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그 날이 다시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피!피!피!) "
2차례 징역산다고 대학생활은 짧게 2년만 하고 말았지만
86년에 대학에 입학 하고 보니 당시 모든 대학생이 5월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았었습니다.
저처럼 운동한다고 팔랑팔랑 뛰어 다니던 친구들은 물론
집회 때는 뒷 자리에서 숫자 채워주다가 진압을 위해 전경이 학내로 들어오면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 건물로 들어가는 친구들
심지어 그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공부를 해서
지금은 얼추 출세한 친구들도 모두 가슴에 5월 광주를 묻고 살았었습니다.
당시 대학생들이 모인 자리면 집회장이든 잔디밭이든 심지어 소주집이든
어디서나 부르던 노래 5월가는 그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 합니다.
" 5월 그 날이 다시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뒤에 "피!피!피!" 는
누가 뭐랄것도 없이끼이는 추임새 였습니다.
2천명의 무고한 광주시민을 죽이고 등장한 전두환 정권만 5월을 주시 하는 게 아니라
그 때 다른 도시에 살아서, 계엄령이 겁이 나서, 자기 자신의 안위만을 위하는 이유로
광주 시민과 함께 하지 못했던 전국의 수 많은 청춘들은 모두 5월만 되면 열병을 앓았습니다.
80년 광주 항쟁 당시 나이 13살에 불과했던 저도 19살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그 물결에
바로 휩쌓일 만큼 5월 광주는 살아남은 양심있는 우리 모두가 짊어진 부채였습니다.
명바기 정권 집권후 1년 만에 역사는 다시 그 때로 돌아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총칼에 맞서 용감하게 일어서는 광주 시민도 없습니다.
이 땅을 사는 모든 사람은 부의 노예가 되어 오직 자기만 부자 되기위해 목숨 걸뿐입니다.
그 5월이 되었습니다.
시민광장에서는 5.18 광주민중항쟁 29주년 되는 오늘 중앙 게시판에서 피 터지게
싸우고 있습니다.
80년대 적어도 그 10년 간 진보운동세력은 광주의 피 값에 그 덕으로 살았습니다.
다시온 5월 그 날에 추념도 미루고 시작한 일이니 치열하게 의견을 내고 하나로 만들어 봅시다.
어차피 시작한 일 10년 이상 노무현,유시민지지자들이 버티고 살 만한 좋은 결과물들을
내어 봅시다.

당시 나들이 나왔다가 군인에게 연행되는 신혼부부사진이라지요.
잘못된 정치가 일반 국민의 삶을 얼마나 유린할 수 있는지 제게 깨우쳐 주는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