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은 서울종로광장 토론광장에서 함께 입력된 함만세님의 글입니다. |
2007년 7월에 출판된 진보자유주의자 유시민님의 [대한민국개조론]중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저는 유신체제는 ‘경쟁력 있는 개발독재’였고, 박정희 대통령은 ‘성공한 독재자’였다고 생각합니다.
독재자라도 성공한 건 성공한 것이고, 성공했다고 해서 독재자라는 사실이 변하는 건 또 아닙니다.
그가 했던 수많은 선택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아남았고 그만큼 큰 의미를 지닌 것은,
수출주도형 불균형성장전략을 경제발전전략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이 선택과 더불어 대한민국은 개방경제로 가는, 통상국가로 가는 운명을 부여 받았습니다.
다른 길은 다 봉쇄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21세기 세계 일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대외적으로 선진통상국가를 지향하고,
대내적으로는 사회투자국가를 건설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제가 찾은 세계화와 양극화 문제에 대한 해법입니다.
사회투자정책은 시혜적 복지정책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개념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의 능력을 키우고 경제사회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 때,
한번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느낄 때, 사람도 발전하고 국가도 발전합니다.
이런 일에 역량을 집중하는 국가가, 제가 말하는 사회투자국가입니다.
선진통상국가의 길을 외면하는 사회투자국가 건설은 비현실적인 전략이 됩니다.
더 큰 세계시장에서 더 많은 부가가치를 취득하지 않고는,
기나긴 시간이 지난 후에야 투자의 효과가 나타나는 사회투자의 재원을
지속적으로 조달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보적 관점에서 나쁘게 보면 사회투자국가론은 보수파에 대한 굴복입니다.
그러나 좋게 보자면 불가피한 또는 적절한 타협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분들은 저의 ‘진보적 지향’보다는 ‘보수적 방법’에 주목했던 것입니다.
이 둘을 다 하면 왜 안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서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반대하면서 아무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상태보다, 각자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상대방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타협하고 협력하는 편이
낫지 않은가요?
사회서비스 시장을 확대해 국민을 더 행복하게 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이라면,
그 정책수단이 좌파적이든 우파적이든,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뭐 그리 큰 상관이 있겠습니까?
어떤 정책의 가치는 그것이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이론에 맞는지 여부가 아니라, 국민의 소망에
부합하고 주어진 정책여건 아래서 가능한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고양이 털이 흰색인지 검정색인지는 애완용을 기르는 사람에게나 중요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실용’이란 단어가 정동영이나 이명박 등 천박한 정치인들에 의해 오용되어
거부감을 주기는 하지만, 유시민님은 진정한 실용주의자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이야기]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허영심이란 남에게 좋게 보이고 싶어하는 심정이고
야심은 무언가를 이룩하고 싶어하는 의지라고 생각한다.
남에게 좋게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권력이 필요불가결하지 않지만,
무언가를 이룩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을 해내는 데 필요한 힘이나 권력이 필요불가결하다.”
권력을 잡고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반대’와 ‘당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미래에 대한 청사진과 경로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개조론]은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07년에 집필되었고, 3년이란 시간이 흘렸습니다.
유시민님께서는 가제 [국가론]을 집필 중이시라고 하는데,
MB정권 3년을 경험하고 난 지금의 생각이 자못 궁금합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균형 감각이란 서로 모순되는 양극단의 중간점에 자리를 잡는 것은 아니다.
양극단 사이를 되풀이하여 오락가락하고, 때로는 한쪽 극단에 가까이 접근하기도 하면서,
문제 해결에 가장 적합한 한 점을 찾아내는 영원한 이동행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