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 님에 대한 반론] 자유주의의 세 가지 버전, 뭐 좀 새로운 거 없을까?
어제는 사회자유주의에 대한 토론으로 시민광장이 모처럼 진지하고 활기찬 모습을 보여준 하루였던 것 같다. 앞으로도 이런 분위기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길 기대하면서 어제 글에 이어 몇 가지 첨언을 하고 마침 마케터 님이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몇 가지 반론을 제가하고자 한다.
1. 자유주의의 기원
Liberalism을 누가 자유주의로 번역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썩 잘된 번역은 아닌 것 같다. 물론 라틴어 Liber라는 어원에서 온 말이므로 자유라는 말을 넣은 것이 크게 이상할 것은 없겠지만 기왕이면 Freedom 자유와 헷갈리지 않게 좀 더 차별화되는 용어로 번역이 되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문천 님의 책 『뉴라이트 비판』에는 자유주의의 기원에 대한 짤막한 설명이 나온다. "자유주의자liberal란 말이 분명한 실체를 가리켜 처음 쓰인 것은 1801년, 영국의 토리당이 휘그당 진보파를 비난하는 말로 쓴 때였다. 이 비난의 말을 진보파가 자랑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실체 있는 자유주의가 나타났다."
자본주의란 말이 마르크스가 당대의 자유방임적 경제체제를 비판하고 분석하기 위해 쓴 것이었듯이 자유주의도 처음에는 다분히 비판적이고 살짝 비아냥거리는 용어로 쓰인 것이 맞는 것 같다.
2. 자유주의의 세 가지 버전
2009년 현재 전세계적으로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자유주의란 말은 심하게 오염되어 있다. 물론 그것은 신자유주의 때문이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자유주의는 사회주의로 부터 도전에 직면하면서 그 생명력을 잃어갔다. 2차 세계대전 후에는 기존의 자유주의란 말이 무색하게 전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케인즈의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였고 문천 님이 지적한 것처럼 '착근 자유주의'가 미국과 유럽에서 널리 받아들여졌다.
생명력을 잃어가던 자유주의의 본가를 부활시킨 것은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 하이에크였다. 하이에크는 자신이 제안하는 자유주의가 19세기의 ‘고전적’old 자유주의는 물론 케인즈의 ‘새’new 자유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신’neo 자유주의라는 이름을 붙였다.
요즘에는 "당신 신자유주의자 맞아?"라고 물어보면 그 누구라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손사래를 치지만, 하이에크가 신자유주의를 주창했을 때는 분명히 긍지에 찬 자랑스러운 용어였을 것이다.
단순화 오류를 무릅쓰고 도식화하자면, [ JS 밀의 Old -> 케인즈의 New -> 하이에크의 Neo ] 라는 흐름으로 자유주의가 변화되어 온 것이다.
3. 자유주의가 이제는 좀 지겹다.
마케터 님은 글에서 사민주의는 한국에게는 너무 요원한 대상이며, 일단 자유주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글 내용을 읽어보니 상당 부분 동의가 되는 맥락이 있다.
그런데 혹시 <자유주의연대> 또는 <시대정신>이라는 곳에 가봤는지 물어보고 싶다. <시대정신>은 문천 님이 『뉴라이트 비판』에서 무자비하게 비판을 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 주축인 조직인데, 그곳에 가보면 <시대정신>의 "자유주의개혁 10대방향"이라고 나와있다. 대체로 마케터 님의 글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마케터 님이 주장하는 내용은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고, <자유주의연대>의 신지호 의원이 얘기했어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내용들이다. 물론 마케터 님이 말하는 "자유주의개혁"은 그 방향과 맥락에서 분명히 다르고 강조점도 다르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자유주의란 말이 이미 그 빛을 잃은 늙고 병든 말이란 것이다. <자유주의연대> 하면 한나라당이 떠오르고 "자유주의개혁"하면 <시대정신>이 떠오르는 것이 바로 한국이다. 게다가 자유주의 앞에 '신'자를 붙이면 전세계적으로 통하는 하나의 욕설이 된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4. 뭐 좀 새로운 것 없나?
그래서 사실 '사회자유주의'라는 말도 좀 진부하다. 기왕 첨맘 님이 새로운 사상을 모색하고 있다면 기든스의 '제3의 길'처럼 참신하고 발랄하게 가면 되지 않겠나?
'사회자유주의'라는 말은 아무리 그 내용을 풍요롭게 한다고 하더라도 그 작명에서 반은 실패하고 들어간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시민광장이 새롭고 명랑 발랄한 작명 한 번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