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근간 책 '후불제 민주주의'가 뭔가 궁금해 하던 차에, 최근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한마디로 말해 저으기 실망이었다. 지난 당내 민주주의, 정당, 정치개혁의 과정에서 용두사미하던 그에게서 실망 1단계를 느꼈다면, 금번 책으로 세상에 토해낼 그의 사상과 의식의 단초로 인해 또다시 실망 2단계로 진입할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에게서 나름의 동지적 편린을 발견하고자 하는 민주주의 2.0 시민의 일원으로서 왜 이리 거듭의 실망을 느껴야 하는가. 우리 같은 정치권 주변의 소시민들은 진정 정치적 방면에서 행복을 추구할 자유가 없단 말인가. 유시민에게서 그것을 과도하게 기대하진 않았다고 하여 그 행복추구권의 소극적 침해 정도는 당연시되어야 하는 것인가.
나의 기본적인 통찰능력과 직관력에 대한 신념을 토대로 일단 인터뷰 기사에 대한 평가를 내려보면서, 이것은 심도있는 사상논쟁의 축에 들지 못할 것이지만, 그 이전의 헌법적 가치관 또는 민주주의 2.0 시대의 시민의식의 수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 범주로서 이 논쟁의 성격을 규정하고자 한다.
일단 헌법의 역사에 대한 인식의 오류는 없는지 보자.
유시민 그가 법대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 박정희 영구통치를 예상한 암울한 시기를 전제로, 그 철권통치 하의 권력의 개가 되었던 사법부, 검찰의 세계로 들어가기를 거부하여, 차 순위로 경제학과를 선택한 것이라는 점은 그의 공치사거나, 실제 있을 수 있었던 일로 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필요치 않으며 무의미하므로 그런 류의 과거 회고에 대해 문제삼을 수는 없기에 말이다.
다만 유시민의 그런 말에서 특별히 대학 입학을 전후한 청소년 유시민이 특별히 법적 정의감을 갖진 않았다는 단면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직업선택의 전제로서 학과를 선택함에 있어서 과거의 구습을 깨고 스스로는 절대로 권력의 시녀가 되지 않겠다는 식의 적극적 의식은 엿볼 수 없고, 아니 당시에도 극소수 특출난 법관과 검찰이 없진 않았을 터인데, 그들을 일종의 모델로 삼고자 하는 정신적 사명감은 갖지 않았다는 것이며, 그저 개인의 행복추구의 수단으로 경제학과를 진학했다는 소신을 피력함에 다름이 아닌 것이다.
한국은행이 최고의 직장으로 통하였던 시절에 별 다른 고민 없이 학과 선택에 대하여 집안 어른들에게 해명할 거리로 족한 대안적 선택이었다는 가치중립적인 과거 서술에 지나지 않은 것이며, 특히 그 이전에 비범한 문제의식을 가졌던 청소년은 아니었다는 사실의 반증일 뿐이라 볼 수 있다. 아무튼 거기까지는 뭐 특히 비판할 거리는 아니라 할 수 있다. 현시기 부활하는 성적주의나 경쟁주의를 당연한 전제로 승인하는 것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그 때까지 유시민은 특기할 만큼 비범한 문제의식을 가졌던 학생은 아니었던 것 같고, 또한 특별히 평가절하할 만한 거리도 없어 보인다.
그래 다 좋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렇다면 우리 헌법은 과연 유시민이 극찬할 정도로 충분히 선진적이며, 그저 헌법적 테두리 안에서 개인의 행복추구를 권장하는 듯한 그 발언의 진의는 무엇인가, 그것이 과연 지식인의 사명에 부합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부호는 어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만 보자.
유시민은 대학생의 역할에 대하여 특별히 사명감이 있고 여력 있는 사람은 적극적으로 사회문제에 참여하고,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특히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질 사정에 놓여 있지 않은 학생들은 미래의 직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시민으로서의 학창생활에 충실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고 있다. 이 중에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항까지 거론한 측면이 분명 있기도 하지만 특히 문제라고 보여지는 점은 그 시절을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으로서, 이제 대중의 주목을 받는 차세대 주자의 일원으로서 유시민이 대학생의 신분과 역할에 대해 평가한 부분이며, 그러한 인터뷰 내용으로 전부 속단할 순 없지만 금명간 출간될 이른바 '후불제 민주주의'의 가치를 충분히 예단케 하는 점에 대해서라 할 수 있다.
그에 의하면, 우리 헌법은 일찌기 투쟁 없이 서방국가의 완성된 헌법을 들여왔고, 우리의 투쟁 없이 여성참정권을 공짜로 얻게 되고, 인권 개념이 없던 시절에 기본법을 갖게 되었고, 공장이 거의 없는데 노동3권을 갖게 되었다고 하며, 그러기에 우리는 4.19, 5.18, 6월 항쟁 등의 후불제 할부금을 내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할 수 있다.
마치 우리 사회의 저변에 깔려 있는 일제에 의해 양성된 우리 민족의 타율성론, 정체성(停滯性)론을 듣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서구 선진국이 2차 대전 이전부터 쌓아 올린 민주주의 성과를 일제로부터 해방과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도입한 현대적 의미의 헌법에 대한 무한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 그의 태도에 숨어 있는 헌법과 기본권에 대한 가치관을 어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민주주의 후불제라는 책이 나오기 전이라 자세한 내용을 접하진 못하였지만, 유시민은 특별히 법학이 아니라 경제학을 전공하게 된 것이 어쩌면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1948년 헌법이 제정된 이후 어언 9차의 개정을 거쳐 오는 동안 권력의 수단, 통치를 위한 장식품으로 존재해왔던 헌법적 권리가 어떻게 기본권으로 기능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실질적 연구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과거 20세기 옐리네크 이후의 법실증주의자들이 그저 권리로서 도입되기만 하면 된다는 편리한 발상을 하였던 것과 다름이 없으며, 그후 1세기 동안 수많은 민주주의 투쟁과 권력의 부침 속에서 진정한 국민의 헌법이 될 수 있었던 계기를 간과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것이니 말이다.
유시민의 헌법에 대한 후불제 할부금은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나 보다. 나는 일단 제목의 선명함과 선동성에 의해 그것이 우리 국민의 이명박 정부에 대한 투쟁의 도구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하였으나 그것은 일장춘몽에 불과하였으니 좀 서운하고 실망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를 박정희, 전두환의 철권통치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물타기라 할 수 있고, 시대의 발전과 민주주의 진전을 이해하지 못하는 단순 평면도상의 발상으로 그 속성상 기회주의적 노선으로 흐를 가능성이 물씬 풍겨 온다.
이것은 비극이다. 박정희, 전두환의 부도덕성과 이명박의 무능을 한꺼번에 용인케 하는 발언이다. 민주주의 2.0 시민에 대한 정면 도전을 이렇게 교묘하게 만들어 낼 수 있는가.
역사의 의미를 직시하자. 수준 높아진 민주주의 토대를 전제하자. 과거보다 나은 독재에 대해 투쟁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적당히 능력껏 사회 참여해라? 여력이 안되는 자는 취업문제에 헌신하고, 각자의 사명감의 크기에 따라 나름대로 행복을 추구하라? 그것이 상아탑의 지식인 유시민이 청년 학도에게 할 수 있는 발언인가?
유시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국민에게 자유와 개인주의와 행복추구를 선동하면서, 권력의 부당함에 대해 투쟁할 자유에 대해서는 어찌 침묵하는가. 이것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해방 직후부터 도입된 현대적 헌법하의 권리이자 기본권이었기에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라면 정치인 유시민은 번짓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았다 할 수 있다. 헌법 교수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유시민은 생활경제 강좌를 통해 학생들에게 대운하, 민영화의 허울을 벗기며, 적당히 권력과의 대립각을 세우면서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최소한 대학생들의 현실참여에 대한 사명감을 불러 일으켜 주어야 한다. 나는 이런 점에서 유시민의 직무유기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상식적 수준의 헌법 이야기라면, 정말 현시기의 초 현대적 헌법관에 대한 기초지식을 토대로 이미 구시대적 헌법의 막차라 할 수 있는 87년 헌법이 이명박 정부에 의해 침해되고 있음을 적극 비판하면서 이 헌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대통령제의 책임정치를 적극 주장해야 마땅하지만 유시민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유시민의 그러한 태도는 그로부터 26년전에 이미 헌법상의 권리를 기본권으로 승격시켜 놓은 4.19 민주혁명의 가치를 폄훼하는 것이며, 그로부터 7년 전 광주 5.18 민주항쟁의 숭고한 희생에 대한 소극적 모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구체적인 각개의 기본권이 삭제와 도입을 반복하면서 실제적으로 통치의 수단이 되어왔다는 점을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고민을 통해 성찰하지 않는 이상, 우리 대한국민은 이미 제헌 헌법부터 현대적 의미의 헌법을 가지게 되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될 수 있으며, 또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에 의해 중요한 핵심적 기본권이 어떻게 교묘하게 삭제되고 규범력을 상실하였다는 점을 간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진실이라 할 수 없으니, 여기에 위대한 민주주의 발전이 있는 것이며, 위대한 민주시민의 각성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발전이다.
난 유시민의 인터뷰 내용을 통해 그가 해방 후부터 노동3권, 여성참정권이 보장되었고, 국가의 기본법으로서의 헌법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을 적극 홍보할 이유가 과연 무엇인가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인류 보편의 가치에 대한 전면적 투쟁이었던 2차 세계대전의 산물로서 자유진영이 획득한 민주주의 헌법을 우리가 얻은 것이 무임승차이며 공짜였다는 인식이 과연 타당한 이론인가에 이르게 되면 난 유시민에 대해 의문스러움을 넘어 의뭉스러운 존재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주지하듯이 우리 나라는 동양 3국의 역사중에서 단연 시원적인 존재이다. 이것은 민족의 뿌리에 대한 중차대한 문제로서,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우리의 상고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총체적인 역사의 말살이 중국과 일본에 의해 몇 천년 혹은 몇 세기에 걸쳐 이뤄졌고, 그것이 성공적으로 자리잡아 이제 전 세계의 역사책에서는 안타깝게도 이러한 정당한 주장이 통설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정당한 민족사관에 의해 연구해 본 바에 의하면 이것은 절대적 진리에 가깝다. 그렇다면 근대 시기를 생략하였기에 우리는 다시 100년 이전의 시대로 되돌아가 그것을 경함하여야 한다는 주장들이 참으로 가련한 몸부림이며, 수백년간 민중의 한이 되어 왔던 사대주의 역사관에 다름 없다는 것을 굳이 적시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 소인배적 지식이 판을 치는 한 또다시 우리는 근대의 역사와 현대의 역사를 거듭 생략해 왔다는 반성을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관과 사실에 의하면, 우리는 이미 자율적인 발전 단계에서, 근세를 넘어 근대적 계몽기를 거쳐왔고, 그것이 일제를 통해 일시 단절되었으나, 중국 대륙을 전전하며 통합적인 임시정부를 수립할 이후 이미 현대적 의미의 헌법과 기본권,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모두 구현했으며, 그러한 사고에 기초하여 모든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문제를 해결해 왔다는 사실을 소홀히 평가하진 못할 것이다.
이제 전 세계가 현대를 넘어 지구촌 일일생활권의 시대, 인터넷의 발전으로 동시적 소통의 시대를 살고 있는 차제에 무슨 뜬구름 잡는 근대화 이론의 개창이냐? 그것이 유시민 진지의 한계라면 내가 나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속에 안주하고 있는 수많은 지성의 낭비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은 해결할 길이 막막하다. 왜 유시민의 헌법관이 중요한 것이며, 이 땅을 사는 청춘 대학생들의 사명이 중요한 것임을 유시민 자체가 몰각하고 있다면 이것은 그가 추구하는 대중적 정치세력화의 성공 여부가 우리 모두의 운명의 일부분이라는 점에서 참으로 참담한 일인 것이다.
시대를 격하여 진리로 통하는 것은 대학생의 순수한 상아탑 정신이 아닐까 한다. 그것은 장차 국가 사회의 중추적 존재가 되기 위해 예비하는 그들이기에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런 자들이 특히 IMF 시대의 아픈 시대의 자녀들이라 하여서 더욱 그런 사명감을 각성시켜줘야 하는 것이 선배된 자들의 도리이자 의무일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부도덕성을 논하면서, 그의 정치행위는 박정희의 통치행위에 비해 장난감에 불과하다고 설파하는 유시민은 과연 민주주의 투사였다고 할 것인가?
70년, 80년대를 관통하여 소위 서울대의 운동권 진지로서의 역할은 얼마나 존재감이 있었는가?
아는 사람들은 모두 다 아는 우리 현대사의 일부분이다. 사실은 사실대로 적어야 가치가 있다. 유시민의 서울대 대의원회의 의장 시절에 그 유명한 서울역 회군이 있었고, 유시민은 회군에 적극 반대하였다는 것이 일설의 주장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감옥이 아닌 군대로 직행하게 되고, 서울대 복학 후 그 유명한 서울대 프락치 구타사건이 발생하면서 유시민의 항소이유서가 나오게 되었으며, 사실상 유시민의 핵심 프로필을 장식하고 있다.
난 그런 사실에 대해 가치 폄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정치적 노선을 걷는 정치인의 동정을 그려 볼 때에는 냉철히 그 진지성과 진실성을 헤아려보는 판단자료로서 도움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강력한 투사로서의 유시민은 드러난 사실에 의하면 유장한 문체의 항소이유서에 들어 있는 깊은 민주주의 정신에 온전히 녹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은 전시에서의 선전전 이상의 의미는 없다. 전선에서 육탄 돌진하며 뒤 따르는 자의 방패가 되어 전선의 고착을 타개하는 역할에 있어서는 유시민의 민주주의 투쟁의 역사는 미미하고 일천하다는 것이다.
물론 민주주의 2.0 시대에 이런 점은 더욱 강조되고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일체의 기회주의의 배격은 과거 식민지 독립운동에 있어서도 그랬고, 군사독재 시절의 민주화 운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요구사항이었다.
이제 결론을 내리면 유시민이 또 한번의 그러한 기회주의적 처신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헌 이후 60년이 넘게 진행되어 온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를 전면 백안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처음부터 국가의 기본법으로서의 헌법이 여성참정권과 노동3권을 반영하였다는 사실을 적시하는 유시민의 발언을 듣는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무임승차로 헌법이 제정된 국민으로서 어쩔 수 없이 민주주의에 대한 댓가를 60년간 할부로 지급하게 되었다는 것이 유시민의 헌법 회고의 대체적 윤곽이지만, 그러한 채무 지급의 정당성 여부, 그 이전의 채무의 존재 여부에 대한 최종적 판단의 자료는 아직 없다.
그러나 여기까지 듣고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2.0 시민은 어쩔 수 없이 밀려오는 서글픔에 몸서리를 친다.
아직도 87년의 헌법의 정당성에 대한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하였다.
하지만 민주주의 후불제 할부금은 직전 8차 1980년 전두환 5공 헌법에 대한 예찬을 배제하는 어떠한 근거가 없다. 그러므로 유시민의 그러한 논리에 의하면 우리국민은 처음부터 과분하게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의 현대적 헌법의 기본권을 모두 누리고 있었던 원죄자였다는 사실을 적시하는 것임에는 변함이 없다.
참으로 나는 민주주의 2.0의 시민권을 반납해야 하는 단계에 진입할 초입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존재의 가벼움이 그토록 큰 것인지 최종의 판단을 유보하며 조금더 지켜봐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