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당 게시판에 올리는 목적으로 쓴 글이지만, 여기도 같이 올려봅니다.
체육대회에서 첨맘님을 보고 많이 지쳐있는 듯한 인상을 받아서 말이죠.
사람을 정말 기운 빠지게 만드는 것은 우리 편을 설득해야할 상황에 닥칠 때라는 생각에....그저 응원의 글을 겸해서 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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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 로마한테 식민지 지배를 당하고 있던 유대민족의 한 목수 집안에서 지저스라는 이름의 아이가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목수였으니 그 아들 역시 변변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한 동안 목수로 컸을 것이라 짐작되는 바, 그가 나이 서른이 되던 어느 날 갑자기 출가를 하면서 주변에서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서민적 이미지의 제자들을 모아 혁신적인 종교적 가르침을 전파함과 동시에 당시 부패한 기득권 층을 향해 아주 매서운 비판을 하면서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다. 그 지저스의 제자들이 얼마나 서민적이었는고 하니 대표적 수제자 3명 피터, 제이콥, 존 모두가 어부였다. 이 세 명을 포함한 12명의 제자들과 그 외에 여러 사람들의 지저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출가한 지 불과 3년 만에 자신이 비판하던 유대 민족 기득권층의 음모에 휘말려 사형을 당하게 되자, 그 제자들은 한 동안 패닉 상태에 빠진다. 그러나 곧 그 충직한 제자들은 다시 심기 일전하여 스승의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때 지저스 살아 생전에는 듣도 보도 못하던 폴이란 인물이 등장해서는 자기도 지저스의 제자라고 주장을 한다. 그런데 더욱 열 받는 것은 3년 간이나 스승과 고락을 같이해가며 가르침을 받았던 본인들보다 지저스의 뜻을 더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서 그 때까지 유대 민족에게 있어 불문률의 진리로 여겨지던 전통적인 믿음에 정면 도전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뿐만이 아니다. 폴은 당시 대단한 학자이면서 로마 시민권까지 갖고 있다 보니 지저스의 직계 제자들은 경력에서 밀리고 말빨, 글빨에서 모두 밀린다. 문제는 그렇게 겉으로 보이는 경력이나 학력이 아니었다. 어쩌면 폴의 주장이 이 직계 제자들의 주장보다 시대적으로 앞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피터를 중심으로 한 지저스 직계 제자들과 폴 사이에서 벌어진 의견 대립들 중 가장 심각한 주제가 바로 지저스의 가르침을 전파해서 구원을 베풀어 줄 대상이 누구냐라는 문제였다.
피터는 지저스는 유대 민족을 위해 이 땅에 왔다고 주장을 했다. 유대인 이외의 이방인들은 전혀 고려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폴은 지저스가 이 땅에 온 이유는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을 한다. 심지어 지저스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유대인들은 정신차리지 못하면 정작 본인들이 버림 받을 수도 있다고 협박을 한다. 참으로 발칙한 주장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때로 직접 만나서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편지를 통해 자기 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 싸움의 결과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폴의 승리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지저스의 가르침은 유대인들로부터는 외면당한 반면 유대인을 제외한 지구상의 상당 수 민족들에게 무섭게 전파됐다. 그리고 그 지저스를 믿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원래 지저스의 수제자들의 입장에 의하면 자기들은 결코 지저스를 믿고 따를 만한 자격 조차 없는 아주 저급한 수준의 민족이었다는 사실 자체를 거의 의식 못하고 그 수제자들까지 지저스와 더불어 사랑한다.
폴은 어떻게 해서 지저스 살아 생전에 일면식도 없었으면서(기록상 증거가 없을 뿐이지 어쩌면 여러 번 만남이 있을 수도 있다. 단, 지저스 살아 생전에는 지저스와 그 제자들을 향한 극도의 편견과 미움이 있었으므로 서로 대면한 적이 없는 것으로 대충 정리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직계 제자들을 앞서 갈 수 있었을까?
본인의 신비 체험을 제외하고 아주 건조하게 분석을 해 봤을 때 떠오르는 말은 “핵심” 파악 능력이다.
폴은 묘하게도 지저스의 가르침에서 그 핵심과 본질을 잡아내는 탁월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것은 단지 학식이 많다는 것 만으로 얻어지는 능력이 아니다. 사실 지저스의 열 두 제자 가운데는 제법 학식 있는 인물도 있었지만 폴의 능력에는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폴은 천부적인 핵심 파악 능력과 더불어 이를 글로 논리 정연하게 풀어낼 수 있는 재능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지저스의 직계 제자들의 글은 대부분이 일종의 ‘증거자’로서의 기록이라는 성격이 강한데 반해 폴의 글은 상당 수가 이론적이고 철학적이다. 그러면서 문학적이기까지 하다. 그가 남긴 글들을 보면 형식면에서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이지만 동시에 내용면에서는 지저스의 삶과 죽음 전체에 내재된 의미와 가치를 정확히 짚어낸다. 그리고 그 힘은 서양의 수 많은 천재적인 철학자들에게 영감을 준다. 우리가 흔히 들어 봤던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라는 시적인 영감이 철철 넘쳐 나는 유명한 구절도 사실은 폴의 작품이다.
얼마 전에 노무현대통령의 좌장 우장 격인 분들이 유시민대표를 향해서 친노 그룹에 속한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는 말을 했다는 것을 들었을 때 피터가 떠오르면서 웃음이 났었다. 진보 통합에 적극적인 유대표를 향해서 이제 친노 그룹에서 호적 파가는 것이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역시 웃음이 났다.
도대체 친노가 무엇인가? 노무현대통령 살아 생전 그 분과 고락을 같이한 사람들 만을 가리키는 용어라면 어쩌면 유대표는 친노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친노라고 본다면 과거 노무현대통령 후보 시절에 민주당을 비롯한 수 많은 진보급 인사들이 노대통령을 부당하게 대접하는 것에 분개해서 자기 밥그릇 집어 던지고 이 너저분한 정치판에 뛰어든 이후로 참여 정부 시절 장관까지 한 유시민대표를 향해서 친노니 아니니 하는 것 자체가 참으로 유치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아니 사실은 유치함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더 이상 평범한 개인이 아니기에 그들의 판단과 언행 자체가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줄 수도 있고, 그 결과에 따라 책임을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관점에서는 걱정스럽기까지도 한 발언이었다. 친노에 대한 애정과 기대를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지저스의 직계 제자들의 시야는 로마에 식민지 지배를 당하고 있는 불쌍한 자기 민족들에게 고정돼 있었기에 범 인류 차원의 고민을 하는 폴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만일 당시에 폴이란 인물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저스의 제자들이 지저스의 가르침을 민족 종교의 틀에서 벗어나게 만들 수 있었을까? 만일 인류 역사가 신이라는 초월적인 존재에 의존하지 않고 백퍼센트 인간들의 손에 의해서만 만들어져 간다고 가정을 했을 때, 지저스의 직계 제자들을 통해서는 절대로 범인류애적인 성격의 기독교로 발전하지는 못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시야가 제한적이면 늘 차이점을 먼저 인식한다. 그리고 그 차이 때문에 부정적인 전망과 걱정을 먼저 한다. 핵심을 파악하면 시야가 넓어지고 보폭이 달라진다. 나는 유시민 대표의 거침없는 행보가 결코 돈키호테적인 만용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는 언제나 핵심을 파악하는 데 있어 누구보다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도의 입장에서 자연과학 분야를 이해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시민 대표는 ‘이기적인 유전자’와 같은 책의 핵심을 파악하고 소개하는데 있어 자연과학도들의 식견에 결코 뒤지지 않는 능력을 보여주곤 하는데, 나름 자연과학 분야에 어느 정도의 소양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던 내가 상당히 부끄러워졌던 기억이 난다.
유시민대표는 그렇게 핵심을 보고 움직이기에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의 정치적 입장을 대하는데 있어서도 차이 보다는 공통점에 무게를 두는 것에 그다지 망설임이 없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진보의 통합을 위해 각 당 대표급 인사들의 마인드가 개방적이 되어 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유시민 대표의 감각이 펄펄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적어도 국민참여당 당원들은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 우리는 어쩌면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최초로 진보의 진정한 장기 집권이 가능해질 수 있는 기로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정치하는 것들은 저러다 언젠가 자기 욕심 때문에 또 일을 엉망으로 만들고 그를 믿었던 우리 같은 순진한 서민들만 나중에 닭 쫓던 개가 될지도 모른다는 그 막연한 불안감에 대해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반복되는 실패로 인해 우리 마음속에 뱀처럼 똬리를 틀어버린 그 만성적인 패배감을 극복하지 못하면 어쩌면 영원히 승리를 맛 보지 못하는 진보가 될 수도 있다.
조국교수의 말 대로, 우리는 이기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이기는 순간까지 벌어지는 모든 실패를 그저 과정으로만 보는 미련함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 우리의 당대표에게 희망을 걸고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지금은 그렇게 함께 긍정의 마인드로 힘을 모아야만 할 때이다.
피터와 폴은 죽기 전에 갈등을 극복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피터가 폴을 이해하는데 있어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고 때로는 엄청 미워했지만 결과적으로 피터는 폴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만일 피터가 타임 머신을 타고 2000년대의 한국을 방문할 수 있었다면, 당시 자기가 그렇게 소중히 여기던 신념을 간단하게 무시하고 제 멋대로 스승의 가르침을 해석했던 폴 덕분에 아시아 땅끝의 조그만 나라에서 조차 자기를 지저스의 수제자로 칭송해 주는 수 많은 팬들이 존재하게 된 사실을 확인하고는 폴에게 엄청 미안해 했을 것이다. 혹시나 폴을 향한 미움이 극에 달해 어디 가서 콱 테러를 당해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르는데 만일 그랬다면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을 가지고 가슴을 쓸어 내렸을 것이다.
서로 간의 차이 보다는 공통점에서 희망을 발견해야만 하는 이 시대에, 친노 인사들을 비롯한 이 땅의 수 많은 진보 진영 정치인들이 모두가 너무 신나서 흥분된 마음으로 진보의 대통합을 위해 뛰어 다니는 모습이 보고 싶다. 만일 그럴 수 있다면, 그것이 성공한다면 그 모든 혜택이 결국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들에게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피터와 폴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믿고 있다. 멀리 보고 매듭을 풀 때와 맬 때를 아는 지혜가 그들에게 허락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들” 속에는 당연히 우리 국민참여당 당원들도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