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후보님, 안녕하세요?
제가 한번도 맞대면 한 적이 없는 김진표 후보님께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같은 수원에 살고, 어떤 때엔 같은 당에 몸담기도 했었지만 말입니다.
김진표 후보님을 뵈면 유시민 후보님과는 외모면에서부터 느껴지는 감이 다릅니다. 두 번의 부총리를 지내신 분 같지 않게 시골 아버지나 시골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을 풍기십니다. 토론회에 나오셔서 토론을 하실 때는 결코 흥분한 적이 없으시죠. 말씀도 차분 차분, 조곤 조곤하셔서-장점이면서도 단점이십니다. 듣는 사람을 편안하게는 하지만 졸리거나 무료하기도 하고 내용이 귀에 쏙쏙 들어오지 않으니까요-토론 상대의 감정도 건드리지 않지요. 무게감도 느껴지고 경솔하거나 가볍다는 느낌은 전혀 안들고 왠지 신뢰감도 주시는 분이십니다. 제 개인적인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점잖다'입니다.
이런 김진표 후보님이 제게 가장 인상적인 모습으로 기억되는 일이 하나 있답니다. 2007년 대선 상황이었죠. 그 당시에 제가 썼던 글들이 생각나 찾아보았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지난 역사를 통해 배울 것은 배워야 하니까요.
①http://usimin.co.kr/2030/bbs/tb.php/ANT_T200/116347
②http://usimin.co.kr/2030/bbs/tb.php/ANT_T200/133839
이전투구 우여곡절 끝에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가 정동영으로 정해졌고, 비록 중간에 사퇴는 했지만 같은 예비경선 후보였던 유시민님은 '쫓기다시피'(②번글 참고) 경북 쪽 선거대책위원장이 되어 나름 최선을 다하시던 때였습니다.
어느 날 수원역에 정동영 후보가 유세를 왔었습니다. 저 또한 당시는 유시민님 따라 대통합민주신당의 당원이었었기에 머리 하나는 보태주고자 유세 장소에 갔었습니다. 저도 유시민님처럼 나름 good looser가 되기 위해 최소한의 당원 자세는 보이려고 제 일터 앞에 후보 없이 선거운동하는 차량이 왔을 땐 음료수와 함께 응원한다는 쪽지를 전해주기도 했었지요. '유시민 지지자'라는 이름으로요. 당연히 투표장에 가서 정동영 후보를 찍었고요.(글을 너무 돌리는 것 같아 다지 제자리 찾아갑니다.)
그 유세장에서 있었던 일은 이제 생생하게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정동영 후보가, 기차 타고 파리까지 가자 하던 내용만 생각나고, 깝쳐대던 정 모의원도 생각 날 듯 말 듯 한데 인상적인 일로 각인된 것은 바로 김진표 후보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점잖은 분'으로만 비춰진 후보님이 그 유세장에서 젊은 의원들, 당원들과 함께 율동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솔직히 후보님은 '몸치'에 가까운 분 맞으시죠? 제가 본 바로는 그 때 신나게 율동을 한 사람들 중 후보님의 연세가 가장 많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제겐 참 경이롭게 느껴졌답니다. 그리고 후보님의 '정체성'이랄까 '성향'이랄까 당내 '위치'가 어떤지 궁금하기도 했었답니다. '참여정부 내각에서 노대통령님을 모셨던 분, 그리고 왠지 무게감과 신뢰감을 주시던 분이 정동영 후보를 위해 유세장을 쫓아다니면서 노구에(죄송~) 저런 율동까지 따라하시는 건 뭘까? 정말 저런 선거 운동이 즐거우신 걸까?' 저는 그 때 아마 후보님 얼굴 표정과 율동만을 바라봤었을 겁니다. 가끔은 무표정하게, 무덤덤하게 기계처럼 움직이는 것 같기도 했고, 옆사람과 눈이 마주칠 때는 예의 사람 좋은 미소도 짓는 듯 했었지요. 지금 후보님의 프로필을 찾아보니 그 당시는 회갑이셨더군요. 젊은 열정을 가지고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하는데 저는 여러 의미로 나름 심사가 복잡해서 그 장면을 인상깊게 봤었나 봅니다.
후보님이 그렇게 열심히 동반 유세 다니며 애쓰셨지만 결과는 어땠었나요? 당시에 이명박 후보가 월등히 표가 많이 나와서 정동영 후보를 이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참고로 다음 표를 보겠습니다.
| |
15대 |
16대 |
17대 |
| 투표율 |
80.7% |
70.8% |
63.0% |
| 투표인수 |
26,042,633 |
24,784,963 |
23,732,854 |
| 총투표인수 |
32,290,416 |
34,991,529 |
37,653,518 |
| 당선자 득표율 |
김대중 39.7% |
노무현 48.9% |
이명박 48.7% |
| 당선자 득표수* |
10,326,275 |
12,014,277 |
11,492,389 |
| 2등 득표율 |
이회창 38.2% |
이회창 46.6% |
정동영 26.1% |
| 2등 득표수* |
9,935,718 |
11,443,297 |
6,174,681 |
| 기타 |
이인제 18.9% |
|
|
역대 대통령 선거 결과 표분석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단순한 결과와 현상만을 보자는 거죠. 잘은 모르지만 최근의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1위와 2위 표 차이가 17대 선거만큼 난 적이 있었을까요? 김진표 후보님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시의 대선 후보를 뽑는 경선 과정이 생각나십니까? 제가 링크해둔 ①번글만 봐도 짐작이 가실 겁니다. 치사하고 유치했던 일은 저것 말고도 많았지만 생략합니다. 당시 정동영 후보는 정정당당하고 공정한 경쟁을 치르지 않았습니다. 해서 각 예비후보와 그들의 지지자들로부터 많은 비난과 지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도 '아름다운 경선'이 아닌 부끄러운 진흙탕 싸움으로 비춰지게 했었습니다. 2002년 대선의 아름다운 경선이 바람을 일으킨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었고, 그 당시에 그 후보가 끝까지 당당하게 경선을 치렀던 모습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유시민님이 패장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므로, 함께 하는 '굿 루저'가 되고자 투표를 했고 정동영 후보에게 표를 줬습니다만, 공정하고 정당하지 못한 경선 과정에 수긍하지 못하고 승복하지 못한 수많은, 약 500만명의 개혁세력 지지자들은 투표를 하러 가지 않았던 겁니다.
2010년 현재, 진보개혁 세력 뿐 아니라 전 국민이 관심 갖고 지켜보는 '경선'이 있습니다. 모래판 씨름의 결과론적 승부는 눈깜짝할 사이에 끝나는 것이지만, 실제의 승부는 시작 호각도 불기 전의 샅바 싸움부터 시작되는 것처럼 지금 경선 룰을 정하기 위한 지리한 협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켜보는 양 후보쪽 지지자들 뿐 아니라 연대를 바라는 모든 국민이 답답해하고 불안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김진표 후보님과 유시민 후보님이 SBS에서 맞토론 하실 때 보니 김 후보님은 많은 것을 당에 맡겨 놓고 후보 본인은 빠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그런 뉘앙스를 많이 표현하셨고요. 후보님은 국회의원도 사퇴하시고 배수진을 치셨으니 당연히 단일화 후보가 되어 도지사가 되어야 하시겠지요. 그러나 당의 입장을 헤아리기 전에 본인 스스로 어떤 승리자가 되고 싶은지 여쭙고 싶습니다. 먼 훗날, 오늘을 생각하며 '그 때 참 멋진 승부를 펼쳤었지. 내 생애 최고의 멋진 승부였어.' 라고 회상하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그 때 비록 이기긴 했지만 유시민한테 미안한 맘이 드네. 사실 그 경쟁은 페어 플레이라고 할 수 없었어.'라고 회상하고 싶으신가요?
그 토론에서 김 후보님은, 연대 협상 결렬 후 유 후보님이 제안한 새로운 룰에 대해 실무진들이 하는 말이 50:50의 승률이 될 거란 말씀을 하시더군요. 저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두 사람이 1:1로 경쟁한다고 하면 이론적으로 각자의 승률은 50%가 되는 거잖아요. 이렇게 되는 것이 서로가 비겁하지 않고 정정당당히 싸우는 싸움의 기본 아닐까요? 그러나 실제로는 유 후보님이 제안한 방식 역시 김 후보님에게 유리한 게 맞을 겁니다. 어느 정도 합리성도 띄면서 민주당의 당세까지 반영할 수 있는 안을 냈다고 유 후보님은 말씀하셨거든요. 그런데 왜 그대로 받을 수가 없는 걸까요? 자꾸 다른 말이 나오는 걸 보면 민주당은 '유시민이 필패할 방식' 외엔 합의할 수 없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이것이 제 1 야당이며 진보개혁 세력의 맏형이라 할 수 있는 민주당이 취할 자세로서 부끄러움은 없는지 당사자인 김 후보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또 한가지, 저한테는 이상하게 들리는 말이 있습니다. "민주당의 당세를 인정해 달라"는 손학규 전 대표의 말씀입니다. 지금 왜 연대를 하자, 단일화를 하자고 하고 있죠? 진보개혁 세력을 다 아울러도 한나라당을 이길까 말까 하는 경기도지사 선거 아닌가요? 그나마 연대해서 한명이 1:1로 붙을 때라야만 승산이 있고 기대해볼만하다는 거잖아요. 민주당 당세가 아무리 도토리 키재기 같은 여러 야당들 가운데 우뚝 솟았다 한들 민주당 혼자 힘으로 도지사 당선 가능한가요? 그러면 연대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도 않았겠지요. 어차피 각개 전투로는 승률이 0%입니다. 그런데 왜 민주당의 당세를 인정해줘야 하나요?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다면 어느 당에게 더 유리한 룰을 정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이 얼마나 비겁한 행위란 말입니까? 이렇게 하는데 타 후보의 지지자들이, 부동층의 국민들이 감동할 것 같습니까? '감동'이 있어야 선거판에 '바람'이 붑니다. 2002년 '노무현의 눈물' 같은, 희망 돼지 키우는 수많은 개미의 움직임 같은.
김진표 후보님의 지지율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여론 조사는 어차피 참고용일 뿐입니다. 추세나 경향을 볼 뿐이란 거죠. 운 좋게 전화 통화 되어 운 좋게 대답 받은 것 중에 나오는 지지율이란 겁니다. 유 후보님에 비해 지지율이 많이 나오는 연령대에서 김문수 지사를 이긴다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어차피 똑같이 투표장에 나올 사람들이고 어차피 찍을 사람 찍을 연령대에서 유시민 후보를 이긴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유 후보 지지자들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달라고요? 네, 네, 그렇습니다. 서로의 부족한 면을 채워 MB 정권을 STOP 시키기 위해 연대를 하고 단일화를 하자는 것 맞습니다. 그럴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경쟁 룰에 의해 정정당당한 승부를 펼쳐 이기는 후보가 되어야 합니다. 2007년 대선의 실패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역사에 또한번 죄인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김진표 후보님한테 '양보'하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우리도 결과를 알 수 없고 김 후보님 쪽도 알 수 없는 멋지고 당당한 경쟁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노무현 정신'을 자꾸 들먹이는데, 노무현 대통령님의 영매(靈媒)가 되어 자서전을 쓰신 유시민 후보님은 "노무현 정신은 사생취의(捨生取義)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미 유시민 후보님께 '사생취의'가 필요하다고 글로 의견을 냈지만 김진표 후보님께도 그렇게 해주시는 게 본인을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하며 부탁드립니다. 눈 앞의 이익보다 멀리 있는 이익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각본 없는 드라마야말로 가장 큰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너무 많은 계산을 하셔서 큰 일을 그르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투표 등록일까지 열흘 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겠죠. 오늘 당장 합의안이 나올 수도 있고, 진통을 겪으며 등록 전날까지 갈 수도 있을 테니까요. 아무쪼록 본인의 의지와 양심을 잘 살피시어 MB STOP을 간절히 바라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결단을 내려주시길 감히 요청드립니다. 건강하시고 선전하시기 바랍니다.
2010년 5월 3일
유시민 지지자 사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