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기사에서 보듯, 이정희 민주노동당 신임대표가 취임식에서 "유연한 진보"를 선언하였다.
유연한 진보? 우리 유빠들에겐 전혀 낮설지 않은 말이다. 누구의 말이던가? 유시민이 그토록 부르짖던 바로 그 "유연한 진보" 아니던가? 표절의혹 짙지만, 그게 옭은 길이라면 누가 베끼던 무슨 상관인가? 박수쳐줄 일이다.
반갑다. 늦었지만 반갑다. 유시민이 참여정부시절 유연한 진보를 주창할 때 사쿠라 진보니 짝퉁진보니 하면서 민노당이 매몰차게 공격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잘나가는 민노당의 신임대표가 취임일성으로 유연한 진보를 선언하다니 과히 격세지감이라 할 만한 일이다. 한나라당이 친서민이니 하면서 진보적 가치를 흡수하는 동안 진보는 작은 차이에 대한 탁상공론을 거듭하며 정체와 지체를 거듭했다. 쫌팽이 진보, 교과서 진보, 교조적 진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인간을 이념의 종속변수로 만들어버린 지난 진보역사는 이제 종식되었음 하는 바램이다. 교과서의 진보가 아닌 내 머리로 생각하는 진보, 현실의 복잡성을 직시하면서 구체적 진실을 추구하려는 진보. 이념에 경직되지 않고 다양성을 존중하고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할 줄 아는 진보. 그것이 바로 유시민이 주장하던 "유연한 진보"아니었던가?
모든 사상과 부가가치의 출발점이자 근원인 인간은 주관과 객관의 혼합체이다. 그래서 사회과학의 거의 모든 쟁점마다 객관설, 주관설이 대립하고 있으며, 대개의 경우 결국 이 양자를 절충한 절충설이 통설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날의 자칭 진보는 정책이란 객관적 변수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정책이전에 사람이 있는데, 사람을 도외시한 채 정책만으로 세상을 재단하려 하니 오류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객관만능주의의 폐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책이 정책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 정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진실은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존재한다. 정치영역에 있어서 객관적 진실이 정책의 타당성이라면 주관적 진실은 정치인의 진정성 또는 능력이다. 양자 모두 진실의 일면이고 어느 하나를 무시하거나 도외시한다면 그것은 종합적,전체적인 진실이 아닐 것이다. 오늘날의 정치에서도 객관적 이념과 정책의 타당성이상으로 인물의 주관적 진정성이나 능력이 중요한 변수로 다뤄지는 것도 바로 이러한 본질에 대한 사람들의 직관적 판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물론, 때로는 그것이 세상을 보는 더욱 편리한 방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이정희와 심상정같이 보다 유연한 진보인사가 더욱 많이 나타나길 그것이 하나의 대세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유연함은 진보의 타락이 아니다. 그것은 진보가 합리성과 복잡성을 체득한다는 발전적 개념이다. 똑같은 회색이더라도, 기회주의적인 회색이 있고, 진정성을 가지고 있지만 합리적이기 때문에 회색인 경우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 진실은 검은색도 흰색도 아닌 회색인 경우가 흔한 것이다. 세상에 사기가 판을 치는 것도 진실이 이처럼 복잡하고 다층적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