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와 시민광장, 각 비교 사이트에 따르면 현재 전자는 정치웹진 1위 후자는 정치인 팬클럽 1위 사이트다. 인상적인 것은 시민광장은 유시민 팬클럽인데도 가끔 유시민에게 도움 안되는 일을 하기도 하고 서프는 특정 팬클럽 사이트가 아닌데도 유시민이라면 열광한다. 고로 내게는 둘다 유빠 사이트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그동안 절친이 된 두 사이트를 보며 가졌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노짱과 생이별기
지난 3년간 서프를 멀리 해왔다. 처음 2년 너무 바빠서 그리고 남는 시간에 주로 네이년 댓글 알바 짓을 했다. 나중 1년은 알다시피 견디기 힘든 분노와 생채기에 인터넷 자체를 멀리 하고자 했다. 최근 인터넷 블로그에서 우연히 개곰님의 글을 읽다 서프를 찾았다. 그 분의 글을 읽다가 이렇게 좋은 글을 읽었는데 나도 보시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서프를 찾기 시작했다. 이 보시?란 개념은 서프가 갖고 있는 특별한 스토리텔링이다. 객들은 열심히 글 쓰고 눈팅들은 댓글이나 후원금으로 보시한다. 어떤 객이 열심히 글 쓰는걸 보면 미안해서라도 내가 아는바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곤 했다. 그렇게 서프는 유지해 왔다.
재작년 봄 미친소 반대 촛불집회가 이제 시작한 이명박 정부를 패닉 상태에 빠뜨렸던 어느 날 중국에서 귀국한 이명박은 촛불집회의 배후를 밝히라고 책상을 탕탕 쳤다. 시민들이 주도하는 촛불에 배후가 있을 리가 없지만 천안함 사건이 어뢰여야만 하듯 촛불도 배후가 있어야만 했다. 얼마 후 특별한? 일을 전담하는 국세청 조사 4국이 노대통령을 도와주었거나 나름 인연을 맺었던 기업들에 대해 세무조사를 착수했다고 전언을 통해 알았다. 무언가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시민광장 대구모임에서는 수성(을)에 출마해 낙선한 유시민 후보를 위해 작은 체육대회를 열었다. 선거를 치루며 대구 회원들과 쌓인 의리도 있어서 부천의 회원 몇분과 내려갔다. 본 대회가 끝나고 막걸리가 한 사발 돌자 대구 회원 몇 분들이 유시민 후보를 앞에 두고 성토에 가까울 정도로 지청구를 했다. 왜 촛불집회에 대해 아무 말씀이 없냐는 것이었다. 내심 민노당 민주당 스타 정치인들이 촛불집회를 활용해 뜨고 있는데 왜 그렇지 못하냐는 안타까움의 발로였다.
한참 회원들의 말을 경청하던 유시민은 “이명박 정부가 촛불집회를 관리하는 차원을 넘어 국민의 기본권을 탄압하는 수준으로 간다면 좌시하지 않겠지만 바로 전임 정부의 장관이 현정부의 정책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도의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낙선하고도 활짝 웃으며 인사하러 다니던 그도 그 날만큼은 낯빛이 많이 어두워 보였다. 아마 그도 그 전언들을 들었으리라.
어처구니 없었던 대통령 기록물 사건을 지켜보며 곧 야만의 권력의 날카로운 발톱이 시시각각 노짱을 더욱 옥조여 오리라 우린 충분히 예감할 수 있었다. 무섭고 괴로운 시간들이었다. 당시 난 아주 가끔 진알시 활동에 나가곤 했는데 한겨레 경향의 지면을 보고 더욱 공포감을 느꼈다.
그 시각 시민광장은 별 내용도 아닌 것으로 치도곤 하며 쌈질을 하고 있었다. 노사모는 상태가 더 나빴다. 노짱은 그동안 방문객이나 사사세를 통해 서프와 시민광장을 직접 보신다고 수차례 밝히 바 있었다. 세상에 온갖 더러운 칼날들이 다 그를 겨냥하고 있을 그 시각, 밤 늦게 탁자에 홀로 앉아 모니터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들여다 보며 우리 대장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민들레 홀씨 같은 가는 희망이나 가지셨을까. 작년 5월 23일 아침 단잠을 깨운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비보를 난 재확인하지 않았다.
정치(당)가 서프를 주목해야 할 이유?
어떤 글이 쓰고 싶어졌다. 나 자신도 그 이유를 몰랐다. 노무현 사후 자서전 '운명이다' 에필로그를 보다 문득 그 이유를 발견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2009년 5월 23일 아침 우리가 본 것은 '전직 대통령'의 서거가 아니라 꿈 많았던 청년의 죽음인지도 모른다. 그는 홀로 그 뜨거웠던 6월의 기억과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을 안고 씩씩하게 살았다. 잃어버린 청춘의 꿈과 기억을 시민들의 마음속에 되살려 냈기에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이던 시절에도 대통령을 마친 후에도 그는 꿈을 안고 사는 청년이었다"(유시민)
내게 그 분과 같이 청춘의 꿈과 기억을 계속 꾸게 만든 벗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이 '서프라이즈'란 친구다. 노무현이 맺어준 아름다운 인연이라 늘 생각했다. 사귄지 8여년이 되니 절친이다. 이 친구도 세월이 흐르니 자연스레 나름 史가 쌓였다. 저마다 서프에 대한 평판은 다르다.
열린우리당 창당을 준비할 때 인터넷팀 담당자 최모 국장이 이런 질의를 해왔다. '당 게시판을 서프처럼 활발하게 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누가 자신이 만들 수 있다고 한다면 사기꾼이다. 수개의 아류 웹진처럼 형식이야 빌리면 그만이지만 안면이 트이고 어떤 보직 또는 이해 관계에 둘러 쌓인 당의 게시판이 서프처럼 활발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프 활동을 겸하는 시민광장과 노사모도 비슷한 이유로 게시판 활성화가 잘안된다. 만약 어떤 당이나 오프를 겸하는 사이트의 게시판이 역량 이상으로 아주 활발하고 잘된다면 서로 치도곤 하면서 싸우는 상태이거나 곧 싸움박질 하기 직전인 상태로 진단해도 무방하다. 오프 겸용 사이트 특히 당 게시판은 일종의 명절날 밥상으로 비유하면 적절할듯 하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식구끼리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분위기 화기애애하다 돈문제, 재산문제, 집안 내력까지 나오면 밥상 팍삭 깨진다. 특히 식구가 많을수록 더 그렇다.
서프도 초중기에 오프라인 모임이 매우 활발했다. 어떤 시점에서 일시에 오프 모임이 잦아들었다. 잦은 오프 모임이 활발한 소통에 별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소통, 정체성 이런 단어를 글로 쓰는 것을 필자는 극히 싫어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 부득이 언급할 수 밖에 없다. 필자가 보는 바람직한 소통이란 서로 알 것은 알고 모를 것은 모르고 덮을 것은 덮는 것, 이게 깨지면 소통이 밥통이 되는 우를 범하기 쉽다. 오프 겸용 사이트에서 좋은 소통을 기대하기는 이러한 이유로 쉽지 않다. 이에 반해 서프가 가진 장점은 비교적 자유로운 입장에서 할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해와 갈등이 특질일 수 밖에 없는 정치(당)가 서프를 주목해야할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서프를 어떤 측면에서 과대평가 또는 오해하는 분들도 있었다. 제가 활동하는 유시민 팬클럽 중 가장 규모가 큰 시민광장에서 어떤 분들이 그랬다. 그 분들은 많은 방문자 수, 수많이 쌓이는 글들로 인해 시민광장을 서프처럼 만들면 거대한 힘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착각이었다. 서프는 조직이 아니다. 매시기 공중전에서 통할지 몰라도 어떤 시기에 결정적 승리를 도모할 수 있는 결정체는 아니다. 서프 10개가 있어도 유시민에게 결정적? 도움은 주지 못한다. 이 결정적이란 말이 중요한데 이는 차후에 기술하겠다.
한 세대가 되어 버린 불멸의 10%
퇴임식 날 잰걸음으로 봉하마을에 도착했을 때 노짱은 특유의 시원한 목소리로 당당히 말했다. “여러분 저 대통령 잘했지요” “야아 기분 좋다” “야아 기분 좋다” 이제 다 내려놓으시고 촌부로서 시민으로서 행복한 여생을 보내시길 바랬다.
진영 한 켠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생각했다. 한 시대가 이렇게 마감되는구나. 노짱과 함께 보낸 추억을 벗 삼아 한평생 살 것이고, 기대하기 어렵지만 이미 대통령이 되어버린 이명박이 그저 무난하게 5년을 넘기기를 바랬다. 이렇게 다 정리 하는건가.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마음이 진영 마을로 자꾸 쏟아져 흘깃흘깃 돌아보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노짱님 노짱님 행복하세요’
돌이켜 보면 우리 국민들은 노짱에게 큰 선물을 두번 주었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던 대선 승리와 퇴임식 직전 지지율 35%. 전임 김빵삼 3%, 김대중 대통령 6%(전두환 노태우는 조사조차 없었다)에 비하면 엄청난 수치였고, 다른 나라를 보더라도 대통령제 하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높은 지지율이다.
노짱은 임기 내내, 앞서 후보 시절에도 지지율 대폭락을 겪어야만 했다. 이는 절대적인 자기 텃밭을 갖고 있는 수구냉전세력에 비해 우리 세력의 수준?과도 같다. 당장 서프만 돌아봐도 유시민이 단일화를 하던 독자 출마를 하던, 어떤 선택을 해도 곧 떠난다고 말할 이들이 나올 것이다. 약해지고 연대하고 약해지고 연대하고... 때문에 우리는 치이고 채이고 쉽게 모욕 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최소 10%는 있었다. 한나라당이 아무리 전쟁을 벌인다고 협박해도 지지를 보내는 35%는 궁금하지 않는데 조중동은 물론 이 땅의 모든 미디어가 노짱을 몰아칠 때, 하여 동네 개새끼가 죽어도 다 노무현 탓이라는 말이 유행어할 때도 변함없이 성원을 보내주는 이들 10%가 늘 궁금했다.
정몽준과의 단일화 과정에서 혹시 여론조사 기관에서 전화가 올까봐 고향에 내려갔던 어떤 이마무개, 리멤버 1219 여의도 칼바람에도 신나게 춤췄던 김아무개, 탄핵의 거리, 광화문에서 김밥, 이불을 나눠 챙겨 먹으며 탄핵무효를 외치다 만나 결혼까지 골인한 박과 장 커플. 부산서면에서 바닥이 춥다고 바로 현장에서 중고 옷을 구입해 바닥에 깔아줬던 어떤 조아무개. 자기 일도 아닌데 노짱의 북한 방문 때 새벽부터 달려 나와 태극기를 흔들던 신씨 이씨 오씨 최씨들. 서거 때 6일낮 6일밤을 지새우고도 광화문 현장에서 노란 풍선을 날리던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사안마다 등락이야 다소 있겠지만 이 500여만명은 2007년 대선에서 대거 기권한 표가 500만, 작년 노짱 조문에 참여한 국민들 500여만명이다. 이 수치는 국민참여당 태동에 중요한 근거가 되었으리라 짐작한다. 시작도 안한 참여당이 출범한다는 소식을 전하자마자 10%의 지지율을 보였다. 곁살을 덧붙이면 만약 참여당이 현재 여론조사를 돌려 유시민의 지지율은 그대로인데 당이 10%보다 훨씬 낮은 지지율을 받고 있다면 홍보를 잘못해서가 아닌 거센 단일화 압박이라고 진단하는게 옳다.
노짱과 유시민에 대해 비판적인 한 선배 기자도 이 10%에 대해서만큼은 인정했다. 이른바 ‘세대론’인데 사회학적으로 ‘경험’ ‘가치’ ‘전망’ ‘지향’을 공유하는 한 세대는 30년 주기로 찾아온다. 또한 한 세대는 이 때의 경험과 가치를 넘나들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뼈 속에 새긴 채 살아간다. 6.25를 겪은 우리 아버지 세대가 아무리 합리적으로 설득해도 ‘반공주의’의 사슬을 못 넘고, 동 세대가 피 흘려 민주주의를 쟁취한 386 세대는 ‘민주주의’란 가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를 포함하는 우리(10%)도 죽을 때까지 노무현이란 사람, '노무현'이란 가치를 벗을 수 없다.
노짱을 세우는데 서프와 시민광장은 큰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적지않게 고초를 겪고 마음 고생을 많이 한 이들이 있었다. 그 헌신 덕분에 다음 30년간 우리가 살아 가야할 이정표와 고민할 거리를 이 땅에 내린 것이다. 이 글을 통해 정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기죽지 말고 위축되지 말고 잘 사시라. 이 말은 나 자신에게 던지는 당부이기도 하다.
좀 짧게 쓸려고 했는데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이 후에 서프史와 관련해 ‘논객 박봉팔을 찾아서’(사실 이 글을 제일 쓰고 싶었어요. 이 양반 빼고 서프와 노무현 세대를 말하기 힘들지요.) ‘유시민의 현재 상황’(시민광장이 왜 중요한가)에 대해 쓸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