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아들의 이름은 이한열이다. 그의 죽음과 맞바꾼듯 그 해에 대한민국엔 민주주의가 태어난다. 그로부터 21년이 지난 6월 10일, 오열하며 떠나 보낸 아들을 나이 70된 바로 그 어머니가 다시 아들의 영정을 품에 안는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슬퍼하며...
뫼비우스의 띠로 연결된 시간
결코 연출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감히 어느 누가 역사라는 시간 속에 이러한 일을 예상했을까? 아들의 영정을 가슴에 품은 어머니를 보며 눈시울이 뜨거웠다. 어머니는 내 아들의 죽음과 민주주의를 바꾸고 싶지는 않았겠지만 이미 바꿔버린 아들의 죽음도 결코 헛되게 하고 싶지는 않았으리라.


시간은 어딘가로부터, 아니면 누군가와 꼭 연결되어 있는 것만 같다. 어디가 겉인지? 어디가 안인지 구별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느 지점에서는 거꾸로 만나 연결되어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바다로 향하는 큰 강물 같다는 역사도 과연 그럴것이다는 추측을 또한 해 본다.
절망 속에 싹튼 희망을
역사는 굽이쳐 흘러도 바다를 향한다. 멀리 보면 보인다는 말이 이젠 위로가 된다. 태안 앞바다를 검게 물들인 원유를 닦는 마음, 종이컵 속에 끼운 촛불을 환하게 밝히는 마음, 생수와 김밥을 나눠주고 나눠 먹으며 기뻐하는 그 마음들에서 희망을 본다.



오열 속에 아들을 떠나 보낸 어머니의 절망으로부터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얻었다. 아들의 죽음으로 민주주의를 얻은 시민들은 이제 다시 그 아들(민주주의)을 어머니 품으로 돌려 보내 주어야 한다. 아직은 절망의 시간이지만 머지않아 희망의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