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재미있다. 흥미 진지한 선거다. 선거가 이렇게 재미있었는지 여태 왜 몰랐을까.
투표일이 가까워질수록 부동층이 늘고 있는 특이현상이 나타나는 이 시점에 선거가 재미있다고 하면 생뚱맞아 하실 분도 있을게다. 물론 대부분 선거지역이 그렇다. 대구 북구에 거주하고 있는 나 또한 이번 선거에 누가 출마를 했는지, 또 나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관심 밖이다. 하지만 전 현직 대통령 경호실장 유시민과 주호영이 맞붙은 수성乙에서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앞서 유시민 후보를 소개할 당시 전직 대통령의 경호실장이라고 한 것에 대해 딴죽을 걸 분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주호영 후보 측도 마찬가지 일게다. 허나 이는 유 후보와 주 후보를 나타내는 대표적 수식어 일뿐 너무 민감해 하지 마시라. 다른 말보다 이들 둘의 관계를 잘 표현하는 말이 없으니 어찌하겠나.
아는 분은 다 알고 있겠지만 대구 수성(壽城)乙 지역은 주호영 후보가 지난 5년간 자신만의 성을 차근차근 쌓아올린 수성(守城)이다. 그가 누구인가. 깃발만 꽂아 두면 당선된다는 한나라당 출신 현직 의원 아닌가. 게다가 그는 싫던 좋던 간에 현직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일 때 비서실장을 역임한 실세중의 실세가 아닌가. 어느 누가 주 후보가 버티는 이 지역을 넘볼까 예상을 했을까? 어느 누가 출마를 하더라도 어림없는 짓이라는 것이 이 지역의 분위기다.

그런데 이곳에 전직 대통령의 경호실장인 유시민의원이 과감히 출사표를 던졌다. 전직 대통령이 누군가. 훗날 역사가들이 재평가를 한다고 하지만 현재까진 이 지역에선 노무현 이름 석자가 멍에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유 후보는 노무현 정치의 실질적 계승자라는 것이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사실이다.
달걀로 바위치기가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이 지역에서 방구 꾀나 낀다는 진보 언론인도 유시민의 당선 가능성에 대해 고개를 절래 흔들 정도다. 그래서 일까. 유 후보가 출마를 선언 할 당시 모든 언론의 반응은 냉담했다. 유 후보가 단지 노무현을 따라 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폄훼하기 바빴다.
그러곤 시간이 흘렀다. 얼어붙었던 대구도 개나리가 피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만개했다. 누구하나 관심 기울여 주지 않던 이 지역에도 봄바람이 살랑 살랑 불기 시작했다.
10%대에 그쳤던 유시민 후보의 지지율이 3월 3일 18.8%, 3월 23일에는 27.4%, 3월31일에는 32.0%로 가파른 상승을 보여줬다. 이와 반대로 절대 허물어 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주호영 후보의 지지율이 3월 3일 65.1%, 3월 23일 54.5%, 3월 31일에는 46.0%로 떨어졌다.
여론조사의 신뢰성을 무조건 인정한다고 보면 지난달까지의 두 후보 지지율 차이는 14%. 투표일까지 남은 시간은 6일. 지지율 격차가 여전히 남아 있고 또한 선거운동 기간이 짧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주 후보가 우위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까지 한 것 만해도 유 후보는 선전을 펼친 것이다. 어느 누구하나 예상치 못한 일을 유 후보가 보란 듯이 해 낸 것이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한 명의 후보는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고, 또 다른 한 명의 후보는 완만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단지 쓰는 사람의 바람이라고 폄훼하는 무리도 있을 게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이렇게 까지 지지율이 좁혀 질 줄 상상이나 해 봤냐고. 상상 못했다면 닥쳐! 지금 이곳은 상상 밖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거든. 알간?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예상치 못한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까?
일단 유 후보의 전략이 지금까지는 잘 들어맞았다. 그 참모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훗날 유 후보로부터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유 후보가 선택한 첫 전략은 '대구사람'이다. 대구지역은 사통팔달 도로가 뚫려져 있는 대도시답지 않게 상당히 폐쇄적이다.
외지 사람들이 들어오기 힘든 곳이다. 오죽하면 전국에 인기 있는 유명브랜드가 대구 토종브랜드한테 밀리겠는가. 게다가 이 지역은 이미 조순형 민주당 대표가 대구에 전략공천을 받아, 12%의 낮은 득표를 받은 곳이다.
'우리가 남이가'란 구호가 보여주듯 남은 절대 안 된다는 지역이다. 이런 지역에서 유 후보가 선택한 것은 '대구사람'이라는 이미지다.
"담배 집 둘째 아들 유시민이가 돌아왔다."
짧디 짧은 이 한마디 구호가 평생 남일 것만 같았던 유시민을 대구 시민으로 받아 주기 시작한 것이다.
두 번째 선택한 전략은 '대구사나이'다. 타 지역 분들은 "'대구 사람'이나 '대구 사나이'나 같은 말인데"라며 의아해 하겠지만, 분명 다르다. 타 지역 분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대구는 여전히 경상도고 대구에는 경상도 기질이라는 것이 남아 있다. 타 지역 분들이 볼 때는 말도 안 되는 일들도 이 지역에서는 경상도 기질로 통하면 끝이다.
이 같은 경상도 기질은 대구지역에서 불고 있는 박근혜 돌풍과도 무관치 않다. 의리를 모르는 이명박 계열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 역시 경상도 기질이고, 싫던 좋던 간에 이 지역민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해 말 펼쳐진 대선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미 수구 골통지역이라 낙인찍힌 대구라지만 기본적으로 반 한나라 당 정서의 후보에게 20% 이상의 지지율을 보여줬다. 그러나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경우 6%대의 득표에 그쳤다. 그나마 진보적인 대구사람들도 정동영 하면 고개를 흔들 정도였다. 주군을 배신한 신하는 용서치 않는 다는 경상도 기질 때문일 게다.
이 점을 유 후보 진영은 바로 캐치를 한 것이다. 알고 했는지 모르고 했는지 알 도리가 없지만 어제 단박인터뷰에 나온 유 후보의 일성과 맞아떨어진다.
"주변에서 대구에 왔으니 이제 노무현을 버리라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치적 아버지를 우예 버립니까?"
적어도 이런 말은 대구에서 먹힌다. 어차피 아무리 지랄을 해 봐도 유시민하면 노무현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노를 버리는 졸장부 보다 노를 꿋꿋이 지키는 사나이가 대구사람들은 좋은 것이다.
"유시민, 정동영 처럼 약삭빠른 인간인줄 알았는데 그래도 사람은 됐네"라는 말을 대구 사람들에게 듣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유 후보가 선택한 전략은 "주 후보, 토론하자"이다. 유 후보는 누구나 인정하듯이 말로 유 후보를 이길 수 없다. 외모면 외모, 논리면 논리,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다.
"바른 말도 참 싸가지 없이 한다."는 비난성 발언도 토론 때문에 빚어진 결과물일 것이다. 여튼 유 후보가 선택한 전략은 "주 후보, 토론하자"였다. 자신의 장점을 십분 발휘할 토론을 유 후보가 지나칠 수 있겠나. 게다가 주호영 후보가 토론하자는 제안을 받아 주면 좋고 안받아 주면 '사나이 답지 않는 쪼잔한 넘'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안받아 줄 것을 알고 있었지만 유 후보 입장에선 토론하자고 선제공격을 하는 것이 영 손해 볼 장사는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주호영 후보의 입장에선 토론에 응해서 많이 잃는 것 보다 토론을 안하고 적게 잃고 만다는 것을 택한 것이다. 물론 주 후보 입장에선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유 후보가 선택한 전략은 "유시민을 국회로, 주호영을 청와대로"라는 구호다. 대구 시민의 입장에선 이보다 더 실용적인 선택이 없을 게다. 한 명은 국회로 보내고 또 한 명은 청와대 수석으로 보내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이명박 대통령의 실세라 자랑하고픈 주호영 후보 측에선 이 전략으로 떨어져 나갈 표를 생각하면 죽을 지경이겠지만 유 후보의 입장에선 최상의 선택인 것이다.
지난 총선에 대구 동구에 출마한 이강철 수석에게 이 구호를 갖다 댔다면 이 수석의 득표율은 아마 바닥이었을 터. 죽은 제갈공명이 울고갈만한 전략이 아닐까 생각될 만한 쇼킹한 구호다.
순풍이 불고 있다.
유 후보가 짧은 기간 역전하는 것이 그다지 불가능해 보이진 않다. 허나 주 후보 역시 바보가 아닌 이상 발빠른 대처를 할 것으로 보인다. 주 후보가 평상시 인적관리를 하는 유권자가 2만명이라는 이야기를 웃어넘길 일 만은 아닐 게다. 아주 치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 남은 것은 바람이다. 그것도 아주 큰 바람이 불어야 한다. 대구에서 아주 큰 바람이 불도록 절실히 기도해 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구 수성乙유권자님들, 정말 느무 느무 부럽습니다."
ⓒ 예원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