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호남의 '유시민 비토론'은 조작된 거짓신화
(서프라이즈 / 서영석 / 2009-08-14)
세상의 진보는 통상적이고 정형적인 '모범답안'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다고 봅니다.
기왕에 유시민을 화두로 글쓰기를 재개했으니 내친 김에 한마디 더 해볼까 합니다. 서프라이즈에서도 그렇고, 실제 호남의 제 친구들도 "유시민은 왕재수" "정말 밥맛없다"는 등의 얘기를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호남은 정말로 유시민을 비토하는 걸까요. 그렇다면 그 실체는 뭘까요.
물론 그들이 호남의 민심을 대변하는 건 아니겠지만, 실제 그런 얘기가 비교적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그렇게 믿는 사람도 상당수 있습니다. 그거야 뭐 인구가 얼마인데 얼마든지 그런 류의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검증되지 않는 이런 류의 이른바 '호남의 유시민 비토론'이 현실정치에까지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지요.
제가 신당 창당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가령 신당 창당시 유시민은 호남의 비토를 받으니까 뒷전에 물러 앉아야 한다느니, 유시민으로는 호남 지지가 어려우니 누굴 대신 내세워야 한다느니 하는 등의 얘기가 거침없이 흘러다니고 있습니다. 이건 정말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구요? 호남의 유시민 비토론은 검증되지 않은 '거짓 신화'이며, 설혹 일말의 진실이 포함돼 있더라도 충분히 극복가능하며, 또 극복해야만 하는 당위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죠.
호남의 유시민 비토론은 사실 '노무현 비토론'의 또다른 얼굴일 뿐입니다. 유시민 비토는 '노무현 비토'에서 비롯됐으며, 그것이 몇가지 이유에서 유시민 비토로 전화됐다는 게 제가 참여정부를 회고하면서 내린 결론입니다.
따라서 호남의 유시민 비토를 이해하려면 실상 노무현 비토를 먼저 이해해야만 합니다.
'노무현 비토'는 어쩌면 '호남당의 영남후보'로 집권한 노 대통령의 숙명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역사는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깊이있게 연구되고 고민되어져야 할 문제이기도 하죠. 하지만 그 미묘함 때문인지 아무도 언급하려 들지 않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숙명이야 어떻든 명분상으로는 노 대통령 집권 후 이른바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하는 게 호남의 비토를 촉발시키는 기폭제가 됩니다. 하지만 나는 이게 일종의 핑계일 뿐이지, 결국은 '설렁탕 싸움' 혹은 '밥그릇 챙기기'의 결과라고 분석합니다.
노 대통령은 집권후 청와대를 이른바 부산 인맥으로 채웁니다. 사실 집권한 대통령이 다른 건 몰라도 청와대의 보좌세력들을 최측근들로 기용하려 하겠다는 마음이 잘못된 것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MB집권 이후 박근혜 쪽 사람들을 청와대에 안쓴다고 불만을 표하는 것도 실은 이치에 맞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세상일이 이치로만 되는 건 아닌 모양입니다.
노 대통령에게 당시 문제는 청와대에 손발을 맞출 측근 인맥이 당시 민주당내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워낙 예상 밖으로 후보가 됐고, 또 인기가 추락한 이후 정몽준과의 후보단일화로 승기를 잡은 것도 채 한달 남짓했기 때문이죠. 그의 주변에 믿을 만한 사람들이 세력을 형성할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노 대통령은 문재인으로 대표되는 부산인맥들로 청와대의 참모진을 구성합니다. 뭐, 비율로 따져서 얼마 안된다 어쩌구 하는 헛소릴랑 하지 마세요. 숫자야 몇명이었든 청와대는 철저하게 부산인맥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합니다.
이 과정에서 몇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실상 노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정치집단인 민주당, 그리고 그 주류인 호남인맥에 서운한 감정을 야기합니다. 게다가 이들 부산 인맥은 노 대통령의 정치역정에서 보면 '동지'이긴 했지만, 실제 대통령 선거과정에서는 대부분 뒷짐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선거공로론'과 맞물려 호남주류의 서운한 감정은 증폭됩니다.
시쳇말로 "쎄빠지게 고생한 우리는 찬밥이고, 부산넘이란 이유만으로 아무 공도 없는 넘들이 청와대에 입성했다"는 불만인거죠. 본질로 보면 결국 밥그릇 싸움입니다.
선거과정에서 별로 공로가 없었던 부산인맥이 청와대를 장악함으로써 야기된 후폭풍은 사실 상당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노 대통령은 철저하게 이들 부산인맥을 '손발'로만 생각했을 겁니다. 사실 청와대만 제외하면 장관임명이라든지, 각종 국공립단체의 장들 인사에서 대체적인 '호남우위'는 유지됩니다. 따라서 자신을 직접적으로 보좌하는데 불과한 사람들을 아는 사람들로 좀 채우는데 뭔 문제가 있느냐는 생각이었다고 봅니다.
노 대통령의 이런 생각은 원칙적으로는 맞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좀 순진한(나이브한) 생각이기도 합니다. 청와대는 단순히 대통령의 손발만이 아닙니다. 그 손발들이 각종 인사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노 대통령의 생각과는 달리 실제 '권력'을 발휘했습니다. 권력기관에 대한 노 대통령의 나이브한 접근방식은 검찰과 국정원에도 이어져 결국 강력한 장악력과는 거리가 먼 권력으로 5년을 보내게 되는 요인이 됩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숨어있는 요인이 있습니다. 부산인맥의 정점에는 실제 대선과정은 물론 그 이전에서부터 대통령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던 '386'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정치경력도 일천하고 무엇보다 젊습니다.
따라서 청와대의 숨은 실세 격인 젊은 386부산출신 측근 참모들에게는, 민주당의 노회한 인맥들보다는 대선과정에서는 별로 간여하지 않았던 부산인맥들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선거에 공로는 없이 청와대에 입성했으니, 나이가 많다거나 경력에서 좀 앞선다고 하더라도 청와대 주도권은 여전히 '386실세'들 손아귀에 있을 터이니까요.
과거 DJP연합이 결국 깨졌던 것도 '밥그릇 다툼'이었듯이 이같은 일련의 과정에서 야기된 불협화음들은 '호남당의 영남후보'가 갖고 있는 숙명적 한계와 맞물려 이른바 호남의 노무현 비토론으로 증폭되고, 그것은 노 대통령의 '대북특검 수용'으로 폭발합니다.
그 이후 노 대통령 탄핵에서도 보듯이 사실 국회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억지를 막을 힘이 없는 노 대통령이 대북특검을 수용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지만, 그것은 일종의 기폭제였을 뿐 호남이 노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는 건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고 저는 봅니다. 여기에 수구언론들의 부채질도 크게 작용했다고 봐야죠.
호남이 등을 돌림으로써 노 대통령은 임기 내내 낮은 지지율에 시달렸습니다. 주요한 지지기반인 호남이 이탈함으로써 노 대통령은 10%대의 지지율까지 떨어지기도 했었죠.
길게 가자면 한도 끝도 없는 얘기입니다. 어떻든 호남의 노무현 비토론은 그의 정치적 최측근이자 분신인 유시민에게로 자연스럽게 이월됩니다. 또한 보건복지부 장관 취임이전까지 보였던 유시민의 '평론가적 기질'이 기름을 붓습니다.
유시민은 장관 취임이전까지는 사실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정치평론가에 가까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질은 정치인으로서는 '빵점'입니다. 정치평론가를 자처하는 제가 현실정치 근방에도 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죠.
정치인이라면 맞는 얘기도 하는 시점이나 장소에 따라 뭇매를 맞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하지만 평론가 유시민은 그걸 참지 못했죠. 정치평론가인 내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어떠냐"고 자조적으로 얘기할 수는 있지만 정치인인 유시민이 그런 얘기를 하면 그야말로 죽일넘이요 역적이 되는 거죠.
유시민 비토는 바꿔 말해 호남사람들이말로 진작부터 유시민을 노무현의 후계자로 인정해왔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노 대통령의 서거는 유시민 비토론을 더 강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왜냐구요? 우리 나라 인심이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는 모든 감정을 흘려보내는 '좋은'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에 대한 감정은 강물에 씻겨 흘러내려갔지만, 그 서운한 감정은 사실 사라지지 않았던 거죠. 게다가 그의 '분신'인 유시민이 있지 않습니까. 자연스레 유시민 비토로 이어진 거죠.
분석하자면, 이런 것이지만, 그것도 노 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조금씩 희석되고 있습니다. 8월 11일의 리얼미터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자의 31.6%가 차기 대선후보로 유시민을 지지해 정동영 지지(27.3%)를 앞질렀습니다. 이건 그 극명한 증거라고 봅니다.
사실 노무현 정권 5년은 노 대통령이 부산인맥들로 청와대를 채우긴 했으나 이른바 권력 나눠먹기 측면에서는 본질적으로 호남 정권이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의 '아우성'을 보면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호남사람들의 노 대통령에 대한 서운한 감정은 충분히 이해가능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합리적인 것도 아니고 옳은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호남의 말없는 다수는 이미 노 대통령이나 그의 '분신' 격인 유시민에 대한 묵은 감정을 다 흘려보냈을는지도 모릅니다. 몇몇 '국물'들이 여전히 비토론을 합창하고 있는게 현실인지도 모릅니다.
노 대통령이 유명을 달리하고 난 지금, 그같은 서운한 감정은 날이 갈수록 엷어질 것이며,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임...
과거 노변정담을 기억하셨던 분들은 제가 오지랖이 넓어서인지 이것저것 개인적으로 관여하는 것도 많고 취미도 다양하다는 걸 아실 지도 모르겠네요.
섶에서 해도 되지만, 섶은 엄연히 경영주체가 있으니 제가 글쓰기 외에 다른 것까지 이것저것 하면 현재 주체가 부담스러워할 것 같기도 하고 해서리...칼럼 이외의 것들은 철저하게 블로그에서 해보려고 합니다.
걷기나 달리기, 자전거타기, 살빼기, 몸만들기, 등산, 얼리어답터와 관련된 것들, 스포츠, 바둑 등등에 대한 단상들은 저의 블로그에서 감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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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 서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