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의 60년 장기 집권으로 수구들의 카르텔이 형성된 이래 외척 중심으로 왕 조차도 좌지우지 하던 그들은 자기들의 권력과 기득권을 위해서 끊임없이 줄 세우기를 강요하여 왔고 국민들을 통제의 대상으로 여겨 친일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국민들을 핍박하는 길을 걷는다. 덕분에 조선은 망한 후에 부흥운동 한 번 일어나지 않은 비운의 나라로 기록되어진다.
소설 속의 장발장은 먹을 것이 없는 나라에서 빵을 훔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회가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고려장이 있었다. 한 끼 먹을거리가 없어 새로 태어나는 손자를 위해 기꺼이 산 속으로 실려 간 슬픈 역사 속 이야기이다. 수구들의 제놈들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철저한 줄세우기 통제의 역사 속에서도 장강의 앞 물결은 뒷 물결에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진리에 순응하며 살아온 민족이다.
국민학교 시절, 당시에는 국민학교였다. 개인 무전기가 있어 누구든지 이야기 하고 싶을 때 이야기 할 수 있다면 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 꿈은 한 세대(30년)도 지나지 않아 이루어졌다. 집 한 채 값에 해당한다는 백색, 청색전화가 있었고 전시에는 무전기로 변신한다는 비상용 무전기가 공중전화라는 이름으로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며 거리에 설치되기 시작하였다. 삐삐가 나왔고 씨티폰이 채 자리를 잡기도 전에 1983년 탱크라고 불리는 벽돌폰이 선보인다. 개인의 꿈보다 과학이 앞서 달려 나가는 시대를 정신없이 달리고 있다.
전화기의 진화는 어디까지 일까?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고 있다. 안테나, 벨소리, 디스플레이, 회로기판, 소재, 디자인, 카메라, 메모리, 컴퓨터까지.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인 것은 이명박뿐인 줄 알았는데... 생산성 향상이라는 명분으로 설비투자를 엄청하여 노동자들을 공장에서 필요 없는 존재로 전락시켜 노조의 힘과 파업의 힘을 원초적으로 봉쇄시켜버리는데 권력을 집중시킨다. 사회적 논의 한 번 없이 비정규직이 노동자들을 기업에 예속시켜 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월급제까지도 년봉제가 아닌 주급제로 거꾸로 달려 노동자들을 더욱 옭아 메려고 하는 음모가 두렵다.
국가경쟁력 2위에서 순식간에 16위로. 정통부가 해체되고 과학기술부가 교과부로 흡수되어버렸다. 공돌이 공순이로 몰아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삽질 시대로의 회귀. 언론, 환경, 개인 매력도는 세계 156위. 국민들에게 허구헌날 오해라고 사기치던 버릇은 국제시장에서도 변명이라고 한다는 것이 오해란다. 웃자. 역사를, 시대를, 양심을, 민주를, 교육을, 경제까지도 모든 것을,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으로 거꾸로 돌려버리고 있을 때 아이폰이라는 괴물이 세계를 휩쓸어 버린다.
뒤늦게 삼성은 태극기를 내세워 애국심에 매달리려고 한다. “늦었어”라고 외치는 코메디의 한 코너가 생각난다. 사상최대의 흑자를 내고 기업들이 앞장서서 경제가 살아난다고 하는데 실업율은 넘쳐나고 노동자들은 지금도 거리로 내몰린다. 파킹맨이 되고 엘리베이트걸로 인권이 전락된다. 노동자들을 때려잡으며 줄세우기 제도의 앞잽이가 되어 국가경쟁력을 뒤로 돌리면서 아무리 애국심을 이야기 하여도 이미 국민들은 차라리 삼성이 망하는 것이 중소기업이 살아나고 애국인 것을 먼저 알고 있다.
깨어있는 시민은 조중동을 보지 않는 것을 넘어 혐오하고 있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삼성 혐오가 두렵지 않은가? 대우가 공중분해 되어도 눈도 깜짝하지 않은 국민들이다. 조중동을 보고 있는 사람들과 삼성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똑같은 취급을 당하기 전에 노동자들을 먼저 생각하는 기업이 되고 줄세우기가 아닌 창의력과 개성을 존중하는 기업이 되는 것이 먼저고 권력이 아닌 국민들과 함께하는 것이 먼저다.
1930년대생. 천명을 알고, 이순, 고희를 지나 인생 80을 바라보는 나이. 그 분들의 세월의 지혜를 배우고 싶다. 하지만 삽질시대에서 정보시대, 레저시대, 이야기 시대, 문화시대로 급변하는 시대에 삽질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이 줄세우기를 강요하는 권력을 통치하고 있다면 이것은 비극이다. 이건희의 재등장이 이야기 되고 이명박의 멘토 최시중. 만사형통 이상득. 이들이 권력의 정점이라면 슬픔과 안타까움을 넘어서는 비극이다. 차라리 대통령이 횡설수설하니 한차례 걸려서 발표하는 대변인 김은혜와 국정을 논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참으로 늙으나 젊으나 믿을 놈 하나 없는 집구석이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이 유행이라고 한다. 올해 입시를 치른 딸아이가 있다. 나름 공부에만 매달린다고 사춘기조차도 없이 보낸 아이다보니 소위 스카이라고 불리는 대학에 쉽게 합격할 수 있을 정도의 성적을 늘 유지해 왔다. “아빠, 나 홍대 미대에 합격했어!” 띠용! 충격이다. 갑자기 웬 미대? “미대 입시 공부 전혀 하지 않았잖아?” “응, 성적과 면접으로도 몇 명 뽑는 모양이야. 미대 중에서도 성적이 높아 전공은 2,3학년이 되어서 마음대로 정할 수 있어요. 아빠, 반대하지 말아주세요.” 어느 틈에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 편입되어져 있었나 보다. 서울대에 가서 판, 검사가 되는 것을 너무나 당연히 여겨 왔기에... 그런 아빠이기에 미대에 원서를 접수 해 놓고도 합격될 때까지 아빠와 마음속 이야기 하나 털어놓지 못한 딸아이의 속앓이는 또 어떠했을까?
어릴 때부터 미술을 너무 좋아했던 딸아이다. 유치원 시절에 미술학원에 보냈다가 보여주기 위한 기법에 치중하는 교육을 보고 차라리 창의력까지도 사장될까 싶어 그 후로 한 번도 미술학원에 보내지 않았었는데 중,고등학교 시절에 늘 금상을 받아왔었다. 중학교 미술선생님은 딸아이가 미술에 재능이 있으니 자기가 한 번 키워 보겠노라고 따로 상담까지 하자고 했었는데 공부도 곧잘 하였기에 애써 1등만 기억하고자 미술은 외면해 왔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 번도 아빠의 말을 거역하지 않은 착한 딸아이였는데 그런 아이가 자기의 세상을 찾아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을 거절하고 나섰다.
그렇게 세상은 진보되고 있었다. 아무리 1등만을 기억하는 더러운 줄세우기 세상을 강요하려고 하여도 미래의 희망은 바로 우리의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 아무리 고려대가 김연아를 키웠다고 사기를 쳐도 김연아는 나라가 아닌 제 ‘팬’들에게 감사하다고 당당히 외친다. 전국 최고의 수재들이 줄서서 차례로 의대로 간다고 한다. 졸업 후에 동네 병원을 차려놓고 아이들 목구멍이나 들여다보면서 제약사에서 뒷구멍으로 주는 돈이나 챙기며 관행이었다고 강변하는 세상. 천민자본주의가 인재들조차도 말살하고 있는 세상에서는 미래의 희망을 보기 어렵다.
대중의 진보는 항상 개인의 진보를 앞서 나가는 법이다. 고려장으로 가야할 최시중, 이상득이 아무리 노욕을 드러내도 우리의 아이들은 희망의 촛불을 만들어 간다. “딱 너다운 선택이야, 축하해!” 라는 친구들의 축하 메시지를 보며 아빠도 미대 입학을 축하한다는 진심을 전한다. 너의 판단을 믿고 너의 선택을 존중하고 네가 아빠 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단다. 자기들 밥통을 위하여 법을 협박하려는 저들에게서 무너진 노블레스 오블레주를 찾기 전에 시티즌 오블레주 세상을 만들어보자. 그래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아닌 꼴찌와 함께 하는 희망의 세상을 만들어 가렴. 아빠가 외치는 소리가 들리지.
“내일을 향한 출발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