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스스로 “인류 역사상 전에 없던 꿈을 꾸고 있다”고 했다. “가능성보다 당위가 우선이다”고도 했다.
이른바 ‘100만 민란 프로젝트(www.powertothepeople.kr)’를 위해 뛰고 있는 배우 문성근(57). 지난달 말 홀로 서울 거리로 뛰쳐나오더니, 지난 14일부터는 광주에 머물며 시민들을 만나고 있다. 정치권에선 그의 프로젝트를 ‘제3지대 야권단일정당론’이라 부른다.
구상의 핵심은 이렇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이명박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막으려면, 야당들이 선거연대 수준이 아닌 민주적인 단일정당으로 통합돼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 100만명의 기반을 만들어, 그 위에 야권이 단일정당을 구성하도록 한다.”
취지는 그럴 듯한데 그게 가능하냐고 묻자, “그럼 지금 그거 말고 딴 거 있느냐”고 되묻는다. 지난 15일 전남대 후문 근처 식당에서 만나, 생업을 제낀 채 거리로 나선 이유와 고민을 들었다.
▶왜 ‘민란’인가?
―백성들이 견디다 못하면 민란을 일으킨다. 지금 이명박 한나라당 집권 하의 이 나라가 딱 그 상태다. 이대로 한나라당이 5년 만 더 집권하면 IMF보다 더 험한 상황이 될 것이다. 반면 정권교체의 책임이 있는 야권은 작은 기득권에 안주하려 한다. 여권도 야권도 못믿는 상황에 국민들은 분통이 터진다. 백성이 들고 일어나 정당을 뒤집어 엎고 백성과 함께 민주적 야권단일정당을 만들자는 거다. “그런 정당이 만들어지면 입당하겠다”는 서약서 100만 장을 모으는 게 목표다. 시작은 ‘민란’이지만, ‘성공한 시민혁명’으로 끝나야 한다.
▶첫 지역 순회지가 광주인 이유는?
―이 나라 민주주의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도 광주가 만들지 않았나. 현실적으로는 단일정당을 하려면 야권의 ‘맏형’인 민주당 역할이 중요한데, 당의 텃밭인 광주부터 민란이 확산돼야 한다는 점도 고려했다. 그 다음 대구, 부산, 대전 등으로 이어갈 것 같다. 서울에선 이명박 정권의 잘못이 뭔가부터 설명해야 하나, 광주에선 그 단계가 필요 없다. 광주의 힘이다.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노사모가 70만을 모았다. 하지만 지금은 노무현이라는 상징도 없다. 또 왜 벌써부터냐고 한다.
―당시 노사모 ‘현상’에서 지금의 가능성을 본 것은 사실이다. 또한 ‘촛불’에서도 가능성을 봤다. 시기적으로는 2012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패하면, 이후 대통령선거도 필패다. 총선부터 당내 경선 등의 일정을 감안해 역산하면 내년 가을까진 모든 준비가 끝나야 한다. 1년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은 패배를 향해 가지만, 기득권에 집착하는 정치권이 모른척하고 있을 뿐이다.
▶‘야권단일정당’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 시각이 많다. 특히 이념과 철학이 다른 정당이 ‘반이명박’ 전선 하나로 통합한다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 아닌가.
―그럼 지금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나?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것대로 하면 된다. 우리에겐 가능성보다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위가 우선이다. 다양한 정당은 하나의 당 안에서 여러 계파로 활동하면 된다. 그래야 현실적으로 당선 가능성도 높다. 지금은 야당 대표들끼리 “합치자”하면 합쳐지는 시대도 아니지만, 국민이 빠진 채 정치권만의 ‘야합’도 우리가 원하는 게 아니다. 5개 야당이 국민 속에 빠져들어 하나의 당으로 거듭나야 정권교체가 가능하다.
▶아무리 100만명을 모아도, 각 당들이 기득권을 내놓겠나.
―민주당 당원이 대외적으로 200만명이라지만, 실제는 50만명 정도인 것으로 안다. 나머지 민노·진보신당·국민참여당·창조한국당 다 합치면 20만쯤 될까. 70만대 100만이다. 100만명이 압박하는데, 과연 각 당에서 이를 외면할 수 있을까.
▶지난 6·2지방선거에서도 야권연대가 일정 부분 성공하지 않았나.
―6월지방선거 기간 이광재 강원지사 선거운동을 했다. 주민들이 “(노무현 대통령 관련)한이 많은 사람이잖냐”며 짠하게 여기더라. 지역민의 정서를 울리는 뭔가가 있었다. 여기에 안희정 충남지사나 송영길 인천시장의 당선, 김정길 부산시장 후보의 선전 등 결국 지역구도 타파와 전국 정당화를 추구했던 노무현·김대중 두 분의 목숨 값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현실에 안주하고 놀겠단다. 정권교체보다 나만 국회의원 되면 된다는 식이다. 더욱이 지방선거는 연대과정에서 주고받을 게 많은 반면, 총선은 양보가 없다. 연대가 더 어렵다. 되지 않은 연대보다 합쳐서 이기라는 게 국민의 명령이다.
▶왜 문성근이 나서야 하나?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간 여러차례 정치권 제안을 받았지만, 거리를 뒀다. 노사모를 할 때도 “덕 보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그것을 지켰다. 두 정부에서 한 자리라도 했던 분들은 이 제안을 못한다. 그런 점에서 난 가능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다. 참여정부가 패한 2007년 대선 이후부터 내가 뭔가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아버지와 관련된 부분도 있다.
▶고 문익환 목사님 말인가.
―아버지는 59세에 처음 감옥에 가셨고, 이후 77세에 돌아가실 때까지 17년 반 동안 6번에 걸쳐 12년 반을 감옥에서 사셨다. 그 삶이 너무 기가 막히고 무서웠다. 난 그런 능력이 안되니, 자유롭게 살았다. 그런데 문 목사의 삶에 유일한 시빗거리가 87년 분열이었다. 당시 재야단체의 격론 끝에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결정했는데, 결국 패배로 끝났다. 그 후과는 오래갔다. 2002년 노사모에 뛰어든 것도, 당시 양김 시대가 끝나는 시대였고 노무현이 지역통합의 상징이었다는 점에서 아버지를 대신해 국민께 사죄하겠다는 마음이었다. 그 삶이 너무 기가 막힌데 시빗거리가 남았다는 게 너무 아파서. 그런데 지금 이명박 2년 지나고 보니, 이 정도로 망가뜨릴 줄 몰랐다. 양김에 이어 노무현까지 카리스마 있는 정치인이 사라지고 나니, 아무도 정리를 못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그럼 어떡하냐. 백성이 들고 일어날 수밖에. 내가 급하니, 먼저 들고 일어난 것이다.
▶민란프로젝트에서 자신의 역할을 규정한다면?
―많은 분들이 이 프로젝트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난 ‘민란의 방을 붙이는 자’일 뿐이다. 2002년 대선 때는 동료연예인들에게 함께 하자고 권했지만, 이번은 특별히 권하지 않는다. 얼마나 힘들지 알기 때문이다. 죽어도 나 혼자 죽겠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이미 명계남 씨나 권해효 씨 등은 함께 하고 있다.
▶‘친노 그룹의 부활’이라는 시각에 대해 매우 경계하더라.
―민란프로젝트는 한마디로 ‘민주주의 제대로 하자’는 거다. 여기에 동의하는 사람 속엔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이걸 ‘친노’로 규정하면 그런 분들을 모독하는 거다. 오해다. 내 친노경력은 10년이다. 오히려 친 김대중은 35년이다. 김 선생님과는 80년 당시 ‘생명의 동지’같은 느낌이었다. 당시 군사재판은 언론취재가 통제됐고 구속자가족들도 연필과 종이 지참이 금지됐다. 결국 재판 중 그의 발언을 무조건 외운 뒤 밤새 기억해내 옮겨 썼고, 그걸 외국으로 보냈다. “한 줄이라도 더 기억해내면 김대중을 살릴 수 있다”는 절박함 뿐이었다. 그 후 김 선생님이 여러차례 정치권 진출을 제안했지만, 난 아니라고 했다.
▶100만명을 모았는데도 단일정당이 안되면 어떡할 건가.
―안 된다는 건 생각하지 않는다. 100만명을 모았는데도 정치권에서 단일정당을 만들지 못하면 총선과 대선은 필패다. 그 경우 모아진 100만명은 정치권에게 패배의 역사적 책임을 묻기 위해 다른 형태로 존속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반대로 단일정당 구성에 성공할 경우, 이 때도 입당하지 않은 상당수 시민들이 있다면 이분들 중심으로 정치권을 감시하는 시민단체로 남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