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공이산님이 ‘사람사는세상’ 홈페이지에 ‘민주주의와 관용과 상대주의‘ 라는 글을 올렸다. 일부 사람들이 홈페이지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보여준 과거의
보수적인 행적에 대한 비판을 좀 했나본데, 그걸 보며 하게 된 생각들을 적어놓은 듯하다.
(…)
오늘날은 모든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말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이 다 같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철학과 원리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생활화 하고 있거나, 그에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은 대세를 따라, 또는 편리한 대로 그냥 민주주의를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비율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비율에 따라서 오늘날 각국의 민주주의가 수준이 다르듯이, 장래에 있어서 민주주의의 수준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
글을 써놓고 보니 별 알맹이도 없는 이야기를 무슨 말장난처럼 복잡하게만 엮어놓은 것 같아서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저는 이 글을
올리려고 합니다. 민주주의와 관용의 문화에 관하여 꼭 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후 보시절부터 17대 총선에 이르기까지 거듭
구상하고 말해왔던 동거정부의 구상은 기회를 잃어버렸고, 대연정의 구상은 무리했던 것이라 결국 패착이 되고 말았지만, 저는 여전히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가 관용의 문화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닌 줄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강정구 교수 문제나 국가보안법 문제에 관하여 말씀하신 내용을 보면서 민주주의니 관용이니 하는 것이 말로는 하기 쉬운
일이지만 우리 사회의 정치문화로 정착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거듭 확인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국가보안법을
반대한 이유는 그것이 관용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고, 우리가 강정구 교수의 처벌을 부정적으로 생각한 이유는 그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라면 그 정도의 발언은 용납되어야 할 자유이기 때문이었는데, 김수환 추기경 같은 분마저도 납득하지
않으셨으니 앞길이 얼마나 험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스스로 관용을 실천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이 글을 쓰는 것도 그런 노력의 하나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관용의 문화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우리 민주주의도 더욱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소위 진보 진영에 속한다고 말할수 있는 선배 대학생들이 신입대학생들에게 권장하던 책들은, 이념적으로 편향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확고한 이념에 바탕한 연역적 사유와 이념적 일관성에 대한 강조는 여전히 대한민국 진보의 강한 특징이라 말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불법적이고
강고한 독재 권력과 싸우는데서 형성되어 왔겠지만, 그 격렬한 생사를 건 싸움에 집중하는 동안 한국의 민주주의는 꼭 필요한 덕목들을 획득하는데
실패한 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시민사회가 필요로 하는 덕목들, ‘당파나 이념이 아닌 근거에 기반한 사유, 절제력, 관용, 불일치와 모호성에 관한 대응 능력,
쟁점 사안들을 동료 시민들과 더불어 탐색하려는 의지’ 등과 같은 것을 말한다.
나는 참여정부가 소위 진보이념이라는 것을 구현하는데 가장 큰 목적을 두지 않았다고 본다. 사람들은 참여정부에게 무엇을 기대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실 참여정부의 시기를 제대로 된 민주주의 운영체제를 설치하고 세팅하는 일종의 건국투쟁시기로
생각했다. 아마도 대부분 여기서 진보진영과의 갈등이 생겨났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념투쟁보다도 더 우선해야 할 것이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위에서 언급된 시민사회가 요청하는 덕목들을 사회내에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대학에 갓들어온 꼬맹이들이 마르크스가 어쩌구 떠들기 전에,
경제학 원론 수준의 공부가 먼저인 것과 비슷하다.
이명박님 때문에 시야가 조금 흐려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국사회는 이제 독재와의 투쟁을 넘어선 단계의 민주주의를 설치하는 시기로 돌입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작년부터 동일한 문제의식을 담은 생각들을 적어놓고 있다.
참여정부 때부터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의 사상투쟁의 시기가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는 지금과 같은 지성의 암흑기에는 이를
헤쳐나가기 위한 계몽사상의 투쟁으로 보아도 되겠다. 이 건국시기에 비견할만한 사상투쟁은 앞으로 한동안 계속될 것이니, 사람들은 늘 다음과 같은
말을 기억하면 좋겠다.
踏雪野中去 눈 덮인 들길 걸어갈 제
不須胡亂行 행여 그 걸음 어지럽게 하지
말라
今日我行蹟 오늘 남긴 내 발자국이
遂作後人程 마침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