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투데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거 당일 수행 경호관을 심부름 보낸 뒤 홀로 있다가 투신했으며, 이후 최소 30분 이상 부엉이바위 아래에서 '방치'된 상태로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노 전 대통령 서거 경위를 수사하는 경남경찰청은 27일 수사결과 브리핑을 갖고 이같이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3일 오전 5시44분께 김해 봉하마을 사저에서 유서파일을 컴퓨터에 최종 저장했다. 이후 오전 5시45분께 당시 당직이었던 이모(45) 경호관에게 "등산 나갈게요"라고 말한 뒤 이 경호관과 함께 오전 5시47분께 등산을 나섰다.
노 전 대통령은 등산로 입구에 도착한 뒤 마늘 밭에서 일하던 박모씨에게 "일찍 나왔네요", "마늘 작황이 어떻노" 등 인사를 건넸다. 이에 박씨는 "반갑습니다", "작황이 안 좋습니다"라고 답했다.
이후 약수터 입구에 도착한 노 전 대통령은 약수는 마시지 않고 곧장 돌아 나와 등산을 계속했다. 정토원 앞에서 100m 떨어진 이정표(봉수대 0.37㎞) 10m 앞에 도착한 노 전 대통령은 이 경호관에게 "힘들다. 내려가자"고 말했고 이 경호관은 사저 경호동에 있는 신모(38) 경호관에게 "하산하신다"는 무전을 보냈다.
이곳에서 117m 정도 떨어진 부엉이바위로 향한 노 전 대통령은 오전 6시10분께 부엉이바위에 도착했다. 도착 후 "부엉이바위에 부엉이가 사나", "담배있는가"라는 노 전 대통령의 질문에 이 경호관은 "없습니다. 가져오라 할까요"라고 되물었고 노 전 대통령은 "아니 됐어요"라고 답했다.
또 폐쇄된 등산로에 사람이 다닌 흔적을 발견한 노 전 대통령은 "폐쇄된 등산로에 사람이 다니는 모양이네"라고 물었고, 이 경호관은 "그런 모양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내 5m 정도 뒤에 있는 묘지 옆 잔디밭에 앉은 노 전 대통령은 이 경호관에게 "정토사에 선 법사가 있는지 보고오지"라고 심부름을 시켰고, 이 경호관이 "모셔올까요"라고 묻자 "아니. 그냥 확인만 해봐라"고 지시했다. 이 경호관은 곧장 부엉이바위에서 247m 떨어진 정토원으로 뛰어갔다.
이 시간이 오전 6시14분께. 선 법사가 있는 것을 확인한 이 경호관은 오전 6시17분께 다시 부엉이바위로 되돌아왔지만 노 전 대통령은 사라진 후였다.
이 경호관은 소지하고 있던 휴대폰 단축키를 눌러 신 경호관에게 "잠깐 대통령님 심부름 다녀온 사이 대통령께서 보이지 않는다. 나와서 내려오시는가 확인 좀 해라"고 전화한 뒤, 149m 떨어진 마애불 위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이 경호관은 인근에서 나물을 캐던 오모씨(57·여)에게 "등산객 한 명 못 보았습니까"라고 물었으나 오씨는 "못 보았습니다"라고 답했다.
다시 봉화산을 찾아 헤매던 이 경호관은 오전 6시23분께 신 경호관에게 전화를 걸어 "찾았나. 안 보이나"라고 물었으나 신 경호관의 대답은 "안 보인다"였다.
이 경호관은 계속해서 돌아다니며 목격자를 찾았으나 노 전 대통령을 본 사람은 없었고, 오전 6시30분께 사자바위 쪽으로 뛰어가면서 또 다시 신 경호관에게 전화를 걸어 "저수지나 연꽃밭 쪽을 찾아봐라"고 했다.
이 경호관은 정토원을 들러 선 법사로부터 "무슨 일이지. VIP 오셨어"라는 질문을 받았으나 "아무 것도 아닙니다"라고 답한 뒤, 다시 부엉이바위로 내려갔다. 내려가던 중 오전 6시35분께 이 경호관은 "정토원 법당에 있을지 모르니 한번 보시죠"라는 신 경호관의 전화를 받고 "아니 없더라"고 답했다.
부엉이바위에 도착한 이 경호관은 순간적으로 '바위 밑에 있을지 모른다'는 직감에 바위 밑에 있는 흰 옷을 발견하고, 곧바로 뛰어 내려갔다.
오전 6시45분께 추락지점에 도착한 이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을 확인하고 무전기를 이용해 경호동에 "사고가 발생했으니 차 대라"고 지시했다.
이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 얼굴을 흔들고 목부위 경동맥 맥박을 확인한 뒤, 자신의 우측 어깨로 노 전 대통령을 메고 공터 쪽으로 뛰어왔다. 인공호흡을 2차례 하던 중 차량이 도착해 이 경호관은 차량 뒷좌석에 노 전 대통령을 안고 탑승한 뒤 세영병원으로 호송했다.
따라서 노 전 대통령은 투신 후 최소 30여분 가량 방치돼 있었으며, 경호관이 정토사에 다녀온 시간까지 합치면 31분가량 경호공백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산 아래쪽을 보고 옆으로 누워 있었으며, 머리 등에 심한 상처를 입은 채 의식이 없었고 맥박도 없는 상태였다고 이 경호관이 진술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이후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을 어깨에 메고 차를 댈 수 있는 산 아래 공터까지 66m가량 내려가 2차례 인공호흡을 했으며, 마침 도착한 경호차량에 태워 인근 김해 세영병원으로 옮겼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 경호관은 처음 경찰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과 부엉이바위 위에 함께 있다가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사이 투신했다고 허위진술을 했다가 두번째 조사에서부터 진술을 번복했다.
경찰은 "경호관은 전 대통령을 완벽하게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과 충격 등으로 심리적 압박을 느꼈고, 신분상의 불이익을 우려해 허위진술을 했다가 사회적 비난이 일고 동료 경호관의 설득으로 심경변화를 일으켜 사실대로 진술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노 전 대통령의 유서와 관련해서는 경찰은 "박모 비서관이 발견하고 나서 유족 측 정모 변호사를 통해 입수했으며 유족 측의 동의 아래 디지털 증거 분석을 한 결과 작성시간 및 저장시간 등을 확인했다"라면서 "현재로서는 추가 유서의 여부에 대해서는 유족 측의 진술이 없는 이상 확인할 수 없으며 다른 유서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라고 밝혔다.
한편 이 경호관은 서거 다음 날 공중전화로 정토원 원장에게 "대통령과 함께 정토원에 갔다는 진술을 경찰에 했다. 원장님이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전화했다"는 통화를 해 말맞추기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은 향후 조사 계획에 대해 "전 대통령은 오전 6시14분부터 45분까지 경호를 받지 못한 채 혼자 있었고, 그동안 목격자가 없고 사고 현장에서 입증할 만한 다른 증거도 없어 이 경호관 등과 함께 현장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또 경찰은 "향후에도 증거자료 확보와 관련자 진술 등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도록 노력하겠으며, 유족 측에 대해서도 영결식이 끝난 뒤 진술할 내용이 있는지 요청해 서면으로 제출받아 의혹부분에 대해 철저하게 수사할 방침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