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7년전이다.
2002년 12월 19일...
이른 아침부터 면사무소 앞마당이 분주하다.
투표를 위해 줄을 선 사람들, 추운날씨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서서 불을 쬐는 사람들.
그 한켠에 막걸리 판도 벌어졌다. 파출소 경찰들도 제지는 커녕 어우러져 면사무소 직원들이 준비한 따뜻한 차를 기울인다. 술판에는 누가 사왔는지 막걸리가 박스채로 세워져 있고 어느 부위인지 모를 먹음직한 돼지고기가 장작불 위에서 지글지글 익는다.
“어이~ 병권이~ 끝냈으믄 일로 와서 한잔 허소!”
술 좋아하기로, 그만큼 사람들하고 어울리기 좋아하는 만석이 아저씨가 막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이웃을 불러 세운다. ‘아. 만석이 아저씨가 돼지를 키우고 있지...’
“이~ 그려. 인자 싹 잊어불고 한잔 묵고 자빠져 자불라네.”
병권이 아저씨도 큰일 하나 치룬 마냥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물며 한숨인지 모를 긴 숨을 내쉬며 한자리 차지하고 앉는다.
“하! 하먼. 조용히 입다물고, ‘투표율이 제일 높네. 저놈들 또 뭉치네.’ 벼래별 잡소리 안들을라믄 자빠져서 잠이나 자는 것이 상책이제.”
지난 1992년 대선때 얘기다. 당시 대선에는 김영삼, 김대중외에도 5명의 후보가 출마했었다. 하지만 이미 선거는 양강체제. 둘중 하나였던 것이다. 한데, 선거당일 매스컴에서 실시간으로 투표율을 발표한 것이 이쪽 사람들에겐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오전 시간대별 투표율이 호남이 제일 높았던 것이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이 때문에 타지역, 특히 영남에서 자극을 받아 김영삼 후보에게 몰표를 던지는 현상이 발생했다는, 그래서 결국 김대중 후보가 낙선했다는, 종국에는 매스컴 또한 선거에 도움이 안된다는 분석을 나름대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소한 우리 동네에서는 그런 분석이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웬만한 선거에서 아침일찍 투표하러 가는 법이 없다.
“요분에는 또 모르제. 노무현이는 부산사람 아닌가. 우리가 즈그 동네 사람 찍어서 대통령 만든단디 즈들이 저어할 것이 읍제”
“아녀, 가들은 그리 생각들 안 헐것이네. 외래(도리어) 자기네들 싫어서 저짝으로 붙었는갑다 헐것이그마. 안찍어 줄것이네.”
“그라믄 낭패 아닌가...부산이든 어디든 사람이 올발라야제(올곧고 바르다). 안근가”
“긍께 말이시. 그리 자청혀서 고생을 허고는...깜은 깜인디(대통령감이다)...”
일순 사람들 표정이 어두워진다.
“에이~ 그래도 원수지간이라든 우리가 싹다 찍어준단디...될꺼요.”
“하먼, 하먼”
“아이, 대건아 니도 일로 오니라. 투표는 했제? 안했으믄 술묵지 말고, 금품선거 되분다.”
“우하하하...맞다 맞아”
멋쩍어 둘러보다 덩치가 큰 청년에게 던진 만석이 아저씨 말에 분위기는 다시 즐겁다
“아~ 예. 얼릉 해뿔고 나올라요”
“자~알 보고 찍어라이~”
“예~”
누구를 찍어야 할지 다 안다는 눈치다.
“예, 보시오. 영순이 엄마! 이리 오씨오.”
아는 얼굴이다 싶으면 불러 세운다.
“누구 찍었소?”
아주머니가 앉자마자 조바심이 나서 물어본다.
“이~ 나는 그냥 ...”하려는데,
“어, 어어! 그런거 말흐믄 불뱁인디~하하”
병권이 아저씨가 껴든다.
“불뱁이고 머고 다들 암시롱 물어보긴 멀 물어본다요. 호호호.”
영순이 어머니는 막걸리 한사발을 시원하게 비운다. 농군의 아내답다. 입가를 걸죽하게 한번 닦고 나서는,
“호호~. 근디 나는~ 하도 여그저그서 표좀 달라고 입을 쫙 벌리고 있는 것이 다들 짜안해서 한 가운데 밖에다가 찍어놓고 느그들이 알아서 노나갖그라이(나눠가져라)~ 해놓고 나와부렀소”
“우하하하~”
주위 사람들 모두 박장대소다.
그날, 하루 종일, 아니 당선자가 결정이 났던 그날 밤까지 동네 잔치는 계속 되었었다.
7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풍경을 잊을 수 없다.
뭐가 그리 좋았을까. 하긴 나는 선거전날 정모씨의 배신에 홧술을 마시고는 밤새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서른명이 넘는 친구, 선후배들에게 전화를 했었다.
다음날(선거당일) 전화를 받았던 친구들은 하나같이 내게 다시 전화를 걸어와
“찍었다. 이제 됐냐. 속은 괜찮냐...에구 이 못말릴 놈아”했다.
사실인즉, 그날밤 나는 모두에게,
정신없이 술취한 목소리로 다짜고짜 “노무현”한번만 찍어달라며 울더란다.
제발 이번 한번만 도와 달라고,
다 큰놈이 엉엉 울더란다.
벌써 7년전 일이다.
그때처럼 투표를 즐긴적이 없었다.
7년후, 그분이 가시던 날 꼬박 2박3일을 자리에 누워 울기만 했다.
걱정된 친구들, 가족들 전화가 빗발을 쳤다. 받지 못했다.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 생에 딱, 딱 한번만이라도 더 "그런 투표"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