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때때로 "진영논리"라는 말을 한다. 잣대를 공평하게 적용하지 않고 자기 진영에게는 좋은 점만 보고, 다른 진영에게는 나쁜 점만 보아 그 기준이 시시때때로 변한다는 말이다. 만일 진영논리가 개인적인 혹은 집단적인 친소관계만으로 생긴다면 아마도 우리는 절친한 친구나 가족과는 항상 잘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내 배우자 내가 욕해도 남이 욕하는건 못본다는 게 인지상정이다. 내가 욕할 때는 부부관계가 "나"와 "너"가 되지만 남이 욕할때는 "우리"즉 "나"의 확장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진영논리"의 핵심에는 진영내 구성원간의 친소관계 보다는 "진영"을 "나"와 동치시키는 심성이 있다고 본다.
"나"의 확장인 "진영"이 있다면 그 바깥은 "너"의 확장이 된다. 인간의 기본 심성이란게 "나"에게는 관대하고 "너"에게는 가혹하기 쉽다. 따라서 "우리 진영"과 "너희 진영"에 대해서 적용하는 잣대가 달라진다. 이게 진영논리다. 그렇다면 "우리"와 "너희"를 구분하는 어떤 프레임이 있다는 얘기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되뇌인다. "너는 누구 편이냐?" 그렇게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어떤 진영프레임 안에 편입시킨다. 그리고는 편입된 사람들의 이미지들을 응축해 진영의 정체성으로 만들어낸다.
진영의 정체성이 만들어지면 이제 진영에 편입된 사람들에게 적용하기 시작한다. 너는 절라도, 너는 갱상도, 너는 ~~빠, 너는 빨갱이, 너는 꼴통, 너는 우파, 너는 좌파, 너는 궁물, 너는 순혈 하여간 만들어질 수 있는 모든 진영들의 프레임 특징을 비슷한 꼬투리만 있으면 개인의 정체성에 덧씌운다. 그러고 나면 개인의 정체성은 없어지고 진영의 한 사람으로만 대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은 소우주라 불리울만큼 다면적이다. 반면 진영의 정체성은 매우 단순하고 특징을 편취하기 쉽다. 몇 년 전에 본 어떤 이에 대한 경험을 그 진영의 정체성으로 만들어내고 그 정체성의 장단점을 도식화해둔다. 그리고는 같은 진영으로 분류한 타인을 그 프레임으로 꿰어맞추는 것이다. 심해지면 사람을 사람으로 보기 보다는 프레임의 원소로 보는 시각이 된다. 타인에게 가혹한 시선 그대로 "너희 진영"의 정체성이란 것은 여기저기서 수집한 단점과 삐딱한 평가들의 쓰레기더미가 되기 쉽다. 그렇게 상대의 정체성을 타락시켜서 나의 정체성을 상대적으로 우월하게 만든다. 아닌가?
이런 나약함은 비집고 들어올 틈이 많다. 악동 하나가 진영을 가장하고 정체성을 깎아내릴 행동을 하면 인간의 마음은 그 미끼를 물고 야만의 폭력성을 분출할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사람을 진영에 탑재하고 정체성을 규정하는 행위는 쉽사리 해서는 안된다. 때때로 부정확한 정보에 근거해 만들어내는 정체성은 의도된 허상일 뿐이다. 어떤 진영프레임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사람이 있다면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프레임의 이미지가 마음속에 남기 시작한다. 그렇게 천천히 세뇌되는거다.
이런 문제점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우선 진영으로 포장된 정체성에 비해 개인의 정체성이 두드러져야 한다. 개개인마다 다를 수 밖에 없는 독특한 개성이 두드러질 수록 포장으로 씌운 진영의 정체성은 빛바랠 수 밖에 없다. 다음 진영대립의 구도를 혁신해야 한다. 진영이라는 것이 마음의 허상일 수도 있으나 허상이 일정한 흐름을 만들면 과정으로서의 실재가 된다. 흐름이 있으면 부딪치고 갈등하기보다 긍정적으로 역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과정은 "너"와 "나"를 "우리"로 만드는 과정과도 같다고 본다.
2. 분류프레임
진영프레임은 사람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출발하고 그 안에서 자연발생하는 것이기에 본질은 사람이 매개가 되어야 하고 구조는 유동적이다. 나타났다 없어지고 두드러졌다 희미해지기도 한다. 자기 생명력을 가진단 얘기다.
반면 분류는 어떤 기준으로 미리 만들어진 프레임이기에 구성은 단단하고 치밀하지만 스스로 발전해갈 생명력은 없다. 미리 만들어진 분류체계에 사람이나 생각을 넣으면 구조적인 문제점에 대해 미리 준비된 비판을 여과없이 쏟아낼 수 있다.
물론 어떤 분류체계도 세상의 모든 생각이나 사람을 적절히 분류해낼 수 없으며, 같은 류로 분류되더라도 내용적으로는 얼마든지 다른 경우가 가능하다. 개별적인 상황의 문제라든가 조금은 색다른 점이 존재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기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형태의 생각이 나올 경우 그 함의하고있는 특수한 내용을 무시하고 분류체계의 하나로 규정한다. 일단 규정이 끝나면 비판은 정해진 루트를 따라가면 된다. 진영프레임으로 인간의 개성을 없애고 진영 정체성으로 대체 대응하는 과정과 흡사하다.
둘 다 핵심은 대체 프레임으로 대상의 고유한 개성을 덮어씌워 편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왜곡하는 데에 있다. 어쨌거나.... 그들은 끊임없이 규정한다. "당신의 생각은 ..... 주의야.", "그런 건 이미 파악됐거든.", "그건 이런 문제가 있어..."
현혹되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