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은 경기과천광장 아이들잘기르기에서 함께 입력된 말단소총수님의 글입니다. |
언제 이야기한 것 같은데.... 중학교때( 80년대 초반 ) 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미국잡지가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 지금도 나오나요???? ) 워낙 세상 소식을 알수있는 통로가 제한되던 시절이라... 굉장히 참신하고 다채로운 정보로 사춘기 소년을 자극할 수 있는 이야기로 가득한... 얄팍한 잡지였지요... ( 보수적인 미국식 가치관을 대변하는 잡지이기 때문에 지금은 멀리하고 있습니다. )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캘테크(Caltech)라고 하는 미국의 공과대학의 축제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 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동부에 있는 MIT 와 더불어 미국의 유수한 첨단공학교육기관인 거 같은데요...이 학교는 학생들에게 엄청나게 많은 공부를 요구하는 학사일정을 운영하는 학교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 낙제를 해야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 그러니까 들어가기도 힘들고, 졸업하기도 힘든 무시무시한 학교라는 거지요.
여하튼 이렇게 힘든 학교생활을 하는 학생들에게 해방의 순간이 있으니... 바로 1년에 딱 한 번 상급생들이 자신의 기숙사 방에 굉장한 음식과 술을 준비해 두고... 문을 열수 있는 미션을 부여해서... 그 미션을 푼 학생들에게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 뭐 그런 축제라는 겁니다. 영화 Mission Imposible에 나오는 온갖 잡다한 장비등을 이용한 장애물이 있을 수도 있고... 무식하게 콘트리트 부어놓고, 해머로 깨고 들어가게 하기도 하고... 어려운 물리학 문제 하나 풀게 하기도 하는... 뭐 그런 온갖 아이디어가 속출하는 그런 축제라는 거지요. 1년 내내 무거운 공부 부담에 시달리는 천재들이 그런 식으로 스트레스 푼다...는 그런 이야기를 흥미위주로 소개한 기사였던 거 같습니다.
조숙하기도 했고, 일제시대 군복의 잔재인 검은 교복에 목을 조이고 있다는 사실에 염증을 느끼던 어린 말단소총수가 그런 글을 읽었을 때... 아, 마땅히 내가 갈 곳은 저런 데가 아닐까... 뭐 ...이런 공상을 잠시하기도 했던 어린시절의 추억입니다.
뭐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어린시절의 옛추억을 떠올리게 된 것은... 오늘 아침 신문기사에 난 , 올해 네번째로 카이스트 학생이 자살했다는 이야기 때문입니다. 올해에만 네명이 자살했고... 그중 10학번 ( 올해 2학년이 된 학년인가요.. )이 세명이라는 이라는 군요.... 나름 영민하고, 성실했을 학생들이 무엇때문에 창창한 미래를 포기하고 생을 마감하자는 선택을 했을까요?
항간에는 성적이 좋지 않으면 수업료를 내야하는... ( 학점 3.0 미만이면 학점 0.01점에 6만원을 부과한다는 군요... -_- ) 징벌성 등록금 제도 때문이라고 합니다. 8학기 만에 졸업 못하면, 엄청난 수업료를 고스란히 부과해야 하기도 한다는 군요... 뭐 부담느끼고 스트레스 받을 만 한 이유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목숨을 끊을 만한 사안은 아닌 거 같은데.... 왜 그랬을까요?
먼저... 카이스트 학생생활의 특성에서 원인을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대개 과학고 출신들인 카이스트 학생들... 폭넓은 인간관계를 경험할 기회가 고등학교 때 부터 차단 되지요... 한창 감수성이 발달해 갈 나이에 2-300명정도의 작은 집단으로 구성된 학교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작은 집단도 성적수준이 중학교 시절 상위 2~3%에 들어 있는 소위 '엘리트'집단이죠.... 소속집단에서 잘난 척할 여유도 없고, 가끔씩 말썽 피우는 친구들과 어울려 일탈을 경험해 볼 기회도, 성적이 처지는 친구들에게 연민을 느낄 아량도 생길 수가 없는... 살벌한 집단에서 청춘을 보내는 겁니다. 이성교제... 가족들과의 접촉... 거의 차단됩니다. ( 이번에 자살한 학생의 경우, 한달에 한 번 집에 왔다고 합니다. -_-; ) 자신이 느끼고 있는 압박감을 마음놓고 토로할 대상이 없는 겁니다. "죽을 일 까지는 아닐 일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안도시켜 줄... 공부는 좀 못하지만 인간성 좋고, 애늙은이" 같은 친구가 주변에 없는 독특한 환경이 그 학생들을 자살로 내몬 중요한 이유들 가운데 하나일 거 같습니다.
다음으로는... 기득권층으로 가는 지름길인 카이스트에서 방출될 경우... 88만원세대의 나락으로 떨어져야 한다는 절망감이 원인이 아닐까 합니다. 근본적으로는 승자독식 경쟁체제의 패혜가 원인이겠지요. 카이스트 2학년 까지 다니다가 적응 안 되서 자퇴했다고 한다면... "어 그 친구.... 재주는 되게 좋은데, 학교 체제가 좀 고리타분한가보다".... 라고 받아들이기 보다는.... "저 친구 뭔가 하자있는 친구 아냐? 다들 졸업하는데, 왜 못하고 나왔지?" 라는 반응이 일반적일 거라고... 예상할 수 있을 겁니다. 카이스트가 최고라고 가정한다면... 거기 다니다 중간에 그만둔 친구들... 최고는 아니지만 그래도 수재들 아니냐는 대접을 받으면서 갈 곳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그냥 나락으로 내 던져 버리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좀 안 된 이야기지만... 입시공부만 열심히 하던 애들이라서.... 일상생활에서의 적응력... 오히려 일반고 출신들, 일반 대학 학생들보다 떨어지는 편입니다. 지금 속해 있는 기숙사-학교-도서관(혹은 실험실)의 환경에서 퇴출되는 것에 대한 공포... 외부의 시선으로 짐작하는 것 보다 훨씬 클것이라고 짐작됩니다.
오늘 5번째로 자살한 학생의 뉴스에 죽음의 징벌성등록금 제도를 도입한 서남표 총장이 그 제도를 마침내 포기하겠다는 소식이 함께 전해 졌습니다. 모든 과목을 영어로 강의하게 하겠다는 정책도 밀어 붙이신 분이기도 합니다만...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조직에서 넉달 사이에 다섯명의 학생이 죽음을 선택했다면, 도의적으로 물러나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미 극심한 경쟁체제의 폐해가 그 장점을 덮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치졸하고 극악무도한 방법을 도입한 교육자로서의 소양 결여는 더 말 할 것도 없겠구요.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할 만한 인격이 되시는 분인지에 대해서는 기대난망이긴 합니다만...
PS.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는 아들이 새벽에 트위터에 올려놓은 멘션이... 두서없고 장황한 글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미래 이공계인으로써 이런 뉴스 나올 때마다 슬퍼진다.. 젠장 벌써 몇번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