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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대통령 누구 뽑을래?"
"박근혜."
"왜?"
"그냥, 여자니까"
"너 대통령 누구 뽑을래?"
"정동영."
"왜?"
"그냥, 전주사람이잖아" |
불과 몇 달 전에 친구들에게 질문을 했을 때, 내 머리를 아찔하게 만들었던 '내 친구'들의 대답이다. '누구'를 선택한다는 것이 아찔했던 것이 아니라, '왜' 선택한다는 대답이 23살의 대학생의 입에서 나오는 대답치고는 황당했기 때문이다.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친구들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의 부끄러운 기억 때문이다.
당시 학생회장 선거를 하는데, 내가 상당히 좋아하고 타고난 리더십을 가진 친구가 출마를 하였다.
그나마 말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학교 내에서 그나마 인지도가 있었던 내가 '홍보 담당'쯤 되는 직책을 맡았다. 선거유세를 할 때, 전교생을 상대로 내가 했던 말을 떠올리면, 지금이라도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선생님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기호 2번 김개똥을 뽑아주십시오. 여기는 어디? 경상도? 아니죠~. 여기는 전라도! 전라도는 몇 번? 1번? 아니죠~ 전라도는 안보고 2번~! 무조건 2번~! 자. 다같이~ 전라도는 몇 번? (2번~ 와~) ..."
도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아마, 유시민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 역시 앞의 질문에 1초도 걸리지 않고 '정동영'이라고 했을 것이다. 'why?'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학교 선배니까.(그래야 내가 뭔가 사회 나가서 뭔가 도움 좀 받지 않겠어?)' 라고 대답을 했을 것이다. 나름 일류대라는 연세대를 다닐 정도의 성적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주변 사람들에게 '똑똑하다고' 인정받을 정도는 되었던 '무식한' 나를 그런 '무지'의 끝없는 수렁에서 건져준 것이 바로 유시민이었다.
그리고 더욱 근본적으로 내가 유시민에 빠지게 된 계기, 나의 무지를 일깨워 준 계기가 바로,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비난의 총구를 들이댈 준비를 항상 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수구언론'이다.
실은 나는 유시민을 잘 몰랐고 별 이유도 없이 싫어했다. 유시민을 미디어에서 처음 접한 것이 바로 국회에 처음 등장했을 때 캐쥬얼 차림으로 등장했다고 연일 미디어에서 시끄럽게 다뤘을 때였다. 그 때 나는 유시민이라는 사람을 기존 권위에 저항해서 한 번 튀어보려고 쇼를 하는 '정치연예인'쯤 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참여정부 내내 미디어에서 보이는 유시민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수구꼴통 박홍신부가 그리 싫어한다는 '레드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으로 보였다. '국론분열을 조장하는 선동적 좌파빨갱이' 정도가 내가 아는 유시민이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 중에 경제수업을 가장 좋아했고, '시장광신론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유시장을 상당히 좋아하는 나에게, 그 당시 유시민은 내 머릿속에서 '마르크스 빠돌이' 쯤으로 빨갛게 칠해진 상태였다.

그러던 중, 전역을 앞두고 군대에서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와 같은 교양 경제학 서적을 읽고 나서, 한국의 경제학자가 쓴 교양 경제학 서적을 찾고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유시민의 경제학카페'를 추천하였다.
그래서 구입을 하긴 했는데, 왠지 책의 표지는 녹색이지만, 책장을 펴면 '레드 바이러스'가 내 몸속에 침투할 것만 같은 두려움 때문에, 책을 읽지 못했다. 그러다 “마르크스도 알아야 비판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라는 생각에 마르크스의 허점을 찾아서 공격할 준비태세를 갖추고 책장을 넘겨갔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 하나. "속았구나"... 그 후 유시민의 많은 저서를 읽어보니 유시민은 내가 알던 '친북좌파빨갱이'가 아닌 그저 합리적 원칙을 가지고 행동하는 평범한 자유주의자였을 뿐이었다. 오히려 내가 읽어낸 그의 성향은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 가까웠다.
어릴 적부터 조선, 동아, 중앙일보의 문제점도 잘 모르고 전라도 사람이라면 그저 싫어해야 되는 줄 알았던 내가 바로 그때부터 나를 바보로 만들었던 언론의 무서운 힘에 대해서 어설프게나마 인지했고, 여러 책을 통해서 언론의 행태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래, 솔직하게 말하자면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과 밤새서 술마시고, 사랑하는 여자에게 목숨걸고(이건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야자시간과 체육시간에 피시방으로 달리는 것이 인생의 낙이었던 나, 대학에 가서도, 군대에 가서도 20년이 넘게 몸에 베인 나태함과 게으름, 그리고 무지의 늪에서 빠져나올수 없었던 나를 건져 올려준 것이 유시민이었기 때문에 나는 유시민을 좋아한다.
내가 유시민을 '무엇'때문에 좋아한다고 말하는 다른 이유들은 모두 내가 유시민을 좋아하고 나서 스스로 합리화시킨 이유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빠'수준의 무비판적 지지라고 하더라도, 나는 유시민을 좋아하는 유빠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산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그럴지 몰라도 가끔 말을 아낄 때가 있다. 유시민을 좋아한다고 하면 급진적 좌파로 몰아가는 무지한 사람이 주변에 대부분인 현실에, 그런 인식이 두려워 나는 유빠임을 밝히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솔직히 부끄럽다. 유빠라서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내가 85년에 태어났음에도 아직 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한 세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부끄럽다는 것이다.
'좌'라는 방향은 내게 있어, 가서는 안되는 영역이라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어서인지, '좌파 빨갱이'가 아닌 유시민임에도, 내가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조차 용기가 나지 않는 내 모습에, 그리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우리 현실에 나는 부끄럽다는 것이다.
'좌향좌'를 거부하는 그런 내재적 메커니즘의 존재유무를 떠나,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나는 시장기능을 신뢰하는 시장주의자이며, 보수주의자이다. 그러나 그런 나 역시도 '좌파'로 취급받는 것이 대한민국이다.
주변에 그나마 철학이나 정치, 역사를 공부한 친구들은 나를 보고 '진짜 자유주의자'라고 얘기하지만, 나는 솔직히 아직 공부가 턱없이 부족해 자유주의의 역사와 정의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하며, 나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이 왠지 유시민이 말하는 진짜 자유주의를 깎아 내리는 것 같아서 두렵다.
그나마 내가 자유주의자에 가깝다는 사실을 내 스스로 인지하는 경우는 어떤 논제에 대하여 생각을 할 때, 철학적 회의주의에 빠질정도로 극단적 상대주의적인 논리를 펴나갈 때가 많은데, 나는 그러한 나의 논리전개가 자유주의자적인 논리전개에 가깝다고 생각할 때 뿐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대법관이었던 윌리엄 오빌 더글러스(William Orville Douglas)는 이런 말을 했다. '내 주먹을 움직일 수 있는 나의 자유는 당신 턱의 근접성에 의해 제한되어야 한다'. 대법관이 어떤 의도로 이런 말을 했는지를 떠나,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만약 이것이 자유를 정의하는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면 나는 자유주의자임에 틀림없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성격탓인지는 몰라도, 나는 남들에게 의도하지 않게 피해를 줬을 지는 몰라도 가능한한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 항상 노력해왔고, 또한 내가 타인에게 그렇게 대하는 만큼 타인에 의해 내 개인적 권리를 침해당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갑자기 이런 '-주의'와 좌파와 우파를 들먹이는 것은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싸움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겪었던 정체성 혼란 때문이다. 나는 세상은 불평등하다고 생각해왔고 지금도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태어난 집안 뿐 아니라, 태어난 도시, 태어난 국가, 태어난 대륙, 일단 인간이라는 존재는 탄생부터가 불평등하다. 인류역사를 다 살펴봐도 선천적 요인, 후천적 요인, 개인적 요인, 사회적 요인 모두가 불평등하다.
물론 그 선천적, 후천적이라는 분류는 딱부러지는 기준이 없으며, 후천적 요인과 사회적 기준을 평등하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선천적 요인과 개인적 요인에 의해 생기는 불평등과 후천적, 사회적으로 강요된 평등 사이의 부조화를 나는 옳은 것이 아니라고 본다.
내가 이렇게 지껄이는 것은, 분명 내가 그래도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한 친구들과 함께 지내왔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나는 학창 시절에 나 역시도 그리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학업에는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대학교에 진학을 할 수 있었고 남들보다 취업을 하는 데에도 유리한 것이 분명 사실이다.
'세상 참 좆같네'하면서 사회비판을 안주삼아 매일 밤 소주병 나발을 부는 사람들 보다, 그 시간에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거나, 조금 더 땀흘려 일을 한 사람들에게 더 큰 경제적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논리이며, 자신들이 남들보다 더 적은 노력을 하고서는 남들과 똑같은 대우를 요구하는 것은 분명 비겁하고 무책임한 행동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비판을 나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대하는 논리체계로 이용해왔다. 그러나 그러한 비난을 쉽사리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바로 군생활을 하게되면서였다. 나의 성장과정에서 겪어온 수많은 친구들, 물론 학창시절의 친구들이야 집안환경 같은 것을 잘 드러내지도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는 내 주변의 유복한 가정의 친구들과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게 된 것이다.
대학교에 가지 않은 사람이 그렇게 많은 줄도 몰랐고, 집안 형편이 아주 어려운 친구들이 그렇게 많은 줄도 몰랐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도, 자기가 열심히 하면 되지'라는 논리를 부숴버릴 정도로 어려운 가정에서 자란 친구들, 먹고 살기 위해서 대학교도 아니고, 고등학교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친구들, 내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난 이후에, 전역을 하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도대체 무엇이 옳은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앞서 말했던 정체성 혼란이 일어난 것이다. 생각을 많이 했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내 안의 '이성과 감성'의 충돌이었다. 머리는 오른쪽으로 가고 있는데, 가슴이 왼쪽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경제학을 공부해서인지, 좌향좌를 거부하는 메커니즘때문인지 몰라도 분명 머리는 이쪽이 옳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흐르는 눈물은 저쪽이 옳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23살의 나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런 지금의 나의 모습이 왜 내가 우리나라의 수구세력을 증오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수구세력이 이 땅에서 괴멸된다고 해도 내 자신의 이성과 감성의 충돌은 언제나 상존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 안에서 벌어지는 이성과 감성의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땅의 수구세력, 그리고 그것의 정치세력, 한나라당이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한나라당 박멸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태어났다'는 유시민의 말이 생각난다. 그러나 한나라당 박멸은 유시민 개인의 사명이 아닌,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대한민국 국민의 사명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런 역사적 사명과 개인적 사정 사이에서 무게추를 역사적 사명에 둘 수 없기에, 그리고 나 역시도 그런 부류중의 한사람이기 때문에, '정치인' 유시민을 지지하면서 민주시민의 몫을 다 하고 있다고 자위하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한나라당,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이 나라의 수구세력이 바로 현재 내 감성과 이성의 충돌의 주범이기 때문에, 그 놈들이 없다면 나는 지금 그것으로 굳이 괴로울 필요가 없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을 인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합당한 경제적, 사회적 보상이 이뤄져야 하고, 만약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고 유토피아를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면 신명나게 비판하고 싶은 것이 나의 생각인데,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내가 그럴 수 없다. 가족을 부양해야 해서, 학교를 다닐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가정의 친구들에게 그런 비판은 너무 가혹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필연적이지만, 한번 낙오자가 되면 그것으로 끝이나는 인생을 받아들여야 한다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복지국가가 아니라, 모두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불평등을 인정하는 범위내에서 모두가 같은 출발선상에서 경쟁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복지시스템과 적자생존에서 낙오자가 되더라도 언제든 다시 올라설 문을 열어주는 생산적 복지 시스템의 기본적인 정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언가 거대한 변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노무현이 말했던 '상식' 그냥 그거다. 그것이 수구꼴통들에게는 '혁명'으로 받아들여질지 몰라도, 내가 요구하는 것은 '혁명'이 아니라 '상식'이다. '난 너보다 더 노력했으니까'가 '난 너보다 더 기회주의적이니까'로 이해되는 사회가 아니라, 정말 '노력'이 '노력'으로 인정 받고, 그 노력에 합당한 보상이 이뤄지는 진정한 합리적 시장경제가 되도록 아주 기본적인 안전망, 기본적인 생산적 복지를 요구하는 것이 오히려 보수라고 자칭하는 그대들에게도 더 떳떳한 것 아닌가??
두 번 글 올렸는데 모두 메인에 올라가서 좀 부끄럽기도 하고 기분 좋기도 하네요. 밤에 갑자기 잠이 안와서 혼자 시부렸는데 좀 횡설수설하네요.