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린 폭설로 세상이 온통 난리다.
김포지역도 10년만의 폭설이라 한다. 평소 10분이면 되던 시청 길을 어떤분은 무려 3시간이나 걸렸다 한다. 매년 이맘때 진행하던 김포시의회 현충탑 참배도 취소되었다. 그래도 눈에게 고맙다 했다. 모처럼 학원출근을 안하게 해주었으니..
오전 10시 갓넘어 김포시의회 시무식이 진행되었다.
"다들 새해 꿈 잘꾸십시오" 이영우 의장께서 신년사를 하며 말미에 의미있는 한마디를 던진다.
"올 7월에 다들 다시 함께 만나자구!"
한 의원께서 농반 진반의 덕담을 건넨다. 향후 거취와 재선여부를 놓고 다들 민감해지는 때가 왔다.
"조선일보에 정의원님 이름이 뜬 사실을 아나요?"
의회에 출근하자 직원 한분이 나에게 건넨 말이다. 김포시장 출마예상자로 나의 이름이 실렸단다. 참여당 소속으로. 조선일보야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내가 그 사실을 알리가 없다. 원..이거 고맙다고 해야할지...그런데 하여간 이놈의 신문. 단 이름 석자라도 실을거면 당사자에게 의사확인이라도 해야하는 것 아닌가?
지역 케이블 티비, 연합뉴스에 이어 조선일보까지 시장후보로 내 이름이 자꾸 오르내린다.
"현재로선 결정된게 아무것도 없다. 2월로 예정된 참여당 지역위원회 결성후 당원들의 뜻을 모아 결정할 일이다. 그전에 내 거취문제를 불쑥 내민다면 참여당 참여논리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기자들이 내 행보를 물을 때마다 대답하는 내용이다.
"올 6월에 희망의 폭설이 내릴 수 있을까?"
시의회 시무식 도중 본회의장 창밖으로 퍼붓는 눈들을 잠시 바라보며 스친 생각이다. 하룻밤 눈으로도 저렇게 세상이 마비되어버리는데 이때가 지나면 우리 인간은 다시 자연에 오만한 칼질을 해댈거다.
시무식이 끝나고 의장실에서 동료의원들과 함께 차를 마시는데 신임 부시장께서 인사차 찾아왔다. 연이어 강경구 시장께서 국과장들과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온다.
"올해에는 그만 좀 싸우자고 응?" 의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던 시장께서 내손을 놓지 않으면서 거듭 '싸우지 말자'고 한다. 음...난 싸운적 없는데,..내 의견만 내놓았을 뿐인데...
"올 7월부터 부시장님이 모실 새로운 파트너가 이 중에 있을려나?"
신임인사차 찾아온 부시장을 옆에놓고 6월 선거를 빗댄 농담을 던지는데 곧바로 등뒤에서 강경구 시장이 들어왔다. 동료의원들 사이에서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저녁에 참여당 김포지역 위원회 준비를 위해 연락이 닿은 몇몇분들과 미팅을 했다. 다음주에 지역준비위 결성, 2월초에 정식 지역위원회 출범 일정을 잡고 준비에 들어가기로 했다. 드디어 김포도 국민참여당의 깃발이 올려진다.
밤 10시넘어 눈을 밟으며 돌아오다가 풍무고 정문 언덕길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수십명의 아이들이 그 시간에 눈을 지치고 있었다. 즉석 개장한 야간 눈썰매장이었다. 자세히 보니 썰매 대용품이 가관이다. 종이박스, 비닐커버, 돗자리..심지어는 스테인레스 큰대야에 몸을 싣고 내려오는 꼬마도 있다.
몇몇 아빠 엄마도 함께 어울려 동심에 파묻힌 모습도 눈에띤다. 내일 이 길이 빙판길로 변한다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만은 그냥 정겨운 풍경이다. 함께 그 대열에 뒤섞이고 싶었지만 빙긋 웃음과 함께 귀가길을 서둘렀다.
낮에 딸아이와 엄마를 데리고 근처 고깃집에 점심을 먹으러 다녀왔다. 평소 아파트 단지 뒷길 산책로를 따라 십분이면 갈 길이 참 험난했다. 아이엄마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눈은 계속 내리고 바람까지 분다. 점심 한끼 먹으러 괜한 고생하러 나선것은 아닌지 후회가 되었다.
이런 경우엔 당장엔 힘들지만 '지내놓고 보면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그러했다. 점심먹고 돌아오는 길에 잦아진 눈발사이로 해가 쑤욱 고개를 내밀었다. 길을 개척한답시고 앞장서서 걷는 나보다 한참 뒤처진 엄마와 아이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재잘거린다. 눈을 뭉치기도 하고 나뭇가지가 무거울것 같다며 떨궈내기도 한다.
아이가 다가와 장갑을 뺏어갔다. 뭐하나 했더니 눈을 뭉쳐서 아빠를 따라오며 계속 던진다. 퍽퍽 소리내며 외투에 닿는 눈뭉치 촉감이 따뜻하다. 그냥 전봇대처럼 맞으면서 걸었다. 그런데도 계속 던진다. 어릴적 풍경이 떠올랐다. 장갑대신 양말을 손에 끼고 친구들과 함께 전봇대 맞히기 눈시합을 했다. 검은 콜타르를 칠한 나무 전봇대에 흰 눈덩이가 자국을 내며 달라붙을때의 쾌감이 찡했다...그런데 오늘은 내가 전봇대가 되어 아이앞에 서있다.
나는 아이앞에 전봇대가 되어줄 수 있을까?
눈오는날 맞아주며 놀이기구도 되어주고 평소에는 밝음을 전해주는 다리 역할도 해주고 힘들어 할때는 잠시 기대어 쉴수 있는 그런 전봇대이고 싶다. 청와대에 있는 누구 눈에는 뽑아버리고 싶은 존재가 전봇대일거다.
뽑고 파헤치고 삽질하는 것을 능사로 아는 사람들에겐 나의 단상이 한낱 감상에 젖은 순진남의 푸념으로밖에 안들릴거다. 그들이 오늘 짧고도 먼 가족동행길에 잠시 전봇대가 되어 눈바람과 대화를 나누는 기분을 어찌알랴. 아마 평생가도 모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