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노변호사님, 기억나세요? / 친구 노무현을 보내며 / 아아 노무현
|
 |
|
|
|
|
나의 노 변호사님, 기억나세요?
대통령님 아니 나의 노변호사님, 지금은 저 푸른 하늘 위에서 조금은 평안하세요? 대통령님이라는 말이 입에 서툴러 예전처럼 친하게 변호사님으로 부르는 것, 이해해주세요.
어제 6월 21일은 '부민협(부산민주시민협의회) 동지회' 회원들과 '정토원'에 들렀습니다. 그렇다 하여 휑한 가슴이 희망으로 가득 차는 것은 아니지만 쓸쓸한 마음과 훼한에 사진 한 장, 기도 한 자락으로나마 위로받을 수 있을까하여 다녀왔습니다.
변호사님과 인연을 맺은지가 벌써 28년, 어언 30여년이 다 되어가는군요. 아,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1981년 서슬퍼렇던 전두환정부 아래 대학을 갓 졸업하고 부산 시내 중학교에 부임해 있던 저는,당시 소위 '부림사건'에 연루되어 있어, 지금은 유명한 '성문제'강사가 되어있는 구성애언니와 젬마언니랑 같이 콩닥거리는 가슴을 꽉 부여잡고 변호사님 사무실 문을 용감하게 밀었습니다. "힘없고 가난한 우리를 위해 무료변론을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서운 '국가보안법'사건인데요"라는 저희들 제안에 너무도 흔쾌히 우리들 손을 일일이 붙잡아주시며 "염려하지 마세요"라고 격려해 주셨지요. 우리는 감격스럽기도 하고 오히려 당황해 성애언니는 저에게 "야, 연희야 저 변호사님 뭘모르시고 너무 순진하신 것 아니니? 나중에 딴소리하면 어떡해?"라는 대화들로 주절댔습니다.
저는 아직도 또렷이 기억나요.50~60일 이상 불법 감금, 고문으로 피폐해진 우리들 곁에서 "저 젊은이들이 고민했던 문제의 핵심은 '휴머니즘'입니다." 라고 당당하게 외쳐주시던 변호사님의 모습이요.
변호사님 기억나세요? 재판으로 지쳐있던 제가 안쓰러웠던지, 같이 저녁먹자고 댁으로 데려 가 주셨던 일요. 저는 그때 소위 변호사님들이 사는 집을 난생 처음 구경해 봤구요 부산에서 유명했던 남천동 '삼익맨션'을 처음 구경했지요. 젊고 아름다우셨던 권양숙여사님을 처음 뵙고 속으로 '사모님이 너무 예쁘신데,변호사님 능력있으시다'이렇게 생각했죠. 미술학원에 갔다오던 어린이 '건호'군도 그때 처음 봤구요. 정말 그날 저녁밥은 따뜻했고 평생에 잊지 못하는 저녁밥이었어요. 변호사님, 그리고 여사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우리 재판이 끝나고 우리가 만들었던 부산 최초의 비종교적인 재야단체 '부산민주시민협의회(이하 부민협)'의 상임이사님이 되어주셔서 문제가 터질 때마다 온갖 '기도회','가두투쟁'에 몸소 나서주셨지요.
변호사님, 모르셨죠? '박종철 열사 치사사건' '항의'가투 때 잡혀가시고 나서 야밤에 권여사님이 오돌오돌 떨면서 사무실에서 변호사님 걱정하셨던 일요. 사모님은 그때 침착하시려고 매우 애쓰셨어요.
청와대 들어 가시고 우리를 초청해 주셨을 때, 대표 인사를 해야 하는데 감회가 서려 일어서서 말한마디 못하고 내내 울어서 죄송했어요. 정말 저는 그때 말을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어요. "아직 시집 못갔느냐 " 한마디 듣고 겨우 울음 그쳤지만 저는 부산 내려오는 내내 울었어요.
봉하 내려오시고 좀 잠잠해지고 평화로워지면 찾아 뵙는다는 것이 그게 잘 이뤄지지 못해 못뵙다가 작년 10월 부마항쟁 기념식때 민주공원에서 뵈었던 것이 마지막이 되었군요.정말 그렇군요.
남포동 거리, 중부교회, 당감성당, 서면 천우장 앞, 같이 잔 기울였던 포장마차, 거리 곳곳에 같이 깃발들고 스크럼 짰던 변호사님의 자국과 숨소리가 남아 있는데, 정작 그리운 사람이 없으니, 억울해서 어떡할까요? 정말 분하고 원통해서 어찌하나요? 이제 우리가 변호해드려야 할 차례인데 사람이 없고 흔적만 남아있으니.....
49재일에 학교에 연가 내고 다시 올라올께요.
이제 국민들의 대통령님으로 돌려드릴께요. 대통령님, 가슴 속에서 늘 굽어살펴 주세요. 정말 사람사는 세상을 위해 열심히 살께요.
2009. 6. 22, 부산에서 윤연희
친구 노무현을 보내며
통분과 눈물로 한 주일을 보내고 보니 이제 당신을 영영 하늘로 떠나보내야 하는 날이 왔소. 내 늦둥이 놈을 위해 당신이 써 준 "기범아! 꿈이 힘이다."라는 글이 아직도 아들놈 책상 위에 놓여 있는데 정녕 당신의 꿈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부엉이 바위 밖에 없더란 말이오.
미안하고 원통하오. 당신이 힘들어 할 때, 당신과 여사님께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보고자 몇 번이나 편지를 썼다가 다시 쓰곤 했었다오. 멀리서나마 두 분을 믿고 후원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차마 그 편지를 부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무릎이 풀려 집사람과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오.
가장 위대하였던 평민 당신이 꿈꾸던 세상 사람들 가슴 속에 피어나
친구여, 당신은 참 나쁜 사람이오. 3당합당을 거부하고 김영삼 총재를 따라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향 부산에서 우리 얼마나 많은 멸시와 야유를 받았는지 기억하오? 지역주의를 넘어보겠다고 했지만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깨지고 또 깨지면서도, 같은 꿈을 꾸는 동지, 같이 행동하는 친구가 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는데, 아직 그 꿈을 완전히 이루지도 못한 채 이렇게 먼저 떠나가 버리다니…, 당신은 참으로 야속하고도 나쁜 친구요.
친구여, 당신은 참 멋진 남자요. 당신은 같은 남자인 내가 보더라도 부러울 만큼 결단력이 있고 용맹스러우며 또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나이 중의 사나이였소. 청문회장에서의 그 포효, 3당합당이 야합이라 외치며 반칙이 허용되는 사회를 후세에 물려줄 수 없다고 끝내 정치적 타협을 불허하고 싸우던 기개를 영원히 잊지 못하오. 3당합당 거부 후 쓰린 마음을 소주잔으로 달래며 "나는 국회의원 떨어져도 변호사라도 해서 먹고살 수 있지만 당신은 뭘 믿고 안 따라 갔소?"하며 나와 나의 가족을 걱정해 주던 그 따뜻한 마음, 지친 어깨를 기대고 함께 이야기하며 울던 그 시간들을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이오. 나는 당신이 겉으론 강한 것 같지만 속으론 여린 사람인줄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오.
친구여, 당신은 그래도 참 행복한 사람이오. 누군가 말하기를 "세상에 올 때는 홀로 울고 오지만, 세상을 떠날 때는 모든 사람이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했다는데, 당신을 위해 울어주는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당신이 참 행복한 사람임을 확인할 수 있었소.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하였던 평민, 거듭된 실패를 통해 가장 큰 성공을 이루었던 비주류였던 당신, 가장 높은 곳에 올랐지만 늘 가장 낮은 곳으로 눈높이를 맞추었던 친구 같은 대통령이었던 당신. 당신이 꿈꾸었던 그 꿈들이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눈물을 머금고, 환한 웃음과 함께, 촛불과 함께 피어나는 것을 요 며칠 사이 나는 지켜보았소. 그래서 비로소 나도 내 오랜 친구를 편히 보내주기로 마음먹게 되었소.
편히 가시오, 내 친구여. 이제 모든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훌훌 털고 떠나소서, 내 평생의 동지여.
당신이 꿈꾸던 '사람 사는 세상', 원칙이 반칙보다 우선하는 세상, 살 맛 나는 세상을 만드는 일은 당신의 오랜 친구들, 그리고 이제 막 당신의 새로운 친구가 되기 시작한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몫일 터이니….
노무현! 당신이란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하였소
김정길 / 전 행자부 장관
|
|
|
|
아아 노무현
[서거 한달]끊지 못하는 모진 목숨...행복하고 미안했던 후원회장 20년 |
박 군. 이른 새벽, 부엉이 바위 위에 서 있던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네. 어릴 때부터 오르던 부엉이 바위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코 흘리게 시절부터 뛰어 놀던 정든 봉하 마을을 내려다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박 군. 눈앞이 흐려져 글이 써지지 않네. 말라 버린 눈물인줄 알았는데 또 나오네. 죽는 날 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며 살아야 할까. 눈물을 흘리면 뭘 하나. 모두가 부질없는 일인 것을,
머리와 가슴은 없고 몸뚱이만 살아있네. 너무 억울하고 원통해서 못 살겠네. 세상에 이렇게 무도한 놈들이 있단 말인가.
박 군.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는 이런 대사가 나오지.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자비를 바라는 것은 이리에게 왜 양의 새끼를 잡아먹고 양의 어미를 울리느냐고 따지는 것과 같다’고.
왜 노무현 대통령이 그토록 이가 갈리도록 미웠고 저주스러웠을까. 상고 출신 가난한 농민의 아들이 천형의 죄인이란 말인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노무현이 그처럼 죽이고 싶도록 미웠을까.
비록 가난하더라도 소외당하지 않고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사람 사는 세상’을 염원하며 온 몸으로 살았던 것이 죄란 말인가. 설사 아무리 밉다 하더라도 이 지경으로 만들어야 한단 말인가. 이런 개만도 못한 세상이 어디 있단 말인가.
박 군. 적지 않은 나이. 이렇게 나이를 먹도록 왜 미워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이 없겠나. 세상엔 좋은 놈 나쁜 놈 다 섞여 살게 마련이고 나쁜 놈 미워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이 나이가 되도록 요즘처럼 인간을 미워한 적이 없었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런 인간들을 좋아한 인간들도 있겠지만 나는 아니었네. 지금은 이들은 양반이란 생각이네. 아아 어쩜 내 마음이 이 지경이 됐단 말인가.
죽을 날도 멀지 않은 내가 이렇게 사람을 미워해도 되는지 딱하지만 내가 죽어 지옥에 떨어진다 해도 이 미움은 가시지 않을 것이라고 믿네.
가슴이 바삭바삭 말라서 이제는 어디 스치기만 해도 부서져 버릴 것만 같네. 하루에 열두 번 씩 떠오르는 부엉이 바위와 그 위에 섰던 대통령, 그리고 이 더러운 세상을 생각할 때 마다 살아갈 이유는 자꾸 사라지는데 치사하고 더럽고 모진 게 인간의 목숨인지 이렇게 살아있다네. 누가 대신 죽여주지 않나.
자네나 나나 평생 글을 쓰면서 먹고 살았는데 솔직히 이젠 글도 안 쓰여 지네. 눈은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써 놓고 나면 내가 읽기에도 무섭고 쓰는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도 들고 어디 깊은 산속에라도 들어가 움막이라도 파고 살다가 죽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네.
새벽에 잠이 깨면 노무현이라는 사람과의 20여년 인연이 선하게 떠오르네. 정치적인 잘잘못이야 다 있게 마련이고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할 정치야 하느님인들 하실 수가 있겠나.
20여 년 동안 후원회장으로 겪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은 날 울리네. 항상 사람의 냄새가 물씬했던 노무현,
낙선의원 시절, 여수 인근의 조그만 농협에 강연을 갔을 때 지독한 독감에 걸려 우유한잔도 못 넘기면서 고열로 신음을 하기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강연 취소하고 돌아가자고 했더니, 자기를 몇 달 동안 기다린 사람들이라며 기어코 강연을 마치고 거의 실신한 채 귀경하던 모습이 떠오르네.
운전하던 최 군이 예비군 훈련으로 내가 대신 운전을 해 조그만 노동조합 강연을 갈 때, 나이 먹은 나를 배려해서 자기가 운전을 하겠다며 자기도 운전 잘하니 걱정 말라고 웃던 그의 모습과 가끔 장거리 운전을 할 때면 미안해하며 뒷좌석에서 좀 자겠다고 바로 곯아떨어지던 그의 지친 얼굴, 담배를 안 피는 나 때문에 내 차에서는 절대로 담배를 안 피던 노무현, 왜 이런 기억들이 날 슬프게 하는지 미치겠네.
새벽 두시가 되어 돌아오는 귀경길에 <펜 벨트>가 끊어져 오도 가도 못하고 두 시간 가까이 길에 서 있을 때, 똥차로 모신 내가 미안해하면 오히려 자기가 더 미안해하던 모습은 지금 다시 눈물 이 되어 흐르네.
부산 동구에서 허삼수하고 두 번째 붙었을 때 시장에 가면 시장 상인들이 노무현 후보에게 ‘지역구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고 비난을 하네.
미안하다고 한 마디만 하면 끝날 일을 꼭 상인을 붙들고 국회의원과 시의원이 할 일은 따로 있다면서 이해를 시키네. 시장복판에서 유권자와 입후보자가 토론을 벌리는 모습을 보고 운동원들이 얼마나 가슴이 답답했겠나.
지리산에서 있은 전국 당원 연수회에서 강연을 마치고 유인태 노무현을 태우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내가 과속으로 전주인근에서 걸렸네. 교통순경이 경례를 하며 “과속입니다” 하다가 노무현을 알아보고는 씩 웃으며 “가십시오.” 할 때 그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며 미안해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네.
어쩌다가 일요일 날 청와대에서 점심을 함께 할 때 입이 험한 내가 나쁜 놈이라고 이름을 거명하며 욕을 하면 너무 비난하지 말라고 나를 말렸네.
“그 사람들도 본심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 정치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언론문제가 심각할 때도 대통령은 적어도 자신이 당선된 후 언론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전혀 안 변하더라며 씁쓸해 했네. 내가 그랬지. 개꼬리 3년 묻어놔도 황모 안 된다고. 집권 초기에 언론에 대해 왜 원칙대로 하지 않았나 하고 지금도 한으로 남네.
자신들은 온갖 못 된 짓을 다 하면서 마치 제왕처럼 행세하는 언론들, 이들이 건재하는 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쓰레기통에서 썩네.
후원회장이라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일도 없이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 법률상담이나 해 달라던 내 한심한 모습, 표에는 별로 도움도 되지 않는 강연에 끌고 가 시간을 빼앗은 내가 지금 생각하면 한심한 후원회장이였다는 생각이 드네.
난 참으로 행복한 20년 세월을 지냈네. 그와 함께라면 그냥 좋았고, 사람이 어떻게 저토록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판단할 줄 아는지 경탄을 했고, 그는 관행이라고 해서 슬쩍 넘어가던 온갖 부조리에서 날 구해 주었네.
늘 자식들한테 말했네.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판단이 잘 안 될 때 노무현 같으면 어떻게 판단할까 생각하고 그가 결정했을 것이라고 믿는 대로 결정하면 옳은 결정이 될 것이다.”
아내가 내게 한 말이 떠오르네.
“당신이 노무현을 사랑하는 마음의 십분의 일만 나를 사랑하면 당신을 업고 다닐 거예요.”
이제 그는 이 세상에 없고 그를 사랑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네. 사람들은 노무현을 위하며 이렇게 기도하네.
“대통령님. 이제 고통을 잊고 편안히 쉬십시오.”
난 다르네.
“대통령님. 눈 크게 뜨시고 이 나라 정치를 지켜보십시오. 어느 놈이 이 나라를 망치는지 보시고 꿈에라도 나타나 정신을 차리게 회초리를 드십시오.”

아아 노무현!
부엉이 바위 위에서 마지막 발을 내딛으며 그가 국민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자넨 알겠지. 나도 안다네. 국민들도 알 것이라고 믿네.
비록 육신은 이 세상에 없어도 그의 영혼은 하늘 위에서 목숨 바쳐 사랑하던 조국과 국민을 지켜 줄 것이네.
2009. 6. 21. 이기명
|
| 덧글쓰기 | 전체글 38건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