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는 사람 사는 세상을 죽인다.
이 나라에서는 불의한 기득권과 정당성 없는 권력이 자신의 대적들을 ‘빨갱이’라고 하면서 부당한 공격과 억압을 행했습니다. 물리적 폭력까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폭력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만,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우파에 서 있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만큼 큰 오해도 없는 듯합니다. 이 나라에서는 정치적으로 건전한 우파는 찾아보기 힘들고 대부분의 정치적 우파를 자처하는 자들은 불의한 수구 기득권 세력입니다. 기독교회가 이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고, 이들과 같은 길을 간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이 죽이는 행위에 해당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런 정치적 논리로 보면 매우 좌파적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삼십 세의 젊은 나이에 기존 정치나 종교적인 그 어떤 자격도 없으면서 유명한 정치 세력과 종교 세력과 그들의 원로들을 망신 주셨습니다. 그들의 약점과 잘못에 대해서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하셨고, 그들의 이론이 잘못되었음을 공개적으로 입증하곤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외된 자들과 가난한 자들, 사회적으로 불순한 세력들과 어울리셨습니다. 그리고 우매한 민중들을 교육하심으로 정치 세력과 종교 세력에 효과적으로 대항하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민중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는 봉기를 일으키려고까지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사회가 가장 핵심이 되는 규율이라고 여기는 안식일 규정조차 기존 질서를 전혀 인정하지 않으심으로 오히려 혼란을 가중 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도 대단히 거칠게 하셨고, 비판과 비난도 서슴지 않으셨습니다. 그 사회가 차마 입에 담지 못하는 최고의 욕, ‘이 독사의 새끼들아’는 쌍욕을 퍼부으시며 저주를 하셨습니다. 그분을 올무에 매려는 자들에게서는 뱀처럼 빠져 나가셨고, 도리어 그들이 대답을 못할 만한 질문을 하심으로 망신을 주셨습니다. 권력가들의 비호 속에 있는 장사치들의 좌판을 둘러엎어 버리기도 하셨습니다.
이 정도면 이 나라의 기형적인 우파 수구 세력들이 보기에는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거리낌 없이 행하는 지독한 ‘빨갱이’로 여겼을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죽이고자 모의하던 자들은 예수님의 유죄를 찾지 못하자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을 위해서 죽여야 한다(요 11:47-50)는 논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과 헌법이나 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고려도 없이 국가의 안보에 문제가 된다는 논리로 만든 국가보안법으로 자신의 정적을 억압하고 죽이는 수구 기득권의 태도는 정확히 일치합니다.
논리도 없고 근거도 없는 ‘빨갱이’라는 단어로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자들은 모두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절대선이란 잘 먹고, 잘 사는 일입니다. 이것을 위해서라면 윤리나 도덕은 쉽게 무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일에 방해가 되는 그 어떤 진실과 진리라도 덮어 버리는 것이 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겉으로는 아니라도 실제로는 자신이 잘 먹고 잘 사는 일에 하나님과 예수님도 봉사해야만 한다고 여기고 있을 정도로 물질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는 자들입니다. 이런 생각 속에 있으니 전과 14범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일을 부끄러운 일인 줄도 모르고 뛰어다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논리, 정확히 국가보안법적인 논리를 가진 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교회가 그런 논리를 가진 자들과 한 목소리를 내고, 같은 정치적 지형 위에 서 있고, 그 자들의 정적을 곧 자신들의 정적으로 받아들여서 아무런 논리도 없는 색깔론으로 ‘빨갱이’라고 부르며 손가락질 한다면 정확히 예수님께 그런 짓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고자 하셨던 일을 반대하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셨던 사람들을 핍박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런 일을 한다면 이것을 어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어찌 배교의 행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물론 교회는 좌파의 이데올로기를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우파의 입장에 서 있어도 안됩니다. 이데올로기들은 분명히 우상 숭배입니다. 그 사상 자체가 우월하다고 생각하거나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교만이고 큰 죄입니다. 그 사상이 우월하거나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면 자연히 모든 가치를 그 사상의 입장에 서서 판단하게 됩니다. 즉, 그 사상에 긍정적이면 선이 되고, 부정적이면 악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는 행위입니다. 선과 악의 결정권을 이데올로기에게 넘겨주는 배교의 행위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이데올로기들의 경쟁과 싸움에 대한 심판자로 서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세상의 이데올로기에 함몰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데올로기의 광기가 그 사회를 휩쓸어 갈 때 흔들리지 않고 서서 성경의 진리를 외치면서 시대를 붙잡아 줘야 합니다. 지금 이데올로기의 허황된 약속에 속아서 광기 속에서 몰려가고 있지만 그곳으로 가면 큰 불행이 온다는 것을 경고해 줘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며, 그것이 교회의 선지자적인 사명입니다.
예수님의 행위를 비난하는 바리새인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데 헌신 되었노라고 말하면서 결국 예수님을 대적해 나갔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유대교적인 이데올로기, 민족주의적인 이데올로기에 사로 잡혀서 하나님의 계시의 실체이신 예수님을 뵙고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만큼 이데올로기는 우리를 속이고 우리를 넘어뜨리는 사단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의 이데올로기에 의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종교적 이데올로기, 사두개인들의 인간중심의 이데올로기, 로마 제국의 국가적 이데올로기 등이 평상시에 서로 죽일 듯이 경쟁하다가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자 힘을 합하여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시는 하나님 나라를 감당할 수 없어서 이를 막고자 폭력적으로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사람이 종교권력, 지식권력, 군사권력 등의 어떠한 억압에도 얽매이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고 하시자 이 권력들이 연합하여 기를 쓰고 죽인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에 대한 세상의 일관된 반응이자 태도입니다.
그렇게 링컨이 죽었고, 김구가 죽었고, 노무현이 죽어 갔습니다. 그들이 죽임을 당한 이유는 좌파이기 때문도, 우파이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죽임을 당하게 된 공통적인 이유는 정확히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진리이신 예수님을 죽인 이 이스라엘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주후 70년에 비참한 멸망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의인들을 죽인 세상도 그에 따른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속아서 휩쓸려 간다면 그 사회는 조만간 심각한 어려움과 직면하게 될 것이며,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이것이 얼마나 분명한 사실인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삼당 야합한 장로 대통령으로 인하여 국가 부도 사태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전과 14범 장로 대통령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애를 써서 쌓아 올린 자유의 가치들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다시 검찰과 언론과 국정원과 기무사의 감시와 통제, 그리고 경찰력의 폭력에 억압당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러한 세상의 이데올로기, 진리를 말하나 사실상 왜곡되고, 거짓된 진리를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는 이 세상의 흐름을 보고 그것을 분별하여 바로 잡아주며 참 진리로 돌이킬 수 있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