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뉘엿뉘엿 해거름에 어둠이 내리면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산골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나지. 여나 문 채 엉성하게 둘러 앉아
마을이라 이름하고 앞마당에 검둥이도 외양간에 누렁소도 저마다의 모양새로
어둠을 맞이하는 저녁, 그 뭉게구름 같은 연기는 그리움이다.
헉헉 가쁜 숨소리 귓가에 가득할 쯤 뚝뚝 굵은 땀방울, 등줄기로 목 줄기로
흘러 떨어진다. 흐르는 땀방울에 눈이 쓰리다. 산이란 게 본시 높던 낮던
간에 그 깊음이 깊던 얕던 간에 산책하듯이 훌쩍 뛰어넘기에는 무리라.
한걸음에 치달려 정상에 오른다면 어찌 그게 산이랴. 동네 꼬맹이들 총싸움에
칼싸움이 진저리나는 동산이요, 언덕이지. 풋사랑에 가슴은 콩닥콩닥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만지작만지작 손바닥은 땀으로 축축하고 뉘라도 볼
새라 아름드리 굵은 둥치 뒤에 숨고 또 숨어 입이라도 맞춰봐라.
세상이 내 것 인양 풋사랑이 어울리는 그런 게 동산이지.
명색이 사패도 산이라, 한달음은 고사하고 열 달음에도 오르지 못하는 게
정상이라. 우거진 숲길에는 녹색이 지천이라 건듯 바람 불어 풀잎이라도
스치우면 이내 몸도 녹색으로 물들듯이 앞 다퉈 녹음을 자랑하니
뜨거운 여름날이 몇 날 며칠이 남았는지 헤아림이 무심타만 지금은 여름이다.
국토를 종횡하며 많은 상처 남기고 간 곤파스의 할큄도 눈에 띈다.
‘솔향기 짙다 못해 턱턱 숨 막힌다.’하였더니 아직도 푸름은 여전한데
어이하여 땅속으로 굳건해야 할 너의 뿌리는 하늘로 치켜들고 누웠는지.
이름도 없는 계곡에서 오늘 너는 황천으로 갔다마는, 너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자 없다지만 나만은 너의 장렬한 최후를 슬퍼하고 기억하마.
코끝을 파고드는 그 짙은 솔 내음도 영원히 기억하마.
비를 머금은 바람은 쉴 새 없이 오고가고 그 바람결엔 뚝뚝 빗방울이 묻어난다.
늦은 점심 펼쳐놓고 밥 한 숟가락 입가에 가져갈 때 바람이 분다.
나뭇가지 춤을 추듯 바람이 심상찮고 밥 연기 피어나듯 뭉게뭉게 피어난 구름
이내 먹장구름 되고 보니 마음이 철렁 억수 같은 장대비에 사방은 물 천지다.
하늘도 땅도 그 속에 옹기종기 우리들도 온통 물뿐이다.
술이 반이요, 물이 반이라. 밥이 반이요, 물이 반이라.
그래 쏟아 부어라, 이 여름의 모진열기 뉘라서 시원하게 식혀줄까.
너 있음에 내 가슴마저 시원하고 상쾌하다. 이왕이면 천둥도 우르르 쾅쾅,
번개라도 번쩍번쩍 합창하듯 마주하고 천지를 울려라. 고막을 찢을 듯이
골골이 할퀴고 쓸어내고 씻겨내고 그렇게 천지를 울려라.
물 반 술 반이면 어떻고, 밥 반 물 반이면 어떠하랴.
‘내가 최고다, 내 것만이 정답이다’ 아집과 고집 모두 덜어내어
너도 반절 나도 반절 휘휘 휘저어서 너와 나 하나 된 그 무엇 만들면 좋고말고.
너와 나 하나 됨이 좋다. 오늘 사패산의 빗방울은 그래서 더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