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60주년에 생각하는 아득히 먼 평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0주년이 되는 6월을 한반도는 아직 다 보내지 못하고 있다. 당시의 남북 갈등을 유발시켰던 국제정치 환경은 크게 바뀌었으나 한반도의 갈등 구도는 아직도 살아 있다. ‘적대적 분단 체제’를 평화롭고 ‘공존 가능한 분단 체제’로 바꾸려고 분투하던 지난 세월 남한 정부의 대북 화해 및 포용 정책은 먼 과거처럼 느껴진다. 실용적 대북 노선을 통해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고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 공헌할 것이라는 공약으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은 지난 2년 반 동안 표류하고 있다. 남북 화해 정책을 계승하여 국민을 통합시킬 수 있는 정치적 명분은 물론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정치적인 주도권도 잃어 가고 있다. 오로지 미국과 중국 중심의 6자 회담 논리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 정부는 인수위원회를 가동할 때부터 통일부를 없애려는 의지를 공론화시켰으나 여론에 밀려 마지못해 존치시켰다. 정부는 내독성(內獨省)을 두어 동‧서독 냉전 문제를 풀어 갈 고도의 정치적 지혜와 경륜을 긴 세월 동안 축적시켜 온 결과 통일을 이루었던 서독의 사례를 배울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은 대외 정책의 한 부분일 뿐, 남북한의 특수성을 다룰 고도의 전문성을 담보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현 정부 초기에 일어난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은 남북 관계를 급격하게 경색시켰다. 그렇게 해서 조성된 남북 대결적인 분위기 속에서 천안함 침몰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천안함 사고와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천안함 사건을 통해 정부의 대북 정책은 또 하나의 변곡점을 찍고 적대적 분단 체제를 공고화하는 듯한 방향으로 일주하고 있으나 어느 정도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추진될지는 미지수다. 천안함 사태의 전말에 대한 남한 정부의 보고는 광범위한 의심과 의혹을 불러일으켰으며 국민 대다수를 설득하는 데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참여연대가 급기야 유엔 안보리 의장국에 천안함 사건 전말에 관한 보고서를 보내, 안보리에서 좀더 객관적으로 다뤄 줄 것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태는 국익까지는 아니더라도 현 정부의 권위에는 어느 정도 손상을 가져다 줄 것이다. 자국민도 설득하지 못한 채 북한을 천안함 침몰 어뢰 공격의 범인으로 몰아 고립시키고, 북한에 대해 광범위한 국제적 제재를 유도하기 위해 전 방위 외교전을 펼치고 있는 정부가 국제사회에 어떻게 비칠 것인가? 물론 원론적으로 북한의 어뢰 공격이 국제적으로 더 검증되고 확인되어 사실로 밝혀진다면, 북한에 대한 정부의 강경 노선을 적어도 감정적으로는 수용할 만하다고 본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정부의 대북 적대적 대결 분위기에 선뜻 동참하지 못하는 이유는 실로 여러 가지다.
첫째, 북한의 어뢰 공격설을 결정적으로 입증하려면 더 결정적인 증거가 필요하다. 북한 잠수정의 동선을 포착한 해상 사진 등 증거가 필요하다. 서해상에서 일어난 남북 대결은 공개적인 해전이었고 총격전이었는데 북한이 왜 이번에는 135톤 상어급 잠수정으로 몰래 공격을 했는지에 대해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서해상의 우리 안보 상황이 그렇게 허술했는가 하는 점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사고가 터진 시점은 한미가 해상 훈련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잠수정 한 척이 몰래 잠입해 와서 남한의 거대한 초계함을 완벽하게 공격하고 유유히 사라졌다는 보고를 들으면 북한의 공격 능력에 대한 놀라움과 우리 해군의 경계 능력에 대한 의심이 동시에 일어난다. 최원일 함장을 비롯하여 천안함 생존자들에 대한 더 철저하고 공정한 조사가 이뤄져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째, 해군과 정부의 천안함 사고 발표 과정 자체가 국민에게 실망과 의혹을 증폭시킨 점이 있다. 발생 시점의 혼선, TOD 편집 시도, 물기둥 발생 여부, 부상자와 사망자의 양상, 인근 어장의 어류 상황 등 크고 작은 의문들이 좀더 철저하게 규명되어야 한다. 이 점은 신문들이 자세히 보도했으므로 재론할 필요가 없다. 참여연대나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등 시민단체가 독자적으로 유엔 안보리에 의견서를 제출한 것은 이런 상황을 반영한다. 이런 시민단체들이 유엔이라는 국제기구에 천안함 사태의 진실을 좀더 분명하게 밝혀 달라고 요구하는 행동이 국익을 해쳤다고 보지 않는다. 진실은 국익보다 더 고귀한 가치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이란 바로 이런 국가적 이익을 초월하는 더 근원적인 가치가 존재하며 이러한 가치가 궁극적으로는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참여연대에 대한 최근의 소위 주류 언론들과 정부 기관들의 ‘국익론’을 앞세운 규탄은 어불성설이다. 국익의 여부를 국가나 정부 기관이 정할 수는 없다. 참여연대가 국제적으로 일으킨 논란에는 정부의 충분치 못한 설명도 한몫을 했다.
셋째, 정부가 천안함 사고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고 했다는 시민사회의 의심 때문이다. 천안함 침몰 사고의 배후에 있다고 지목된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도 남한 당국이 주도한 국제 조사단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6․2 지방선거 약 1주일 전에 국민의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시켜 안보 의식과 총화‧단결을 이끌어 내기 위해 용산전쟁기념관에서 천안함 관련 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것이 국민의 가슴 속에 어느 정도 울림을 자아냈는지는 의심스럽다. 지방선거 결과를 놓고 보면, 아마도 정부와 대통령의 발표를 대다수의 국민들이 불신했거나 천안함 사고를 선거에 이용하려고 하는 듯한 대통령과 정부의 유치한 시도에 냉소를 보였던 것이 틀림없다. 특히 선거를 며칠 앞두고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원로회의에서는 “전쟁을 통해서라도 대북 응징을 해야 한다”는 강경한 주문도 나왔고 대통령은 이에 질세라 “전쟁을 원하지는 않지만 피하지도 않겠다”는 시대착오적인 발언도 돌출했다. 이런 부적절하고 미숙한 위기관리가 정부의 지방선거 대패를 초래하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을 것이다.
특히 선거일 오후에 있었다고 보도된 젊은 층들의 자발적 선거 독려 문자 메시지나 트위터 통신 등은 정부의 전쟁 발언에 대한 경계심의 발로였을 것이다. 전쟁의 기억을 되살리거나 전쟁에 호소하는 듯한 정책은 적어도 젊은 세대에게는 더 이상 안보 위기감을, 혹은 애국심을 자아내지 못한다. 집권 여당의 젊은 당원들 스스로도 정부와 한나라당의 정책이 젊은 유권자의 눈에는 너무 촌스럽게 보인다고 평가하지 않는가? 젊은 세대는 전쟁이나 그에 준하는 수단으로 통치되는 그런 나라보다 ‘쿨’한 나라, 아름다운 나라에 살고 싶어 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 5월 27일자와 6월 14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김진 기자의 논설이나 칼럼은 가히 시대착오적이다. 그의 글들은 전쟁을 결심해야 전쟁을 피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는 한편,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국지전도 불사할 용맹 있는 지도력으로 대북 확성기를 반드시 설치하여 북한 체제에 심대한 타격을 주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주변에서 대북 정책을 더욱 강경하게 몰아가는 참모들이 김진과 같은 생각을 가졌다면 인적 쇄신은 불가피해 보인다.
구약성경 이사야 19장은 이집트 왕조의 패망과 몰락을 왕의 자문관들인 지혜자들의 국제 및 국내 정세 파악 불능과 신의 뜻을 왕에게 전달하는 영적 중개자들의 총체적 영적 파탄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현 정부의 참모진이 대통령의 정책적 판단에 도움이 되는 존재들인지 의심스럽다. 우리는 정부가 전망 없는 남북 대결 정책보다도 한반도 평화 정착을 실현시킬 국내‧국제적 주도권을 회복해서 북한이라는 원시 바다 같은 세력을 능히 진정시킬 수 있는 자신감 넘치는 정부로 발전되기를 원한다. 돌이켜 보면 노태우 정부부터 참여 정부까지 적어도 15년간 대북 정책은 민족 화해 정책과 포용 정책의 점진적 발전 과정이었고 결실로도 이어졌다. 노태우 정부 때에는 박철언과 이홍구 등 전향적 대북 정책의 입안자들이 제 역할을 다하여 ‘남북기본합의서’를 도출했고 그것은 김영삼 문민 정부, 김대중 국민의 정부, 그리고 참여 정부에 이르기까지 추진된 일련의 대북 유화 및 포용 정책의 밑그림이 되었다. 심지어 김영삼 정부가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유화 정책 추진 과정에서 때로 미국과 의견 갈등도 보였으나 정작 클린턴 행정부가 대북 핵시설 선제 타격 정책을 집행하려고 하자 적극 만류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명박 정부의 아무 원칙도, 전망도 없는 대북 정책과 비교해 본다면, 노태우 정부부터 참여 정부까지의 대북 정책을 포용 정책이라고 감히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앞의 네 정부의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이명북 정부는 대북 정책의 밑그림이 아예 처음부터 없었으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단편적으로 대처하는 땜질식 정부라고 비판받아도 될 정도다.
노태우 정부의 출범에 맞춰 열린 1988년 서울올림픽을 통해 남한은 국제사회에서 분단국가라는 인상을 극복하고 전 세계적인 신인도를 제고시킬 수 있었다. 그 당시는 남한에 군부독재의 잔영이 아직 완전히 걷히지 않은 반면, 운동권의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했을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노태우 정부는 예상을 깨고 공산권과의 외교 정상화와 대북 포용 정책을 추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여러 차례 노태우 정부의 북방 정책을 높이 평가했으며 자신의 햇볕 정책도 남한 사회의 발전과 자신감에 상응하는 정책임을 밝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1988년부터 2007년까지 남한 정부들이 표방해 온 대북 포용 및 민족 화해 정책의 가장 큰 토대에는 첫째, 공산주의나 주체사상에 대하여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보여 준 우월성에 대한 깊은 확신, 둘째, 북한 경제력과 국력에 대한 남한 경제력과 국력의 압도적 우위가 주는 자신감, 그리고 남한 민주주의 완성을 위해서 요청되는 민족 화해에 대한 전 국민적 열망이 있었다. 북한을 대결과 분쇄 대상으로 보지 않고, 평화적 분단 시기를 과도기로 보낸 후 마침내 거룩하게 껴안을 민족의 일부로 본 것이다. 노태우 정부부터 참여 정부까지 15년간의 대북 정책은 그 성과의 다소에 상관없이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부속 도서라고 규정한 헌법 정신을 충실히 구현하려고 한 정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노태우 정부부터 진행되어 온 남한 정부들의 자신감 넘치는 대북 포용 및 화해 정책을 거부하고 북한의 대 중국 종속화를 초래할지도 모르는 일방적 대결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 지난 4월의 천안함 사건도 그것이 정녕 북한 군부의 소행이라면 그것마저도 이명박 정부 아래서 불거진 남북 적대 분위기라는 맥락에서 일어난 사태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이명박 정부 들어서 전개된 일련의 남북 대결 분위기는 남한만의 책임은 아니다. 남북 대결적 현상 질서를 원하는 국제 정세와 북한의 공세적 핵무장과 선군 정치라는 시대착오적이고 자기 파멸적인 대외 기조도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 다만 이 대통령과 그의 대북 정책 입안자들이 국내 정치적 당략과 소리(小利)에 치중한 근시안적인 안목에 결박되어, 남북문제를 풀어 갈 수 있는 자체의 동력과 주도권을 스스로 상실한 점이 안타깝다. 대북 실용 노선을 표방하고 대통령 선거에 임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금강산 관광 사업 파탄을 방치했고 개성공단 폐쇄를 조장하는 대북 강공책을 구사하고 있다. 스스로 퇴로를 차단한 완매한 이념적 자폐와 반실용 노선을 언제까지 견지할 것인가 심히 염려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7․4 공동선언 이전의 냉전 시대로 국민 의식을 퇴행시키려고 한다는 국내‧외적인 비판을 받고 있다. 권력에 장악된 언론의 일방적 여론 조성으로 지지율이 50%에 육박한다는 선전에 속아 6․2 지방선거에서 대패하고도 반성할 줄 모른다. 사무엘상 8장 18절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 국민은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 때문에 근심하고 탄식하고 있다. 정부와 대통령이 국민의 대북 적대심과 대결 의식을 고취하려는 시도는 양식 있는 여당 의원들의 동의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반북 대결 정책은 정치권력의 공고화를 가져오기는커녕 주가를 요동치게 만들고 여당 내부 결속력을 약화시킴으로써 스스로 레임덕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우리는 시대착오적인 대북 적대 정책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그가 전심으로 평화를 사랑하고 공의를 추구하는 기독교적 기본 교양과 덕목을 속히 회복하기를, 그리고 정치적 영민함과 겸손도 회복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대통령과 정부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겸손히 엎드려 환골탈태를 이루어 남은 임기 동안 소통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남북 갈등으로 원한이 맺힌 사람들 어떻게 신원할 것인가?
우리 사회에는 각기 상이한 이유들도 반북 적대 정책을 지지하는 일련의 사람들과 집단이 있다. 겉으로는 이들이 대북 강경책이나 남북 대결 분위기에 편승해 북한을 분쇄하려는 의지에 있어서는 일치하는 듯 보이지만, 각각의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주목하고 구별할 필요가 있다. 남한 사회는 이들의 원한과 고통을 인정하되 그들이 그것들을 남북 화해 정책과 남북 간의 인적 통합을 위한 동력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첫째, 체험적 반공‧반북주의자들이다. 공산 체제의 재산 압류, 종교 및 언론‧출판 자유의 탄압을 경험한 사람들로서, 대부분 해방 공간과 한국전쟁 시기에 월남한 이주민들이다. 서북, 평안도, 함경도 출신의 월남 기독교인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영락교회와 새문안교회 등에는 이런 체험적 반공주의자들이 많이 정착했다. 이들은 북한 공산 정권이나 주체사상은 반대하지만 북한 동포들을 돕는 일에 가장 앞장서는 사람들이다.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기도의 제단에 눈물을 쏟은 사람들이며, 반북 적대심을 넘어 북한 동포들을 향한 사랑과 화해의 몸짓을 한 번도 거두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둘째, 한국전쟁 경험을 통해 공산당의 반인륜적‧반인도주의적 폭력을 경험한 남한 사람들이다. 공산 침략군에게 가족들이 학살당하거나 납북당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공산당을 일본 제국주의보다 더 증오한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 전개된 대결 시기에 북한에 가족이 납치되거나 나포되어 송환되지 못한 납북자 가족들과, 남북 대결 체제에 희생된 특수 임무 종사자들과 그 가족들이 있다. 정부는 이들을 위로하고 신원해 주어야 하며, 분단 체제의 악몽을 창조적으로 망각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정책을 통해서 이 사람들의 한을 신원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들을 따뜻하게 보살핌으로, 그들이 북한을 증오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남북의 평화 통일 운동을 주도하는 데 기여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장기간 남북 관계가 경색된다면 이런 사람들의 한은 깊어만 갈 것이다. 정부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남북 화해 국면의 주도권을 회복하여야 한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처참한 내전이었으나 전쟁이 끝난 후 남북은 화해했다. 북군의 대표자였던 링컨 대통령은 남군의 지도자 로버트 리(Robert Lee) 장군을 내전 반역자로 처형하지 않았다. 남과 북의 모든 군인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피의 보복전이 없었다. 북한의 잘못을 정말 입증하려면, 북한을 한층 더 높은 체제로 흡수 통합함으로써 그들에게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왜 좋은지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 군사적 응징이나 분쇄는 폭력에 의한 승리일 뿐, 가치와 진리, 덕에 의한 설복과 승리는 아닌 것이다.
셋째, 공산주의의 허구성에 대한 이념적 반감을 가진 자유주의 사상가들이다. 이들은 사유재산권, 직업선택권, 언론‧출판‧집회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신체권 등을 부인하는 공산주의 이념 자체를 악이라고 본다. 이들 중에도 친일 경력을 가리기 위해 반공 투쟁 경력을 내세우는 자들(<조선일보>)도 있지만 대부분 책이나 공산주의 국가 방문 등을 통해서 공산주의를 연구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도 자신의 학문적 주장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려면 남한이 북한보다 훨씬 더 공의롭고 정의롭고 자비로운 나라로 성숙하도록 도우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북한 공산주의나 주체사상에 대한 관념적인 증오나 우월감보다 그것을 압도할 만한 자유주의 정치사상이 남한에 만개하여 북한 사람들을 나중에 그 아래 거룩하게 복속시켜도 될 만큼 남한 사회를 성숙시키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독의 사회적 시장경제는 동독을 흡수 통일할 때 크게 빛을 발했던 헌법적 대강이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1년이 안 되어 동‧서독이 통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서독의 헌법 자체가 동독을 흡수 통일할 수 있을 정도로, 즉 동독이 봐도 아무런 저항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유와 형평의 원리가 잘 조화된 헌법이었기 때문이었다. 1990년 10월 3일 동독의 다섯 개주는 서독연방의 주로 그대로 흡수되었다. 학자들은 만일 당시의 상황에서 통일 헌법을 만들려고 했다면 엄청난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동서독 통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북한 인민민주주의 체제 아래 살던 북한 동포를 거룩하게 흡수할 헌법적인 요강이 우리에게는 준비되어 있는가? 이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이 문제에 답을 찾는 데 앞장서야 하지 않을까?
넷째, 사상적‧정치적 이유로 북한을 이탈한 새터민들이다. 이들은 민족 화해 자체를 반대하기보다는 주체사상으로 각질화되고 폐쇄화된 북한의 정체를 반대한다. 남한은 이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잘 적응하도록 도와 후일에 남북 화해 운동에 견인차로 활약하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 이들은 언뜻 보기에는 반북주의자로 보이나, 실은 북한 동포에 대한 사랑, 북한에 대해 애정이 깊은 사람들이다. 남북 두 사회를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이들은 후일에 있게 될 남북 간의 인적 통합을 촉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남한 사회가 이들에게 친절과 사심 없는 동포애를 발휘해 주어야 북한 동포들의 대남 인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극단적 자본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로서 미국의 네오콘식 국가 정책에 전폭 지지를 보내는 숭미주의자들이다. 이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학식이 많지도 않고, 공산당 잔혹경험도 거의 없지만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신성불가침의 현실 질서라고 생각하기에, 북한과 통일을 전제로 협상과 화해를 시도하는 것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들이 이해하는 자유민주주의는 고전적인 의미의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기업의 거의 무제한적 자유를 주창하는 자유민주주의다. 우리나라 헌법이 말하는 자유는 국가 개념보다 상위에 있는 ‘개인’의 자유다. 그것은 ‘국가에 귀속된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은 이전 시기의 대북 포용‧화해 정책을 “일방적 퍼주기”라고 비판하고, 심지어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북한 핵무기 제조를 결과적으로 도운 현금지원을 했으며(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주민을 위한 식량 지원은 군량미가 되고, 비료는 무기가 된다고 본다. 하지만 많은 남한 시민들은 북한 체제의 정치적 억압성과 경제적 비능률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동포들을 향한 대북 화해 정책을 지지한다. 북한 동포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자유와 민족애를 맛보게 하기 위해서는, 실효적으로 북한 동포들을 통치하는 북한 정권과의 협상과 거래는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가 출범 초기에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위해 싱가포르 등지에서 북한 정권 담당자와 협상을 벌였다는 신문 보도를 접하고 국민과 야당도 환영을 했던 것이다.
체험적 반공주의자 추양 한경직 목사가 개척한 남북 화해와 민족 통일의 길
올해는 추양 한경직 목사의 소천 10주기이기도 하다. 추양은 어떻게 한국교회와 자유주의 체제의 남한 사회가 기독교 신앙의 대의 안에서 대북 적대심을 초극할 수 있을 것인가를 보여 준다. 한경직 목사 기념사업회가 발간한 <한경직 목사 설교 전집>은 모두 18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1946년부터 1992년까지 행한 1145편의 설교들을 담고 있다. 한경직 목사의 설교에는 그가 경험한 조국과 세계 교회의 상황에 대한 정직한 대면과 숙고어린 성찰이 마디마디에 배어 있다. 특히 복음 입국적 기상과 예언자적 호소는 아주 빈번하게 등장한다. 1권에 있는 1946년 8월 16일 베다니교회 예배의 설교인, ‘상부상조의 정신’은 아주 강한 사회선교적 메시지로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기독교적 자발성에 입각한 사회민주주의적 이상 사회라는 틀 안에서 제시한다. 그는 초대교회와 교부 시대, 교회사의 전통에 나타난 강력한 형제 사랑 정신과 실천을 논거로 들어 기독교적 이상에 입각한 대한민국 건설을 주창한다. 그는 교회 구성원들안에 실현된 유무상통이 일반 사회로 확장된 상부상조 정신으로 확장될 때 이상적인 국가가 건설될 것이라고 믿는다(3~9쪽). 12권 1970년 8월 23일 주일 낮 예배, ‘바울의 설교와 벨릭스’(행 24:24~27; 롬 13:11~14)에서 한 목사는 노동자의 편을 드는 논지의 설교를 한다. “노사 관계도 의가 있어야 합니다. 부익부, 빈익빈의, 이 빈부의 격차가 심하여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노사 관계의 의가 결여되는 까닭입니다. 다시 말하면 불의한 일을 행하는 사람이 있는 까닭입니다”(164쪽).
1권의 1946년 베다니교회 설교, ‘기독교와 정치’(롬 13:1~7, 23~30쪽)에서 한 목사는 무정부주의, 사회주의와 기독교의 정치사상을 비교하며, 공의에 기초하여 자유․평등․박애가 실행되는 국가를 만드는 데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할 의무를 강조한다(29쪽). 그는 십자가를 지고 노동운동과 정치 운동(30쪽)에 참여할 것을 촉구한다. 유물론과 세속주의 등과 대면하면서 철저한 사상 교화 운동에 동참하여 대한민국을 기독교적 민주주의위에 세우자고 호소한다. 1947년 1월 12일 ‘건국과 기독교’(슥 4:1~9)라는 설교에서 한 목사는 분단 체제는 완전한 건국이 아니라고 천명하며 오로지 오순절적 다락방 기도를 통해 내습하는 성령의 권능으로만 한국교회가 부흥되고 조국 대한민국이 융성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1947년 ‘기독교와 공산주의’(마 4:1~11)라는 설교에서 그는 기독교의 정치적 이상에 관하여 놀랄 만한 주장을 한다. “사회사상이란 안경을 통하여 기독교를 생각해 보면 기독교의 동정은 자본계급보다 오히려 노농 편에 있습니다. 그것은 4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행적을 보아서 혹은 성경의 교훈을 보아서 혹은 초대교회의 유무상통제도를 비롯하여 수도원 같은 제도를 만들며 내려온 기독교의 역사를 보아서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독재가 없는 공산사회를 이루려면 그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인민 각자가 사랑하면 가능합니다. 가정은 일종의 공산사회입니다. 또한 각자가 지선하면 됩니다. 수도원이나 원시 기독교가 그러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독재가 있어야 공산사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91쪽).
한 목사의 이런 치열한 사회의식은 그의 생애 내내 그의 인격적 접근과 제휴하여 광범위한 목회적‧사회적 영향력을 발산했다. 그의 생애의 마지막 사역은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에 대한 쌀 나누기였다. 정부보다 먼저 한국교회의 양심을 깨워 굶주리는 북한 동포에 대한 목자적 책임감을 고취한 것이다. 한경직 목사에게는 본회퍼적인 기상이나 주기철 같은 영적 패기는 보이지 않았으며 권력자의 강압에 무너지는 소시민적 요소가 있었다. 자신도 회고록적인 글들에서 자주 자신의 굳세지 못한 신앙 의기를 탓한다. 이런 연약함 때문에 그는 영적 지도자로서의 명예 손상을 입는 자리까지 나아갔으나, 그럼에도 그 일로 어떤 권력자의 호의를 누리거나 특혜를 향유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연약함은 그의 영적 단련 과정이었다. 그가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고 반북적으로 보이는 활동을 한 것은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었으나 기실 그것은 북한 동포에 대한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북한 동포들에게 보내는 성탄 메시지나 신년 메시지 설교를 보면 그는 북한 공산정권을 반대했을 뿐, 북한 동포에 대한 애끊는 목자의 마음을 한시도 버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한 목사는 분단 체제 하의 두 조국이 각각 지향했던 정치이념과 체제에 대하여 거의 등거리적인 비판을 가했다. 신앙과 신학이라는 초월적 준거에 입각해 그는 한국 기독교가 직면한 양대 강적, 즉 가나안 원주민 같은 숙적은 북한의 공산주의, 남한의 배금, 배물, 속물주의 즉 물신숭배주의라고 각각 규정했다. 북한 공산당은 폭력적 아낙 자손이요, 남한의 비열한 속물주의적 자본주의는 블레셋 족속이라고 보았다(1956년 8월 19일 주일 낮 예배, ‘삼천리 가나안 복지’[신 8:1~10]). 한 목사의 사회적 지향이 강한 설교에는 거의 어김없이 유물론적 공산주의와 속물주의적, 몰도덕적인 배금, 배물주의가 동시에 탄핵되고 비판당하고 있다(1957년 1월 20일 주일 낮 예배, ‘백골에 새 생명’[겔 37:1~10]). 그는 공산주의에 대한 가장 좋은 비판은 기독교적 협동과 연대적 사랑과 윤리에 입각한 성숙한 자유민주주의 사회 건설이라고 본 것이다. 무조건적인 반북‧적대적 태도가 아니라 민족 분단을 아주 고상한 기독교적 민주주의, 상부상조의 기독교적 정치로 해소시켜 공산주의를 발전적으로 흡수하려는 신앙적 기개였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남한에게, 적어도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 평화의 복음을 신봉하는 교회에게, 북한은 전쟁으로 응징해야 하거나 분쇄해야 할 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형제요, 동포다. 자유민주주의 남한이 북한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자유의 가치를 과시하는 길이다. 교회가 북한의 전체주의적 공산주의나 주체사상을 이기는 길은 복음적 자기희생의 원리를 삶과 문화로 구현하는 아주 품격 높은 기독교 신앙 실천의 길이다. 전쟁이나 군사적 응징을 통해 북한을 멸망시켜 통일하려고 하는 것은 민족의 멸망을 초래하는 넓은 길이지만, 고조되어 가는 남북 대결 시대에 남북 화해를 외치고 희생과 포용을 외치는 것은 찾는 이가 적은 좁은 길이다. 그러나 그것은 장차 우리 겨레가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으로 하나 된 통일 조국을 누리게 될 때, 남북 화해를 위해 분투했던 모든 노력들은 정당하게 평가받을 것이다.
김회권 본지 발행인 숭실대 기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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