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글은 산벗 산행후기에서 함께 입력된 아사달의 봄님의 글입니다. |









맞춰 놓은 알람을 꺼 놓고서 또 잠이 들었다. 늦잠이다. 머리를 감는 둥 마는 둥 세수를 하고 바지를 입는지 상의를 입는지 알바 아니다. 그냥 가릴 것만 가리면 된다. 밥! 웃기는 소리지. 냉수 한 사발 마실 시간도 없다. 빌어먹을 아침잠. 투덜투덜 욕지거리도 해가면서 전철을 타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이놈의 전철은 오늘따라 왜 이리 느려터진지. 내 가슴이 답답하다. 그렇게 합정역으로 달려온 아침. 이미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있다.
누구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밥을 짓고 채소를 썰어 주먹밥을 만들고 싱싱함이 뚝뚝 묻어나는 샐러드를 만들었다하고, 누구는 그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일어나 냉장고를 탈탈 털었다고도 하고. 그중 또 누구는 지난 밤 새벽시간까지 소주를 네 병이나 마셨다고 피곤이 역력한 얼굴로 너스레를 떨기도 했지. 듣는 귀가 즐겁고 바라보는 눈이 행복하다. 버스를 타거나 전철을 타거나 아니면 걷거나 뛰거나 분주하게 열어젖힌 이시간이 소중하고 행복하다.
아침저녁이면 쌀쌀한 지금. 그것도 일요일 아침 따스한 이불을 걷어차고 새벽을 연다는 것은 쉽지가 않지. 따스한 이불은 찰거머리 마냥 내게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발버둥치고, 녀석을 떼어내는 난 싫증난 애인 떨쳐 내듯 매몰차게 돌아서야 하지. 이건 슬픔이다. 나 좋단 여자를 떼어낸다는 건 이유를 불문하고 슬픔이야. 그렇게 애인을 떨쳐내고 돌아선 많은 남정네들이 모여 있는 거다. 떡이 나오고 돈이 쏟아지는 일도 아닌데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이 반가운 것이야 당연지사고.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이미 비릿한 갯냄새가 묻어있다. 기분 좋은 비린내. 훅하고 콧속을 파고든 비린내가 가슴 깊은 곳, 기억 깊은 곳에 잠들었던 뭔가를 깨운 듯이 스멀스멀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기억들이 새롭다.
“삶은 달걀 몇 알.
별이 일곱 개 칠성사이다 한 병.
그리고는 나무도시락에 예쁘게도 누워있는 김밥 두어 줄“
오늘 같이 가슴 설레는 날에는 빠질 수 없는 것들이지. 소풍하면 떠오르는 다정한 친구들이다. 그래, 오늘 우리는 콧바람 쐬러 뛰뛰빵빵 경적도 상쾌하게 소풍을 가는 거다. 혜은이의 뛰뛰빵빵~~ 노래라도 틀어준다면 금상첨화인데. 아직도 그 노래 테이프가 남아있으려나 하는 궁금증이 인다.
바람을 가르고 도착한 외포리 선착장엔 갈매기가 가득하다. 우는 소리가 고양이를 닮았다고 해서 괭이갈매기라는데 녀석들의 눈초리가 매섭다. 하늘을 자유자재로 활공하는 날개짓이 아름답다. 하지만 녀석들에 대한 좋은 말은 예까지다. 뭔가에 길들여진다는 것은 애잔한 슬픔이요, 절망이기 때문이지. 퍼덕이는 생선을 사랑해야 할 갈매기는 이제 더 이상 물위를 뛰어오르는 생선을 사랑하지 않는다. 녀석들은 사람들이 던져주는 안락함과 사냥본능을 맞바꿨다. 강화도의 괭이 갈매기는 농심을 사랑한다. 바다가 주는 짭쪼름함 보다는 사람이 만들어낸 그 짭쪼름한 맛을 더 좋아하지. 농심새우깡 한 봉지에 녀석들은 사냥꾼의 당당함을 버렸다. 썩은 생선에라도 부리를 비벼봤으면 좋겠다만 자존심을 버린 너희에게 더 이상 뭘 바라랴. 그냥 나도 새우깡을 주마. 그것도 너희가 제일 좋아하는 농심으로 준비해서.
저들은 길들여져 본성을 잃었다지만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지. 밥 한 덩이 던져주고 꼬리를 흔들어봐 숱하게 물어보고, 또 물어보는 그들을 향해 송곳니를 드러내는 내가 되었으면. 죽는 날까지 발톱을 세울 수 있는 표범이었으면.....
땀방울 몇 개 이마에 맺힐 때 쯤 해명산 정상이란다. 걸어온 길 뒤돌아보면서 절로 터져 나오는 말 한마디. 아! 아름답다. 사방이 시원하다. 불어오는 바람이야 더 말해 무엇할까마는 참으로 시원하다. 바다가 만들어주는 고운 선들이 섬과 섬 사이로 이어지고 그 고운 선은 이내 하늘과 맞닿아 천상천하가 아련하고. 해풍에 몸을 낮춘 소나무며 진달래에 소사나무 군락까지 어쩌면 저리도 섬과 하나 되어 곱게도 자랐는지. 발치에는 연신 바스락바스락 낙엽이 노래하고 산마루에 억새꽃은 저 홀로 흥에 겨워 어깨춤이 신명난다. 그래 너는 노래하고 또 너는 그 노래에 박자 맞춰 덩실덩실 씰룩씰룩 걸지게 놀아봐라. 노랗거나 빨갛거나 갈잎이던 솔잎이던 상관없다. 너도 신명나고 보는 나도 신명난다. 바람 불면 너도 덩실 햇살이 출렁하면 나도 덩실. 雲雨之情이 별거더냐 덩실덩실 춤사위에 마음이 녹아들면 그게 雲雨之情이지. 해명산에 낙가산에 곱고도 예쁜 네가 사뭇 그립거든 내 오늘을 기억하마. 가슴에 다짐하고.
갯골에 햇살이 은빛으로 빛나는 시간.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듯 오늘 너를 희롱함도 여기까지다. 너의 노랫소리도 신명난 너의 춤사위도 이쯤에서 이별이다. 고운님과의 수작질도 밤이 새면 초라하니 시나브로 동터올 지금이 이별하기에 더욱 좋다. 미련도 남기고 후회도 한조각 가슴에 묻어두어야 그게 추억이지. 적나라하게 모두 까발리면 그게 어디 흥이고 아련함이더냐. 내 너를 가슴에 고이고이 묻어두었다가 볕 좋고 바람좋은 날 서리서리 풀어내어 다시금 희롱하마. 다시 널 보는 날 오늘처럼 반겨주면 그 또한 좋고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