회였는지 선거운동이었는지 분명치는 않으나 쓸쓸하게 웃고 있는 유시민 주변으로 많지 않은 사람들이 악수를 하며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지는 않았다. 악수를 청해도 좋을 것 같았다. 아니 사람들이 에워싸거나 몰려들고 있지 않았으므로 나라도 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냥 외롭게 서 있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악수를 청하자 반갑게 이름을 묻고 맞아 주었다. 닉이 연민과 분노라고 하는 것도 알려주었다. 원래 오뚝오똑이란 닉을 쓰다가 노통 서거 이후‘연민의 실타래와 분노의 불덩어리를 안고 살았던’분으로 노통의 삶을 정리한 유대표의 글을 읽고 난 뒤 닉을 연민과 분노로 바꾸게 된 과정을 울먹울먹 더듬더듬 이야기했다. 유대표를 보거나 유대표를 생각만 해도 노통을 생각할 때처럼 어김없이 언제나 울렁증이 있다는 것도 이야기했다. 옆에서 악수 차례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자신들도 나와 비슷하다고 했다. 이제 유대표는 다른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었고, 나는 얼마 동안 그 자리에 서서 이 장면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어젯밤 꿈 생각이 났다.
비늘 낀 눈으로는 보지 못하리라. 스스로 눈을 가린 안대를 벗고 보면 보리라. 분별없는 그래서 신뢰할 수 없는 육안으로가 아니라 현상과 욕망을 꿰뚫어 볼 줄 아는, 비늘이 벗겨진 내공 깊은 마음의 눈으로 보면 보리라. 독사에 물려 퉁퉁 부어 있는 진실을 보리라. 가슴으로 보면 진실을 발견하리라. 눈에 들어간 흙을 눈물로 씻고 고개 들고 보면 보리라. 무엇이 회칠한 무덤인지 알게 되고, 그리하여 피 묻은 진실과 또 악의적 편견과 두려움과 미움의 몰매를 맞고 살짝 금이 간 보석을 구별할 줄 알게 되리라. 이집트산 크리스탈이나 남아공산 다이아몬드 보다 더 투명하고 영롱한 진실을 보리라. 몸을 떨며 무지와 어리석었음을 통회하리라. 때늦은 후회로 머리를 쥐어박으며 괴로워하리라. 가당치도 않게 진실과 정의의 이름으로 거짓과 불의에 봉사하고, 지키고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진실과 정의를 구박하고 박대하였음을 피눈물을 흘리며 참회하리라. 진실한 조강지처를 내쫓고 온갖 요상한 화장과 변설로 꾸미고 치장한 애첩에게 속아 넘어가 백을 흑이라 믿고 흑을 백인 줄 알았음을, 안타깝게도 훗날 어느 날, 미안해하며 고백하리라.
노무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고 피눈물이 난다. 들불처럼, 메마른 가슴에 불을 지른다. 천년의 잠을 자는 영혼을 출렁이게 하고 마구 흔들어 깨운다. 유시민 생각해도 언제나 똑 같다. 이해관계나 욕망으로 굴절되고 왜곡되어 전달되는 남의 말이나 남의 글에 의존하지 않고, 조금 수고를 하여, 그만한 가치가 충분이 있으니까, 인터넷 동영상이나 책으로 직접 유시민을 만나 본 사람이면 누구나 거의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오십대 후반에서 육십대 초중반 골수 당나라당이나 뉴또라이계열 사람들도 내가 사준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청춘의 독서,’ ‘운명이다,’ ‘국가란 무엇인가’를 읽고 난 뒤 “유시민 그 양반 참 묘한 매력이 있던데”라는 말을 붙여오면 더 이상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가 없다. 어느 날 쌘 검보다도 더 빨리 상처 많은 내 영혼에 날카로운 상처를 내는 순간 눈앞이 흐려지고 목소리가 작게 떨리기 때문이다. 가슴이 먹먹하고 저 깊이 모를 심연에서 굵은 피눈물이 솟구쳐 흐르는 것이다. “이 점잖은 양반들아 사람이 밥을 먹고 한 살이라도 나이가 더 들면 그만큼 더 지혜로워져야 하거늘 어찌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알아보려는 노력도 하지 아니 하고, 남들 시장에 가니까 똥지게를 지고 시장에 가듯, ‘천하의 유시민’을 함부로 욕하고 죽이는 일에 동참해왔다는 말인가” 하고 하도 억울해서 빰을 철썩 때리며 고함이라도 치고 싶은 원망의 말이 입술을 바르르 떨게 한다.
노무현에게는 노무현의 철학과 현실적 판단을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어 해설하고, 이해관계와 욕망으로 왜곡되고 편파적이며 악의적인 언론권력과 시장권력과 또 정치권력에 온몸으로 맞서 비바람 맞으며 싸우고 지키려던, 그 일을 혼자 감당할 만큼 매우 영리하고 유능한’‘정치적 경호실장’유시민이 있었으나, 유시민에게는 유시민의 철학과 액션을 해설하고 주변의 온갖 불리한 환경에 맞서 대변할만한 유시민과에 속하거나 유시민을 뛰어넘는 이론가 혹은‘정치적 경호실장’이 없다. 싸우는 일도 유시민 혼자 해야 하고, 총과 칼, 활과 대포를 총동원하여 무차별적으로 가해 오는 온갖 유형의 공격에 대한 방어도 유시민 혼자 감당해야 하는 고립무원의 처지다. 트위터를 하거나 시민광장을 통하는 사람 말고, 나처럼 지지는 하지만 커밍아웃하기를 망설이는 적지 않은 수의 응원군은 있지만, 일당백을 할 수 있는 지원군이 눈에 띄지 않는다. 내가 노무현의 유시민처럼 유시민을 위해 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과 글과 액션이 비길 바가 못 되니 도울 수 없음이 유감천만이로다. 말은 어눌하고, 글은 아둔하고, 주제에 겁은 많아서 앞으로 잘 나서지도 못한다.
필자의 욕망이나 신문사의 이해관계에 의하여 왜곡된 채로 신문에 나오는 말이나 남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걸 자기의 생각으로 치환하여 말 정도의 나이브한 수준의 말을 할 것 같으면 말을 하나 하지 않으나 똑 같고, 유시민처럼 존재의 안과 밖, 객관적 대상과 주관적 인식 그리고 그 둘의 욕망의 함수관계, 일정 부분 참여해 본 국가경영의 철학적 이상론과 대내외적 여건을 감안한 현실론 사이의 균형문제 등에 대하여 공감하고 설득력 있게 논리를 펼칠 능력이 안 되어 돕고 싶어도 도와 줄 수 없어 안타깝다.
유시민 정말 인잰데. 하늘이 내린 아까운 인재인데. 저토록 특출한 인재를 활용하지 않고 썩히고 모욕 주는 일은 국가적으로도 손핸데. 유시민은 진정 보물이고 보배가 아닌가. 유시민은 국가를 경영할 만한 철학과 이상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많은 양질의 콘텐츠를 스스로 개발하고 갖추고 있는 유능하고 소중한 인재다. 유시민 만큼 좋은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정치인을 유시민 앞에 보지 못했고 유시민 이후에도 왠만해선 볼 수 없을 것 같지 않은가. 국가가 아끼고 지켜야 할 매우 뛰어난 존재 아닌가. 유시민은 정말 허투루 낭비되어서는 아니 되는데.
비굴하고 치사한 기억 하나.
평소에 잘 해주던 사람이 어쩌다 한 번 실수하면 원망이 되고 원수가 되지만, 평소 맨날 공구고 갈구던 인간이 어쩌다 한 번 웃으며 넘어가면 중대장님 만세를 외치던 나의 치사한 기억이여, 나의 비굴한 인격이여, 부끄럼 알지어다.
유시민, 사람이다. 실수한다. 그러나 실수보다 잘 하는 일이 훨씬 많다. 잘 못 알고 실수한 거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안다. 단점 많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단점이고, 누구나 저지르기 쉬운 단점이고,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적인 약점이다. 그러나 장점 너무나 많다.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장점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가지고 있다. 유시민만이 가지고 있는 독보적 가치를 지닌 장점들이다. 일당백이다. 아니 일당백만, 일당천만이다. 대적할 자 없다. 그래서 무섭고 두렵다. 똑똑하고 진실하고 순수하다. 정의로운 국가에서 자유롭게 살기를 소망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소망대로 정의로운 사회에서 자유롭게 사는 것이 자유롭지 아니한 지금 이 곳에서 그는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조금만 비겁하게 살았더라면 대한민국에서 좋은 자리 높은 자리 다 차지하고 부와 권력과 명예를 남부럽게 누리며, ‘잘 나가는’ 사람으로 이 땅에 사는 것이 행복할 터이지만, 지금이라도 역사의 바른 편에서 미련하게 시리 힘들고 고단하게 살기를 그만 두고 조금만 비겁하게 살기로 마음 고쳐먹은들 그 누가 욕하라마는, 역사의 불의한 편에 가담하지 않는 죄로 이루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수난을 겪고 있는 유시민을 욕하는 사람들은 진정 유시민을 욕할 자격이 있는가. 떳떳한 사람이 있는가? 유시민을 욕하는 것은 유시민의 잘못 때문이지 유시민의 총명과 순수와 용기에 대한 자신들과의 대비효과에 따른 질투나 두려움이 아니라고 우길 자 있으면 말하라.
난 유빠다. 난 노빠다. 난 유빠고 노빠다. 내가 유빠 될 자격이 있는지 모르나, 난 유빠가 되고 싶고 스스로 내가 유빠인 것이 자랑스럽다. 유시민 만큼 매력적인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고, 인간적으로나 능력면에서 유시민 만큼 유쾌하고 유능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게 죄라면,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게 잘 못은 아니지 않은가. 사랑하고 존경할 만한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이고 행복이냐. 그만한 사람과 같이 이 불우한 시대를 읽고 이해하며, 견디며 산다는 것은 그래도 불행중다행 아니냐.
시련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단련할 뿐이다. 두려워말라. 강하고 담대하라.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 나간 뒤에야 진실을 보리라. 마음의 비늘이 벗겨져야만 하나님 나라를 바로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