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폰에 새해 인사 메세지가 수북히 쌓이는데 그중 반짝이는 구슬이 하나있어 주어보니 김00 선생의 이름이 써있다. 한동안 잊고있던 분이었는데 오히려 나를 기억해주고 격려메시지를 날려주니 죄송스럽기도 하고 훈훈하기도 하다.
오랫동안 김포에서 과학교사를 하시다 4년전 양평으로 전근가신 전교조 선생님이다.
"다음번엔 민노당으로 출마해야 합니다."
4년전 김포시의원 출마결심을 했을 때 나에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때 나의 당적이었던 열린우리당은 없어졌고 나는 민주당을 돌아서 참여당에 와있다.
시간이 오래도록 누군가 나를 잊지않고 기억해주고 있다는 사실은 기쁘면서도 의외로 마음에 무거움을 안겨준다. 부채의식이 그 안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가보다. 그당시 교류하면서 내뱉었던 말들에 대한 책임의식 탓도 있는 것 같다.
대학졸업후 20년 가까이 연락을 나누지 못했던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생생한 목소리는 여전했다. 그 후배를 떠올리면 87년 12월을 잊지 못한다. 국민운동본부 공정선거 감시단 일원으로 평택에 150 여명정도의 학생을 데리고 내려갔다.
87년 대선전날, 살벌한 분위기에서 민정당 뱃지를 단 평택지역 조폭들과 충돌했다.
각목을 들고 서울로 돌아가라며 협박하던 그들과 만일에 대비해 짱돌로 무장한 학생들 사이에서 상황을 수습하려다 곤욕을 치뤘다. 그 다음날 대선 당일, 평택 투표소 곳곳에서 전해오는 불,편법 사례를 수집하면서 때로는 현장출동도 하고 파출소 가서 싸우기도 하고...그때 내옆을 항상 따라다니며 조폭들로부터 보디가드 역할을 해주었던 후배였다.
작년 크리스마스날 아침, 여러 일로 우울한 기분에 잠겨 출근길을 나서는데 미국사는 고교동창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시의원 당선직후 축하전화 받은후 처음이니 4년만이던가. 목소리는 고교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안변했다. 나보고 자기의 데미안이란다.
데미안이라는 말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중학시절 한때는 헤르만 헷세에 빠졌었는데..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아브락사스, 알 껍질 어쩌고 저쩌고 했던것 같은데...싱클레어, 에바부인등의 이름도 가물가물..고1 시절, 그친구와 비맞으며 대방동 교정에서 신림사거리, 서울대앞, 봉천동 고개를 넘어 걸었다. 뭐그리 심각했는지 열띤 토론을 벌이다보니 끝맺음이 안되어 걷다 걷다 집에까지 걸었다. 그친구는 내가 끓여준 라면을 먹은뒤 대방동집으로 버스타고 돌아갔다.
그때 토론주제가 아마도 전두환을 어떻게 볼것인가? 였던것 같다.
고1때 그랬으니 나도 그당시 이미 빨간물이 단단히 들었던 것인가? 아님 정치과잉 사춘기였나? 박정희 전두환이라는 시커먼 존재가 오늘까지 나를 곤고한 삶을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동기부여를 해주었느니 나는 이들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것일까?
80년대나 지금이나 세상은 변했으면서도 변한게 없는 것 같다.
나역시 변했으면서도 변한게 없다. 변한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은것은 무엇일까?
오래도록 잊지않고 기억해준다는 것.
참 기쁘고 고마우면서도 어깨가 무겁다. 그 기억속의 존재와 현재의 나는 얼마나 일치할까?
아무리 시간이 흘러 세상만물이 변한다해도 변하지 말아야 할게 있다.
문제는 변하지 말아야 할것이 무엇인지, 그것에 대한 시각과 관점마저도 변하는 경우다.
세월의 무게를 삶에 대한 깊이를 더하는 숙성기간으로 삼는게 아니라 자기합리화로 일관하는
변명거리로 삼지는 않을지, 나 역시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