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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님을 추모하며...애국자와 매국노가 뒤바뀐 역사를 알아보세요.
이정민 | 2009-08-20 00:45:41 | 조회 1397 인쇄하기
http://cafe.m.usimin.co.kr/4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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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역사, 독립운동가의 아픔

 

 
노무현, 기록은 역사입니다: 과거사 진상 특위 구성
친일파의 발악, 과거사 조사는 국론의 분열!
 
친일파 청산, 끝나지 않은 전쟁
 
일본의 만행과 독립운동가의 비참함 (19금 포함)
친일 청산에 대한 이야기
친일파 청산, 끝나지 않은 전쟁
http://video.cyworld.com/207652275
 
민족을 팔아 가문을 세운 친일파
 
친일파: 일제강점기 민족을 배신하고 일본제국주의에 적극 협력한 부류의 총칭. 친일행위의 성격에 따라 크게 지주·
자본가, 지식인, 경찰·관료·군인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들 중에는 자진해서 친일을 한 자도 있고, 피동적으로 친일을
한 사람도 있었다. 친일 지주·자본가들은 국방비, 비행기 및 금품헌납, 총독 열전각 건축 등 친일활동을 하는 한편 도·부·
읍·면의원이 되어 일제가 조선을 쉽게 지배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또 임전 보국단·총력 연맹·시국대책조사 위원회
등의 친일 단체에 가입하여 친일을 선동함으로써 일제의 수탈에 동조했다. 이들은 친일 행동을 자발적으로 수행하기보다는
그들의 계급적 이익과 식민체제 속에서 수동적으로 자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민족 사회의 지성을 대표하는 지식인
들 중에 친일행위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조선문예회·조선문인협회·조선임전보국단·국민총력조선연맹 등의 친일단체에 가입하여 이들 단체가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 참가하여 지원병·학병 지원을 선동하고 강연·방송·좌담회·담화발표 등을 하여 내선일체·황도정신 고취, 총력
체제의 생활화나 내핍을 강조했으며, 한편으로는 시·소설·수필·논문 등의 친일작품을 썼다. 또한 유명 미술가들 중에 일제
의 전시체제에 맞추어 전쟁동원 분위기를 조성하는 그림을 그리는 친일미술파가 등장했다. 이러한 지식인의 친일행위는 국민
의식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친다는 데서 지주, 자본가나 경찰, 관료·군인의 친일 행위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달랐다. 한편
일제식민체제의 상징적 존재라고 할 수 있는 친일계층인 경찰·관료·군인이 있었다. 일제에 의해 식민통치의 말단 집행요원
인 경찰로 충원된 조선인들은 식민정책, 즉 민족말살정책과 민중 수탈정책을 직접 집행했다. 즉 일제의 손발이 되어 조선인에
대한 인적·물적 수탈을 할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가·사상범 등의 검거·색출·투옥·고문을 자행했는데, 이는 일제가
직접적인 악행을 조선경찰의 손에 의해 저지르게 함으로써 민족분열을 도모하려는 정책에 말려든 결과이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 친일을 한 관료층으로는 고등문관 출신의 고급관료와 면장·면서기 등 말단관료로 나눌 수 있다. 고등
문관출신의 관료는 주로 군수·변호사·검사 등을 하면서 식민체제에 기생하는 존재로서, 고등경찰과 함께 친일파의 대표적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말단 면장·면서기 및 동회 직원들은 경찰과 협조하여 식민통치의 인적·물적 수탈정책을 직접 수행
했다. 또한 일본 군인이 된 이들도 있었는데, 이들 중에는 민족의식이 있거나 독립운동과 연계를 맺으며 활동한 사람도 있었다.
8·15 해방후 중간파나 좌파는 자주민주국가 건설을 위해 친일파의 척결 또는 배제를 강력히 주장했다. 그런
반면 우파는 주권을 찾고 정부가 안정된 후에 처단하자는 시기상조론, 세금을 낸 모든 국민이 친일을 한 것과 같으며 대다수
친일파도 생계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했을 뿐이라는 식민지환경론, 국가건설에 친일인재의 전문 기술과 능력이 필요하다는
친일 인재 유용론, 전범자는 전승국인 연합국만이 규정하고 처벌할 수 있다는 법적·논리적 불가론, 친일파 처단은 민족을
분열 시키고 사회적 혼란을 가져온다는 민족분열론 등을 주장하며 친일파의 척결에 반대했다.
 
정리하겠습니다. 우리 나라는 일제강점기가 있었고, 우리 민족은 일본에 지배 당했습니다. 그 와중에 자신만 살고자 했던,
'친일파'는 민족을 배신합니다. 그들은 일제 지배 계층에 아부하여 권력을 형성해 나갔고, 자신들 또한 지식과 부를 갖춘 부유층
이 됩니다. 그들은 민족을 탄압해서 잘 살았습니다. 하지만, 광복이 되자 그들에게 위기가 찾아옵니다. 국민과 독립 운동가가
그들을 숙청하려 했으니까 말이죠. 그들은 우파를 사칭해 언론플레이와 이념 대립을 부추겼습니다.
 
친일파의 만행과 한반도 전쟁 과정
 
참여정부때 밝혀진 불편한 진실: KBS, 영상 실록 1945년
 
광복이 되자, 정치의 중심은 몽양 여운형 선생님(독립운동가)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조선인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을 반긴 것은 일본군이며, 일본군은 끝까지 조선인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일본인과 친일파(90만명)들은 자유가
왔다며 미국 만세를 외칩니다. 그렇게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친일파와 미군정의 지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은 군국주의의
찌꺼기를 남한에 남겨 두고 갑니다. 친일파 청산은 남한의 과제로 남겨집니다. 반면, 소련은 미국에 앞서 도착해 일본군을
몰아내고 조선인의 환영을 받습니다.
 
우파는 김구 선생님, 친일파는 이승만을 기다렸습니다. 미군정에 아부하고, 친일파의 손을 잡은 이승만은 남한에 도착하여
완전한 독립을 해준다며 언론플레이를 시작합니다. 한편, 좌파인 조선공산당은 민족 반역자 친일파를 처단하자고
합니다. 그리고 김구 선생님은 임시 정부의 정통성으로 미군정에게 정권을 받아내려고 했으나, 미군정은 개인 자격으로 귀국
하라고 합니다. 남한에서 동아같은 친일파 언론은 소련이 한반도를 신탁하려 한다는 언론플레이를 하며, 친일파의 첫
희생자가 생깁니다.
 
KBS, 영상 실록 1946년
 
언론플레이에 놀아난 남한은 신탁문제를 두고, 좌·우의 싸움을 시작합니다. 남한보다 자유로운 북한의 상황을 보고 온 좌파는
신탁을 지지한다고 했고, 우파와 친일파는 반탁을 외쳤는데 각각 목적이 달랐습니다. 우파는 자주 독립을 위해, 친일파는 적인
좌파를 제거하기 위해서였죠. 신탁을 지지했던 좌파는 국민에게 민족 반역자로 비춰집니다.
 
국민은 소련 타도를 외치고, 좌파를 미워합니다. 또한, 미군정의 정판사 위조 지폐 언론플레이로 좌파는 매국노 취급을
당합니다. 당시 국민은 볼 수 있는 매체가 한정 되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했습니다. 그 후, 친일파는 반.공산당(빨갱이)을
입에 담고, 애국자를 죽입니다. 한편, 북한은 급격한 사회주의 움직임으로 부유층인 친일파를 남한으로 몰아냅니다.
 
KBS, 영상 실록 1947년
 
남한은 좌·우의 대립이 폭발했고, 국민은 거짓된 '자유'에 속아 친일파가 포함된 우파의 편이 됩니다. 그리고 이승만은 독립을
위해 외교 활동을 한다며 언론플레이하고 돌아와, 국민에게 환영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정치의 중심은 이승만에게 몰립니다.
이승만은 반탁을 주장하여 국민의 편인듯 언론플레이를 합니다.
 
이제 친일파와 애국자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우선, 좌·우를 화해시키려던 몽양 여운형 선생님께서 서거하십니다. 그리고
이승만은 남한의 총선거를 지지하며, 김구 선생님은 남북의 분열을 막기 위해 선거를 반대합니다. 그러다가 총선거를 지지
했던 친일파 장덕수(독립운동가로 미화, 한민당)가 피살되며, 그것을 기회로 이승만은 김구 선생님을 법정에 세웁니다.
 
KBS, 영상 실록 1948년
 
남한은 정치적 문제로 싸움을 할 때, 북한은 조선 인민군이 창설되어 자주 국방을 이룩합니다. 이로써, 북한은 하나의 국가를
완성합니다. 북한은 공산주의가 아니었습니다. 사회주의 체제였죠. 한편, 남한의 단독 선거와 남북의 분열을 막고자
했던 남로당은 폭력 투쟁을 합니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계엄령이 선포되어 무고한 사람들이 죽습니다. '민주주의'의 탈을 쓴
미군정의 말을 듣지 않으면 무조건 죽는 겁니다. 이 시기 남·북 연석 회의도 있습니다. 김구 선생님은 분열을 막고자 북을
향합니다. 이승만을 비롯한, 우파를 사칭한 친일파들은 가지 않았습니다.
 
1948년 4월 3일, 제주 4·3 사건: 미군정과 국군(친일파)이 민족주의 성향의 주민 3~7만명 학살
1948년 10월 19일, 여수·순천 사건: 빨갱이 유령의 희생자들
 
친일파 척결 과정
 
친일파 척결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면서 1947년 7월 남조선 과도입법의원은 '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간상배에 대한 특별법'
을 제정·통과했으나 이 법안은 미군정의 강력한 반대로 포고되지 못했다. 그리하여 1948년 8월 제헌국회에서 다시 거론되어
9월 '반민족행위처벌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고 10월 국회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구성하여 활동에 들어
갔다. 그러나 반민특위는 이승만과 경찰에 의해 계속 방해 당했고, 결국 1949년 5월 국회 프락치사건, 6월 현직 경찰간부의
구속에 대항하여 경찰의 반민특위습격사건 등을 겪으면서 와해되었다.
 
백범 김구 지시,‘반민특위' 살생부 초안 최초공개'
참여정부때 밝혀진 불편한 진실: 이승만, 정부내 친일파 선처지시·반민특위 처벌
 
KBS, 영상 실록 1949년
1949년 6월 6일, 무장경찰의 반민특위 습격
1949년 6월 26일, 친일파 안두희가 김구 선생님 암살
1949년 8월 호림부대 재판: 남한의 간첩 활동과 도발
 
친일파들의 만행이 저질러집니다. 반민특위 해체, 제주도 계엄령 선포와 해체, 조선공산당과 남로당(애국자) 색출
작업...이러한 정황을 볼 때, 사실상 남한은 정통성이 없는 국가였습니다. 매국노들이 날뛰어 빨갱이를 외치며 애국자를 죽인
정신나간 국가였죠. 국민은 매국노들의 언론플레이에 놀아나 애국자를 증오합니다. 그리고 한반도 전쟁은 매국노가 김구선생
님을 암살하고, 애국자를 매국노로 매도하여 북한이 남침하는 정당성을 주었습니다.
 
9월에는 '반민족행위 처벌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됨으로써 친일파 척결작업은 일단 막을 내렸다. 반민특위가 실제로 활동
한 것은 1949년 1월부터 공소시효기간 마감인 8월까지로, 총 취급건수는 682건, 검찰부의 기소건수는 221건, 재판부의
판결 건수는 40건이었다. 그중 징역 이상의 형을 받은 사람은 14명에 불과하며, 이들도 1950년 봄까지 재심청구 등으로
감형되거나 형 집행이 정지되어 모두 석방되었다. 친일파들은 해방 후에도 거의 척결되지 못하고 대부분 새로들어선 대한민국
정부에서 주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즉 자본가·지주들은 친일파 척결, 토지개혁 등을 주장하는 사회변혁 세력과의 투쟁
에서 이기고 자신들의 이익과 생존을 지켰다. 친일지식인들도 해방 후 한민당을 결성하여 보수 우익세력으로서 좌익세력과
투쟁하여 사회변혁 세력을 제압하고 정치·사회·문화 모든방면에서 실권을 차지했으며, 친일미술인들은 비중있는 유명 미술인
으로 존재했다. 또한 식민지 체제에서 가장 대표적인 친일파였던 경찰·관료는 해방 후에도 처형되지 않고 오히려 미군 정기에
다시 경찰로 충원 되었으며,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에는 이승만정부에 의해 다시 받아들여짐으로써 지배적·실권적 지위를
차지했다.
 
1960년 5월 7일자의 동아일보 기사에 의하면 전국 경찰 총경의 70%, 경감의 40%가 일본경찰 출신이었다고 한다. 또한
제 1공화국의 친일협력자를 보면 각료의 31.3%, 대법원의 68.4%였다고 한다. 일제시대의 군인도 미군정과 대한민국 정부
에서 군부내의 지배적·실권적 위치를 장악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친일파는 척결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권력
금권력을 배경으로 점점 확고한 위치를 굳혀갔다. 이러한 사실은 식민지에서 해방된 민족국가의 명분이 제대로 설 수 없게
하며, 민족정기 확립에 해악을 끼쳤다. 또한 이들은 국가의 핵심적 세력으로 존재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을 주도해감에 따라 우리나라의 참된 민주발전과 경제발전을 저해하며 파행적인 정치·경제·사회 발전을 주도해갔다.
 
대한제국 황제 고종과 반역자 이승만
 
이승만의 행적: 1877년 서울에 이사하여, 낙동과 도동에 있는 서당에서 과거 지향의 한학을 공부하다가 1894년에 과거제도가
폐지되자 이듬해 4월 배재학당에 입학, 영어와 신학문을 연마하였다. 1895년 말 미국에서 돌아온 서재필이 배재 학당내에
협성회를 조직하자 이에 가담하였다. 그 뒤 ≪협성회회보≫와 ≪매일신문≫을 창간하여 그 주필과 사장직을 맡아 활약하였고,
독립협회 산하의 만민공동회를 통해 부패·무능한 정부를 비판하고 독립·민권사상을 고취하는 등 민중계몽에 앞장섰다. 이러한
개혁운동을 벌이던 끝에 1898년 11월에 중추원 의관에 임명되었다. 중추원 의원이 된 다음 그는 일본에 망명중인 박영효
를 영입하여 강력한 내각 중심제 정부를 조직하고 고종 황제를 양위시키려는 음모에 가담한 결과 고종측의 노여움을 사
1899년 1월 경무청에 구금되었다. 구금된 지 20일만에 탈옥을 시도하다가 실패하여 평리원 재판에서 종신형 언도를 받고 한성
감옥서에 수감되어 1904년 8월까지 5년 반 이상 영어생활을 하였다. 옥중에서 그는 ≪청일젼긔≫를 편역하고 ≪독립졍신≫을
저술하였으며, ≪신영한사전≫을 편찬하면서 ≪뎨국신문≫에 논설을 투고하였다. 1904년에 발발한 러일전쟁을 계기로 석방된
그는 1904년 11월 민영환과 한규설의 주선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윤병구 목사와 함께 1905년 8월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을
회견하고 러·일전쟁 종결 후 미국이 한국의 독립을 보존하는데 힘써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조중동은 진실과 거짓을 적절히 섞어 놓습니다. 거짓도 신뢰하게 만드는 것이죠. 조선일보가 을사늑약 반대를 공개한 것과
중앙일보가 반민특위 살생부 공개한 것, 동아일보가 친일 인사를 공개한 것은 그들이 애국 지사라고 속이는 방법입니다.
 
이 땅의 기독교의 역사
 
1905년 을사조약이 이루어 지던 날, 루즈벨트는 이런 말을 합니다. "일본이 한국을 차지하는 것을 보고 싶다." 만약 일본이
진주만을 습격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광복을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승만은 국가를 자신이 차지하기 위해 독립을
외쳤으며, 나머지는 미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
 
친일파 박영효와 이승만은 결코 존경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김구 선생님은 민족의 자주 독립·친일파 척결·한반도
통일을 원하셨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세우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역사는 그곳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겨레의 큰 스승. 백범 김구
 
민족주의는 편협한 국수주의가 아니라, 인류를 살리는 세계주의 이념
 
백범 김구, 자주독립의 중요성 연설
백범 김구,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김구 선생님은 나라를 진정 사랑하셨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님 일대기
 
이승만과의 대결, 김구 선생님의 서거
 
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해오신 김구선생님께서 해방된 조국에 돌아오셨을때는 남과 북이 갈라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김구 선생님은 남과 북을 오가며 조국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셨으나, 1949년 6월 26일, 친일파 안두희가 김구
선생님을 암살하고, 1950년 6월 25일, 한반도 전쟁이 발발합니다.
 
제 1·2 공화국
 
KBS, 영상 실록 1950년: 민족의 아픔. 하지만, 북한의 행동은 정당했습니다. 남한의 지도자들이 매국노였기 때문이죠.
이승만의 신화: 반공! (친일파)도 뭉쳐야 산다. 좌익(애국자)분자는 매국노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라고
이승만의 사사오입 개헌: 독재를 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개헌 역사의 시작입니다.
이승만의 기독교 제국: 친일로 시작된 기독교는 이 땅에 막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http://kr.blog.yahoo.com/hifree21/895432.html
 
친일파와 이승만은 대구로 도피하면서 한강대교를 폭파하고, 언론플레이를 합니다. 전쟁이 끝나자 1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과
친일파는 모든 적을 빨갱이란 이름으로 숙청하고, 3대를 해먹습니다. 이승만은 4대 선거에서 3.15 부정 선거를 저지르고,
국민은 화가나 4.19 혁명을 일으킵니다. 이승만은 해외로 도망쳐서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고, 가족장을 합니다. 재선거에서
민주당 윤보선이 당선됩니다.
 
3.15 부정 선거와 자유당 최후의 국무회의 비록: 친일파 후손 유인촌의 설명 (정치 공작)
4.19 혁명과 민주주의
민주당 윤보선 당선: 실질적인 힘은 친일파 장면 국무총리에게 있었습니다. (장면 정부)
 
3년 뒤 친일파 박정희가 5·16 쿠테타를 일으켜 독재를 시작합니다. 박정희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국민의 시선을 경제와
반공·조직폭력배 소탕으로 돌립니다. 그리고 보여주기 업적에 나섭니다. 박정희는 미국에서 돈을 빌려오기를 바랬으나, 미국은
쿠테타 세력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대신 박정희는 독일에 국민을 팔고, 일본에 역사를 팔아서 돈을 빌려옵니다. 그리고
배트남 전쟁에 국군을 파견하여 돈을 받아냅니다. 한편 도망갔던 이승만은 시체로 돌아오는데, 건국 영웅이라며 반깁니다.
 
친일파 박정희와 제 3 공화국
 
일본군 장교 박정희: 일제강점기때 상인 김대중님과 민족을 살해한 박정희는 비교 할 수가 없죠.
5.16 쿠테타과 군사정권: 민주주의?
박정희의 언론플레이: 민주당 접수와 국회 해산 정당화, 이승만 우상화
박정희의 유신개헌: 헌법이 또 다시 유린 당합니다.
1.21 김신조 간첩침투 사건과 목사가 된 김신조
인혁당 재건위 사건
 
김신조 사건은 박정희가 6대를 해먹을 때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미수로 그쳤으나, 박정희는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 관계를
이유로 '국가안보 우선주의'를 선언합니다. 이는 노동조합 및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 근거가 되었으며, 예비군 창설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친일파와 기독교의 사기극은 계속됩니다. 한편, 박정희가 8대를 해먹을 때 유신헌법 선언 후 데모가 일어납니다.
이에 박정희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대표적으로 발생한 것이 인혁당 재건위 사건인데, 그들은 빨갱이로 몰려 18시간만에 사형
당했습니다. 이는 사법 살인으로 알려졌습니다.
 
박정희가 총칼로 빼앗은 언론: 경향신문-김대중님 왜곡보도가 떠도는 이유
노무현님이 보는 박정희: 상식이 않통하는 사회였습니다.
박정희 이후, 친일파들은 아무리 잔인한 짓을 저질러도 자신들이 빨갱이를 잡고, 경제를 일으켰다고 떠들어 댑니다. 하지만,
경제를 일으킨 것은 그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국민의 노력과 희생을 자신의 우상화에 이용합니다. 뿌리부터 사악했던 그들
에게 책임감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경제를 일으킨 것이 자신들이고, 경제를 망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합니다.
한편, 몇몇 기업과 친일 행위를 했던 언론은 정권에 유착하여 대기업 (삼성, 이병철-중앙일보 창설), 거대언론 (조선
일보, 동아일보)을 만들어 냅니다.
 
친일파 언론과 부폐한 기업이 만들어낸 또다른 권력
 
조중동이 전하는 노무현 소식
조중동에 분노하는 사람들
조중동과 네티즌의 싸움

박정희 시절에도 선거는 있었는데, 누구도 대항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김대중님이 선풍적인 인기로 박정희 독재에 위협이
됩니다. 박정희는 투표를 조작하고, 김대중님을 납치하여 다리 장애를 앓게 합니다. 그리고 언론은 빨갱이로 매도합니다.
이후, 박정희는 유신 헌법을 선언하고, 부산과 마산에서 부마 항쟁이 일어납니다. 차지철의 의견을 들은 박정희는 사태 수습에
나섭니다. (수습이 않될시 발포) 하지만 김재규가 박정희를 암살하고, 친일파 최규하가 대통령이 됩니다.
 
김대중, 민주주의의 산증인, 민주주의의 아버지
 
'김대중 납치 사건'과 관련된 외교문서 공개
일본 교도통신, 한국 정부 야쿠자를 통해 김대중 살해 검토
http://news.nate.com/view/vod?aid=20071014n00919
자체 조사결과, 김대중 납치 사건에 정부 개입 인정
 
정부는 김대중님이 아닌 일본에게 사과: 그들은 우리 나라편이 아닙니다.
납치 공작원들 김대중님께 사과: 죽이려고 했는데, 사과하면 끝입니까? 그들은 항상 이렇습니다.
김대중, 행동하는 양심·평생의 고통 그리고 노벨평화상
 
5·6 공화국의 발단
 
부마 항쟁과 김영삼
 
차지철, 각하가 곧 국가다: TK·하나회와 전두환 '노태우의 시작
 
김재규가 사형되자, 국가의 혼란을 틈타 살인마 전두환이 12·12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전두환은 또 다시 군사정권을
만들고, 김대중님께 사형선고를 내립니다. 이에 광주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납니다. 전두환과 친일파들은 발포명령을 내려
시민들을 학살합니다. 그리고 삼청교육대를 만들어 국민을 탄압합니다.
 
제 5 공화국
 
12·12 쿠데타에 대한 정치권 대립
전두환의 직선제 개헌: 독재 정치는 항상 헌법을 유린해 왔습니다.
전두환의 언론플레이: 땡전뉴스와 기독교
 
그날의 작전명은 '화려한 휴가'
사진으로 본 5.18 광주민주화 운동 참혹사 (19금 포함)
삼청교육대
 
노무현의 싸움과 뻔뻔한 가해자들
 
명패 사건, 전두환의 전재산 기부 사기극
 
전두환, "5.18 당시 광주에서 데모하던 사람들은 폭동이야."
전두환,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
 
전두환의 독재에 대항하여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전두환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잔머리를 써서 친구
노태우를 후보에 세웁니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수천억원을 횡령합니다. 그리고 친일파들은 야당을 끌어들여 거대 보수를
만듭니다. 그렇게 김영삼은 민주화 운동경력을 팔아먹고, 대통령이 됩니다.
 
제 6 공화국과 김영삼의 배신
 
김대중님과 김영삼의 대결: 어부지리로 당선된 노태우
http://video.cyworld.com/208558464
노태우, 3당 합당 전후 김영삼에게 40억 전달
거대 보수의 탄생: 노무현, 이의 있습니다.
 
이것이 친일파당이다.
 
북핵 위기때 행동과 적반하장
 
한나라당은 북핵이 터지건 나라가 망하건 자신과 상관없기에 모여서 음모를 꾸미고, 회의장에서 쌩쇼를 합니다. 한편, 경수로
는 냉각재와 감속재로 경수를 사용하는 원자로의 한 종류로서, 북한에서 경수로 사업비용을 내달라고 합니다. 이에 신한국당
과 김영삼은 삽질 외교를 해서 돈을 퍼주기로 약속합니다. 그리고 그 사업은 참여정부에서 끝났는데, 북핵 문제가 생깁니다.
그들은 북핵을 초래한 정책이라고 책임을 묻습니다. 어이가 없죠. 그들의 꼴통행각은 계속됩니다.
 
 
김영삼과 신한국당은 국가를 하나둘씩 망가트리고, 국가부도 사태까지 일으킵니다. 그리고 좌파(민주주의, 민족주의)정권
이 들어섭니다. 김대중님은 상식(평화통일)적으로 옳고, 경제적으로도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햇볕정책'을 추진합니다. 이에
외국의 많은 단체들이 그의 업적을 알아줬습니다. 장기불황을 가져올 IMF도 빠르게 극복했습니다. 하지만 친일파의 뇌물공작
과 언론플레이로 힘을 잃었습니다.
 
 
노무현님의 PSI에 대한 생각: 원칙적으로 옳으나,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이명박의 PSI에 대한 생각: 나는 옳다. 니들 좌파 빨갱이 책임이다.
 
북한 신문, "PSI 전면 참여시 전면전"
친일파들의 경박함과 꼴통인증
 
무너진 햇볕정책
김대중님을 음혜하려는 친일파
 
중앙일보, 정보부는 그저 DJ를 서울에 데려다 놓으려 한 것
http://news.nate.com/View/20090719n08593
김동길·조갑제의 삐뚫어진 입구녕
친일파들의 선동질
김기삼, "김대중 노벨상 의혹 밝히겠다"
도망간 김기삼, 미 법원의 김기삼 망명 허용
 
좌파정권에서 북한에 대한 보도를 은폐·축소한 이유는 친일파들이 공작을 했거나, 좌파에서 반북 감정을 줄여보려는 의도
입니다. 그러한 감정이 고착화되면 남북통일은 물건너가고, 분열과 냉전만 심화됩니다. 이것은 친일파들이 바라는 것이고,
반공국가 건설과 그들의 독재를 실현시키는 방법입니다. 결국, 우리 국민만 언론플레이에 놀아나 김대중님을 의심합니다.
하지만 노무현님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통해 다시 한번 좌파정권을 세웁니다.
 
민주당의 배신과 한나라당의 쿠테타
 
민주당의 역적: 친일파 후손 조순형 (독립운동가로 미화)
 
방송위원회의 음모
노무현 탄핵쇼: 탄핵 소추안 가결 (가결-통과, 기각-불통과)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누가 탄핵한단 말이냐!
 
노무현, 친일파와의 싸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위원에게 임명장을 수여
국회 '친일 청산' 길 열린다.
친일파 재산 환수 57년만에 재개
'친일파 명단' 4천776명 발표 (4천330명 으로 줄여서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고작 그정도 일까요? 최소 만명은 넘을 것입니다.) 
신 을사오적 명부: 친일파 청산 특별법발의에 서명하지 않은 국회의원
 
독도문제·친일행위 진상규명법 논란에 대해
http://video.cyworld.com/208046065
독도는 우리땅, 일본 과거사 명연설
http://www.youtube.com/watch?v=x8rWj8WrGOo
 
친일파들이 묻어버린 참여정부의 업적
 
대한민국 대통령 최초로 영국 국빈 방문
한미정상회담: 독재자 부시때문에 미국의 뜻대로 하셨지만, 할말은 하셨습니다.
핵융합에너지 완공식: 이명박 정부는 일본인을 끌어들이고, 예산도 축소했습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참여정부 집권회고
 
참여정부 집권회고
경제시비에 대한 반론
한나라당에 대한 생각
생각하는 시민이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친일파들은 어떻게든 정권을 잡기 위해 노력했고, 뉴라이트를 결성하여 이명박(일본인, BBK 사기꾼, 전과 14범)을
자리에 세웠습니다. 한나라당은 이명박의 과거를 들추어 내다가, 이명박이 권력을 잡자 그의 편으로 돌아섭니다. 이제 그들은
민주주의를 내세우거나, 자신을 반대하면 검찰에 집어넣습니다. 그리고 알바를 시켜 빨갱이로 몹니다.
 
과거 감추기가 습관이 된 친일파
 
김경준씨가 사기꾼이라는 고승덕 변호사
한나라당에서도 알고 있는 BBK 사기꾼, 전과 14범
 
BBK, 검찰의 무소유혐의 발표
BBK, 신강균의 사실은
이명박, "논평할 가치가 있습니까?"
KBS, 이명박 BBK 관련 있을시 대통령직 사퇴 발언
이명박, BBK 설립 동영상
 
BBK 설립 동영상에 주어(내가)가 빠져있다는 나경원
김경준씨 어머님의 통곡
 
김경준씨는 유죄판결을 받았고, 이명박은 '내가' 설립하지 않았다며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어이가 없죠. 김경준씨가 사기꾼이
라는 것은 검찰의 판결과 서류, 변호사의 말이 있지만, 이명박이 사기꾼이라는 것은 자신의 입으로 증명되었습니다.
 
검찰의 부폐 과정
 
노무현님의 검찰개혁
검찰의 '청계천비리' 집중조사
부폐한 검찰의 수사태도 : BBK, 장자연 사건
 
노무현 대통령님의 논란을 반론할 수 있는 자료는 계속 보충하겠습니다. 서거하실 때의 행적은 이렇습니다. 진실 조사 ->
친일파에게 위협 -> 조중동과 방송사의 언론플레이 -> 도덕성 흠집과 국민의 불신 -> 검찰의 편파수사 -> 법적인 싸움
준비-> '의문사'로 서거 (타살일 가능성 높음) -> 부검불가와 신속한 화형 -> '비도덕적인 자살'로 발표: 과거는 잊어라.
 
상록수

서해교전 유가족 오찬
서해교전 논란에 대하여
 
시위 농민 사망 관련 노무현 대통령 대국민 사과
일자리는 노사간 대화와 타협으로
간도 협약 법리적 무효
 
대통령 노무현, 친일파들에게 고통받다.
검찰의 편파 수사
 
친일파와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
 
노무현님의 연설, 상록수, 사랑으로, 눈물
 
친일파와 군사정권의 잔재는 과거를 감추고,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들은 없는 것을 있다,
있는 것을 없다고 하는 쓰레기들입니다. 증거를 제시하면 편향되있다. 중도를 취해라. 화해하자. 지금이 어느 때인데 그런 말을
하느냐. 이런 식으로 지껄입니다. 그래놓고 잊을만 하면 역으로 숙청하죠. 그들 때문에 죄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죄를 짓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그들을 반드시 심판해야 합니다.
 
당신이 역사를 모를 때, 그들은 애국지사를 죽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과거사 망각 의지
1.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 조사 위원회 폐지발표(2006년 출범)
2. 군 의문사 진상규명 위원회 폐지발표(2006년 출범)
3.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 폐지발표(2005년 출범)
4. 친일 반민족 진상 규명 위원회 폐지발표(2004년 출범)
5. 삼청 교육피해자 명예 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 폐지발표(2004년 출범)
6. 노근리 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 회복 위원회 폐지발표(2004년 출범)
7. 일제 강점하 강제 동원 피해 진상규명 위원회 폐지발표(2004년 출범)
8. 동학 농민혁명 참여자 명예 회복 심의위원회 폐지발표(2004년 출범)
9. 특수 임무 수행자 보상 심의위원회 폐지발표(2004년 출범)
10.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 위원회 폐지발표(2000년 출범)
11.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 회복 및 보상 위원회 폐지발표(2000년 출범)
12. 거창 사건 등 관련자 명예 회복 심의위원회 폐지발표(1998년 출범)
13.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자 보상 지원 위원회 폐지발표(1990년대 출범)
 
미디어법을 통과시키는 이유: 국민 세뇌와 민족 정신 말살, 마녀 사냥
유시민, 미디어법 강의
 
조중동이 세상을 지배한다면
"미디어를 지배하는 자가 의식을 지배하고, 대중의 의식을 지배하는 자가 권력을 가진다."
-유시민-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도자에게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대중의 이해력은 매우 부족하며 잊어버리는 능력은 매우 뛰어나다.”
“거짓말을 하려면 크게 하라. 그러면 사람들은 그것을 믿게 된다.”
“선전하기에 따라 사람들이 지옥을 천국으로, 천국을 지옥으로 여기게 할 수 있다."
-아돌프 히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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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30 유시민에 크게 혼난 호남왕 김대중   5 ㅇㅇ 09-08-20 0 14 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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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님을 추모하며...애국자와 매국노가 뒤.. 이정민 09-08-20 2 0 1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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