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자 중심> 주택정책
유시민(원장)
1. 좋은 주택정책
집, 주거공간으로서의 집에 대한 국민들의 소망은 무척 다양합니다. 집이 없는 사람은 집을 갖기를 원합니다. 좁고 낡은 집을 가진 사람은 더 큰 새 집을 원합니다. 이미 집이 있으면서도 더 많은 집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의 집에 사는 사람들은 전세나 월세가 오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남에게 집을 빌려준 사람은 정반대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하는 곳 어디에나 새 집을 마련해도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계 때문에 지금 사는 동네를 떠나기 어려운 사람도 있습니다. 좋은 주택정책이란, 국민 누구나 집에 대한 나름의 소망을 실현할 수 있도록 잘 도와주는 정책일 것입니다.
더러는 집을 주거공간이 아니라 자산 증식 또는 수익 창출의 수단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이런 욕망도 마냥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남과 사회에 부당한 피해를 주는 나쁜 방법을 쓰지 않고, 집을 저축이나 주식, 유가증권 투자와 비슷한 수준의 수익을 기대하는 자산운용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우리 헌법과 법률에 따라 용인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 참여정부 주택정책
지난 참여정부는 위와 같은 취지에서 좋은 주택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였으나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투기적 주택수요를 감소시키기 위해 도입했던 <종합부동산세>, 조세정의 실현과 부동산시장 투명화를 위해 추진했던 <실거래가 신고제도>와 <부동산세제 과표 현실화>는 꼭 필요하고 올바른 것이었지만 국민의 이해를 충분히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공공임대주택과 다가구 매입임대주택 공급 확대>는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긴요한 정책이었고 큰 진전이 있었지만 충분한 재정을 투입했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LTV와 DTI 등 효과적인 유동성 규제대책을 제때 투입하지 못하고 실기하는 바람에 주택가격 폭등을 사전에 예방하지 못했습니다. 민간기업의 아파트 분양가 폭등을 막지 못한 문제도 있었습니다.
3. 이명박 정부 주택정책
이명박 정부의 주택정책의 특징은 세 가지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규제완화>입니다. 아파트 분양이나 유동성과 관련된 규제를 거의 다 풀었습니다. 종부세 등 부동산 보유에 따르는 조세부담도 현저히 낮추었습니다. 참여정부 당시 충분한 규모의 신규주택이 공급되었고 강력한 유동성 규제를 실시한 탓으로 주택가격 상승세가 꺾이고 하락세가 나타난 상황에서 가격 유지를 위해 수요 진작정책을 쓴 것입니다.
둘째, <소유 중심 주택정책>입니다. 공공 주택공급 총량은 참여정부 때와 비슷하게 유지했지만 분양 물량을 급증시키면서 임대 물량은 그만큼 감소시켰습니다. 다가구매입임대 등 서민주거 안정대책은 도외시하고 뉴타운 등 중대형 민간아파트 공급은 늘렸습니다.
셋째는 <선별적 무주택자 우대정책>입니다. 보금자리 주택은 생애 최초로 주택을 구입하는 무주택자들에게 주변 아파트 시세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에 주택을 공급하는 일종의 특혜부여 제도입니다. 최초 분양자는 분양가와 실거래가의 차익만큼 혜택을 보게 됩니다. 그 밖의 무주택 서민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없는 것보다는 나은 정책임에 분명하지만 서민의 주거문제에 대한 거시적 해결책이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정책 기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4. 주거복지를 도모하는 정책의 기본방향
주거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충분한 재정투자를 하지 않는 국가, 무조건 사업물량을 확보하려는 건설업체, 신규주택 공급을 늘이기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허상을 유포하는 일부 언론, 주택가격 상승에 따르는 이익을 노리는 일부 국민들의 투기심리, 그런 욕망을 부추겨 정치적 이익을 보려는 정치행태, 여전히 투명성이 부족한 부동산 시장상황 등 만만치 않은 장애요인이 국민들의 주거안정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런 장애물을 넘어 좋은 주택정책을 실현하려면 몇 가지 분명한 원칙이 필요합니다. 먼저 주택정책이 분양과 매매 등 주택소유에서 임대 등 주택 사용으로 그 중심을 이동해야 할 것입니다. 투기적 심리를 동반하는 수요 확대보다는 서민의 주거복지를 확충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관련 경제주체들의 자기 책임 원리를 강화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1인가구와 고령가구,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주택 공급 확대, 보유세를 높이고 거래세를 낮추는 관련 세제 개편, 부동산담보 대출의 미시적 거시적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일관된 유동성 규제, 국토균형발전을 통한 수요 분산, 주택총량의 안정적 유지, 영세한 민간 주택임대시장의 합리화와 투명화, 건설업체와 저축은행의 강력한 구조조정 등이 필요합니다.
5. 구체적 정책제안
(1)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목표
2015년까지 서민과 중산층의 주거복지 실현을 위해 주택총량 대비 공공임대주택 비율 15%, 그 가운데 장기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주택총량의 10%로 높여야 합니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LH공사나 지방공사, 연간 1조원이 조금 넘는 주택복지 재정지출로는 불가능한 목표입니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적 연기금의 유휴자산을 중심으로 민간투자를 끌어들이고 정부가 합리적인 수준의 수익률을 보장함으로써 투자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 유력하고 효과적인 재원마련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 민간 임대주택사업 활성화
고용 불안과 자본시장의 유동성이 크게 증가한 상황에서 민간 주택임대 시장은 서민에게 안정적 수익 창출과 자산운용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민간 임대시장은 사실상 비공식부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다주택 소유자들의 주택사용 실태가 정확히 파악되어 있지 않습니다. 전체 주택의 1/3 가까이가 다주택 소유자의 것이지만 등록된 전세 또는 월세 임대주택은 1%도 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민간 임대주택시장을 정상화하려면 다주택 보유자가 민간 임대주택사업자로 등록할 경우 취득세, 등록세, 재산세, 종합소득세, 양도소득세 등 각종 관련 부동산 보유세 관련 불이익을 면제해 주고 임차인에 대해서는 임대주택 거주 비용에 대한 소득공제 등으로 자발적 등록을 유도하는 조처가 필요할 것입니다.
임대주택시장의 투명성이 강화되고 신규 임대사업자에 대한 진입장벽이 완화되면 당연히 수요에 부응하는 공급이 형성되고, 시장가격도 안정적으로 형성되어 주거복지 개선의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3) 관련 법령의 제·개정 사항
-임대용 주택의 등록 확대
-임대용 주택의 자동 계약갱신제도 도입
-전세/월세 인상폭의 제한
-임대주택 임차인에 대한 보증금 융자 확대
-임차료에 대한 소득공제제도 도입
6. 마치며
집은 인간생활에 필수적 소비재이고, ‘의’와 ‘식’에 비해 가장 공급이 어려운 재화이며, 지난 30~40년 동안 우리사회 소득구조를 악화시킨 재화입니다. 이제는 바뀌고 있습니다. 투기심리도 가라앉고, 부동산 가격 불안정의 토대인 인구구조와 가구구성이 변하고 있으며, 수도권으로 인구집중현상도 점차 완화되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한 번 차분하게 부동산 시장의 변화와 이용자들의 심리변화에 맞게 주거복지 정책을 다듬고,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할 시점입니다.
부동산 정책은 국민 개개인의 성찰과 책임만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 있고 일관성 있는 노력이 필요한 정책사안입니다. 여러 정책전문가, 시민 여러분의 지혜를 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