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에 이어 오늘도 무척 춥습니다.
아래 글은 다음 게시판에 있는 글입니다.
참 마음이 짜안해져서 퍼왔습니다.
좋은 한 주의 첫날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힘들지만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약속으로 저는 그림을 그려야만 합니다.
건설 현장 일용직 으로 사는 저는 2009년 7월 13일 지병으로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어머님의 마지막 뜻을 따라 연필만으로 그리는 그림이지만 저는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돌아가시기 2년전 어머님껜 갑작스런 뇌경색으로 두달여를 의식없이 제주시 중앙병원
중환자실에서 산소 호흡기만으로 생명을 이어가다 다행히 의식이 돌아오셨지만 중증의
후유증 으로 말을 하지도 못하고 반신 불구로 살아야 했습니다.
세번의 큰 뇌수술을 거치며 어머님의 연약하신 몸은 이미 몸무게가 절반으로 줄어들어
말라버릴데로 말라버린 모습 이었습니다.
돌아온 의식에 나를 다시 알아보기는 했지만 말을 하지 못해 나와 어머님은 노트에 간신히
쓰여지는 어머님의 알아보기 힘든 삐뚤어진 글로나마 대화를 할수 있었습니다.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기 전엔 당신 께선 약간의 갑상선 질환과 고혈압 증세가 있던건 알고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어느날 갑자기 뇌혈관이 막히는 뇌경색으로 하루 아침에 병원에서만
살아야하는 중증 환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4형제중 막내였던 저는 그당시 부산에서 머물다 약간의 돈을 모아 어머님과 함께 살집을
짓기 위해 제주시 조천읍에 자그마한 땅을 구입하여 집을 지을 돈을 모으기 위해 제주시
에서 하루 하루 일용직으로 모 용역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닥친 우환
으로 그 엄청난 치료비를 혼자서 감당해야 했습니다.
세 번의 뇌수술을 치뤄야 했던저는 집을 짓기 위해 모아뒀던 약간의 돈마저 치료비로
들어간후 중증의 후유증 때문에 계속 병원 입원 치료를 해야겠기에 할수없이 집을 짓기
위해 사둔 땅을 근저당으로 대출을 할려고 등기부 등본을 떼어 보니 그 땅은 바로위 세째형이
이미 사채에 저당 잡혀 있었습니다.
그당시 저는 10년전 사업하다 부도로 빚을 지고 있던 때여서 구입한 땅의 명의는
어머님의 뜻에따라 세째형 앞으로 해뒀는데 세째형은 그 땅으로 사채를 빌어 어머님이
쓰러지시기 한달전 종적을 감춰버렸습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어머님은 그사실을 알고 충격으로 쓰러지셨던 겁니다.
세째형은 이외에 어머님이 들어논 적금마저 어머님을 꼬드겨 챙겨 간겄까지 의식이 돌아온
어머님에 의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큰형님 마저도 1급장애인으로 거동을 못해 일도 할수없는 생활 보호대상자여서 치료비는
주위 친지분들의 주는 약간의 도움이 있었지만 나머진 모두 제가 떠안아야 했습니다.
세번의 뇌 수술은 그나마 모아논 돈으로 감당이 됐지만 후에 이어지는 진료비등은
일용직으로 일을 다니며 병원진료 1년여 주간 간병인만 쓰고 야간엔 제가 병실 보호자
간이 침대에서 머물며 간호를 했습니다.
병원에서 일터로 출퇴근 하길 반년쯤 지난때 어느날 밤 어머님께선 아직 쓸수 있었던
오른손으로 침대 난간을 두드리며 일에 지쳐 보호자 간이침대에서 곤히 잠든 나를 깨웠습니다.
거의 매일 밤마다 일어나는 일이었고 나 또한 피로가 쌓여 있어서 잠시 일어나
당신의 소변 봉지만 확인 하고 다시 누웠는데 어머님께선 막 잠들려는 나를 다시 깨우며
옆에 비치해둔 대화용 필기 노트를 힘겹게 잡고 무언가 말을 할려는듯 눈을 깜박이셨습니다.
저는 글을 쓸수 있게 노트를 대어주고 연필을 쥐어 주니 어머님께선 힘겹게 겨우 알아볼 수
있는 삐뚤한 글씨로 한자 한자 적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어머님께선 몇자 적지 못하고 힘에겨워 연필을 놓아버렸고 나는 쓰다가 만
글을 읽었습니다.
그 노트엔 알아보기 힘든 글이지만 나에게 하고싶은 마직막 당부의 말이었던지
지금 까지 썼었던 그어떤 글보다 크게
"그림 그려야 한다"
"꼭"
이렇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님께선 살아계실적 어릴때부터 남다른 그림을 그렸던 나를 기억 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1학년때 일찍 아버님 께서 갑자기 돌아가신뒤에 재가도 하지 않고
4형제를 혼자 키우시며 어려운 환경속에서 그림을 그릴수 있는 뒷바라지를 못했던 힘든
가정을 꾸리시느라 당신 가슴속 깊이 담고있던 한이 이날 이노트에 쓰여진 겁니다.
그런 환경에서도 나는 그림 그리는걸 좋아해서 비록 좋은 도구는 쓰진 못했지만 손에
쥐어지는 연필과 볼펜만으로 정식으로 배우는 교육없이 혼자 터득하며 그림을 그렸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도 1996년 6월 29일 그림을 그릴수 없는 일이 생겼습니다.
원양어선 기관사로 근무하다 불의의 사고로 오른손목이 절반이상 뼈까지 절상되어
6개월간의 치료를 받아 간신히 절단만은 피할수 있었습니다.
이후 후유증으로 근육신경 장애가 남아 정상인 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연필마저 제데로
쥘수 없게 된걸 어머님께서도 가슴속 한켠에 한으로 남아 있었을 겁니다.
결국 어머님도 병환으로 희미한 기억 이었지만 가슴속에 남겨진 그 한을 씻을수 없던지
저에게 꼭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마지막 말을 노트에다 남기셨습니다.
저는 그 글을 보고 조용히 병실밖을 나와 담배를 피우며 한없이 울었습니다.
제 인생 그렇게 울었던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결심 했습니다.
비록 사고로 다쳐 후유증이 남아버린 연필마저 제데로 쥘수 없는 손이지만 다시한번
그림을 그려야 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힘을 쓰지 못하는 오른손 때문에 일터에서도 사용자의 회피와 일을 제데로 못한다는
눈총을 받으며 근근히 버티지만 그마저 오래 갈수 없는게 건설현장 일인건 경험해
보신분들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래도 무거운 자재나 망치질 같은건 못하지만 나름 목공 공구를 만질수 있고 그림 그리는
눈썰미가 있어선지 가벼운 목공이나 철공(용접)은 손다치기전 익혀논터라 간간히 이런일도
하지만 정상인 처럼 직장에서 고정직으로 일을 할수 없었습니다.
어느누가 손을 제데로 못쓰는 사람을 고용하겠습니까.
겉으론 다쳤던 손이 별다른 차이점은 없어서 장애를 가진 손을 속이고 일을 했지만 그마저
오래가지 못하고 일터를 떠나야하길 10여년간 수십차례 겪으며 건설현장을 옮겨다니며
살아왔습니다.
손을 제데로 쓰지 못한다는 이유로 임금도 깍이고 심지어 떼이는 일도 많았습니다.
법으로 호소하고 강제 지급 명령까지 받은 판결만도 세번이나 되지만 이미 나를 이용한
사람들은 소재를 찾지 못해 이젠 모두 포기 했습니다.
이렇게 이곳 저곳 떠다니며 돈을 모아 땅을 구입했지만 그마저 세째형의 농간으로
잃어 버리고 어머니 마저 큰 고통을 당해 의식 마저 희미해지고 하루 하루 힘들게
투병을 하게 됐습니다.
일을 다니며 밤시간을 빌어 계속 감각을 살려내던중 어느정도 궤도에 오른듯해서 어머님
초상화를 그려야 겠다는 생각이 일터에서 문득 떠올라 이때 후유증으로 폐렴이 걸려
병원에 잠시 입원중이었던 어머님의 병실에 도구를 들고가서 그릴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그날 현장 일이 늦어져 밤 9시 께야 집에 갔는데 집에 가보니 방문 앞에 어머님의 임종을 알리는
메모가 붙어 있기에 곧바로 병원에 달려갔지만 내가 보게되건 이미 싸늘히 식어버린 어머님의
모습이었습니다.
휴대폰마져 가질수 없이 살았던 저는 결국 어머님의 임종을 지키지못한 불효를 저지르게
됐습니다.
임종을 지켰던 큰형님께선 어머님서 마지막까지 저를 찾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살아계실적 나에게 마지막으로 바랐던 그림 그리는 겄마져도 지켜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셨습니다.
살아계실때 초상화 만이라도 그려드렸어야 했었는데........
마지막까지 불효를 하게 된겁니다.
그후 장례를 치루고 나는 초상화를 그려드리지 못한 불효를 씻고자 제주시 소재
요양원을 다니며 연로하신 어머님과 같은 어르신들의 초상화를 혼자서 자원봉사로 그려
드렸습니다.
요양원에서 초상화 봉사 한다는걸 처음엔 믿지 않더군요
이렇게 몇점의 초상화를 그리던중 익명의 제보자 께서 SBS 방송국에 저에대한 이야기를
제보하여 "세상에 이런 일이"란 프로에 주인공으로 2009년 11월 6일 방영(566회분)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방송이 나간후 일하는 사무실에서 저에게 일을 보내지 않더군요 손이 부자유
스런걸 알게 되어 버린 겁니다.
겉으로야 내색은 안했지만 하루 하루 지나며 제게 이유 없이 일을 배당하지 않는걸 알게
된후 저 스스로 그 사무실을 그만 뒀습니다.
그때도 손에 장애가 있다는걸 숨기고 일을 했었습니다.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할때는 눈치껏 피하며 일을 했는데 방송 이 나간후 모두 알게된
사무실에서 차츰 일을 보내지 않았던 겁니다.
더구나 겨울엔 차가운 날씨로 다쳤던 손이 경직되어 외부 작업을 못하니 용역 사무실 일도
못하기에 아예 방에 틀어 박혀 그림만 그립니다.
다행히 나의 이런 사정을 알게된 제주시 소재 모 입시미술 학원장의 도움으로 그림 그릴수
있는 거처를 마련해 주어 연필 그림이나마 이렇게 그릴수 있습니다.
저 역시 연필그림이 그렇게 좋은 그림이 아니란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도 그림엔 배가 고픈건 누구보다더 깊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님의 마지막 바램을 위해서라도 꼭 훌륭한 수채화나 유화 그림을 그릴겁니다.
이젠 40대 후반 더이상 잃을것도 없고 얻을것도 없이 힘들게 사는 중년의 삶이지만 제가 꼭 그리고
싶은 한국화나 유화를 그리기 위해 조금씩 도구를 구입하여 꼭 좋은 그림을 그릴수 있을때까지
도전할 겄입니다.





연평도 해병 부대에 기증한 그림






연평도 해병 부대에 기증한 그림



여성 해병 전우회에 기증한 그림

요양원 다니며 초상화 봉사로 그려 기증 한 그림

요양원 다니며 초상화 봉사로 그려 기증 한 그림

유가족 에게 기증 했습니다.

유가족에게 기증 했습니다.

봉하 마을에 기증 했습니다.





진정한 예술이란?
평생 습작만 만들던 하찮은 그림쟁이는 이름 없이 사라지겠지만.....
후에 남은 그 습작의 흔적이 가장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감동과 경이로움으로 기억될 때
최고의 작품이 남긴 진정한 예술 이란것을
믿어 의심치않는다.
그동안 그린 49점의 다른 그림이 담겨 있는곳 : 블로그 = http://blog.naver.com/alpalav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