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대구를 넘어서 1 - 정치적 객관화로 자신을 바라보기
짐을 싣고 사막으로 서둘러 가는 낙타처럼 그렇게 정신은 자신의 사막으로 서둘러 간다.
<니체의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며칠 전 책을 읽다가 문득 니체의 위의 책이 생각이 나서 몇 군데를 찾아 보다가 위의 문장을 읽었습니다. 니체의 글은 항상 경구같은 문체입니다. 그래서 해석이 불필요한 부분도 있구 때론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의도적으로 남겨 놓은 문장들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어쩌면 니체는 자신만의 글쓰기의 스타일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기도 하고 기존의 글쓰기의 형태를 전복하려는 의도로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의 글쓰기를 보여주려고 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왠, 니체냐구요? 제가 아는 척하려고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 전부터 저도 모르게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대구로 유시민, 울 대장이 내려갔는데 그놈의 선거법때문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속을 태우고 있습니다. 온에서 지지, 반대도 적극적으로 하기엔 여러가지 자기검열을 해야 되는 이 분위기에서 맘껏 글을 적는다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프에서 열정적으로 하고 계시는데 거기에 동참할 수도 없는 사정이고 여러가지로 참 미안하고 죄송함 마음에 염력(?)의 글질이라도 해야 하는데 여의치가 않더군요. 그래서 27일 선거운동 시작을 기다리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로 머리를 채우다가 위의 니체의 문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을 대구선거만을 위한 글이 아닌 그것을 넘어서, 유시민이 꿈꾸는,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해 생각을 해 봤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그 출발점은 대구선거입니다. 아마도 선거가 끝나는 날까지 이 시리즈를 계속 올리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첫 생각의 한 자락입니다. 서두의 문장이 좀 무거워서 그렇지 사실 제 글은 어느 분이 만만해서 읽기가 좋다는 말씀처럼 그런 글이니 부담없이 가볍게 읽어 주시면 됩니다. 간혹 조금은 무겁게 느껴지는 문장이 나와도 몇초만 더 생각을 머물면 '아하~!'하고 무릎을 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잡설이 길었습니다.
유시민이 대구로 간 까닭은 무엇일까? 많은 분들이 다양한 얘기를 합니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는 유시민 본인도 사실은 헷갈려 하실겁니다. 많은 분들이 정치공학적으로 얘기를 하지만 전 좀 다른 시각으로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니체의 저 문장을 가져 온 겁니다. 작은 제목이 그 물음에 대한 함축적인 답이기도 합니다. 정치적 객관화?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유시민 자신의 정치적 능력, 정치적 자산, 정치적 한계 기타등등을 가늠해 보려면 가장 어려운 곳, 그리고 배타적인 곳에서 자신을 드러내야만 자신의 정치적 한계를 좀 더 객관화 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곳이 고향이라면 더 더욱 좋은 측정의 환경일겁니다. 대구는 유시민의 생물학적 고향입니다. 흔히 대구를 보수의 근원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 보수의 근원인 그 곳에서 고교까지 생활을 했다면 알게 모르게 유시민의 후천성에는 대구의 정서가 묻어 있다고 봐도 틀리지는 않을 겁니다.
보수적 토양에서 자랐지만 열매는 진보이다? 이게 가능할까요? 팥 심은데 팥이 납니다. 이게 자연의 이치입니다. 사과를 심었는데 바나나가 열리면 해외토픽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연의 이치를 넘어서는 그 어떤 것이 있나봅니다.
그래서 진보적 부모 아래에서 대단히 보수적인 자녀가 존재할 수도 있구 그 반대로 가능하다는 것 그리 이상한 현상은 아닐 겁니다. 아마도 이런 결과는 후천적인 환경의 요인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암울한 시대적 상황이, 그 속에서 학습되어진 것들이 유시민을 진보적 가치의 열매를 맺게 했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 진보적 열매를 단 유시민이 보수의 토양 대구로 향했다는 겁니다. 아마도 거기에는 자신의 경험적 사고가 많이 깔려 있었다고 봅니다. 선천적으로 진보, 보수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것을 유시민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증명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럼 울 대장은 대구에서 무엇을 얻기 위해 정치적 결단을 했을까요? 서두에서 밝혔듯이 아마도 자신을 객관화 시켜보고 자신의 정치적 치수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본인이 그렇게 얘기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그런 결과를 얻게 되어진다는 겁니다.
보수적 환경에 있는 대구의 선택이 얼마만큼 유시민을 수용하느냐에 따라 유시민의 정치적 지향점이 어떠해야 할지 가늠할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유시민을 기준으로 진보VS보수의 측량 근거로 대구를 평가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정치공학적 지역적 대립구도로 그렇게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겠지만 전 이런 대립구도로 대구를 평가하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대구의 진보 중에서도 나름의 이유로 울 대장을 찍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대구의 보수 중에도 나름의 이유로 유시민을 찍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진보VS보수로 나눌 수 없다는 겁니다.
문제는 유시민에 대한 진보수를 넘어 그에 대한 정치적 가치, 또는 이미지에 대한 평가가 이번 대구에서 울 대장이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자산이자 측량치라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무소속의 유시민이라서 더더욱 그 평가에 대한 것이 불순물(?)이 덜한 결과를 얻을수 있다고 봅니다.
첫 시리즈의 글인데 적다보니 길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무리를 할까합니다. 서두에 니체의 문장은 바로 이런 유시민의 행보를 잘 말해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니체는 모두가 알듯이 인간, 스스로 우상(신)의 노예가 되지 말고 인간 스스로 주체성을 찾자, 아니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니체는 인간이 스스로 주체성을 자각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은 돌아봐야 하는데 그럴려면 제일 먼저 낙타처럼 자신의 정신의 위대함을 찾기 위해 사막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막이라는 외롭고 힘든 곳으로 스스로를 던져서 거기서 사자처럼 자신의 세계를 발견하고 그 사막의 주인이 되어야만 진정한 인간의 주체성을 찾을수 있다고 합니다.
결국 자신을 찾는다는 것은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작업입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알아내는 작업, 이게 바로 사막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느 인터뷰에서 유시민의원이 자신의 18번 노래를 <무조건>에서 <내 인생은 나의 것>으로 바꾸었다고 말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유시민이 스스로 자신의 18번 노랠 <내 인생~>으로 바꾼 것은 그래서 매우 의미심장한 발언이라는 겁니다. 승천하지 못한 용이 다시 승천하려면 많은 것을 다시 준비해야 합니다. 그 준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근원을 돌아보는 겁니다.
항상 전진을 방해하는 걸림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내부, 근원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린 항상 외부, 다른 먼 곳에서 그 원인을 진단하고 찾습니다.
대구로 유시민은 떠난 것이 아니라 어쩌면 대구에서 다시 시작할 동력, 근거를 얻기 위해서 대구에서 출발하는 겁니다. 대구에서 가출해서 고양에서 정치를 시작한 유시민을 버리고 다시 고향 대구를 찾은 것은 이젠 진짜 가출이 아니라 출가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집을 무작정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지향점을 향해 길을 떠나기 위한 출가말입니다.
사족
사람마다 생활정치를 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생활정치란, 자신의 본업에 충실하면서 짜투리 시간을 할애해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업은 가족과 삶의 터전입니다. 좀 더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좀 더 많은 짜투리 시간이 있을겁니다.
다른 유빠들보다 좀 더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 생활정치의 참여를 가로막는 벽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그게 생활정치의 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여를 많은 시간의 투자와 오프 참여횟수로 평가하는 우는 범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서로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 다양한 힘을 보태는 것 그게 모여서 큰 물줄기를 만든다고 봅니다. 여전히 오타나 문맥의 어색함은 셀프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