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입학하고나서부터 아버지는 매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받아오는 교과서에 두껍고 빳빳한 전년도의 달력으로 옷을 입혀주셨다.
당시의 교과서가 질이 별로 좋지 않은 종이로 만들어졌기에 쉽게 찢어지거나 며칠 못가 금새 너덜너덜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달력을 솜씨 좋게 척척 자르고 정확한 치수로 옷을 입히는 아버지의 모습은 마치 그 일을 즐기기 위해서 하는 듯 보였다.
문방구에서 투명비닐 소재의 책 커버를 못살 정도로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자식들 공부에 무엇인가 당신의 역할이 필요했기에 애써 그 일을 자청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연필을 꺼내 연필깎는 기계 놔두고 간혹 일부러 칼로 깎아주는 나의 마음도 아마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찍부터 싹수가 노랬던 나는 국민학교 고학년이 되어가자 달력으로 옷을 입은 교과서가 부끄러워졌고, 아버지의 즐거운 소일거리는 중학생이 되자 중단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전 일본으로 여행할 기회가 주어졌다.
난생 처음 바다 건너 나가보는 해외여행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두 가지의 뚜렷한 목적이 있는 여행이었기에 더욱 설레였고,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의 일정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크게 눈치보이는 것이었지만 난 개의치 않았고 이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그 첫 번째의 목적은 나가노에 있는 마쯔시로 대본영(松代大本營)을 방문하는 것이었고, 그 기행문은 언젠가 강뺀카페와 이 곳 시민광장에 올린 바가 있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마쯔시로 대본영이란 곳은 일본의 나가노현에 있으며, 태평양전쟁 말기 미군의 일본 본토 상륙에 대비하여 일본 수뇌부가 은신할 수 있도록 암반으로 된 산의 지하를 요새로 만든 곳이다.
바로 그 곳을 만들기 위해 수 천명의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이 동원되었고, 고된 노동과 굶주림, 그리고 무자비한 폭력으로 수 많은 조선인들이 숨진 곳이기도 하다.
여행의 두 번째의 목적은 당시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서적을 구해보는 것이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공산당 선언' 이었다.
동경에 도착한 다음날 바로 '간다'에 있는 서점거리를 홀로 찾아 나섰다.
개별행동한다는 친구들의 따가운 눈총은 이미 뒷전이고, 나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다.
'간다'라는 곳은 소문에 걸맞게 거리 곳곳이 고서점과 오랜 전통의 서점, 현대식 건물의 대형서점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 중 가장 많은 책이 진열되어 있음직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7층건물의 서점으로 들어가서는 미리 준비한 도서목록을 점원에게 보여주었다.
외국인임을 직감한 그녀는 친절하게도 나를 서점의 이 곳 저 곳 데리고 다니며 일일이 책을 찾아준다.
그 시절 대한민국에서 찾으려면 서점의 직원이 어디론가 전화했을지도 모를 '공산당 선언'이 그 곳에 있었다.
그것도 여러 종류의 책으로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었지만, 난 그 많은 종류의 '공산당 선언' 중에서 한 권을 고르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가장 작고 값이 저렴한 문고판의 '공산당 선언'을 선택했다.
일본에서는 책이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불온서적'인 그 위험한 물건을 귀국할 때 가져가고 싶지도 않았고, 나는 그렇게 허세를 부릴만큼 배짱이 두둑한 인물도 아니었다.
그래서 여행중 틈틈히 읽고 버려도 본전 생각이 나지 않을 제일 값싼 문고판을 집어든 것이다.
어차피 일회용이었기에...
여행중 숙소가 되어버린 유학중인 친구의 방에서 모두 잠들 때까지 기다린 후, 스탠드 불을 켜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청춘의 독서에서 첨맘님이 토로했듯이 등화관제를 하고 읽어야만 했던 책, 손에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국가보안법에 저촉이 되는 책을 떨리는 심정으로 읽었으니 진도는 더디기만 하다.
더욱이 일본어라고는 간단한 인사말 정도밖에 할 줄 모르는 실력이어서 일본어사전을 옆에 끼고 한 자 한 자 해석하면서 읽어내려가려니 이건 완전히 난수표 해독하는 격이었다.
그렇다고 이 걸 유학중인 친구에게 번역을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그 날 어디에 갔었는지, 어떤 물건을 사왔는지조차 이 선량(?)한 친구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행여라도 있을 어떤 피해를 줄까 두려웠기에 그랬고, 한밤중에 소변이 급해 깨어나는 친구라도 있으면 나는 미리 준비한 만화책을 '공산당선언'위로 덮어버렸다.
"어, 깼어? 잠이 안 와서 만화책 좀 보다 자려고... 먼저 자."
그렇게 밤마다 몇 시간씩 일주일에 걸쳐 '공산당선언'과 부록인 '공산주의자 동맹규약' 까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읽을 수가 있었다.
책을 읽고난 감흥이야 사실 첨맘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첨맘님이 공산당선언을 읽었던 때가 1978년이고 내가 이 책을 읽었던 시기는 그로부터 약 12년이 훌쩍 지나버린 때였다.
그 사이 동유럽에서는 사회주의의 몰락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사회주의 혁명의 진원지인 소련에서도 한창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가 있었는데, 그런 세계사적 상황을 지켜보면서 '공산당선언'을 읽었기에 내가 첨맘님보다 비판적이어도 더 비판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책 내용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으련다.
어차피 [짝퉁 청춘의 독서]가 아니던가.
이제 내일이면 대한민국으로 돌아갈 날이 되었고, 나는 깊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일회용 책으로 구입해서 읽고 버리려고 마음 먹었는데 막상 다 읽고나자 버리기가 너무 아까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책 값 410엔이 아까웠던 것이 아니라, 수 일간 일본여행의 소중한 한 부분을 지워버리는 것 같아 아까웠고, 나의 추억을 국가보안법이라는 사상 검열의 괴물이 갉아먹고 나는 그 놈에게 굴복하는 나약한 먹이라는 생각이 들자 억울했던 것이다.
그래서 친구 방에 걸려있는 한국 달력중 이미 지나버린 前月의 것 한 장을 찢어서 '공산당선언'에 옷을 입혔다.
아버지가 교과서에 곱게 옷을 입혔던 것처럼.
그리고 제목을 일본어로 이렇게 썼다.
'기꾸또 가타나' (국화와 칼) - 베네딕트 -
입국심사장에서의 살떨림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태연하자, 태연하자'
속으로 주문을 외면서 자기암시를 끊임없이 했지만 내 태도 어딘가의 어색함을 나 스스로도 느낄 수가 있었다.
"신고할 물건 뭐 없습니까?"
세관직원의 물음에 "네"라는 당연한 대답을 하면서도 음성이 떨린다.
'아, 차라리 이 위험한 물건 말고 도색잡지나 가져올 걸...'
눈썰미 좋은 세관직원이라면 아마 내 짐을 뒤져보았을 것이나, 난 무사히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반란을 일으켜서 역성혁명에 성공한 자의 기분이 그랬을까?
마치 국가보안법이라는 괴물을 조롱하고 마침내 고꾸라뜨린 양 너무 통쾌했다.
그렇게 달력 옷을 입은 '공산당선언'은 십수 년간 내 방 서가에 누렇게 색만 바랜 채로 꽂혀있었고, 영영 옷을 벗지 못할 듯한 그 책의 달력 옷을 나는 참여정부시절 조심스레 벗겨냈다.
첨맘님의 '청춘의 독서'를 읽고나서 다시 만지작거리는 그 책, 공산당선언!
책을 다시 펼쳐보니 달력 옷을 벗길 때 남아있는 테이프의 흔적이 나의 추억을 되살린다.
정권이 바뀌어서 입었던 옷을 벗었는데, 또 바뀐 겨울공화국 때문에 다시 달력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대한민국에서 '공산당선언'의 패션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